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잔은 내 친구

by 박성춘 posted Jul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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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때의 수잔)

 

수잔은 내 친구 / 박성춘

 

 

타 문화권을 위한 한글학교의 학생인 수잔을 알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두 달전 쯤, 교회 복도를 걷는데 앞에 마주 선 어느 여자 집사님이 대뜸 나에게, "시인 이시죠?" 하는 것이다. 나는 그냥 멋적게 웃음 짓기만 하자 한글학교에 어느 백인 여학생이 영어로 시를 적어 왔는데 한글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나의 테블릿 카톡에 수잔이 친구추천으로 뜨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의 핸드폰은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수잔의 전화번호도 입력이 안돼 있었고 아무런 정보교류가 없었는데 어찌 된건지 카톡 친구추천에 뜬 걸 보면 참 신기한 노릇이다.

어쨌든 수잔에게 카톡을 보내어 이메일주소를 묻고 이메일로 수잔의 시를 한글로 번역하여 보내주었다. 그렇게 몇 번 메일이 오가자 수잔이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며 만나고 싶다고 했고 나는 별 기대없이 (왜냐하면 비대한 백인 아줌마 정도로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로 금요일 오후에 오라고 했다. 그 날이 되자 정말 수잔은 우리가게에 찾아왔고 나는악수를 청했다. 나이는 나보다 많이 들어 보였고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격에 키는 나와 비슷했다. 얘기를 나누던 중 나이가 나보다 여섯 살이 많다는 걸 알았고 7년 전에 남편과 이혼을 했고 출가한 아들과 딸이 있다고 했다. 전 남편은 수시로 거짓말을 했고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았으며 바람을 피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수잔은 이해심이 많았고 한국문화에 지극히 관심이 많았으며 오히려 나보다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있는듯 한국에 가면 순천만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첫 만남 이후로 우리는 “상부상조만남” 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찻집에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지 한 달이 넘을 때까지 나는 수잔을 그저 영어를 배우기 위한 미국친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흔여덟의 이혼녀인 수잔은 내가 꿈꾸어 왔던 이상형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차 우리는 같이 산책로도 같이 걸으며 서로 친숙해 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저녁 도서관 옆 산책로를 다 걷고 차에 타려는데 수잔이 쪽지를 보여 주며 자작시라면서 읽어 보라고 했다. 그 시는 바다와 산이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결국 사랑에 빠질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 시를 보여주며 수잔은 매우 부끄러워 했다. 그래서 나는 수잔의 손을 덥석 잡고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나는 수잔에게 이메일로 머리에 힘 좀 주라고 써서 보냈다. 그랬더니 무슨 뜻이냐고 물어서 머리 스타일을 예쁘게 바꿔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 젊어 보일거라고 했다. 얼마 후 또 만나게 되었는데 수잔의 머리가 좀 달라진듯도 했다. 꽃 무늬 머리핀을 하고 나온 것이다. 나이 쉰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성이라 머리숫도 많이 빠진것 같고 머리 스타일 바꾸기가 어려워 머리핀으로 포인트를 준 모양이다. 우리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지나가는 미국사람들이 왠지 이상하게 쳐다보는거 같아 좀 불편했다. 사실 서로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지 않는가. 여섯살 연상의 백인 아줌마와 마흔 두 살의 동양인 노총각이라. 어쨌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잔을 위해 한국말로 대화하며 걷기도 했지만 아직은 좀 무리였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는 차에 들어가 마저 얘기를 나누었다. 그 때가 다섯번째 만남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수잔이 여자로 끌리게 되었다. 게다가 수잔이 건네줬던 “바다와 산” 이라는 시는 다분히 우리의 관계를 비유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약간의 적막이 흐르고 나는 뜬금없이 대뜸 “Can I kiss you?” (키스해도 돼요?) 물었다. 그랬더니 펄쩍 뛰며 놀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놀래냐고 했더니 자기는 우리 만남이 상부상조 만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황당한 얘기를 했다. 여태 살면서 키스를 한 번 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수잔을 좋아하기도 하고 난생 처음으로 키스의 느낌을 체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수잔이 약간 긴장된 어조로 단지 자기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키스를 하겠다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곤 다시 키스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아직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되면 할거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얘기를 다 마치고 수잔이 키스대신 포옹은 괜찮다고 하여 캄캄한 주차장 한복판으로 나가 꽉 껴 안았다.

그 이후로 여섯번째 만남을 갖기 전 까지 나는 수잔에 대한 생각과 감정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7월4일 독립기념일은 휴일이라서 하루종일 시간이 있었다. 수잔은 그 날 딸을 만날 일이 있다며 끝나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오후 1시 반쯤 수잔으로 부터 카톡이 왔다. 이제 와도 된다는 메시지였다. 이번엔 수잔의 아파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은 키스를 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차를 몰았다. 아파트는 단층짜리 오래된 아파트였다. 노크를 하자 수잔이 문을 열어 주었고 음료수를 꺼내 건네 주었다. 소파 가까이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앉아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기본동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예문을 만들어 연습을 시켰다. 수잔은 혼자 공부할 때보다 내가 도와주니 정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수잔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어떤 꿈을 가지고 한글과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북한을 탈출하는 망명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나도 또한 그 일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글공부를 하다가 문득 수잔이 지은 “바다와 산” 이라는 시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바다는 그저 바다고 산은 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때 부끄러워 했던 것은 자작시를 남에게 보여줄 때 항상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할거고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수잔이 날 이성으로 좋아하는줄 알고 키스를 시도했으니 수잔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문화는 이성간에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잔은 여자친구의 남편과도 친구가 되어 헤어질 때 포옹해도 그 남자의 아내가 기분 상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친구와 애인이라는 그 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수잔은 나를 친구의 범주 안에서 그 선을 확실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옹은 허용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다행이라며 문화가 같은 젊은 한인여성을 만나라고 했다. 내심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지금이야 감정적으로 수잔에게 집중해 있어서 마냥 좋을 수 있지만, 만약 그녀와 결혼하여 현실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쩌면 수잔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도 있고 나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잔이 나와 취미나 성정이 비슷하고 문학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으로가 아닌 친구로써 언어와 문학 그 외 관심사를 나누리라 생각하니 부담도 덜 되고 마음도 가벼워 졌다. 수잔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좀 더 자연스러워 졌다. 수잔은 나중에 돈을 벌면 집을 사서 탈북학생을 무료로 하숙시켜 도와 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한국사랑은 어디서 온 것일까. 끝으로 처음 그녀와의 인연을 맺게 해 준 그녀의 시 “독도”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Dokdo Island / Susan


Beautiful Dokdo Island
Resting in Korea's East Sea
Like a mother will not abandon her child
The two cannot be separated


독도

아름다운 섬 독도
한국의 동해바다 위에 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듯이
그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2015. 7. 8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