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2014.10.15 11:05

백남규 조회 수:135


                                                                                      


삶과 죽음  



-고영준의 ‘다음은 누구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 젖어 죽음이라는 단어를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자기가 알고 있던 사람의 죽음과 맞닥뜨릴 때 충격을  받고 잊고 있었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태어나고 죽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힌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쉽게 찿을 수 없다. 곧 바로 해답이 나오는 질문도 아니다. 개인마다 답이 다를 수 있다.  각 개인이 살고 있는  나라나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기서는 고영준 시인의 경우를  읽어본다.



열여덟이 단풍으로 불타던 가을날                              



아버지 시신을  오른팔로 안고



뿌연 안개를 보았어요



뒷머리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사십년이 지난 후



어머니 시신 앞에서



쉰일곱의 가을은 눈물로 젖었지요



불효자임을 확인했어요







예순 하나가  되던 어느 봄날



곱디 고운 둘째를 안고



깨어나라고,깨어나라고 호령했어요



그날 새벽 둘째는 어깨를  툭 쳤어요



“형,굿바이”



동생은 한국,나는 미국에 있었는데…..







예순일곱  문턱을



하얀꽃 속에서



일곱살 미소를 띤



막내의 영정사진을 보며            



벙어리가 되었어요







예순 여덟이 저무는 가을날



친구의 장례식장 밖에서



낙엽하나를 들고  물었어요



다음은 누구입니까?



저 입니까?



-다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인생의 표면만 살고 있다.  피상적으로 표면만 맴돌며 산다. 삶의 중심속으로 깊이들어가지 못하고 수박겉핥기식으로 산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가  생의 다른 면을 보게되는 계기를 만난다. 그것은 혈육이나 친지의 죽음이다.











평소에는  죽음에대하여 깊이생각하지 않는다.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웃고 떠든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 우선 음식과 물이  필요하다. 이런것들은 외부세계에 있기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온갖 관심이 바깥세상으로 향해 있다. 그러던 어느날 가까운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위 시의 화자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슬픔과 공포를 느낀다.  죽음 자체는 아직 정체모를 미지의  세계에 속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2,3,4연은 어머니와 동생들의 죽음에  가슴이 미어질 것같은 슬픔과 회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마지막 5연 화자가 68세, 친구의 죽음 앞에서 드디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인다.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외부로 향하던 관심을 내면,영혼으로 돌리게 되는 순간이다. 50년이 걸렸다. ‘낙엽 하나를 들고’ –죽음도 낙엽이 떨어져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임을 암시한다.



이런 깨달음을 분명하게 보이는 시인의 다른 시를  소개한다.







가족 사진 찍는 날



옷 색깔이 문제가 되어



남자는 검은 색계통



여자는 하얀 색계통으로



가진 것 중 최고를 입기로 했다.







나는 캐주얼 차림



아들은  흰 와이셔츠 정장이다.



아내는 꽃무늬 저고리



딸은21세기 톤으로 멋을 냈다.







곱게 자란 멋쟁이 딸은



내 어깨에 기대어 한 컷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미남청년



아들과 내가 허어 웃으며 한 컷



아내는 팔로  내 목을 넥타이처럼 조르고 한 컷



온 가족이 섭섭지 않게 번갈아가며 한 컷씩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 영정 사진을  찍었다.



-가족 사진  찍는 날- (전문)







이 시 화자는 초로의 남자다. 장성한 아들,딸을 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다.  본인의 생일,혹은 아들의 졸업이나 결혼 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아내의 꽃무늬옷처럼 밝고 활기찬 삶의 모습에서 갑자기 시치미를 떼고 영정사진을 불쑥  돌출시켰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병치가 이 시에서는 자연스럽다. 영정 사진이  슬프지 않고 꽃무늬 옷처럼 밝을 것 같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죽음이란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미리 수의를 준비하고 저 세상에서 살집(무덤)을  마련해 놓았다. 수의를 마련하고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는다는 것은 죽음을 담담하게 맞아들일 수 있는 마음인 것이다. 언제라도 맞이 할 수 있다는 성숙한 깨달음을 보이고 있다. 생로병사의 인생길에서 죽음이라는 절벽이,혹은 깊은 강이 떡 버티어 서있다. 긴장감(공포)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각자의 문제다. 다만 이 깊은 강을 잘 건너는 사람만이 사람됨의 격조을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