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언니

2006.02.23 01:34

김영강 조회 수:980 추천:1

   아버지의 불평불만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어느 날, 언니가 미국엘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첫 방문이니 거의 삼 년만이다. 여느 때는 공적인 일이라는 명목 아래 일 년에 한번 정도는 어김없이 미국 방문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웬 일인지 두 해를 건너뛰었다.
  영자는 하나도 반갑지가 않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걱정부터 앞섰다. 딸이랑 같이 온다고 했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언니로부터 무시당하는 사실은 그렇게 큰 상처 없이 넘어가곤 하지만, 조카인 청미가 자신에게 멸시의 눈길을 던질 때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더구나 남편을 벌레 보듯 할 때는 더 참기가 어렵다. 돈도 안 되는 소설에 매달려 있는 남편이 그녀의 눈에 버러지같이 비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영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오기 바로 전, 영자는 청미 집에서 이 년 정도 살림을 해 주며 애들을 키워주었다. 식모들이 붙어나지를 않아 급할 때 달려가다 보니 그만 붙박이 식모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언니의 엄명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항상 ‘이모, 이모’ 하고 연거푸 부르는 청미의 목소리가 영자의 귀에는 ‘식모, 식모’ 로 들렸었다. 말도 반말을 했다. 나이 차가 겨우 네 살밖에 안 되는 이모라 친구처럼 가까이 느껴져 그러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청미는 요 몇 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 남편과 같이 설립한 투자회사가 주식바람을 타고 돈을 벌게 되었다고 한다. 사업차 자주 LA를 들랑거려도 영자나 아버지에게는 전화 한통화 없는 청미다. 청미 남편 역시 미국에 자주 와서는 술집에 돈을 뿌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은 늘 코웃음을 친다.
    “왜 그래요? 어쨌든 그 나이에 그만큼 부자가 됐으면 성공한 거 아녜요?”
    “성공? 아직 멀었어.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당신은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탈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인정을 받고 잘 살아야 하는데, 세상은 그 반대거든. 세상이 썩었다고. 그래서 썩어 문드러진 것들이 더 날뛰지. 당신 언니도 마찬가지야. 어쩜 같은 부모한테서 난 자매인데도 그렇게 다르지?”
  앞에 대놓고 언니 흉을 봐도 영자는 할 말이 없다. 남편 말이 다 맞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의 말은 다 맞게 들린다. 그리고 그를 무조건 믿는다. 도리어 언니 때문에 그에게 부끄러울 때가 많다. 가끔 언니가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안부보다는 딸 자랑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을 때는 정말 부끄럽다.
    “청미가 글쎄 이번 내 생일에 벤츠 육백을 사줬단다. 한국에는 몇 대 없는 차야.”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미국에서 일주일을 체재하는 동안 계속 야단법석 떨어 남편 보기에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언니는 화장을 뽀얗게 하고 립스틱을 새빨갛게 칠한 얼굴로 장례식장에 나타났었다. 그리고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서서 손님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그 늠늠한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개선장군 같았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돌보느라 영자는 물론 아버지도 무척이나 고생을 했는데, 언니는 식구들이 마치 어머니를 구박이나 한 것처럼 ‘불쌍한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울고불고 했다. 언니가 오기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음식을 삼키지 못해 링거에만 의지를 했었다. 그리고 정신이 든 어머니가 언니를 알아보고 내뱉은 첫마디는 ‘나 배고파’ 였다.
언니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이 세상의 고뇌를 혼자 다 짊어진 듯한 슬픈 얼굴로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었다. 그리고 사흘 후, 어머니가 눈을 감았을 때 언니는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옆엣 사람보고 들으라는 듯이 또록또록한 목소리로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이다.
    “아이고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세끼 밥만 제대로 잡수셨더라도 이렇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텐데,오죽이나 배를 곯았으면... 아이고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 아이고 아이고......”
    순간 영자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딱 멈추었다. 기가 찼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자신에게로 튈 불똥을 짐작하면서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언니가 뭐래든 그녀는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의 말을 시인이나 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잠자코 계셨다. 다행히 언니는 옆에 앉은 영자에게 직접 화살을 쏘지는 않았다.
    하기사, 어머니의 시체를 앞에 놓고 무슨 왈가왈부할 겨를이 있으랴.
    그러나 오빠와 올케가 나타났을 때 언니는 따끔하게 그들을 향해 침을 놓았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면 휴가라도 내서 병상을 지켰어야지 어찌 너는 아들이라는 게 그 모양이냐?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으면 만사 제쳐놓고 한 걸음에 달려와야지 어쩌자고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니?”
