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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을 보고-최미자

by 미주문협 posted Oct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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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을 보고


                                                                                                       최미자


샌디에고 중심가 패션밸리 상가에 있는 AMC 극장으로 나들이를 갔다. 신문기사와 한 국 식당 앞의 광고를 보고 영화를 보러갔다. 늘 빼곡한 일상이지만, 중요한 일은 시 간을 내어 만들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화 ‘귀향’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수년 전부터 한국영화가 조금씩 서양인들에게 소개되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 인가. 또한 조국을 떠나 타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큰 재미가 어디 있는가. 역사에 남아있는 일본의 만행을 긴 세월 우리가 떠들어 왔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그 러나 일본은 얼마나 많은 책을 만들어 그들의 문화를 미국과 서양에 알리고 있는지 나는 이곳에 살며 놀랐다. 위안부 역사가 어디 협상할 일인가. 일본은 무조건 정신 적, 물질적 보상을 하고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인식시키기 위해 사실을 널리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큰 목소리보다는 ‘귀향’ 영화처럼 그림이나 책 을 통한 문학의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영화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보니 이웃 두 개의 홀은 ‘배트맨’ 영화를 하는데 사 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복도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람이라면 어 린 처녀들에게 어찌 그토록 잔인하게 할 수가 있을까. 나는 숨이 막히는 경험을 했 다.


영화제작 후원금을 마련해준 7만5,270명의 이름으로 가득한 마지막 장면이 내 가슴 속으로 찡하게 울려온다. 일일이 읽을 수 없어 그분들이 누군지 몰라도 우리가 고마 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스레 느꼈다. 또 스크린에 떠있던 그림들은 지금은 보물 처럼 대한민국의 생생한 역사자료가 된 할머니들의 소중한 심리적 표현들이었다. 14년 동안 준비했다는 젊은 조정래 감독의 ‘귀향’은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함께 한 국적인 음악으로 고국의 진한 향수 속으로 나를 멈추게 했다. 시작할 때 진혼굿에 대 한 설명이 영어자막으로 있었더라면 서양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죽은 혼을 달래는 위령제나 진혼굿은 서양에 없기 때문이다. 또, 두 번째 줄의 영어 번역 자막이 스크린 아래로 가려져 읽을 수가 없었다. 극장의 간부를 만나 이유를 물어보니 영화를 배포한 측에 시정을 요청해도 협조해주지 않으 니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고 한국말을 못하는 2세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느낌을 컴퓨터 앞에 앉 아 영어로 정리를 해보았다. 그 다음날은 이른 아침부터 지인들에게 마지막 날이니 꼭 보라고 전화로도 알렸다. 내 딸도 미국인 지인들과 약속되었다기에 확인 차 알아 보니 저녁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뜻밖이었다. 이유는 관객이 적어 ‘귀향’ 상영 장소가 ‘배트맨’을 상영하기 위한 세 번째 홀로 빼앗긴 것이다. 홍보 부족이 었다. 애국자가 따로 있나. 미국에 들어오는 우리 한국산 자동차를 사서 타주거나 한 국산 영화를 보아주는 일이 애국하는 일이 아닐까. 지난날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부모 세대의 서러움을 요즈음 사람들은 얼마나 자각할까.


   위안부 할머니들이시여, 당신들은 힘이 없는 나라일 때 강제로 납치되었던 어린 처녀들이었습니다. 또 부모님과 형제들을 도우려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며 공부를 시 켜준다는 꼬임에 넘어갔던 착한 효녀들이셨습니다. 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도 끈기 있게 살아나 역사를 증언해주신 분들이여, 부디 영화 속의 나비처럼 빼앗긴 혼 이라도 날마다 우리 고국을 찾아 와 따뜻한 위안을 받으시며 통곡의 한을 푸시옵소서.  




문협월보 <10월 회원 수필 감상>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