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여행 이야기

2005.11.23 12:44

정찬열 조회 수:670 추천:6

         * 글 머리에

여행은 떠남이다. 자질구레한 일상으로부터 훌쩍 떠나는 것이다.  혼자도 좋다. 마음에 드는 친구와 함께라면 더욱 좋다.  생소한 곳을 함께 여행하면서 정겨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자연과 더불어 대화하고 사색하며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충만된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금 일상을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다면,  아-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이지 않는가
이 글은 여섯 부부 열 두 명이 4박 5일 동안 알래스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전 과정을 간략하게 기록한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론 여행을 다녀온 우리 일행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비슷한 여행을 계획하는 많은 분들에게 우리들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가지고 이 글을 썼음을 밝혀 둔다.  
이 여행기를 시작하면서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는 얘기를 떠올리며 약간의 망서림도 없진 않았으나,  있는 모습그대로 보고 느낀 만큼 쓰고 나면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써내려 가기로 했다.     또 한가지,  알래스카는 미국 본토의 5분의 1에 해당하고 택사스주의 2.5배, 그리고 우리 한반도의 7배에 해당하는 거대한 땅이다.  따라서 이 글이 알래스카 여행기라는 제법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 알래스카에서도 앵커리지를 중심으로한 그 주변을 관광하고 돌아온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읽어 주셨으면 한다.  
그리나 실제로는 알래스카의 다른 지역은 아직 교통망이 정비되지 않아서 알래스카 관광은 대부분이 우리가 다녀온 앵커리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께서도 어차피 같은 지역을 관광하시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 따라 오신다면 그만큼 더 흥미롭게 읽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준비 과정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훌쩍 여행을 떠난다는 게 쉬운 듯 하면서도 막상 현실로 닥치면 이런저런 일 때문에 미루어지고 결국은 좌절되곤 했던 경험을 누구나 한 두 번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경험에 익숙해 있었던 터라 우리들은 일년 전인 지난해 6월에 이번 여행을 계획했었다.
알래스카를 다녀온 어떤 분으로부터 그 곳이야말로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다녀와야 할만큼 매력적인 곳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 김훈씨 부부의 제안이 이번 여행의 단초가 되었으며, 우리 모두가 만장일치로 찬성을 하여 여행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날자는  7월4일 독립기념일 연휴로 정하고 여행경비는 각자의 형편에 맞기되, 필요한 가정은 한 달에 얼마씩 적금을 해서라도 차근차근 준비하여 한 가정도 낙오됨이 없이 함께 출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여행 안내는 알래스카 현지 안내원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믿고 맡길만 하다는 다녀오신 분의 말을 신임하기로 한 것이다.  인원이 12명으로 정해진 것은 순전히 현지 안내자의 자동차의 정원이 12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부부와 김훈씨 부부, 장옥근씨와 안병규씨와 윤규환씨 부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섭씨 부부가 합류하여 여섯 부부 열 두 명으로 인원이 확정되었다.  다음에 소식을 듣고 몇 부부가 추가로 합류하기를 원하였으나 그럴 수 없는 게 유감이었고, 마음 한구석 미안한 심정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여행에 관한 연락과 집행 등 모든 문제를 김훈씨 부부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일찍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므로써 경비를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일 년 내내, 여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던지 금년 일년은 다른 해에 비해 훨씬 빨리 지나간 성 싶다고 모두들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이렇게 계획을 일찍 세움으로서 경제적인 이익은 물론, 어쩌면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그 무엇을 덤으로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렇게 여행을 계획하고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보다 풍요롭고 의미로와 진다고 생각하니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사랑한다' 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발을 한 주일 앞두고 아서원 식당에서 준비 모임을 가졌다. 각자의 비행기표를 배분 받았다. 시에틀을 경유하여 알레스카에 가는 일정이다.  이번 여행을 위한 총무로 안병규씨를 선출했다.  여행하는 동안 공동으로 지출되는 모든 경비는 총무를 통해서만 지불될 수 있도록 했다.  출발하는 날 오후 6시에 L.A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짐을 꾸렸다. 추울것에 대비해 스웨터랑 두터운 잠바랑 그리고 내복까지 두 벌 챙겨 넣었다.  털모자도 함께 넣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떠날 준비는 끝났다.  마음은 잔뜩 돛을 달고 바람만 기다리고 있다.

     *  출발하는 날 ( 7월 2일 )

오후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전날 미리 택시회사에 연락을 취해 놓았더니만 오후 4시 30분 택시가 집에 도착함.  가는 도중에 안병규씨와 윤규환씨 댁에 들러서 함께 차를 타고 5시 40분경 공항에 도착.  조금 후에 다른 일행도 택시를 이용하여 공항에  도착함.   탑승 수속을 마치고 보니 출발시간이 한참 남아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음.   8시 20분 정각, 우리 일행을 태운 알래스카 에어라인이 L.A 공항을 서서히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에스키모인이 짐승 가죽옷을 입고 '이그루' 라는 얼음집에서 살아간다는 알래스카, 아득한 옛날 국민학교 시절 자연책에서 보았던,  사진으로만 기억 속에 살아있는 그 신비의 땅 알래스카를 가는구나.  사철 얼음과 눈이 덮힌 동토의 나라,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에이커당 단돈 2센트에 사들였다는, 석유가 펑펑 쏟아져 주민들에게 수 천 달러씩을 나누어준다는 알래스카.  신비와 선망의 나라, 그 화제의 땅을 마침내 가게 되는구나.
창 밖을 내다보니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따라 흐르고 저 아래 땅위엔 어느새 밤이 깊어 가는지 불빛들이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Seatle이 가까워 온단다. 비행기에 그대로 머문채로 승객을 내리고 태우더니 30여분 후 다시 이륙. 새벽 2시 40분 드디어 목적지인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함.    L.A 와의 시간차 1시간을 감안하면 이곳까지 5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대합실로 나오니 현지 안내원이 마중을 나와 있다. 이름이 장석남이라고 본인 소개를 한다( 이하 장선생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얼굴 모습이나 풍기는 채취가 첫 눈에 믿음이 가는 인상이다. 그런데 이분의 옷차림을 보니 아래는 긴 바지를 입었으나 상의는 여름옷 차림이다.  춥겠다 싶어 내복까지 챙겨 가져온 터라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와보니 날씨는 L.A의 초겨울 날씨 정도다.