    만사 제쳐놓고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 분명한데도 오빠와 올케는 침묵으로 항변했다. 영자는 언니의 본심이 딴 데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언니가 도착한 날 잠깐 얼굴을 비치고는 그 후 사흘 동안은 코빼기도 안 내밀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이 나란히 같이 나타났다는 사실도 언니의 비위를 거슬렸을 것이다. 사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것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일지 모르니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오빠는 물론이고 올케언니도 회사에 많이 빠졌었다.  

    옛날부터 언니와 오빠는 사이가 나빴다. 그래도 올케언니가 언니의 비위를 그런 대로 맞추면서 둘 사이가 완전히 깨지지는 않고 있는 상태였는데 큰일을 치르면서 더 사이가 나빠졌다. 장례 절차에서부터 모든 일의 진행을 주관하는 오빠에게 언니는 일일이 제동을 걸며 시비를 걸었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발언권이 없는 위치에 서 있었기에 그냥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매일매일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는데 언니가 서울로 돌아가고 나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어찌된 셈인지 영자가 태어났을 때, 언니는 벌써 대학생이었다. 늦게 난 아이라 그런지 영자는 언니나 오빠에 비해 모든 것이 다 뒤졌었다. 공부도 늘 바닥에서 헤맸고, 성격 또한 소극적이고 자신감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었다. 아무 욕심도 의욕도 없었다.
    “도대체 너는 생각이 있는 애냐? 없는 얘냐? 성적표가 이게 뭐니? 너만 보면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살겠다.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좀 열심히 노력을 해봐.”       
    언니는 영자를 보기만 해도 화가 나서 죽겠다는 듯이 호통을 칠 때가 많았다. 보통 때 하는 말도 짜증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영자는 무슨 꿈을 가져야 할지도 몰랐고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 꿈과 노력은 똑똑한 언니에게나 합당한 것이었기에 결국 언니는 그 꿈을 이루어 권력과 명예와 부를 다 손아귀에 넣었다.

    결혼하자마자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벌인 옷가게가 지금은 언니 이름인 ‘김영미 횟숀’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보통 옷 한 벌에 백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만을 생산하고 있다. 영자가 보기에는 하나도 예쁘지도 않고, 도리어 괴상해 그저 줘도 못 입을 옷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소화해 내기가 아주 어려운 옷들이었다. 그런데도 ‘김영미 횟숀’ 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유명인들은 언니 회사의 옷을 입어야만 인정을 받는다는 말까지 나돌았었다.
    사업 수완뿐이 아니었다. 학벌 좋은 부잣집 아들을 붙잡아서 결혼을 한 후, 고지식한 공무원인 남편을 고위직까지 오르게 한 것도 언니이다.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 지금은 골프만 치며 소일을 하고 있지만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고위층이다. 물론 언니의 계획표에 따른 것이다. 심심찮게 메스콤을 타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언니의 얼굴을 자주 보기도 한다. 가끔씩은 ‘김영미, 김청미 모녀’ 라는 이름 달고 이제는 청미의 얼굴까지 화면에 비칠 때가 있다.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라는 타이틀 내세워 언니는 딸까지 여류명사 대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언니가 회장직을 오랫동안 고수했었다. 그리고 YWCA 등 다른 단체들에는 지금까지도 회장 감투를 쓰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영자가 청미 네에서 일하기 전에는 언니 밑에서 일을 했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남편은 썩은 사회가 싫다면서 내팽개치고 나와, 소설에 매달려 두문불출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오빠의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영자도 청미네 집에서 일하는 것이 한계점에 도달하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자는 언니의 그늘 아래에서 항상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만 살아왔다. 그래서 무능한 남편을 두고도 경제적으로는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빠 역시 영자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태주고 있다. 아버지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기쁘고 좋은 기분만은 아니다. 정부로부터도 아버지를 돌보는 대가는 받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영자에게는 아이가 없어 이것 저것 다 합하면 둘이 살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이 험한 세상에 아이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영자 생각도 그랬다.
    남편은 어떻게 가정 경제가 꾸려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체 소설을 쓴답시고 컴퓨터에만 매달려 산다. 아니, 알면서도 거기에 대해선 일체 언급을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번, 잔뜩 술에 취한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 해, 당신 고생하고 주눅 들어 사는 거 다 알아. 내가 만날 이러고 살 지는 않을 테니 희망을 가져. 남들한테 신세 진 것, 내가 반드시 다 갚아줄게.”
