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디세이] 한반도 도보 종단 시인 정찬열


"걷고 걸었다, 길 위에서 배운 건 더불어 사는 삶"
99년 등단…문집 5권 내
한국학교 교장 20년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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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타운 한 카페에서 만난 정찬열 시인이 길 위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잠시 상념에 잠겼다. 김상진 기자.


2009년 아내와 국토종단
2011년엔 국토횡단 나서

북한도 제한적 도보여행
이달 초 관련 여행기 출간

"남북 소통이 통일 첫걸음
내 기록이 그 밑거름되길"


그리움은 닳지도 않나보다.



되레 시간 갈수록 깊고 넓어져 차가운 새벽안개 마냥 길 위로 번져나갈 뿐. 그 길 위, 한 사내가 있어 터벅터벅 걷고 있다. 아주 오래된 그리움을 안고 때론 수도승마냥 뼈아픈 성찰을 화두로 틀어쥐고 걷는 이, 바로 정찬열(67)씨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풍경이 좋아 이 길 저 길 기웃거리다 보니 한반도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3년 전 봄 한철은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보내기도 했다. 꿈엔들 잊힐 리 없던 조국에 대한 향수와 회환은 산티아고 2000리 순례길 위 성찰과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밥벌이를 위한 그의 30년 직함은 보험업체 대표지만 우리에겐 한국학교 교장으로, 문인으로 더 친숙한 그를 LA한인타운에서 만나봤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가을 문턱, 차 한 잔 놓고 마주 앉은 그는 그간 길 위에서 보고 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아주 특별하게 들려줬다.

#글 쓰며 가르치며

전남 영암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어려운 집안 형편 탓 진학을 포기하고 자의반 타의반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영민한 사춘기 소년에게 당시 상황은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이어서 스물 한 살 되던 해 부모님께 쌀 닷 되를 받아 들고 집을 나와 광주상고에 입학했다. 그 후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7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편입해 졸업 한 뒤 전남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 그는 광주 인근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는데 석사학위를 마칠 무렵 간호사였던 아내 정영희(62)씨를 만나 결혼해 1984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애너하임에 정착한 그는 대형 보험회사 에이전트를 거쳐 30년째 '정찬열 종합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계속 공부했다면 원하던 대학 강단에 설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찌하다 보니 샛길로 들어선 셈이다. 돌이켜보면 후회나 미련이 남을 법도 하다.

"후회는 없어요. 당시엔 가족들과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으니까요. 그래도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었는지 이민 오던 해부터 주말이면 교회 한국학교를 시작으로 남부한국학교 교장까지 20년 넘게 아이들 가르치며 살았죠. 덕분에 그 팍팍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네요."

2세들에게 우리말과 한글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고된 이민살이에 가장 큰 버팀목이 돼준 것은 바로 글쓰기. 그가 글쓰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6년 고원 선생의 문학강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그 뒤 틈틈이 습작을 해 온 그는 1999년 본보 신춘문예에 시 '마중'이 입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5권의 산문집을 출간한 그는 1995년엔 뜻 맞는 문인들과 '오렌지 글사랑'모임을 결성한 뒤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는 미주가톨릭문인협회 회장직을 맡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땅, 내발로 걷다

이처럼 아이들 가르치고 글 쓰는 조용했던 그의 일상이 2009년 봄부터 좀 시끌벅적해졌다. 그해 3월 아내와 함께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31일간의 통일염원 국토종단에 나선 것이다.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이 재미동포 중년부부의 특별한 도전을 대서특필했고 부부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국토종단을 마친 2년 뒤인 2011년 4월엔 국토횡단에 도전했다. 국토종단을 끝냈던 고성에서 시작해 강화도를 거쳐 연평도까지 20일간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10월, 3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애초에 계획했던 한반도 종단을 끝맺을 수 있었다. 국토종단 후 북한방문까지 5년이나 걸린 이유는 그동안 북측이 그의 도보여행 요청을 계속 불허하다 2014년 제한적 도보여행을 전제로 허가를 해줬기 때문. 이처럼 끈질기게 이뤄낸 그의 업적이 대단해보이긴 하나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평화통일 염원 한반도 종단이라니 보통사람들에겐 어쩐지 낯설고 이물감마저 느껴진다 했더니 그가 말없이 웃는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이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에요. 시집간 딸이 친정 걱정하듯 이민 와 내 조국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고국의 우울한 소식들 대부분이 분단으로부터 비롯된 거였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한반도 평화통일이다 보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여기에 20년 전 아내와 두 남매 RV에 싣고 미 중서부 여행을 할 당시 자연의 장엄함을 보면서 되레 소박한 고향 길 걸어보고 싶었던 오랜 바람도 이 국토종단 대장정에 불씨가 됐다.

"그때 결심했죠. 언젠가 여건이 되면 내 두 다리로 한반도를 북에서 남까지 가로질러 걸어보겠노라고. 그리고 그 일이 제 오랜 관심사였던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작은 발걸음이 됐으면 좋겠다고요."

#더불어 사는 인생

국토종단과 횡단 후 그는 이 생생한 체험들을 묶어 '내 땅, 내발로 걷는다'와 '아픈 허리, 그 길을 따라'를 출판했다. 그리고 이달 1일엔 북한 여행기 '북녁에서 21일'까지 세상에 선보임으로써 5년여에 걸친 국토순례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통일의 첫걸음은 남북이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직접 보고 들은 북한의 생활상을 전함으로써 그런 소통의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소명으로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늘 이렇게 무거운(?) 주제로만 동분서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엔 결혼적령기에 제짝을 찾지 못한 한인 청춘들을 위해 '청실홍실'이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미혼자녀들의 부모 모임이다. 밥값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 모임을 통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고.

"농사짓다 고교 진학하겠다고 광주에 갔을 때부터 생각한 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게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일이 됐든 한인청년들 짝 찾아주는 일이 됐든 말이죠. 어차피 한바탕 꿈같은 인생, 혼자만 잘 사는 게 아닌 더불어 잘 사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뿐이죠."

그는 말한다. '여행자는 길에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이 길을 만들지만 길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하루살이 벌레와 한해살이 풀꽃이 인간을 가르친다.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 이라고. ('산티아고 순례길 따라 2000리' 중에서)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LA중앙일보]    발행 2016/10/10 미주판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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