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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편지

2010.03.25 17:18

윤석훈 조회 수:637 추천:37

   봄 아침이 향기롭습니다. 봄의 생기로 깨어나는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뜻과 힘이 느껴집니다. 술렁거리는 봄 기운 가득한 아침에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편지를 씁니다.

   주님의 아들로 태어난 지가 벌써 26년이 되어갑니다. 1984년 6월 24일 침례 받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침례 후 여러 형제,자매들과 함께 했던 뜨거운 기도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후 대학부 여름 수련회에서 구속자 되시는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났었지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던 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아 얼마나 큰 환희의 폭포수였던지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의 속살 모두가 뭉클 뭉클 살아 움직이는 제 젊은 가슴의 정원을 두둘겼었지요. 그때를 돌아 보면 온통 전율 뿐입니다.

   제작년 그러니까 2008년 4월, 수술실에서 이미 전이된 것을 확인하고는 수술조차 하지 못하고 닫았던 폐선암 3기 b라는 진단을 받고 시작된 저의 투병생활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후의 믿음 생활을 돌이켜 보니 한심한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교회생활은 꾸준히 해왔지만 주님의 품 밖에서 지냈던 수많은 시간들이 점점이 생각의 가슴에 박혔었지요. 그러나 그러나 주님께서는 평안의 눈물, 감사의 눈물, 회개의 눈물을 제게 허락하시며 토닥거려 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제 몸이 무슨 눈물로 만들어진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도우시는 성령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었던지요.

   투병 중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2008 여름 캘리포니아>

   목 없는 그림자를 본적이 있는가 2008 여름 캘리포니아의 그림자는 목이 부러졌다 동쪽에서 나서 서쪽으로 걷던 그의 목이 부러지자 하늘 꼭대기의 태양이 정수리에 고정되었다 하나님의 사막을 목 없는 그림자가 걷는다 고무줄 끊어진 바지처럼 날 선 콧등 무너진 사내의 동그란 그림자가 마침표 같은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 제 살을 뜯어먹던 그림자 세포가 서서히 새 몸을 만드는 과정이다

   또 다음과 같은 시도 써 보았습니다.

          <말리부 해변에서>

겨울 한낮 말리부 해변

물새 한마리 총총총
방금 태어난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긴다






들락날락 온종일

바다를 찍어나르는 물새 한마리

   그렇게 투병하는 동안 성령님께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구체적인 위로자가 되셨습니다. 진단 받은지 1년이 지난 어느날의 CT촬영 결과를 기억합니다. 4기로 전이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평안은 여전히 지속적인데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몹시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해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원도 했습니다.

   그때 썼던 시편 하나를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덤을 위한 노래>

환한 주먹으로 통증 없는 긴 세월을 꿈꾸어 보네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언제나 거기 있어야만 했던 것처럼
무표정 얼굴이 대상 없는 세월을 기다렸었네

자격을 논하자면 이미
오래 전의 바위 속을 헤매고 있을 테지만
내게 없는 손들이 내 뱃심을 끌어올리면
약속으로 가는 길도 한뼘처럼 가벼워지네

밤새 뒤척이던 기침 소리도 알고 보면
영혼의 움직임에 신호를 보내는 것

그를 부를 때마다 나타나는
산소 가득한 새벽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네

나 죽기 살기로 그대의 견고한 말씀에 입맞춤하네

   하나님 은혜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4기가 3기가 되고 지금은 너무나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암세포를 붙잡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여전히 항암치료는 매달 받고 있지만, 신학대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차근 차근 배워 나가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행복인지요. 일상이 공급하는 주님의 감동적인 경이로움에 늘 압도됩니다.

   주님, 끝으로 처음 진단 받았을 때인 2008년 4월 24일에 썼던 메모를 다시 여기에 옮겨 놓으려 합니다. 그토록 담담한 믿음과 평안과 천국에 대한 소망은 정말 하나님으로 밖에는 올 수 없었음을 고백하면서요......

    <전쟁을 위한 결심>

  "당분간 나는 백수를 선언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최단기간이 될 것으로 믿는다. 모든 것 손에서 놓고 그야말로 무중력의 공간에 나를 맡기고 새소리를 듣는다. 저리고 즐거운 새들의 합창을 귀를 세워 듣는다. 집안 가득 음악이 흐르고 나는 안방 침대에 반쯤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다. 잠시 후에는 이즈음엔 늘 그렇듯이 내가 처한 현상에 충실할 것이다.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용감한 군인이 되어 싸우러 나갈 것이다. 암세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7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모든 것-밥을 먹는 것, 상황버섯 달인 물을 먹는 것, 비타민 두 알 먹는 것, 기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걷는 것, 달 구경하는 것, 일출을 보는 것- 그 모든 것들은 최상의 무기가 될 것이고 그것만으로 녀석은 치명상을 입을 것임으로, 나는 거뜬해 질 것이다. 바둑에 있는 꽃놀이패 생각이 난다. 내가 놓인 이 상황이 꽃놀이패라는 생각. 깊고도 푸른 평안이 감싸고 있는 바다가 보이는 꽃밭에서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청명한 하늘에서 바라다 보는 저 넓은 내 사랑의 해변을 유유히 걸어가는 새로운 삶의 발걸음과 천천히 걸어가는 천국의 발걸음이 보인다. 아, 이 평화의 지경을 나 언제 걸어 보았나? 이만하면 참으로 백년이 부러울까? 천년이 부러울까?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손들 위에 밝고도 환한 축복이 내리고 있다."

  주님 사랑해요. 하나님 감사해요. 성령님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의 세계에서 마음껏 즐거운 아들, 윤석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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