    ‘남들’이란 언니를 지칭하는 말일 게다. 언니랑 청미로부터 버러지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남편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남편이 너무 불쌍해 가슴이 메어진다.

    대학 재학 중에 신춘문예에 당선을 해 문단에 등단을 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문학상을 받은 적도 있으나, 남편은 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글을 썼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신들린 사람처럼 날밤을 새우면서 글을 쓰고 있다. 사업하는 친구를 만나고 투자회사에 들랑거리고,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부랴부랴 뛰어나가고 하는 것이 다 소설을 위해 리서치를 하는 것 같았다. 또 가끔씩은 원고 청탁을 받아 적은 돈이지만 영자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영자는 대학 같은 과에서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언니가 제일 반대를 했었다. 소설가는 아주 저질 인간으로 낙인을 찍어놓고 기를 쓰고 반대를 했다. 사실 영자가 대학을 간 것도 언니 덕분이었다. 형편도, 실력도 다 딸렸었고, 또 영자 자신도 대학갈 마음이 없었는데, 어떡해든 대학 졸업장은 따야 한다고 삼류 대학이지만 언니가 우겨서 대학물을 먹었다. 그 때, 대학을 가고 싶지 않다고 언니한테 말했다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등허리가 서늘하다.
    “그런 놈 만나라고 너 대학 보낸 줄 아니? 남자가 처자식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 소설가?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 못해도 되는 연애는 해가지고 왜 이렇게 내 속을 썩이니?”
    이렇게 남편을 미워하기 시작한 언니는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상을 받았을 때도 언니는 혹평을 했었다.
    “그 상 받으려고 얼마나 뇌물을 먹였니? 세상에 그걸 글이라고... 청미 말이 아주 일기를 썼다고 그러더라. 일기를... ”  
     단편 한 편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언니이니, 소설을 읽지도 않고 청미의 얘기만 듣고 남편을 평한 것임을 영자는 잘 안다. 청미도 책하고는 거리가 먼 여자이니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 리가 없다. 공부는 못했으나 책은 많이 읽은 영자다. 소설을 읽고 그 독후감을 얘기하다가 일맥 상통하는 감정을 느껴 남편하고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돈 버는 것만 빼놓고 모든 면에 박식한 남편은 언니가 무슨 말을 하던 간에 개의치 않고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빠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언니를 닮아 말을 함부로 하는 오빠인데도 둘은 통하는 데가 있었다.
    둘 다 언니를 미워하기 때문일까?
&  nbsp; 언니가 학비를 대주어 박사 학위를 받은 오빠다. 그런데도 그 미워하는 수준은 남편 못지않다.

    호텔에 짐을 푼 언니는 그 다음날 오후 늦게야 아버지를 보러 왔다. 삼 년 전보다 체중이 많이 불어 있었다. 젊었을 적에도 뚱뚱한 편이어서 청미가 어릴 때 ‘엄마는 돼지 같애’ 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언니가 허허 웃으면서 넘겨버려 영자는 너무나 이상했었다. 남이 그런 소릴 했다면 아마 잡아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문을 들어서는 언니를 보다 말고 순간적으로 영자는 올케와 시선이 부딪쳤다.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탓인지 뭔가 불안한 기색이었던 올케가 아주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영자는 안다.  
    아니 웬 살이 저렇게 쪘을까? 꼭 돼지 같군. 하얀 백돼지.
    청미랑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언니는 혼자였다. 청미를 안 만나는 것이 그녀에겐 도리어 편했다.
    “청미는 오늘 저녁에 여기 변호사랑 같이 투자자들을 만난대요. 여기 미국에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어 무지무지 바빠요. 아버지.”  
    딸 자랑으로부터 말을 꺼낸 언니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손을 붙들고 울었다. 아버지도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거둔 언니는 갑자기 창문을 비롯해 문이란 문은 확확 다 열어 젖혔다. 화가 잔뜩 난 태도였다.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어 영자는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짭짤한 생선을 좋아하는 아버지이기에 손바닥만한 노인 아파트에서 허구헌날 고등어, 갈치 또 조기 등등을 구워댔으니 냄새가 온 방안에 절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니는 방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까지 동원해 잘 꾸며놓은 자신의 집에 비하면 아버지의 아파트는 돼지우리나 다를 바 없다. 부지런히 치워도 매일 필요한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오가잡동산이들이 주루루 늘어져있다. 눈에 안 보이면 약 먹는 것조차도 잊어버리니 할 수 없는 일이다. 벽에도 달력이 두세 개씩 걸려있고, 족자, 붓글씨 그리고 매듭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오빠네 가족사진들이 여기저기에서 산만하게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계셨을 때보다도 더 너저분해진 풍경이다.