장선생 소유의 모텔에 도착하고 보니 새벽 3시 15분 이다. 오는 길에 언듯보니 '롯데 녹용상사' 라는 간판이 보였다. 이 지역에서 녹용이 많이 생산되고 우리 한인들이 그쪽 영업에 관여하고 있구나 하는 짐작이 갔다.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 여행 둘째 날 ( 7월 3일)

아침 6시 30분 기상.  준비들을 끝내고  7시 15분 12인승 벤차를 타고 출발.  그러니까  3시간정도 잠을 자고 일정을 시작하는 셈이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 두었지만 아무래도 잠이 부족한 탓인지 눈이 까실하다.  간밤에 닭 울음소리와 뱃 고동소리 그리고 비행기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 했노라고 몇 분이 불평함.  
안내자인 장선생이 운전석에 앉고 바로 옆자리엔 내가 앉았다. 그러니까 맨 앞좌석 제일 전망 좋은곳을 기록원이라는 명목으로 차지하여 앉게된 셈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그 자리를 탐하지 않고 한번도 그 자리를 바꾸지 않았으니, 내가 더할 수 없이 뻔뻔스러웠던가 아니면 우리 일행이 그만큼 너그러웠던가 둘 중에 하나임이 틀림 없으렸다.
오늘 일정은 Seward 항구에 가서 배를 타고 빙하를 보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곳에서 Kenai 반도를 따라 2시간 30분 차를 타고 가면 항구가 나온다고 안내자가 설명해준다.  십 여분쯤 가다가  Restaurant에 들러 커피 한잔과 토우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함. 후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함. 기대했던 함박눈이 아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식당을 출발하여 15분쯤 가니 울창한 숲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철 눈이 덮혀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물론 산 정상이나 골짜기엔 하얗게 눈이 남아있어, 골짜기와 등성이가 색갈의 조화를 이루어 마치 얼룩배기 송아지처럼 하얀 반점을 찍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아랫쪽 기온은 초겨울처럼 약간 쌀쌀할 정도다.
  알라스카 여행은 여름 관광과 겨울 관광으로 완전히 구분이 된단다.  대체로 여름관광은 6월부터 8월 사이에 빙하구경와 연어낚시 그리고 멕퀸리봉 구경으로 이루어지고,  겨울 관광은 12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주로 스키와 썰매타기 그리고 설경과 빙하를 구경하는 것으로 짜여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여름관광의 한가운데 오게된 셈이며 눈 구경이나 썰매타기는 당연히 겨울 관광시즌에 와야 할 터였다.
에스키모 원주민들은 대부분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이그루라는 얼음집에서 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험한 산악 지대라서 경비행기를 이용해 생필품을 조달한다고 한다.  일반 주민들도 도시가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주민들의 숫자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경비행기가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길을 닦는데 드는 비용에 비해 경제적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허긴 인구 60만 정도가 이 큰 땅에서 살아간다니 사람들이 사는 곳마다 길을 놓으려면 그 비용이 얼마나 들겠는가를 셈해보니 경제적 타당성이 없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Kenai 반도에 들어서고 있는가 보다. 왼쪽 숲 속에 별장들이 보석처럼 박혀있고 오른쪽으론 갯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니 이 잘룩한 지형을 지나면서 반도가 시작되고 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고 있다. 장선생이 무엇을 보라고 하여 그쪽을 보았더니 산양 몇 마리가 바위 위에 올라가 무언가를 먹고 있다.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온 염분이 바위에 엉겨 붙게되는데 그것을 핥아서 염분을 섭취하고 있는 중이란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조금 더 가니 거대한 고사목들이 하얗게 길 양쪽에 즐비하다.  1964년도에 지진이 나고 해일이 일어 나무들이 물에 잠겨 이렇게 고사목이 되었단다.  200여명이 사망한 대 지진을 기억하기 위해 쓰러진 집과 나무들을 역사의 기록으로 고스란히 이렇게 보존하고 있다.
왼쪽으론 철길이 차도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알래스카 철도 제 1호인 이 철도는 주로 화물을 실어 나르며 한국으로 수출되는 석탄도 이 열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자동차로는 2시간 30분이지만 기차론 3시간 30분이 걸린단다.  
알래스카는 지금부터 약 130여년 전, 당시 국무장관이던 William Seward가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구입했는데 그것도 현금은 20만불만 지급하고 나머지 700만불은 무역 빚으로 탕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에이커당 2센트도 채 못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을 구입했던  국무장관은 큰 곤욕을 치루었으며 오히려  러시아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해 했다니, 오늘날 경제적 군사적인 측면에서 알래스카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지금 가고있는 항구는 당시의 국무장관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라 Seward 항구라 이름 지었다한다.
이 땅에 금광과 유전이 차례로 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따라 몰려들었으며 1912년 드디어 미국의 49번째 주로 승격되었고 지금은  60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한인들은 약 8천에서 만 명 가까운 숫자가 살고 있는데 대체로 L.A 지역 한인들과 비슷한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아직 한인타운이 형성될 만큼의 규모는 아니며 한 두개의 한인 식당과 마켙이 있다고 했다.
비가 그치고 날씨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Anchorage 에서 Seward 까지 뻗어있는, 우리가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은 AAA가 선정한 미국의 10대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라고 한다. 멀리 눈 덮힌 산봉우리가 보이고 산중턱엔 구름이 띠를 이루어 마치 강강수월레를 하듯이 산을 빙 둘러있다. 왼쪽을 보니 맑은 호수에 산 그림자가 물에 내려와 앉아있다.마치 산이 산을 업고 있는 듯 하다.  
호수 위에 떠있는 연꽃 몇 송이가 우리 일행에게 수줍은 미소를 보낸다. 푸른 호수 위에 노란 옷을 입고 청초하게 떠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못해 슬프다.  누가 저 꽃을 가르켜 진흙에서 피었다 하겠는가. 진흙이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고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꽃과 진흙, 진흙과 꽃.  그렇다.  꽃과 진흙을 동시에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흙이 되어 꽃을 피워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꿀 줄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저마다 꽃이 되고자 하면 누가 저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겠는가.  
활처럼 휘어진 바닷가를 빙 돌아 왼쪽으로 꺽어 올라가자 제법 가파른  고개가 나오더니 길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한인들이 아리랑 고개라 부른다 했다.  나무들이 휘어져 길쪽으로 구부러져 있는 모습이 마치 '어서 오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는 듯 싶다.  자작 나무라 한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저렇게 휘어진단다. 재질이 약해서 이쑤시게로 많이 쓰인다고 했다.
울창한 숲이 계속 이어지고 개울물은 콸콸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간다.  이곳 알래스카를  'Last Frontier '라 하여 금광이나 석탄 그리고 석유같은 지하자원은 물론 산림자원도 철저히 보호하여 연방법으로 그 개발을 엄격히 금하고 있단다.  그리고 개발이익을 주민들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작년에도 한 사람 당 $1,000.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식구가 4명이면 $4,000을 받게되는 셈이다.  
