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 연설을 찾아서

by 이승하 posted Aug 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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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명 연설을 찾아서
  ―최일남 편, 『들어라 세계여 시대여』를 읽고

  이 승 하

  책 중에는 사놓고 일독도 하지 않은 채 서가에 꽂힌 채로 퇴색되어 가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소설가 최일남이 편하고 여러 명의 언론인과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번역한 『들어라 세계여 시대여』(책세상)는 책값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울적할 때마다 펼쳐보며 용기를 얻곤 하는 책이다.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한 연설 1백18편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물론 연설 그 자체가 역사가 된 경우도 있었다. 책은 5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편이 고대 그리스·로마, 제2편이 유럽, 제3편이 미국, 제4편이 동양·기타, 제5편이 한국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재판관 앞에서 한 항변이 제자 플라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의 긴 자기변호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소.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들은 살기 위해서 가야 할 거요. 그렇지만 우리들 중 어느 쪽이 좋은 곳으로 가게 될는지 그것은 하느님만이 알고 계실 것이오." 언중유골이다.

  로마의 정치가 겸 장군인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케사르('줄리어스 시저'로 번역되기도 한다)의 살해된 시신을 앞에 두고 정적 카시우스와 브루투스가 들으라고 목청을 높여 한참 동안 연설을 한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한 연설이지만 멋진 시적 표현 속출하여 마디마디 폐부를 찌른다.
  "자, 이제 두고보기로 하자. 너 재앙아 일어섰으니, 네 갈 대로 가보아라."
  이 말로 연설을 끝내자 청중이 모두 일어서서 일제히 외쳤다고 한다.
  "암살자 카시우스를 죽여라!"
  "양자 브루투스를 죽여라!"

  교황청의 파문 선고를 받은 종교개혁가 루터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양심에 거역할 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고 더 이상은 해야 할 아무 말도 없습니다. 신이여 굽어살피소서. 아멘." 읽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마라, 로베스피에르, 당통 세 사람의 연설은 이념 관철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한 것이다. 연설 후 얼마 되지 않아 마라는 암살되며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은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는 유태인 장교 드레퓌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아내고는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논설문을 쓴 결과 피소되어 법정에 선다. 그 연설은 대단히 긴데, 끝 부분에 가서 그는 마구 부르짖는다.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저는 그것을 맹세합니다! 저는 제 생명을 거기에 걸겠습니다. 그리고 제 명예까지 걸겠습니다. 인간적 정의를 대변하는 이 법정에서 이 성스러운 순간에 저의 온갖 것을 걸고 맹세합니다. 이 나라를 온몸으로 대변하는 여러분 앞에서, 전(全) 프랑스를 앞에 두고, 전세계를 상대로 저는 맹세합니다.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내가 땀흘린 40년의 세월을 걸고, 이 땅이 제게 준 권위를 걸고, 저는 맹세합니다.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내 자신이 스스로 일러온 명성, 프랑스 문학의 확장을 도와준 내 저작을 걸고 저는 맹세합니다. 드레퓌스는 무죄입니다. 만약 드레퓌스가 무죄가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은 녹아버릴 것이며 저의 저작 전체가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는 무죄입니다."
  정의를 위해 생명과 명예를 거는 사람, 그래서 그는 '작가'인 것이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와 러시아 원정을 떠나면서 장병들에게 한 연설은 또 얼마나 명문인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헌신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에서의 연설, "(우리 정부가 국민 여러분에게) 오직 피와 땀과 눈물밖에 제공할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처칠 수상이 제2차 세계대전 중 하원에서 한 연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말이 나오는 맥아더 장군이 국회에 나가서 한 연설이 빠질 수 없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이 땅의 선각자 열한 분의 연설이다. 이렇게 끝나는 이준(李儁)의 피맺힌 연설을 읽고 목이 메이지 않으면 한국 사람이 아니리라.
  "본 대표는 일신을 희생하여서라도 우리 한국 동포들이 다 저 왜적의 무의(無義) 무도(無道)에 항쟁하여 최후 1인까지 신명을 우리나라에 바치려는 결심이 섰음을 세계 만국에 대하여 실제로 보이려 하오."
  이 말을 한 직후 열사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