    언니는 화를 애써 가라앉히는 듯 올케에게 애들 안부를 묻고는 슬슬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얼굴이 너무 상했어요. 죽도 한 숟갈 못 잡수신 얼굴이에요. 어떻게 식사는 잘 하세요?”
    아버지는 언니의 감정에 한껏 부채질을 했다.
     “밥이 뭐냐? 입맛이 없어서 통 먹질 못해. 잠도 토오옹 못 자니, 숨만 쉰다 뿐이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영자한테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말이다. 식사도 잘 하시는 편이고 또 낮에는 앉기만 하면 주무시는 아버지다.
    언니 앞에서 ‘통, 토오옹’에 악센트를 넣어 더 강조를 했으나 새겨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영자는 꾹 참고 침묵을 지켰다. 누구한테도 말대꾸 한마디 못하고 기가 죽어 살아왔기에 참는 데는 이력이 나 있다.
    아버지는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둘둘 걷어 올렸다. 얼마 전, 아침 운동을 하다가 넘어져 발목을 약간 삐었었다. 침도 맞고 병원에도 다니면서 이제 거의 다 나았는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다리가 부러지기나 한 것처럼 엄살을 떨었다.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다리가 눈에 들어오자 영자는 그만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충격을 느꼈다. 앙상한 다리 때문은 아니다. 언니가 뭐라 그럴 지 그 반응 때문이었다. 영자가 이것저것 식단을 바꿔가며 부지런히 뒷바라지를 하는데도 어머니 돌아가신 후 줄어든 아버지의 체중은 쉬이 회복되지가 않았다.  
    다행히 언니는 놀라 자빠지는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 왜 이렇게 마르셨어요’ 하고는 무슨 의사나 된 것처럼 발목에서부터 무릎까지 검사를 하듯이 어루만지기도 하고 꾹꾹 눌러보기도 하면서 여기가 아프냐고 저기가 아프냐고 자꾸 물었다. 영자는 분명히 자신에게 호통을 치리라는 예상을 하면서 불안한 심정으로 앉아있는데 드디어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영자 너는 아버지 가까이 있으면서 도대체 뭘 하는 거니? 제대로 잡숫지도 못하니까 기운이 없어 넘어져서 다치시고 그러지. 도대체 음식을 만들어드리기나 하니?”
    영자는 기가 꽉 막혔다. 언니의 음성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귀를 콕콕 찔러댔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제대로 잡숫지 못해서 돌아가셨다고 야단을 하더니, 이제는 아버지까지 굶기는 줄 아는 모양인가?
    “아버지 의복도 좀 편안한 걸 입혀드려야지 도대체 이게 뭐니? 아버지 답답하지 않으세요?”
    도대체 도대체를 연발하면서 언니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언니는 목에까지 꼭꼭 잠가놓은 아버지의 셔츠 단추를 풀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내의까지 들여다보았다. 더러운지 깨끗한지를 점검이나 하는 듯이. 집에선 좀 편안한 옷을 입으라고 영자가 누누이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칼라가 있는 셔츠 계통의 옷을 좋아하신다. 오늘은 언니가 온다니까 더 빳빳한 셔츠에 조끼까지 입으시고 양복도 걸치고 계셨다.
    “저런 거 좀 다 떼 내버려. 여기가 뭐 무당집이니? 도대체 정신이 혼란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구나.”
    아버지가 원해서 주렁주렁 벽에 걸어놓은 것들을 가리키다 말고, 또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속이 상해 죽겠다는 듯이 짜증을 부렸다.
    “저건 또 뭐니? 거기 올케 옆에 깔아놓은 거 말야. 아예 때에 절어서 빤들빤들하구나야아--.”
    눈을 내리깔고 턱짓을 하면서 뒷말엔 악센트를 아주 강하게 넣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올케가 엉덩이를 약간 움직거리며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코드도 빠져버리고 없는 고장난 전기 장판이 누우런 색깔을 띄고 때에 절어 있었다. 깔끔한 올케가 움칫하고 비껴 앉았다. 아버지가 뭘 자꾸 떨어뜨리기에 일일이 배큠을 할 수 없어 영자가 깔아놓은 것이다.    
    “아버지를 좀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시도록 해야지 도대체 이게 뭐냐? 벽도 누우래 가지고..,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카펫도 새로 갈아야지, 이래 가지고 아버지가 어디 숨이나 제대로 쉬시겠어?”  
