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006.02.10 20:20

정해정 조회 수:692 추천:11

  파아란 하늘아래 유채 꽃이 노오랗게 온 세상을 물들입니다.
  한들거리는 연두색 이파리들이 노오란 꽃과 조화를 이루어 따스한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마치 이 세상을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이 보드랍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세상 만물이 추운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계절입니다.
  겨울을 지낸 벌들은 일손이 바빠져 저마다 생기 있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벌들이 모여 사는 집은 정 육각형으로 질서 있고 단정하게 아파트처럼 지어져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벌들은 아파트처럼 각각의 집을 가지고 질서 있게 살아가며 하는 일 들도 철저하게 나누어 맡고 있지요.
  여왕벌이 거처할 집을 정리하는 벌이 있는가 하면 집을 지키는 벌이 있어서 청소와 아기를 기르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합니다.
  한편 일벌들은 들로 나가 꽃가루와 꿀을 찍어다가 집 지키는 벌들의 입에  묻혀 주면 입에서 입으로 옮겨 방마다 저장을 합니다.
  여왕벌은 공중에서 수벌과 결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방 하나에 매일 알을 한 개씩 낳습니다.
  이때쯤 모든 벌 가족들이 기쁨에 넘쳐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는 부웅-붕 합창으로 퍼져나가 그곳을 지나가는 실바람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덩달아 기쁨의 미소를 짓습니다.
  벌 가족은 희망차고 행복합니다. 더불어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뒷간변소 거름통에서 태어난 파리가 있었습니다.
  역시 거름더미에서 태어난 총각 파리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축축하고 퀴퀴한 냄새 속에서 이들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다가, 사람이라도 들어올라치면 염치없이 들어붙기 일수고 아내파리는 남편파리 등에 업혀 겨울이 지나는지 봄이 오는지도 모르고, 더구나 바깥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낄낄거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파리가 말합니다.
  "어구구구...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바로 너다. 미세스 파리 뽑는데도 있다던데 너야말로 그 무대에 한번 나가볼래? 에구, 예쁜 것."
  "흐흐흐...당신처럼 근사한 얼굴 짱. 몸 짱 파리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파리부부는 시간만 나면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천생연분, 딱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느닷없이 뒷간 문이 확 열렸습니다. 남편 등에 업혀 놀고있던 파리부부는 얼떨결에 무엇엔 가에 밀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깥 세상에 나온 파리 부부는 한번도 보지 못한, 상상도 못했던 세상을 보고 기절할 것 같이 놀랍니다.
  파아란 하늘. 하얀 구름. 초록색 나무들.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 저마다 고개를 들고 웃고있는 오색 찬란한 들꽃들. 거기다가 달콤하고 싱그러운 바람...
  늘 어두컴컴하고 축축하고 냄새가 찌든 뒷간이 세상 전부인줄 알고 살아온 파리 부부에겐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 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처음 보는 새로운 세상에 정신을 잃을 지경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뿐입니다. 넋이 다 나가고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파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멀미가 날 정도로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이상한 것을 봤습니다.
  집채만한 늙은 느티나무에 매달린 벌집을 본 것입니다.
  정 육각형으로 뚫린 칸칸 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벌들을 봤어요. 일벌, 여왕벌, 수벌들... 거기다가 달디단 꿀 냄새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진동합니다.
  파리는 벌의 생긴 모양이 자기와 별반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질투가 머리끝까지 솟았습니다. 여왕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용솟음 쳐 집니다. 금새 여왕벌이라도 된 듯 정신이 오락가락 했어요.
  파리는 여왕벌이 되면 달디단 꿀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여왕'이라는 소리가 듣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참으로 꿈도 야무지지요. 파리는 곰곰이 생각 하다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어차피 세상은 손만 잘 비비면 성공하는 법. 우리가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먹는 건 은 남의 것 살짝 입만 대면  되는 거고, 손 비비는 것만 연습해요. 이렇게 삭 삭 삭. '
  그 후 파리는 번데기에서 막 나와 물기도 채 가시지 않은 아기 파리에게도 두 손을 비비는 연습시켰습니다. 파리는 이곳 저곳 낄 자리 안 낄 자리 냄새도 잘 맡고 악착같이 손을 삭 삭 삭 비벼댔습니다.