이곳 특산물은 연어와 고사리 녹용 정도인데 한인들은 부지런하여 산에 가선 고사리 산미나리 산나물 등을 채취하고 바다에선 광어 도미 대구등을 낚시하며, 바닷가에 널려있는 미역 조개 등을 잡아와 부식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한다.  양미리 라는 고기철이 오면 한 번 그물질에 한 바케스가 잡힌다는데, 거짓말 같은 참말이라 하니 믿을 수밖에.
잔등을 넘으니 화장실이 나왔다.  낡은 화장실 건물이 오히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20여분을 가니 맑은 호수가 왼쪽으로 나타났다.  여기가 정상이다.  꽤 넓어 보이는 이 호수에서 송어가 많이 잡힌다 했다. 오른쪽 산비탈에 전봇대가 서 있는데 그 주변을 통나무로 둘러 막아놓았기에 까닦을 물어보니 겨울에 눈사태로 전봇대가 쓰러지는걸 막기 위해서란다.
내리막길을 십 여분쯤 갔을까. 오른쪽으로 호수가 보이고 그 주변을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멀리 보이는 설산과 깍은 듯 질러 서있는 절벽, 그리고 맑은 호수에 길게 드리워 있는 산 그림자와 야트막히 내려 깔린 구름띠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있다. 스위스의 알프스산과 우리나라의 해금강의 풍경을 합하면 이런 절경이 되지나 않을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날씨가 맑게 개었다. 오가는 차들이 드물다. 비가 내린 뒤라서 공기가 더할 수 없이 상쾌하다. 왼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연어 부화장이 있단다. 연어알을 인공으로 부화하여 방류하면 그놈들이 태평양 깊은 물에 가서 큰 고기가 된 다음 수 만리 길을 헤엄쳐서 반드시 방류했던 그 지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단다. 자연에 맡기는 것이 순리이지만 어민들의 생계와 관광객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이렇게 연어의 숫자를 조정하는 것이란다.  때로는 연어의 숫자가 하도 많아서 저희끼리 머리를 부딪혀 죽기도 하기 때문에 전자 감응장치를 설치하여 적당한 숫자의 연어들이 통과하도록 조절한다고 한다.
길가 이정표는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슴도치로 보이는 짐승 한 마리가 길가에 죽어 넘어져 있다. 숲이 울창하여 곰을 비롯한 짐승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후미진 모퉁이를 돌아서니 화제로 인해 불타버린 나무들이 허허로히 서 있다.
숲으로 된 기-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Seward 항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보다는 자그마한 항구였는데 한가운데 정박해 있는 커다란 유람선이 눈에 띈다.  '사랑의 유람선' 이라  불리우는 Cruise Boat다. 그 옆에는 육지로부터 길게 바다 가운데까지 석탄을 운반해 주는 콘베이어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데 석탄을 실어주는 마지막 부근에 '선일' 이라고 한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저쪽 건너편의 감옥도 십 여년 전에 한국의 현대가 건설했다고 한다.  
항구 주변에 R.V  Park이 보이는데, 장선생 말에 의하면 이곳만큼 R.V가 많은곳도 미국내에서 흔치 않을 거라고 한다. 배를 타기엔 시간이 조금남아 간단히 시내를 둘러보았다. 시내라고 말할 것까지 없을 만큼 자그마한 마을인데 관광지와 휴양지답게 바다가 바라보이는 절벽부근에 별장들이 눈에 띄였으며, 항구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친 산들이 모두들 눈에 쌓여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고 있다.  
11시 30분에 항구를 출발하여 빙하를 구경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데 6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빙하를 구경하는 코스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과 Wittier라는 곳에서 출발하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Wittier는 앵커리지에서 5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우리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장선생은 이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모두들 배에 올랐다. 정원 200명인 이 배는 이름이' Kenai Flore Tort '다.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뱃멀미를 방지하는 약을 가져왔지만 필요한 사람은 사먹으라는 안내 방송이 있어서 나도 약을 사 먹었다.  11시 40분 정각, 붕 부-ㅇ 기-ㄹ게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배는 천천히 선착장을 떠나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새끼물개 한 마리가 물위에 가만히 누워 헤엄치듯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소리를 치고 사진을 찍으며 야단을 쳐대도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있는 양 말똥말똥 쳐다보는 모습이 이런 것엔 꽤나 익숙해져 있는 듯 싶다. Bald Eagle 이라는 목에 하얀테가 있는 독수리 한 마리가 바닷가운데 꽂혀있는 장대 끝에 앉아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물개와 독수리는 이곳의 자랑거리라고 안내원이 소개한다.  
유람선 건너편으로 돛단배 몇 척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다시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듯 싶다. 이제 바람이 불면 저들은 돛폭 하나 가득 바람을 안고 저 넓은 바다를 향하여 달려갈 것이다. 똑같은 바람을 타고도 어느 배는 동쪽으로 갈 것이며 다른 배는 서쪽으로 향할 것이다.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고 돛이다. 인생의 여정도 바다바람과 같은 것,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영혼의 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안개가 자욱하고 간간히 빗방울마져 뿌린다. 옆자리의 미국인이 투덜투덜 날씨 탓을 한다. 점심을 주는데 센드위치 한 조각과 음료수 한 잔이다. 공짜 점심이다. 배가 서서히 속력을 높힌다.
육지가 아스라히 멀어져간다. 큰 바다로 나오자 배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바다는 살아 있었다. 바다가 살아 숨쉬며 꿈틀대고 있다. 바다가 요동치면 사람도 덩달아 출렁이며 바다가 잠잠해지면 사람도 따라서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하나씩 뱃멀미를 하기 시작한다. 바다가 숨을 들이키면 우리도 함께 숨을 들여 마시고 바다가 숨을 내쉬면 사람도 함께 울컥 토해내야만 한다.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시들해 지고 여기저기 나뒹구는가 하면 머리를 싸매고 한 둘씩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나도 조금은 속이 메스꺼웠지만 멀미약이 주효했던지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속력이 조금 낮아지는 성싶어 밖으로 나왔다.  배가 섬을 끼고 돌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고적 그 모습이다. 수 백 마리의 바다표범이 노닐고 있고, 깍아 지른듯한 절벽 사이를 바닷새가 날고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갈 무렵 작은 돌섬 두 개가 오른쪽으로 약간 비켜서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잘생긴 수석을 수반에 사-ㄹ짝 올려놓은 것 같다.