숨은 쉰다는 아버지보다 한술 더 뜨며 시선은 영자를 향하고 있으나 실은 올케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가씨가 제일 수고 많아요.”
    듣다 못한 올케가 영자를 감싸자 언니는 드디어 기회를 잡은 듯이 화살의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수고가 많으면 뭐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올케도 그래, 저 바보 같은 것이 아버지를 돌보고 있으면 어떻게 잘 하고 있나 신경을 좀 써야지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있음 어떻게? 올케보고 시아버지한테 음식 만들어 바치라는 거 아냐. 가끔 전화라도 걸어 시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있나 좀 관심을 가지라는 거지. 또 영자하고도 통화를 해서 시아버지 안부를 물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시댁 일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지는 며느리가 알아야 할 도리 아니겠어?”
    영자는 찔끔했다. ‘며느리가 할 도리’라는 말이 목에 탁 걸렸다. 언니가 시댁에서 악명 높은 사실은 올케도 잘 알고 있다. 올케가 속으로 콧방귀를 끼고 있을 상상을 하니 속이 영 불편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언니가 묻기에 올케는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속이 더 불편했다. 그리고 딴 이야기는 안 했는데도 언니가 짐작으로 때려잡았다. 다 맞는 말이기에 영자는 더 난처했다.
    영자는 여간해서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항상 좋은 소리만 한다. 아버지가 돌아앉아 그렇게 며느리 욕을 해도 영자는 항상 그녀를 감쌌는데 어쩌다가 언니한테 그만 바른 말을 해버렸다. 회사 일이랑 집안 일 때문에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몇 달이 지나도 코빼기도 안 내밀고 전화 한통화 없는 올케한테 쌓인 서운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 나와버렸는지도 모른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얼굴이 화끈해 올케 볼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바보 같은 것이라니... 언니가 자주 하는 소리이나 오늘따라 유난히도 화가 난다. 바보 같은 것은 감정도 없는 줄 아나?
    그래도 영자는 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오랜만에 와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예전만 못하고 주위환경도 너무 너저분하니 딸된 마음으로 가슴이 아파서겠지 하고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드디어 올케를 다잡기 시작하자 아버지도 아차 했는지 그만 하라면서 분위기 조성에 애를 썼다. 허나 묵묵히 앉았던 오빠가 분위기를 더 악화시켰다. 아내에게 화살을 쏘니 본인이 맞은 것같이 가슴이 아팠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불평을 하니까 그렇죠. 만날 불평 불만만 일삼으니까 건강도 자꾸 나빠지는 거예요. 그리고 누나도 그런 말 할 자격 없어요. 그 동안에 누나가 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안부 전화했어요? 아버지 생일에 카드 한 장 보낸 적 있어요? 또 어머니 기일이나 기억하세요? 해가 바뀌어도 아버지한테 안부 전화 한번 안 하면서 어떻게 누나가 호통을 쳐요? 아버지가 어찌 살고 있는지 누나한테도 관심 밖 아니었어요?”    
    영자는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둘다 잘난 사람이고 성격도 보통 아닌데 싸움이라도 할까봐 겁이 더럭 났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의 표정이 새파래지더니 ‘아니 이 녀석이 엇다 대고 말대꾸냐’ 면서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가 생각해도 오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닐 게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언니 편을 들었다.
    “야, 누나한테 그 무슨 말버릇이냐? 네가 박사 따고 오늘날 성공한 게 다 누구 덕인데 그런 소리 하냐?”
    언니가 오빠의 학비를 댔다는 것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말이다. 오빠는 한술 더 뜨며 아버지를 반박했다.
    “아버지 이제 그 소리로 내 모가지 그만 옭아매세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예요. 혼돈하시지 마세요. 그렇게 따지자면 나도 누나한테 할 만큼 했으니 다 갚은 셈 아녜요? 아버지가 정치를 그렇게 하니까 집안에 자꾸 불화가 생기죠.”
  입장이 난처해진 아버지는 마땅히 할 말을 못 찾았음인지 ‘듣기 싫다. 그만들 해.’ 하는 큰소리로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오빠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빠는 지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누나가 어떻게 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누나는 뭐이 그리 엄마한테 잘했어요? 먹는 거 때문에 만날 신경 쓰고 대소변 받아내느라고 죽도록 고생한 영자한테 뭐 어머니 굶겨 돌아가시게 했다구요? 그래서 아버지도 영자가 굶겨서 저렇게 말랐다고 생각해요? 누나가 아버지한테 밥 한끼 해드린 적 있어요? 그러면 누나가 한국 모시고 나가서 같이 살면서 잘해드리면 되잖아요? 그렇게 못하면 가만이나 있지 왜 올 때마다 이렇게 난동을 부려요? 누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 없다구요. 그까짓 돈 몇 푼 던져주는 걸로 의무 다했다고 생각해요? 돈이면 다예요?”