  "출세 좀 시켜 주세요. 삭 삭 삭"
  "출세 좀 시켜 주세요. 삭 삭 삭"
  "여왕벌처럼 왕관을 씌워 주세요. 삭 삭 삭"
  그야말로 두 손이 닳도록 비벼 댔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손만 잘 비비면 성공하는 법이라는 생각이 아내파리의 마음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튀어나온 두 눈이 충혈 되도록 중얼대며 두리번거리면서 쉬지 않고 손을 비볐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곳에도  물론이요, 아무상관 없는 곳에도 자기가 무슨 이익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남편파리의 날개를 빗질하고 나란히 참석해서 손을 비비곤 합니다.
  거기다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친한 친구를 모함하고 교묘하게 이웃을 갈라놓기가 일수입니다.
  "허어! 벌하고 나하고 다른 점이 뭐야? 생긴 것도 비슷하고 나도 벌처럼 꿀을 만들 수 있단 말야."
  파리는 히죽히죽 웃으며 꽃들에게 다가갑니다. 어떤 꽃도 파리가 가까이 오는 것에 몸을 부르르 떨며 달가워하지 않고 외면합니다. 그럴수록 파리는 징그럽게 웃으며 벌의 험담을 늘어놓습니다.
  "벌? 나하고 똑같이 생겼잖아. 뭐 꿀? 그것 가짜여- 가짜. 여왕벌? 흐흥 말이 좋지 여왕이라......여왕이라는 이름은 나한테 어울리는 것이라고 우리 남편이 말했어. 까만 날개, 푸르스름 윤기 흐르는 내 몸, 어디로 보나 왕관만 쓰면 내가 여왕이어야 한단 말야."
  파리는 당치도 않게 벌에 대한 질투가 솟아오르자 여왕이라는 이름이 듣고싶어 안달이 납니다. 손을 비벼서 될 일이라면 손이 닳아 없어져도 비비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어느덧 봄이 가고 있습니다
  유채 꽃 의 송별식 잔치가 있다는 소문을 바람이 알려 왔습니다. 행여 놓칠세라 아내 파리는 남편도 아랑곳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체 급하게 윙윙거리며 잔치가 열린다는 곳으로 바삐 갔지요.
  곤충들은 저마다 잔치준비에 한몫을 하느라 콧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어요.
  여왕벌은 이 잔치에 쓰일 꿀을 제일 좋은 걸로 전부 책임지겠다고 여왕답게 큰 손 노릇을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일벌들은 정신 없이 꿀을 나르는 일에  열중하고 있어요. 개미들은 떡과 밥을 준비하고요. 거미들은 그네를 매고, 풍뎅이들은 잔치에 입을 턱시도를 반질반질하게 윤기를 냅니다.
  매미와 그 악단. 메뚜기와 여치들은 악기를 조립하고, 나비들은 드레스를 손질합니다. 반딧불이 는 밤의 향연을 위해서 가로등을 여기저기 준비합니다. 들꽃들은 즐거운 합창연습을 하고요. 그밖에 이름 없는 곤충들도 나름대로 잔치준비에 협조를 합니다.
  그런데 유독 파리만 그냥 빈손으로 와서 충혈 된 눈동자를 굴리며 어디 붙을 곳이 없나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립니다.
  그때 파리의 눈에 여왕벌이 들어왔습니다. 막 꿀 차 한잔을 들고 우아하게 마시려는 찰라 파리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다가갑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삭삭삭 비벼댑니다.
  "오! 여왕 벌 님! 존경 하옵 는 여왕 벌 님! 삭 삭 삭..."
  "당신의 왕관을 한번만 써 보고 싶은데요. 왕관은 나같이 예쁘고 교양 있는 파리가 써야 어울려요. 안된 다면 잠시라도 빌려주세요. 네? 삭 삭 삭."
  여왕벌은 파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대꾸도 않고 그냥 돌아섭니다.
  파리는 여럿 앞에서 자기가 망신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치솟습니다.
  파리는 다급하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제기랄!! 네 까짓게 뭐냐?? 나같이 예쁘고 교양 있는 곤충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고 해!"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곤충 중에서 파리의 편을 드는 곤충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씨익 웃는 파리의 모습에서 입술 양쪽으로 삐져 나온 송곳니가 무서운 드라큘라를 생각나게 해서 소름이 끼칩니다.