다시금 배는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배 고물 뒤에 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섬 쪽을 쳐다보니 햇빛이 잠깐 얼굴을 내비친 때문인지 쌍무지게가 떠 있다. 어린시절, 산 넘어 무지게를 쫓아 한나절을 헤메다 돌아온 기억이 떠 올랐다. 일곱 살쯤이었을까 간짓대를 들고 자운영이 후드러지게 핀 그 논둑길을 건너고 건너 한 나절이나 들판을 헤메다 돌아왔던 그 아득한 기억들이 추억의 저편에서 아슴아슴 되살아나고 있다.
이제 섬조차 보이지 않고 사방은 망망대해다. 파도가 계곡처럼 산처럼 너울거리고 그 사이를 위태위태 배가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한 척의 배는 이 바다에서 얼마나 왜소한가.선실에 누웠더니 잠깐 잠이 들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배의 속력이 줄어드는가 싶더니만 흔들림도 줄어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물결이 잠잠하다.  만에 들어선 것이다.  밖에 나와보니 제법 춥다.
양옆으로 눈 쌓인 야트막한 산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물안개가 나즉히 깔려있다. 더할 수 없이 잔잔한 물위를 배가 조용히 미끄러져 가고 있다. 얼음 덩어리가 하나씩 둘씩 떠내려 온 듯 싶더니 어느새 수백 수천의 조각들로 떠내려 오고있다. 말로만 듣던 빙하, 그 빙하가 조각이 되어 수천 수만의 조각이 되어 떠내려오는 것이다.  써늘한 기운이 온몸을 휩 싼다.  빙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하얀 절벽이 그 어렴풋한 자태를 서서히 들어내고 있다. 얼음장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얼음조각 위엔 눈이 쌓여 있고 그것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다. 진눈개비도 같고 가랑비 같기도 한 것이 계속 내리고 있다. 손이 곱고 발도 시리다. 빙산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이젠 제법 가까이 들린다. 수 많은 얼음 조각은 저마다 제몫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조용히 물위를 떠돌고 있고, 배는 매우 느린 속도로 빙산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허긴, 얼음조각 때문에 속력을 내지도 못할 터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비가 멈추고 햇빛이 잠깐 모습을 들어내는 순간 빙산은 온통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너무 하얗기 때문에 오히려 푸르게 빛나는 그 신비로운 몸체를 들어내고야 말았다.  억만년을 간직해온 그 순결한 모습을, 아름답고 신성한 처녀의 자태를 드디어 드러내 보인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숨이 막혔다.    빙하는 산과 산사이의 계곡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계곡에 눈이 내려 쌓였다가 녹고 다시금 쌓였다 녹아지는 과정을 오랜 세월  되풀이하면서 저처럼 거대한 얼음산을 만들게 된 것이다.  
배는 빙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멈추어 있다.  우르르-릉 소리를 지르며 빙하는 제 몸을 끊임없이 물위에 허물어뜨리고 있다. 한 번에 10층이나 20층되는 건물크기의 얼음이 저렇게 계속 허물어지면서 야금야금 제 몸을 줄여나가는 중이다. 크고 작은 얼음덩이들은 천천히 떠내려 가다가 어느새 형태도 없이 녹아 사라질 터이다.
  Sea Otter 한 마리가 얼음덩이에 누워서 재롱을 부리고 있다.  Harbour Seal은 넓은 얼음조각을 타고 앉아서 신선처럼 노닐고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가기에 바쁘다.  배가 천천히 돌아갈 준비를 시작하였다. 배와 안개와 얼음덩이를 생각하자 영화 ' Titanic' 이 떠 올랐다.  그 영화를 멕시코의 엔시나다에서 찍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지막 장면을 혹시 이곳에서 촬영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선원들이 돌아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다시금 옅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빙산이 안개 속으로 가물가물 멀어져 간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에 곳곳에서 빙하가 녹아지면 결국은 바다가 높아져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상학자들의 말이 떠 올랐다. 만을 빠져 나오자 다시 물결이 거칠어지고 배는 오던 길로 속력을 더하여 달리기 시작한다.   5시 30분 항구에 도착.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셈이다.              
장선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변덕이 심하여 비를 뿌리고 있다.  길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려 가 보았더니 내 키가 넘을 정도의 큰 고기를 구경하고 있다.  광어인데 209 파운드가 나간다고 했다.  그놈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모두들 벤차에 올라 오늘의 숙소인 키나이 강가의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약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아침에 오던 길을 한참 되돌아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들어 Hwy를 달리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남북으로 열린 길은 이 길 하나뿐이란다.  숲이 계속되고 길 옆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급류타기 하는  모습이 보인다.  평소엔 물이 아주 맑은데 오늘은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난 탓인지 조금 탁해 보인다고 장선생이 말한다.  
조금 더 가니 왼쪽으로 낚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내일 이곳에서 낚시를 할 것이란다.  지금이 연어의 영양가가 최고라 했다.  이곳 수산청에서 연어의 숫자를 감안하여 1인당 3마리로 제한하고 있는데 어느때는 6마리까지도 허용한다고 했다.
연어는 알에서 깬 다음 태평양으로 나가 살다가 몸집이 커지고 힘이 축적되면 3년에서 5년사이에 온 힘을 다하여 자기가 태어난 곳까지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단다.   연어엔 대체로 Red, King, Silver의 세 종류가 있는데 지금은 주로 Red 연어가 잡히는 계절이란다.  연어 낚시는 붕어처럼 먹이로 유인하는 게 아니고 낚시줄에 색깔이 있는 깃을 메달아서 그것을 공격하도록 하여 낚아 낸다고 했다.
이곳 날씨는 겨울엔 보통 7도 정도이며 추울땐 -40도 까지 내려가는데,  그런 때문인지 이곳엔 뱀이 없단다.  적어도 뱀에 물릴 염려는 없어서 고사리등을 따러 숲속을 다닐땐 그만큼 자유롭다고 했다.  이곳 한인들도 서로들 잘 어울려 지내고 있으며 한인회, 라이온스 클럽, 향우회, 낚시회등이 조직되어 있다고 한다.  
차는 계곡을 벗어나 확 트인 길을 달리고 있다.  왼쪽으로 골프장이 보인다.  9홀이라고 했다.  이곳 앵커리지 부근에 18홀 골프장 3개가 있고 9홀이 2개 있는데 겨울이 오면 골프를 칠 수 없기 때문에 여름이면 밤늦도록(?) 골프를 친다고 했다.  골프요금은 Public 골프장이 $30 정도 받는다고 하니 L.A부근과 비슷한 것 같다.  