    새파랗게 질린 언니가 ‘이 새끼 뭐가 어쩌고 어째“ 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 뚱뚱한 몸을 순식간에, 그것도 아주 날렵하게 일으켜 세워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는 오빠한테로 와락 덤벼들면서 오른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영자와 올케가 재빨리 일어나 언니를 붙들었다. 아버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언니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런 와중에도 오빠는 말을 계속했다. 높았던 목소리가 조금은 낮아졌다.
  “잘 생각해 보세요. 내 말이 틀렸나. 지난번에 누나 왔을 때, 누나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나요? 영자가 기저귀 갈아 채우고 어머니 아랫도리 닦아주고 할 때 누나는 외면했어요. 그리고 등창이 심해 등이 문드러진 어머니를 옆으로 눕혀놓고 약 발라줄 때, 누나는 쓰윽 밖으로 나가버렸다구요. 뭐 맘이 아파서 그랬어요? 누구는 맘이 안 아픈 줄 알아요. 눈으로 맨날 직접 봐야 하는 사람 맘은 어떻겠어요? 허구헌날 영자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요?”
    어머니를 돌보면서 영자는 참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인간의 생명이 참말로 끈질기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영자야. 나 좀 살려줘. 나 더 살고 싶어. 정말 죽기 싫어. 영자야 영자야. 나 좀 살려줘.”
    영자의 손을 움켜잡고 어머니는 죽기 싫다고 몸부림을 쳤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열 개의 손가락이 갈쿠리가 되어 영자를 옭아매고 또 옭아매었었다.
    “그리고 나보고 ‘이 새끼 저 새끼’라는 말도 이제 좀 그만하세요. 내 나이도 이미 쉰이 넘었다고요.”
    언니나 오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팍팍 해버리는 것이 그들의 특기다. 상대방이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그런 식이다. 아니 상처를 주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지난번 어머니 장례식 때는 잘도 참기에 웬 일인가 했더니 드디어 터지고 만 것이다.
    정말이지 다들 유치하게 논다. 아버지나 언니나 오빠, 셋 다 막상막하다. 그래도 올케가 그 중 나았다. 그녀는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론 잘 할게요’ 하고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하면서 언니의 기분을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썼고 남편의 과격한 태도에 안절부절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말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올케의 노력으로 분위기는 완화되었다. 언니는 호텔로 간다고 일어섰다. 영자가 저녁 준비를 해놨는데도 약속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다. 하기야 돼지우리 같은 곳에 더 오래 머물기도 싫었을 테고, 더구나 밥을 먹기는 더 싫었을 것이다. 올케와 영자는 언니를 배웅하기 위해 길까지 따라 나갔다. 호텔에서 보내준 새카만 리무진을 타면서 언니가 말했다.
    “그래도 청미가 저명인사가 됐는데 느네들이 인사는 해야 되지 않겠니? 청미 스케쥴이 어떤가 보고 연락할 테니. 호텔에 한번 들르라구.”
    순간, 올케와 시선이 부딪쳤다. 조소의 눈빛을 띠고 그녀는 침묵했다. 그 자리에 오빠가 없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다. 올케도 없었더라면 좋았을 걸 뭐하러 따라 나왔는지 야속했다. 차가 붕 떠나자마자 올케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동그라미를 그렸다. 자꾸자꾸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손가락을 뱅뱅 돌렸다.         
"아가씨, 언니가 좀 돈 거 아니에요? 누가 누구한테 인사를 해요?”

    그 며칠 후, 언니는 전화를 걸어 영자를 호텔로 불렀다. 수화기를 쩡쩡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는 여전했다. 다행히 청미한테 인사 운운하는 얘기는 없었다. 인사는 남편이 언니한테 해야 한다. 남편 의중을 뻔히 알기에 영자는 혼자서 집을 나섰다. 언니 생각을 하면 영자는 늘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남편 때문에 더 그렇다. 호텔을 향하는 영자의 가슴에서 방망이질이 시작됐다. 고개를 치켜들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청미의 샐쭉한 눈꼬리가 떠오르며 방망이질 소리는 더 빨라졌다.
    또 무슨 벼락이 떨어질까?
