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內助)와 외조(外助)

2005.01.12 22:23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254 추천:10

내조(內助)와 외조(外助)
    
                                                 조옥동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은 성경에도 있는 마음깊이 새겨 둘 교훈의 하나이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선입관이 있어 본능에 가까운 편견이 작용 할 때가 많다.
오늘도 창문으로 모리박사 부부가 다정하게 승용차를 타는 모습이 보이니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알겠다. 오른쪽 차 문을 열어 부인을 태우고 운전자 자리에 앉는 모리박사의 정중함은 언제나 한결같다. 모리박사 부부와 가까이 지낸 것은 삼 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전에 그들과 수인사 한 것은 꽤 오래된다. 부인은 이백 파운드를 훨씬 넘는 거구의 생물학 박사이고 보통 몸집의 남편은 교수이며 의사이다. 모리박사 부부얘기를 구태여 꺼낸 것은 나의 선입관이 꽤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나에게 이들 부부가 그 생각을 머리 속에서 깨끗이 청소하도록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잘 알기 전에는 남편 모리박사가 그 볼품없는 부인을 어찌 그리 아끼고 정중하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여간해서 사람들이 근접하기를 매우 어려워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그를 만나면 겨우 "하이 모리박사님" 하고 빨리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그들 연구실의 기계를 사용하고 또한 여자박사의 자문을 꼭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를 계기로 나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고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로 부인은 겉보기 보다 상냥하고 마음이 너그럽고, 남편보다 머리가 좋아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학술발표나 관계되는 모임에 출장도 잦다. 내가 보기엔 비행기 좌석이 비좁아 얼마나 불편할까 염려될 정도로. 그때마다 남편 모리박사는 집안 살림과 두 딸들을 돌보면서 세 살된 딸은 유아원에 아침에 맡겼다 퇴근 후에 픽업하고 초등 학교 다니는 딸은 근무 중에 학교에 가서 데려다가 연구실 한쪽 책상에서 숙제를 시킨다. 보통 때는 같이 출퇴근하면서 똑같이 가사를 나누고 점심도 외식을 하는 일이 거의 없이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연구실로 다시 온다. 이들의 생활에서는 오직 검소함과 근면만을 엿볼 수 있다. 서로를 돌봐 주려는 마음씀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까지도 전해져서 깨끗하고 잔잔한 시냇물이 흐르는 듯 경쾌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항상 요한 스트라우스의 경쾌한 리듬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들 부부에게서는 부인의 할 일과 남편의 할 일이 따로따로 구별이 되지 않는다. 남편이 그 일을 하면 남편의 일이 되고 부인이 그 일을 하면 부인의 일이 되는 것이다. 즉 누가 내조를 하고 누가 외조를 하는지 구별이 안 된다. 빨래와 부엌일은 여자가 하는 일이고 무엇은 남자가 해야 한다던가 직장에서나 바깥에서는 남자가 더 권위가 세워져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찾아 볼 수 없다. 언 듯 보기엔 부인이 외조를 많이 받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모리박사가 부인의 내조가 커서 직장에서 승진도 빠르고 교수로서 권위가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 이들에겐 내조와 외조란 말이 거꾸로 적용됨이 합당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도대체 내조란 단어 자체가 전 봉건적인 냄새를 풍긴다. 여자들이 주로 집안에서나 머물면서 울 밖을 내다보는 몸짓만으로도 매우 낭패하게 생각되던 전근대에서는 자식 낳아 잘 기르고 옷 수발 잘하며 음식 잘 만들고 집안살림이나 잘하여 가산(家産)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을 때 내조를 잘 했다고 했다. 이에 반하여 외조란 말은 차츰 시대가 바뀌고 생활양식이 근대화되어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고 남녀 평등을 내세우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에 남자도 협조를 한다는 뜻으로 발생한 단어라고 생각된다.
남편이 부인을 돕고 부인이 남편을 돕는데 구태여 내조를 한다 또는
외조를 한다고 구별된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으로 혹은 남녀차등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지 않은가? 물론 내 자신이 한 남자의 부인으로 나의 본연의 역할을 덜 하거나 소흘리 하고싶은 생각이나 나아가 남편의 구별된 영역까지 넘겨다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의 경우 비교적 남편의 외조를 받는 편에 있고 스스로는 줄곧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의 역할을 잘 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곳 미국사람들은 모리박사네 말고도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를 도와주고 아끼며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 나는 외조를 또는 내조를 했다고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더욱이 내조를 또는 외조를 잘 받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가정생활이 파탄 나고 이혼하는 결손 율이 우리네 보다 높다 하더라도 같이 살아가는 동안은 내조나 외조를 받겠다고 생각을 하기보다는 남편이 내조를 부인이 외조를 또는 바이스 버사로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만 멋있는 부부로 보이기보다는 사려 깊은 내조와 외조를 서로
주고받을 때 따뜻한 내면의 사랑과 신뢰가 깊어질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진정으로 부부는 평등하다는 사고방식이 내조를 잘 한다던가 또는 외조를 잘 한다는 행위 보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전혀 다른 측면에서, 나는 내조(內助)와 외조(外助)를 생각하고싶다.
즉 가족과 사회 나라와 나라사이, 사람과 자연환경사이까지 넓혀서.
물질문명의 지나친 발달과 물자의 과잉소모 그리고 병행되는 생태계의 파괴로 이상(異狀)한 이상(異常)현상들이 이상(異象)하게 나타나는 현대, 새로운 천년의 때에는 우리가 생존하는 이 지구와 외계 또는 우주사이에 내조(內助)와 외조(外助)가 잘 이루어져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 살아갈 모든 인류가 온화한 환경 속에서 살아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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