길가 양옆으로 통나무집을 만들어 파는 집인 듯 통나무집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띈다. 나무가 많은 지역이니 제격이 아닌가 싶다. 길가 양옆으로 터널을 이루며 서 있는 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눈 치우는 차들이 눈을 길가 양옆으로 몰아치우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 터널처럼 보인다고 한다.        
장선생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여 이런 저런 부탁을 하는걸 보니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 얼마 가지 않아서 오늘의 목적지 Soldotna가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Korean B.B.Q 라는 간판이 눈에 띄는걸 보니 이곳에도 상당수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비포장 도로에 차가 진입하더니 곧바로 3층 통나무집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오늘저녁 묵어갈 곳이다.  
비온 뒤라 그런지 앞마당이 질퍽거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도 공사중인 듯 싶다.  주인은 '토마스 신' 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였으며 이곳에 정착한지는 20년이 넘었단다.   집을 안내해 주는데 방이 15개다.  3층에 올라가 뒷 쪽을 내려다보니 끝없는 숲이 질펀하게 펼쳐 있고 그 사이를 키나이강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다. 강에는 배를 띄우고 태공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별장이다.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찾아오고 있으며, 서울의 모 대학 야구팀도 지난해에 이곳에서 전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본국에 I.M.F.가 시작되기 전엔 해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요즘은 주춤 하단다.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여 바로 옆에다 단체 손님을 위한 별채를 또 짓고 있던 중 I.M.F.를 만나서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고 했다. 때론 이곳 특산물인 녹용을 복용하며 휴식겸 요양을 하면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내색은 않지만 모두들 배가 고픈 모양이다.  허긴 배에서 샌드위치 한 개로 점심을  때웠고 그나마 뱃멀미로 많이들 힘이 들었던 터이니 이해 할만하다. 아까 전화로 연어를 준비해 놓겠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이래저래 오늘 저녁은 모처럼 기대할만한 만찬이 될 참이다.
Buffet식으로 음식을 각자 날라오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가 연어를 준비해 가져왔다.  보기에도 싱싱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집에서부터 준비해온 상치 깻잎 고추 마늘 그리고 초고추장까지를 모두 꺼내 놓았다.  상치에 깻잎을 얹고 다시 고추 마늘을 합하여 초고추장에 연어를 싸서 한입에 먹으니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거기에 더하여 쐐주 한 잔을 쭈-ㄱ 들이키는 맛이라니--.   이곳은 채소값이 비싸니 미리 준비해 가는 게 좋다는 경험자의 말을 듣고 가져온 것이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차안이 온통 마늘 냄새로 진동하여 곤욕을 치루었던 터였지만 고추 마늘이 빠지고서야 어디 제 맛이 나겠는가.
  저녁을 마치고 나니 설핏 10시가 가까워 오고 있다.  잠깐 바람 좀 쐐고  잠자리에  들 요량으로 밖에 나왔더니 아직도 환한 낮이다.  백야 현상이라고 했다.  요즈음은 밤 12시에 해가 지고 3시에 해가 뜬단다.  며칠 지나면 뒷산으로 해가 지면서 동시에 앞산에서 해가 뜬다고 하니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되면서도 그럴 만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생각하니 아까 장선생이 저녁까지 골프를 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여섯시에 티엎을 하더래도 밤 11시면 끝낼 수 있을터이다.  이렇게  일조
량이 많다보니 쑥갓 상치 호박 오이 등은 일년에 3번을 수확하고 세계에서 제일 큰 호박이나 제일 큰 오이는 모두가 여기서 생산이 된다고 한다.
햇빛은 이렇게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내리쬐어 곡식을 익히고 과일을 열매맺게 한다.  비는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마른 대지를 적시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완성한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남을 위해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색을 낸다.
  세상일 이란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밤이 길고 낮이 지금처럼 짧은 겨울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11시 30분 잠자리에 들었다.

        
          * 여행 세째 날 ( 7월 4일 )

  6시 30분 기상.  아침 산책을 나갔다.  내 딴에는 제법 일찍 일어났다 생각했는데 나
와보니 벌써 장옥근씨네와  김훈씨네 부부가 산책을 다녀오고 있다.  집 옆으로 난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를 집사람과 함께 거닐었다.  이렇게 신작로를 걸어본지도 꽤 오랫만이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길가에 시계꽃이 수북히 피어있다. 시계꽃, 나 어릴적 우리 어머니는 들에 다녀오시면서 시계꽃으로 꽃시계를  만들어와 내 손목에 채워 주곤 하셨다. 나는 이슬을 털고 그 중 가장 탐스러운 시계꽃 두 개를 꺾어서 꽃시계를 만들어 아내의 손목에 채워 주었다. 이름 모를 산새 한 마리 무어라 재잘거리며 푸드득 날아올랐다.  
  산책하는 우리 일행을 주인댁 개 3마리가 번갈아 따라 다녔다.  뒷 뜰에 갖혀 평생을 지내는 우리집 진돌이나, 밖에 잘못 나갔다가는 차에 치이거나 Animal Shelter에 끌려가는 California 개들의 처지, 그리고 삼복에 보신탕 감으로 팔려가는 한국 개들의 신세를 생각할 때, 이렇게 산과 들을 마음대로 뛰노는 이놈들이야말로 '개들의 천국' 에 사는 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7시 10분 아침식사.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일품이어서 모두들 아침식사를 맛있게 함.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나오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폴짝폴짝 뛰어가는 게 보였는데 주인 신선생에 의하면 이곳생활 23년만에 개구리는 처음 본다고 하였다.  
오늘 낚시를 위해서 주인댁 아드님이 낚시도구를 채기고 있다.  두보의 '강촌' 이라는 시가 스쳐 지나갔다.      
   긴 여름의 대낮-  /  강물에 안기어  /  마을은 조는 듯 한가롭다  /  제비는 멋대      로  /  처마를 나들고   ..........    애놈은 바늘을 두들겨서  /  낚시를 만들고 있다.   낚시터를 향하여 출발.  여기서 그곳 Russian River 까지는 40분 남짓 걸린다 한다.   가는 길에 마켙이 눈에 띄어 물건 몇 가지 사 가지고 가자하여 잠시 멈춤.  그런데 의외로 주차장에 R.V 가 많이 보여 장선생한테 물었더니 이곳에선 마켙에 R.V Park 시설이 완비되어 많은 사람들이 마켙에 머물면서 여행도 하고 물건도 구입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미국 본토에서 캐나다를 거쳐 이곳에  R.V를 타고 여행을 와서 몇 개월씩 머물다 가는데, 그들은 대부분 이와같이 마켙에 딸린 파킹장 설비를 이용한다고 했다. 길에 보이는 차들이 승용차 보다는 주로 트럭이나 4x4 그리고 R.V가 많이 눈에 띈다고 했더니, 이곳은 눈이 많아서 주로 그런 종류의 차들을 많이 사용한다고 대답해준다.  
