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냄새

2005.11.21 21:25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238 추천:5


                         한국사람 냄새
                                                        
                                                          조옥동  

"집을 팔려고 하는 분은 맨 먼저 한국사람 냄새를 제거해야 합니다." 냄새나는 음식을 삼가고 환기를 자주 하고…… 또 오픈 하우스 날엔 집안 냄새를 지우려 향수를 뿌리는 일도 삼가야 된다는 구체적인 조언까지, 퇴근길 차 속의 라디오에서 오후의 종합뉴스를 막 끝내고 유익한 정보를 소개하는 방송이 들려왔다.
부동산을 팔고 사는데 '한국사람 냄새' 가 문제가 된다면 그 냄새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뜻이며 집 값이나 매매성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한국사람이 살던 집에 한국사람 냄새가 남아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사람 냄새?  한국동포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고 L. A.만도 수십만 명 살고 있는데 한번 짚어 볼 화두가 아닌가.    

이민 와서 처음 아파트를 얻어 이삿짐을 옮길 때 이민선배인 두 시누이가 누누이 당부하던 말이 기억난다. 마늘냄새, 된장냄새, 생선조림 등의 냄새를 피우면 아파트사람들이 싫어하고 그들의 불평이 매니저에게까지 전달되면 아파트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엄포였다. 이민 초년생인 우리 가족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하며 구수한 된장찌개 한번 맘놓고 끓여먹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마늘조차 사용하지 못했다. 출근이나 외출을 할 때는 김치를 먹지 않았어도 한국음식 냄새 곧 한국사람 냄새가 날까 신경을 썼다. 벌써 30여 년 전 이야기라 지금의 이민생활과는 격세지감이 있다.
어머니를 만나 뵈려 가까운 노인아파트에 들르면 한국음식을 조리하는 냄새가 복도에 진동하여 한국사람이 여러 가구 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어떤 냄새는 좀 지나치게 심한데도 이제는 그것이 문제되어 쫓겨났다는 얘기는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어떤 한국 음식은 맛은 좋은데 자극성 냄새가 심하다. 내가 좋아한다고 또 누구도 이를 탓하지 않는다고 맘놓고 냄새를 피우는 일은 공동생활에 어긋나는 비문화인의 행위며 한국사람 냄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다. 한국사람 냄새 때문에 한국사람이나 한국의 이메이지를 손상시키는 일은 물론 살던 집을 손해보고 팔 수는 없다. 조금만 주의하고 연구하면 한국사람 냄새 중에서 좋은 것만을 살릴 수 있는데.「한국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보다는 「한국적 냄새」를 풍긴다는 말을 듣고 싶다.

한국사람 냄새는 물리적이고 한국적 냄새는 한국사람 정서를 내포하는 형이상학적 표현이다. 냄새는 숨결이다. 현실의 숨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체취이다. 냄새는 어떤 사물에서 스며나는 상징과 은유의 표현이다. 냄새는 언어 없는 예술이며 붓이나 물감으로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한국의 냄새는 한국인이 만들어 온 고유한 문화의 유산이며 한국사람에서만 우러나는 한국적 향기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이다. 한국의 입맛과 한국사람의 냄새가 병행하지 못 한다면 한국의 고유한 음식문화의 맛과 멋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에 흥미를 유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한국사람의 체취는 못 잊어 늘 생각하는 고향의 풀 냄새처럼 또는 어머니 품속의 냄새처럼 한국사람에겐 그리움의 향수가 되며 외국인에겐 누구에게나 수용되고 나아가 활용되는 유연성이 있어 그들에게도 호감을 일으키는 한국사람의 고유한 맛과 멋으로 인정받고 싶다.

미국의 슈퍼마켓마다 동양식품 진열대가 생기고 한국의 김치와 라면이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번 싸스가 유행 할 때 김치가 질병을 예방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후로는 한국김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특히 일본인들의 95%가 김치를 거의 매일 식탁에 올린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겨울연가」의 욘사마 한류열풍이 불기 전부터 김치는 한류를 일으킨 셈이다. 이제 김치는 한국사람 냄새라는 나쁜 의미보다는 한국적 냄새 곧 한국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한국의 맛이요 그 냄새다.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닥터 나오꼬는 한국식당에 가면 김치찌개를 그것도 아주 맵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총각김치를 좋아하는 그에게 "처녀가 총각김치를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면 깔깔거리며 김치 중에도 젓갈을 가미하여 적당히 숙성시킨 한국김치의 맛을 아는 김치애호가가 되었다. 캠퍼스 구내식당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매운 맛에 입술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국산 사발면을 즐겨 먹는 모습을 본다. 한국의 맛이 이제는 국제적인 입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코리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소외감에 눈물을 삼키면서도 한국의 맛과 문화를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깨끗하고 당당한 한국사람의 한국적 냄새를 풍기려 애썼다. 연중 행사로 인터내셔널 푸드 페스티벌이 있을 때마다 태극마크가 화려한 부채, 도자기, 한국인형 그리고 아이들의 한복들을 한쪽에 진렬 해 놓고 다른 한쪽에선 한국의 맛을 알리려 수십 파운드의 갈비를 재워다가 열심히 구워냈다. 이젠 코리아를 모르면 오히려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메이드인 코리아를 애용하는 외국인들 속에서 더 이상 나는 외롭지 않다.
  
글로벌시대를 살면서 모든 한국인은 한국적 냄새 곧 한국의 멋을 알리는 문화홍보대사의 역할을 임명장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해내고 있다. 환한 웃음이 있는 긍정적인 맛이 우러나는 독특한 한국사람 냄새를 때로는 화끈하고 때로는 구수하고 새콤하고 은근하게 널리 세상에 풍겨내고 싶다.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가 어딘지 모르게 가까이 하고싶은 느낌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손짓하는 향기, 한국인의 냄새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