목은 잠기고 코는 맹맹하고 몸은 으슬으슬 한기가 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조치해야지 싶어 감기약 두 알 먹고 전기장판 안에 쏙 들어가 몸을 웅크린다. 이렇게 해맑은 가을날 이불 속이라니.

엄마가 만들어 준 뜨끈한 음식 한 그릇 뚝딱 하고 나면 좋아질 것만 같다. "입맛이 살아있는 것을 보니 죽을 병은 아닌 것 같네." 그나마 다행이라는 남편 말에 죽는 소리 좀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살짝 든다. 그래도 빨리 나아 가을을 누리는 게 백 번 낫지 싶어 한국의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어디 아프냐?" 딸 음성만 듣고도 엄마는 안다. 응석 어린 마음으로 "엄마, 우리 어릴 때 먹던 떡국, 그 위에 올리는 두부 고명 어떻게 만들어요?" 단번에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미적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전화선을 타고 전해온다. 한참만에야 "으응, 나도 오래 안 해 먹어서 생각이 안나네" 라신다. "치매 검사를 해봐야 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지셨어"라던 여동생의 귀띔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해진다.

몸이 조금 가벼워진 틈을 타 인터넷을 두드려 본다. '떡국 두부고명' 하고 쳤더니 김이 솔솔 나는 두부 고명 이미지 아래로 '떡국 고명 만들기' 사이트가 좌악 뜬다. 떡국의 종류, 유래에 이어 내가 찾던 '경상도식 두부 고명' 만드는 순서가 사진과 함께 소상하게 나와 있다. 요약하면 냄비에 소고기, 다진 마늘, 국간장, 참기름을 넣고 달달 볶아 준다. 물을 부어 바글바글 끓으면 작게 썬 두부를 넣어 함께 끓인다. 국물이 반으로 졸아들면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 혹은 냉동 보관한다. 짭짜름한 두부 고명 넉넉히 준비해 놓으면 떡국, 라면 끓이듯 쉽게 언제 먹어도 꿀떡꿀떡이란다.

인터넷 앞에 앉아 있으니 뉴저지 딸이 생각난다. 예전에 엄마가 만들어 준 불고기, 자기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며 고기 종류와 양념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딸에게 조잘조잘 요리법을 전수하는 엄마의 즐거움이 어찌나 쏠쏠하던지.

그런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정확하게 얼마큼 넣어야 되냐고 묻는다. 용량?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말문이 막혔다. '적당히 눈대중으로 알아서' 라는 말을 도무지 이해 못 하는 딸. "인터넷 뒤져 봐, 다 있어!" 궁색한 변명으로 전화를 끊고 난 후 얼마나 아쉽고 미안하고 속상하던지. 이젠 정말 그램 수 꼼꼼히 재가며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족은 단출하고 외식은 잦고 마켓 가면 요리해 놓은 음식이 즐비해 직접 해 먹는 음식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연달아 외식하고 나면 '건강을 위해선 집밥이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지금까지 뭐 해 먹고 살았나 싶을 만큼 요리법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인터넷으로 궁금증을 탁탁 쳐넣으면 다양한 요리 방법이 컬러풀한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얼만큼?" 하던 딸의 음성이 떠올라 용량을 다시 확인한다. 그런데 요리하다 보면 난 또 '적당히 알아서' 잘하고(?) 있다. 이건 어떻게 해요? 저건요? 음식 이야기 하며 익어가던 모녀간의 정은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쓸쓸한 가을이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 모두 잘 추슬러야겠다.


미주 중앙일보 2014.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