연어 낚시는 대체로 1, 2, 3차로 시기를 나누는데 지금은 1차시기이며, 2차는 7월 10일이 넘으면 시작된단다. 그리고 시기에 따라 잡히는 연어의 종류도  King Salmon, Red Salmon, Silver Salmon의 순으로 잡히며, 연어 시즌이 끝나면 송어가 잡힌다고 했다.    장선생 말처럼 본인만 부지런하면 일년내내 반찬걱정 할 필요가 없을 법하다고 생각되었다.    
휴일인 때문인지 자동차가 많지 않다. 길가 자동차 대피장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장선생이 연어낚시의 요령에 대해 설명을 했다.  고기가 물리면 ' Fish On ' 하고 소리를 쳐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낚시의 기본이라고 했다. 그렇게 옆사람에 알림으로서 서로 협조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누군가 ' Fish On '하고 큰소리로 외쳐서 우리는 벌써 연어잡이에 들뜨기 시작하고 있다.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장옥근씨와 윤규환씨를 비롯하여  모두들 자신 만만하지만 몇 시간 후면 결과가 나타날 터였다.  김훈씨가 대어상과 최다어상에 각 $20씩 자비로 상을 주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노섭씨가 여자분 가운데 누구든 한 마리라도 잡기만 하면 $100을 상으로 내놓겠다고 하여 분위기를 한껏 돋구웠다.  바야흐러 낚시장이 가까워지고 있다.  
9시 40분 Russian River Ferry 입구에 도착.  벽에는 한글로 쓰여진 낚시장 수칙이 눈에 띄였다.   강 따라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낚시를 하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파킹장에 차를 세우고 모두들 허리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고 나누어준 낚싯대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제법 폼 나는 모습들이라서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한 사람 당 3마리씩이라니 담아갈 박스도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할 듯 싶다. 이곳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나룻배를 타고 모두가 강을 건넜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줄을 메달아 연결하여 그 줄을 따라 배를 움직이는 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운행되는 무동력선 이다. 물이 깊고 물살이 하도 빨라서 이 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강을 건널 엄두도내지 못할 터였다. 배삯은 $1 이다.  
강을 건너서 둘러보니 몇 사람만 연어를 낚아서 두어 마리 뀌미에 꿰 놓았을 뿐 대부분은 아침 마수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가장 좋은 자리에 장애자용 낚시터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휠체어 놓을 자리를 만들어서 장애인이라도 일반인과 똑같이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은 것이다.  
아래쪽으로 한참 내려가서 우리일행은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다. 눈으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물살이 세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 위 쪽으로 잘 던지면 그것이 물따라 내려오며 연어를 자극하도록 하여 녀석을 낚아 올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두 제법 익숙하게 낚시를 다루게 되었다. 저 위쪽에선 누군가 고기를 잡았다고 외치곤 하는데 우리일행 중에선 누구도 아직  ' Fish On '을 외치는 사람이 없다.
강물은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  앞 다투어 흘러내리고 있다.  강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이 세월처럼 흐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왜 강은 끊임없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연어는 기를 쓰고 거슬러 위로 올라가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저들은 수만 마일의 장엄한 행렬을 계속하여 이 계곡에 이르는 것일까.  태어난 그 본향에 도착하여 편안히 영면할 수 있다는 마지막 행복을 준비하기 위해선가,  알을 남겨 자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종족보존을 위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인가.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물은 점점 낮아지고 물살 또한 점점 여리어 질 것이다. 그리하여 물길이 없는 막바지에 도달하면 연어는 마침내 종착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며, 저 퍼득이는 연어들은 그곳에서 후손을 남기는 엄숙한 의식을 치루고 나서 그 찬란했던 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그 만남의  관계가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우리들의 인생은 절정을 이루게 되고, 그리고 그 관계가 하나씩 줄어듬으로서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끝나면 삶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세월은 사람의 목숨보다 먼저 그 관계를 줄여 나간다.  물의 깊이가 낮아지면 연어가 그의 죽음을 감지하고,  물의 흐름이 점점 약해짐을 느끼며  마지막을 준비해 가듯이, 우리들도  주변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한 둘씩 우리 곁을 떠나갈 때 우리의 생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참동안 낚시를 했으나 고기가 잡히지 않자 장선생이 자리를 옮겨 보자고 했다. 저 위쪽 지류로 가보자고 해서 그곳으로 일행 모두가 자리를 옮겨갔다. 생각해보니 장선생이 한적한 곳에서 우리들에게 낚시하는 방법을 훈련하게 한 다음 이제 진짜 낚시터로 안내해 가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들은 일찍암치 포기를 하여 남자들만 가게 되었다.
거기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좁은 틈새에 끼어 들어 낚시를 드리웠다. 어깨가 서로 맞닿을 만큼 가깝게 서서 낚시를 하기 때문에 도중에 낚시줄이 몇 번인가 서로 얽히곤 하였다. 옆 사람이 두 마리를 낚아 올리는걸 보니 나도 한 마리쯤 낚을 수 있을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으며,  바로 그 순간 내 낚시에도 연어가 걸려 올라왔다. ' Fish On '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옆에 있던 장선생의 도움을 받으려는 순간, 낚시대가 느슨하게 되었던지 고기가 도망가고 말았다.   짜릿한 손맛만 남기고 녀석이 탈출을 한 것이다.  
잠깐 강둑에 앉아 쉬면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몇몇 사람이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다. 나중에 어떤 분에게 물어보니 곰같은 짐승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휴대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이 많을때야 문제가 없겠지만 밤낚시를 하는 경우엔 연어를 먹기위해 물가로 내려온 곰과 맞 부닥치면 도리가 없을 터였다.  
사람들이 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나가자고 보채기 시작한다. 아직 누구도 연어를 낚지 못하고 있다.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장옥근씨는 못내 아쉬운 듯 싶었다. 윤규환씨가 송어 한 마리를 낚았는데 규정상 지금은 송어철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한다고 하여 놓아주었다.  결국 12명 우리 일행은 연어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예정시간이 30분이나 넘었다.  