  여왕벌은 우아하고 점잖게 파리 쪽으로 다가옵니다.
  " 이봐요. 파리! "
  모든 곤충들이 일손을 놓고 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하느님은 정말로 당신한테는 어울리지 않은 파리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주셨군요. 당신은 세상을 잘못 봤어도 너무 잘못 봤네요. 남을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다 함께 협력해야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일은 안하고 먹을 것은 남의 것 훔쳐먹고... 손을 비비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답니다. 왕관을 요? 바다에 버리는 한이 있어도 당신에게는 줄 수도, 빌려줄 수도 없어요."
  모든 곤충들은 파리가 일은 하지 않고, 아무대서나 남의 험담을 하고, 손을 삭삭 비비면서 거저 먹으려는 행동이 미워서 여왕벌의 말에 속이다 시원했습니다.
  바로 이 때였습니다.
  "뭐가 어째???"
  성이 잔뜩 난 파리는 순식간에 털이 모두 곤두섰습니다. 아랫도리가 실룩실룩 떨립니다.
  "좋은 일? 이래 봬도 우리 조상들은 좋은 일을 많이 했지. 사람들이 개을러 빠져 낮잠을 잘 때 끈질기게 얼굴에 붙어서 잠을 깨워 일터로 내 몰았단 말야."
  이 말을 들은 모든 곤충들은 혀를 끌끌 찼습니다. 화가 안 풀린 파리는 냅다 여왕벌을 향해 쏜살 같이 날아가 목에 찰싹 붙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여왕벌이 미쳐 침을 꺼낼 틈도 없이 말입니다.
  " 야- 여왕이면 다냐? 이놈의 못된 벌아, 벌받아라, 벌..."
  파리는 재빨리 여왕의 목에서 피를 빨아 갔습니다. 잔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곤충들이 웅성웅성 일어섰습니다.
  거미는 줄을 뽑아들고 파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놈! 뻔뻔한 놈의 파리. 너는 아무 짝에도 도움이 못되는 더러운 놈이구나. 너 같은 놈은 거미줄로 꽁꽁 묶어 다시는 날지도 못하고, 손을 비비지도 못하게 해야 해. 이놈!"
  거미는 막 줄로 파리를 묶으려고 했습니다. 순간 파리는 잽싸게 몸을 비켜 거미줄을 빠져나와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을 갑니다. 무턱대고 막 갑니다.

  "후유우--- 살았다. 하마 트면 큰일날 뻔했네. 가만 있자- 근데 여기가 어딜까?"
  하늘은 파랗고 들꽃이 만발한 들판입니다. 저 쪽에는 동네도 보이고 숲도 보입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납니다.
  "맛있는 냄새를 알아내는데는 나를 따라 올 자가 없지. 내가 귀신이지."
  파리는 냄새를 따라 무작정 갑니다. 파리는 금방 있었던 곤충들과 의 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냄새만 따라 갑니다.
  어느 가족이 소풍을 나왔나 봅니다.
  소나무 아래서 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풀어놓고 둘러앉아 막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야 이렇게 맛난 것들을 내가 놓칠 수가 있나. 출출한데 잘 됐구나. 낄낄낄...    
  파리는 입맛을 다시면서 허겁지겁 불고기 위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고기 뿐 아니라 맛난 것들이 이것저것 널려 있습니다.
  파리는 정신 없이 윙윙거리며 여기저기 맛을 한번 보려고 입을 대려는 찰라 였습니다.
  "딱!!!"
  "이놈의 똥파리! 똥파리 잡았다.
  파리는 이 소리를 아스라하게 들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파리는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은 흐려진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둘러봅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둥이가 풀꽃 옆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허벅지 두 개가 부러져 나가고 날개가 찢어졌습니다.
  " 너. 무. 들. 한. 다. 내. 가. 먹. 으. 면. 얼. 마. 나. 먹. 는. 다. 고..."
  다행인 것은 두 손이 성 한 것입니다. 파리는 힘없이 두 손을 비벼 봤습니다. 사악. 사악. 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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