    ‘내가 왔는데 그 놈의 새끼는 왜 코빼기도 안 비치니?’ 하고 언니의 호통 치는 소리가 미리부터 귀안에서 뱅뱅 돌았다. 방엘 들어서니 다행히 청미는 없었다.
    영자를 대하는 언니의 미간에 주름살이 잡혔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음성이 낮았다.  
    “얘, 너는 하고 다니는 꼴이 그게 뭐니? 여기는 일류호텔이고 또 언니 이름이 있는데 동생이라는 애가 그러고 다니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니? 남들 볼까봐 겁난다.”
    동생이라고 안 밝히면 간단한 일인데 언니는 영자를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모양이다. 남편 얘기는 꺼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젊은 애가 좀 가꾸고 살아라. 그 머리도 좀 세련되게 커트를 해. 만날 그렇게 찔근 동여매지 말고. 또 화장도 좀 하고 그래라. 네가 얼마나 늙어 보이는지 알아? 내 눈에는 지금 네가 쉰도 넘어 보인다.”
    미국 온 이후, 계속해서 부모님 시중을 들었고 지금은 아버지 아파트에 거의 하루 종일을 붙어 있기 때문에 영자는 예쁘게 화장을 하고 갈 데도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 가지였다. 그렇게 세월 따라 주어진 대로 그렁저렁 살아가는 것이 영자의 생활 철학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쉰도 넘어 보인다는 언니의 말은 그녀에게 상처를 남겼다.
    언니는 봉투 두 개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며칠 더 있을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떠나는 날짜를 앞당겼다는 것이었다. 봉투는 물론 돈 봉투이고 하나는 아버지 것이고 하나는 영자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일정이 바빠 아버지를 만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 산소도 갈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 통화 걸 시간이야 없겠냐마는. 그러나 영자는 안다. 언니가 그냥 가버리리라는 것을.
    영자는 암말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호텔 방을 나왔다. 핸드백 안에 든 두 개의 돈 봉투가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 후, 언니로부터는 일체 소식이 없었다. 육 개월이 지나, 해가 바뀌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맘이 내키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전화를 걸어 청미 자랑을 늘어놓곤 하던 언니인지라, 소식이 없는 것이 영자에게는 도리어 편했다. 늘 그랬듯이 아버지도 언니 얘기를 통 꺼내지 않았는데 하루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어젯밤에 네 언니가 꿈에 보였어. 무슨 꿈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자꾸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던 것만 생각이 나.”
    생전 처음으로 언니 꿈을 꾼 것이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면서 아버지가 걱정을 했다. 그렇다고 선뜻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전화를 건다는 자체가 언니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괜히 꿈 얘기를 했다가는 전화통이 부서져나갈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번은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그냥 안부로 전화를 걸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좋게 해도 될 말들을 언니는 화를 잔뜩 내면서 언성을 높였었다.
    “뭐야? 그냥 안부 전화라고? 그렇게 할 일이 없니? 나한테 전화할 시간 있으면 아버지 반찬이라도 하나 더 만들어드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알지? 한가하게 너하고 노닥거릴 시간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전화는 무슨 전화니? 끊어 끊어. 그리고 다음엔 괜히 전화하지 마. 난 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놀랬잖아.”
      
     드디어 장편을 끝낸 남편은 책 출판을 위해 한국에 나갔다. 원고를 읽어본 출판사에서 모든 비용은 회사측에서 책임을 지겠다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미국 온 지 거의 십 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물론 언니한테는 연락을 안 할 것이 뻔하다. 불안한 생각에 커다란 돌멩이가 가슴 한복판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 망할 놈의 새끼. 한국 나와 가지고 인사도 안 해?
    다행히 책은 출판되자마자 날개가 돋힌 듯 팔려나갔다. 사회의 부조리를 낱낱이 파헤친 용감무쌍한 획기적인 소설이라고 평론가들이 떠들썩하게 논평을 했다. 어느 일간 신문에서는 남편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신문의 한 면 전부를 그의 문학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출판사에서도 광고를 계속 때렸다. 모든 여건이 받혀준 덕분이기도 하나 첫째로 소설이 재미가 있어 더 인기를 끌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딱딱한 사회소설이 되어 책장을 넘기다 말고 덮어버릴 수도 있는 얘기였지만 남편의 글재주는 과연 놀라웠다.