  'Summit Lake Lodge' 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음.  이 식당은 음식맛 뿐만 아니라 주변경관도 좋고 역사도 오래고 하여 아주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이 많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3시 30분 앵커리지를 향하여 출발.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이 알래스카 1번 도로라고 한다.  유류파동을 겪기 전에는 석유가 이곳 제1의 산업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산업이 알래스카의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특히 주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관광산업을 위한 법안들을 의결한 다음부터는 길을 넓히고 관광코스를 새로 개발하는 등, 이 분야에 괄목 할만한 변화가 오고 있다고 했다.  눈만 들면 보이는 모든 게 천혜의 관광자원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만큼 외화 가득율이 높은 산업이 또 있겠는가.  
차는 산등성이를 구불구불 돌아 나가고 있다.  저 아래 계곡엔 눈 녹은 물이 절벽을 끼고 산 구비를 구비돌아 흘러내리고 있으며, 언덕을 넘을 적마다 곱게 핀 이름모를 색색의 들꽃들이 고운 꽃잔등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꽃들은 저렇게 피고 지는 시기를 알아서 잘도 피어나는 것일까.  말없이 피어있는 저 꽃도 전하고자 하는 뜻이 따로 있으리라.
가는 길에  Portage Gracier라 불리우는 빙하에 들렀다.  어제 본 빙하는 바다에 연하여 있었으나 이 빙하는 호수에 닿아 있다고 했다.  빙하가 녹아서 호수를 이루었다고 말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성싶다.  골짜기를 찾아서 20분쯤 들어가는데 서늘한 기운이 감돌며 안개가 내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소설 동의보감 끝 부문, 스승 유의태가 제자 허준을 불러 들였던 경상도 어느 지방에 있다는 '얼음골'이 아마도 이런 골짜기가 아니었을까.
호수에 이르러 보니 집채만한 얼음조각이 코 앞까지 떠내려 와 있다.  빙하는 안개 넘어 저쪽 아득한 곳에 서 있을 터이다.  영화관에서 기록영화를 보고 나서 기념으로 모자 하나를 샀다. 시간도 빠듯했지만 소나기에 쫒기어 서둘러 출발하였다.
골짜기를 되돌아 나오자 날씨가 다시 맑아지고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 우리 일행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른쪽 절벽에선 젊은이들이 Rock Climbing을 하고 있다.  아마 등정 훈련을 하고 있는 성싶다. 이곳이 '구름골' 이라고 하더니 이름 그대로 여기 저기서 그름이 뭉게뭉게 피어나 산중턱을 떠돌고 있다.
왼쪽으론 갯펄이 보인다. 썰물 때인지 뻘등이 훤히 드러나 있고 개옹의 물줄기는 멀리 보이는 바다를 향하여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물새 한 마리 외롭게 날 뿐 살아있는 것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내 고향 영산강변의 그 풍요롭던 갯펄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고기가 지천이었다.   숭어 모치 대갱이 장어 등, 고기뿐만 아니라 게와 맛을 비롯한 해산물이 가는 곳마다 널려 있었다.  운저리 한 마리 등을 타, 고추와 마늘을 된장에 찍어 깻잎에 싸서 한 입 가득 씹어먹는 그 맛, 아! 그 맛을 당신은 아실는지. 쐐주 한 잔 곁들인 싸르르 녹아드는 그 맛을 당신은 짐작이나 하실른지.  
  어디선지 뻐꾸기 설리 울고 보리 모가지 오지게 익어갈 무렵이면 강변은 모든 게 흘러 넘쳤다. 청춘들의 노래소리 강둑따라 흐르고, 인정과 사랑이 마을마다 넘쳐흘렀다.  썰물이면 오가리를 가슴에 꼬-ㄱ 껴안고 오리처럼 동동 물 따라 개옹을 깜박 깜박 흘러 내려가던 그 아가씨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흐드러지게 불러 재치며 게나 맛을 뻘등에서 잡아내던 고향 처녀들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목포와 해창을 오가던 여객선을 향해 손짓 해 대던 그 풋풋한 아가씨들의 모습이라니.......  예순이 숙자 영옥이 영심이 남순이 금순이 숙희 옥례 등, 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그 아가씨들은 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한참을 가니 오른쪽으로 '철새 도래지' 라는 갈대숲이 보였다.  관광객을 위하여  나무로 길다랗게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을 잠시 들러가자고 한다. 철이 아직 이른탓인지 철새는 보이지 않고 물 따라 고기들만 노닐고 있다.  돌아오는 차 중에서 노섭씨가 방금 전 안내판에서 보았노라고  Canada Goose 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이 기러기는 평생 한 배우자만을 섬긴다고 한다.  짐승의 세계에도 이렇게 엄정한 질서가 있음을 우리 인간들이 새겨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여행하느라 깜박 잊었던 박세리양의 골프 소식이 궁금하여 장선생에게 물어보니 현제 2등을 하고있고 내일 결승이 벌어진단다.  저녁에 Tape을 보자고 했다.
앵커리지 시내에 도착함. 시내를 한바퀴 둘러봄.  가로등엔 꽃이 메달리고 거리는 깨끗하며 아름답다.  관광객을 실은 마차가 시내를 돌고 있다.  건너편 시내를 가로지르는 고가 다리를 현대가 건설했다고 한다.  이곳엔 공립과 사립 각각 하나씩 2개의 대학이 있다고 했다. IMAX 영화관에서 이곳 홍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늘의 일정이 끝남.           장선생네 모텔에 돌아와 몸을 씻고 나니 비로소 시장기가 느껴왔다. 기다리던 만찬이다. 오늘저녁엔 광어와 연어 그리고 King Crab까지 이곳 특산물을 미리 주문하여 한바탕 잔치를 벌이기로 한 때문이다.  본산지에 왔으니 다른 것보다도 해산물을 한번 맛있게 먹어보자는 데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고 어제부터 준비를 해 온 탓인지 금새 식사 준비가 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King Crab이 26 파운드 짜리 1박스에 $260 이라고 해서,  King Crab 한 박스를 삶고 광어와 연어를 먹을 만큼 준비해 달라고 주문하였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냄새가 제법 구수하다.
  King Crab이 먼저 준비되었다. 맛이 일품이다.  이곳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싱싱하고 감칠맛 나는 맛이다.  12명 모두 부족하지 않게 먹을 만큼 먹어갈 무렵 광어와 연어가 나왔다.  쐐주를 한 잔씩 곁들여서 광어를 안주삼아 먹었는데 그 또한 맛이 기가 막히다. 역시 광어다.  같은 고기일 터인데 우리 지방에서 먹었던 것과 이렇게 맛이 다를 수 있을까. 이제 왠만큼 배가 부른 때문이었을까 연어쪽엔 손길이 잘 가지 않는다. 녹화해 놓은 박세리 골프를 함께 보면서 내일 열릴 결승전까지 잘 해주기를 바랬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백야현상 때문에 밤도 낮처럼 활동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오늘이 마침 독립 기념일이라서 밤늦게 불꽃놀이가 벌어질 것이라 하여 12시까지 그것을 기다려서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매년 독립기념일 이면 우리 일행은 알래스카의 오늘을 기억 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추억을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가, 나이가 들면 간직해둔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서 천천히 석양을 맞이하게 되는 게 아닐까.  
