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편지

2014.10.16 17:28

차신재 조회 수:27

비 오는 날의 편지
                 차신재

비 오는 날
우산 몇 개 팔려고
지하도 입구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오는 날이면
밤이 깊도록 아프다

개구리소리 요란하던 어느 날
서러움과 허기
푸른 비닐우산에 숨긴 채
젖은 논둑길 따라 아득히 멀어져가던 너가
기억의 층계를 딛고 오기 때문이다

불이 꺼진 너의 빈 집
억새풀처럼 살아간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보내며
빈 우체통에 먼지로 쌓여가던 너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이름을 잊었지만
지금도 누르면
피멍울로 오는 이름

비 오는 날이면
캄캄한 수십 년의 안부가
문득문득 궁금했었지

오랜만에 친구 편에 들은
너의 세월 속 유리창에
아직도 빗물로 흐르고 있다는 나

밤늦도록 비가 내린다
개구리소리 낭자한 논둑길 따라
푸른 비닐우산이 가물가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