    한데, 가끔씩 언니와 청미 부부의 이야기들이 비쳐지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가슴에 연기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어 답답했다. 남편이 야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이 나온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집안이 떠나갈 듯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는 충격을 느끼며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영자가 ‘여보세요’ 라는 말도 채 하기 전이었다. 언니의 노발대발한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후려쳤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나쁜 놈의 새끼야. 지금까지 네가 잘 먹고 잘 살은 게 다 누구 덕인데 이제 와서 은혜를 원수로 갚아?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해, 감옥에 처넣을 테니 그리 알고 있어. 책은 당장 판매금지야. 판매금지--이이이----.,  ”
    남편은 한국에 계속 체재 중이었다. 진짜로 고소라도 당하면 정말 큰일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영자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맘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소설 속 이야기인데 그런 건 고소가 성립될 수가 없어.”
    “그래도 언니가 고소를 하면 어떡하죠?”
    “고소를 하면 책만 더 잘 팔리게 되겠지.”  

    한데, 바로 그 한 달 후였다. 신문을 펴든 영자는 그만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청미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잠적을 해버렸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 있었다. 회사의 문이 굳게 닫힌 채, 연락이 두절된 지가 한 달 가까이 된다고 하니 책이 세상에 나와 빛을 봄과 동시에 그들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미국에 있는 투자자들만도 상당수에 달했다.  
    “아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사건도 놀라웠으나, 그 사건이 남편의 소설에 그대로 나와 있어 영자는 더 놀랐던 것이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조용한 집안 공기를 가르며 요란하게 울렸다. 올케였다.
  “아가씨, 신문 보셨어요. 혹시 최 서방한테 신기가 있는 거 아녜요. 소설이 어쩜 그렇게 딱 맞혔을까요. 그 다음 얘기도 들어맞으면 어떡하죠? 소설 맨 끝에, 휠체어에 앉은 언니를 아가씨가 모시고 산다는 얘기 말예요.사실 그래요. 본인은 건강하다고 큰소리 뻥뻥 치지만 언젠가 보니까 약을 한 웅큼이나 잡숫더라고요. 그 뚱뚱한 몸을 보면 아마 혈압에 당뇨도 분명 있을 거예요. 무릎 아픈 거는 벌써 오래 됐잖아요.”
     언니가 쓰러지기라도 간절히 원하는 듯한 그녀의 음성이 영자의 고막을 할퀴고 있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어요? 아가씨, 인터넷에는 더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올케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들이 잠적한 것을 양쪽 부모는 깜쪽같이 몰랐다고 한다. 김청미의 어머니가 경영하는 ‘김영미 횃숀’도 은행에 담보설정이 되어 있고, 집도 이미 은행으로 넘어간 상태이다. 횟숀계의 거물, 김영미가 자신의 우상이었던 딸에게 당한 것일까? 아니면, 오래 전부터 사양길을 걷고 있던 ‘김영미 횃숀’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일이었을까?”
    잠시 말을 끊고 올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니가 돈을 몽땅 청미 회사에 투자를 한 모양이군.”
올케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아주 계획적으로 사기를 쳤군요. 그놈의 새끼, 완전 사기꾼이에요. 사기꾼. 사기꾼을 만나 청미도 결국에는 사기꾼이 돼버리고 말았네요.”
    올케의 목소리는 신이 나서 죽겠다는 듯이 흥분에 들떠 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수심에 찬 아버지의 얼굴이 가물가물 다가왔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79 Feminism in Sylvia Plath’s "Daddy" 이월란 2014.05.28 17620
10578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이월란 2014.05.28 8236
10577 벌초 김희주 2015.01.25 7081
10576 세도나 백선영 2004.09.12 7030
10575 쁨바 쁨바 그 사이에 김영교 2005.01.31 6990
10574 미주 힌인 소설연구 6 박영호 2006.06.19 1647
10573 새롭지만은 않은 일곱 '신인'의 목소리 이승하 2005.12.19 1628
10572 Cajun or Creole? 이월란 2014.05.28 1411
10571 내가 죽는 꿈 오연희 2006.02.23 1120
10570 정현종의 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조만연.조옥동 2005.01.12 1051
10569 채송화 차신재 2014.10.01 1021
» 돈 언니 김영강 2006.02.23 980
10567 - 내 사랑 진희 - 이 상옥 2006.05.15 883
10566 미주 한인소설 연구 (5) 박영호 2006.02.27 865
10565 이런 날은 정국희 2015.01.12 777
10564 재외 동포 문학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박영호 2004.08.23 761
10563 타인의 축제 김영문 2007.09.30 743
10562 김영교 2005.12.23 722
10561 파리 정해정 2006.02.10 692
10560 알래스카 여행 이야기 정찬열 2005.11.23 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