                    
      
                * 여행 넷째 날 ( 7월 5일 )

  아침 7시경 일어남 . 이틀을 연속 강행군 한 탓에 오늘은 느긋하게 움직이자고 했다.아침을 대강 챙겨먹고 7시 40분 출발.  날씨 맑음. 시내를 벗어나자 경비행장이 나타난다.  경비행기가 이곳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음이 실감되었다. 경비행기는 우리가 보통 볼 수 있는 바퀴가 달린 경비행기와 스키위를 뜨고 내리는 스키 경비행기, 그리고 물위를 뜨고 내리는 수상 비행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타고 갈 비행기는 스키 경비행기라 했다.  
동쪽으로 탁 트인 이 길을 따라가면 캐나다와 시애틀에 이른단다.  오른쪽으론 우뚝 우뚝한 산봉우리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왼쪽 언덕엔 하이얀 들꽃들이 별을 쏟아 부어 놓은 것처럼 여기저기 모듬모듬 피어 있다. 들꽃 하나로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워 지는것을.  
언덕은 들판으로 이어지고 들판 한가운데는 강이 구부러져 흐른다. 강물이 회색을 띄웠기에 물어보았더니 빙하가 녹아 내리는 물이라서 저렇단다. 저 물을 컵에 담아 두면 3일이 지나도 침전되어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차는 Mc Kinley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쪽으로 농장이 이어지고 있는데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 이곳에 농업 계약제배를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단다.  그분들이 잘 했었다면 지금쯤은 더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농장지대가 끝나니 가도 가도 삼림의 연속이다.  한인들이 고사리를 따러오는 지역이 바로 이 부근이라고 했다.  고사리를 사오고 싶어서 물어 보았더니 말린 것 5 Lb 한 포대에 $120이라고 한다.  
자작나무가 많이 눈에 보인다 하였더니 이 나무가 알래스카 주를 상징하는 나무라 한다. 주의 꽃은 물망초, 그리고 주 새는 타미케인 이라는 까투리종류의 새라고 했다.  
길옆으로 자전거 도로같은 작은 길이 나 있어서 무슨 길인가 물었더니 썰매 도로라 한다.  겨울에 눈이 오면 저 길로 썰매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흰눈이 펑펑 쏟아질 때 썰매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생각만으로도 신나고 아름답고 재미있을 것 같다. 나무가 휘어지도록 눈이 쌓인 이 길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알래스카의 함박눈을 맞으며 식구들과 함께 개 썰매를 타고 한 번 달려 보고 싶다. 그래, 어느 해 겨울 다시 이곳을 찾아 와야겠다.    
흰눈을 생각하니 아이스 크림이 연상되어 오는데 바로 그때 누군가 아이스 크림을 사먹고 쉬어가자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무의식의 세계를 통하여 서로 교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잠깐 쉬어감.  장 마리안나 자매님이 아이스 크림을 사 주어서 모두를 맛있게 먹음.
쭉쭉 뻗은 나무숲이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무, 그렇다.  나무숲이 저처럼 자랄 때까지 저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저처럼 소리 없이 돈독해지고 말없이 신뢰가 쌓여갈 수 있는 것이다.
차가 강을 건너가는데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호수와 강, 그리고 바다에서 철따라 낚시를 할 수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낚시의 천국이라고 한다.  고기의 종류도 광어 연어 송어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뿐 아니라, 고기의 맛 또한 세계에서 이곳을 능가하는 곳이 없다 하지 않는가.    
  끝없는 나무숲을 비롯한 임산자원과 해산물, 그리고 무진장 뭍혀있는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 등, 자연의 보고를 단돈 몇 푼에 팔아 넘기고 만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지도자 한 사람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미치는 영향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지금 우리 조국의 어려움을 새 대통령이 잘 극복해 주었으면 좋겠다.  
  멀리 Mc Kinley봉이 보이기 시작함. 산 중턱에 안개가 쌓여있어 비행기가 차질 없이 운항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된다.  장선생이 다시 전화를 하여 현지 기상상태를  확인함.  산세가 크고 험하여 이곳 아래쪽과는 다른, 그 곳 산 속의 기상이 형성되고 있어서 때로는 비행일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구름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저 산정을 정복하려다 올해만도 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수 년전 우리 한국인 고상돈씨도 저기에서 목숨을 잃었다.
9시 55분 K2 비행장에 도착.  꽤 큰 경비행장 이다.   6인승 비행기 두 대에 나누어 탑승하기로 하였다. 모두가 처음 타보지만, 특히 여자들이 더 불안해하는 듯 싶다.  조정사로부터 간단한 주의를 듣고 10시 15분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꽤 커 보였으나 막상 안에 올라보니 자동차 내부보다 약간 더 넓은 정도다.  모두 귀막이를 했다.  공기압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니 모두가 조종사처럼 보인다.  김훈씨가 부조종사를 한다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하며 한바탕 웃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가볍게 떠 올랐다.   서서히 고도를 높혀 산을 향하여 날기 시작한다. 눈 아래 강물이 구비쳐 흘러가고 비행기는 그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골짜기에 이르고, 골짜기를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에 다다를 것이다.
알래스카에 300만개의 호수가 있고 3000개의 강이 있다고 하는데 눈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니 과연 호수가 많기도 하다. 수상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300만개라니 자잘한 것을 합하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까.
뭉개 구름이 발 아래로 스칠 듯 지나고 나무숲이 모두들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강은 골골히 땅을 적시며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호수는 물을 머금었다가 실개천을 통해 흘러 보내고 있다. 나무들은 그 자양분을 먹고 자라 저렇게 숲을 이루고 그 숲 사이엔 푸른 초원이 여백의 아름다움을 뽑낸다. 그러나 질펀한 초원엔 가축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10시 40분,  비행기는 평원을 지나 산 아랫턱을 오르기 시작함.  자그마한 경비행기는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힘겹게 오르고 있다. 구름에 가려있던 햇빛이 나타나자 갑자기 온천지가 색갈이 달라 보인다. 산봉우리들이 눈 아래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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