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기도
2004.08.27 12:05
아버지의 단장(短杖)
홍인숙(Grace)
70kg 체중을 받아 안는다
85년 세월이 말없이 실려온다
침묵하는 상념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굽은 다리를
묵묵히 반겨주는 검은 단장
12월 바람도 햇살 뒤로 숨은 날
조심조심 세 발로 새 세상을 향한 날
고집스레 거부하던 단장을 짚고
"난 이제 멋쟁이 노신사다"
헛웃음에 발걸음 모아보지만
늙는다는 건
햇살 뒤로 숨은 섣달 바람 같은 것
아버지 눈동자에 담겨진
쓸쓸한 노을 같은 것
그림: 김동순
음악: 푸치니
오페라 Gianni Schicchi 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노래- Mirella Freni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눈에 총기도 없어지시고 허리는 더욱 굽어지셨다.
기분도 무거우신지 하루종일 시청하시던
위성 안테나를 통해 들어오는 고국 TV 방송도 안 보시고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셨다.
외출도 전혀 못하시고 식욕도 전 같지 않으신 아버지.
귀도, 눈도, 흐려지셨지만 그럴수록 생각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시는지
골똘히 상념에 잠겨 계시는 모습을 자주 뵙게 된다.
내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마음처럼 아버지의 수발을 잘 들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늘 나 자신을 부끄럽고 마음 아프게 한다.
오늘부터 3일간 교회에서 부흥성회가 열린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 그 옛날 뜨거웠던 신앙심을 되찾아
열심히 기도를 드릴 생각이다.
8. 2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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