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학(詩學)을 통해서 본 시의 근원적 이해

by 박영호 posted Dec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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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교실 』(1)

고대 시학(詩學)을 통해서 본 시의 근원적 이해
                                                                                    박영호

들어가면서
인류가 일으킨 창조적 문명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보다 편리한 형태로 인류 스스로가 부단히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현대도 그렇지만 각 시대의 문화나 문명에 대한 그 구성 요소나 그 가치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시대적으로 거리가 먼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 갈수록 그 가치나 양상이 현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돌발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고, 고대 사회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보면, 모든 문화의 그 뿌리나 줄기는 고대의 그것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더욱이나 그 근원적인 본질 등은 고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문학의 세계도 이와 같고, 시문학의 모습도 현대의 그것과 고대 사회의 그것이 그 모습이나 내용에 있어서 는 크게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 근원적인 본질 등은 고대 시문학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현대 시문학의 일반적인 모습은 종전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발전 변형되어 온 것이므로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꾸만 종전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점들이 있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현대시문학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의 리듬에 관한 문제다. 이러한 점은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으로 지니고 내려오던 정형시의 리듬이 차츰 변형되어 하나의 내재율이라는 형태의 자유로운 시로 발전되어 왔으나, 이제는 이러한 내재율의 개념에서조차도 완전히 자유로워지려는 현상이 대두되고 있는 경향이, 바로 리듬에 관한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모더니즘의 후기 현상인 포스트 모더니즘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일체의 전통적인 질서나 가치의 구속에서 보다 철저하게 자유스러워지려는 하나의 경계의 혼란 내지 해체 문학의 한 형태와 유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시의 본질을 넘나드는 일종의 전통적인 장르에 대한 하나의 파괴와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혼란에 대한 문제에 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시라고 하는 문학 형태가 지니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개념을 다시 한번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고대 사회에서 발생했던 초기의 시문학의 형태를 다시 한번 살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대 시학이 현대 시학의 표본이 될 수는 없고, 현대시의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가져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의 근원적인 성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를 한번쯤 살펴 볼 필요가 있고, 이는 급변해 가고 있는 현대시의 형태에 대해서 우리가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고대 문학의 발생

원시 종합 예술의 발생
고대시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고대 문학의 발생과  이 보다 더 근원적인 고대 예술의 발생 동기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대 인류 최초의 예술 형태는 인간의 자연 친화나 자연 모방의 한 과정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표현된 하나의 개인적인 자연에 대한 원시종교(Totemism)나 신에 대한 무격사상(巫覡思想. Shamanism)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선 개인적인 하나의 구전 언어(Current literature)형태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의 구체적 인 예술형태로 볼 수가 없고, 이러한 개인적인 표현이 하나의 집단적 사회적으로 결집되어 표현된 것이 최초의 원시 종합 예술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집단적 표현인 원시 종합 예술이 처음에는 하나의 원시 신앙(Totemism)이나 제천의식(祭天儀式0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형태는 여러 형태의 예술이 원시적으로 혼합되어 나타난 하나의 원시종합예술(Ballad Dance)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 사례의 하나가 바로 B.C 10 세기 이전부터 바로 고대 그리스 사회의 제례 의식의 하나인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us)를 찬양하는 양신극(羊神劇)에서 집단가무 형태로 발생한 주신송가(酒神頌歌 Dithyrambos)에서 최초로 시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인 기록뿐이고 그 구체적 내용은 전해오는 것이 별로 없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를 볼 수 있는데,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마한의 시월제, 고구려의 동맹(東盟), 가야국의 제천가무(祭天歌舞) 등이 그러한 것이고, 이러한 제천의식에서 하나의 집단 주술(呪述)등으로 최초의 고대시가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것도 역시 역사적인 기록(중국 東吏傳)뿐이고, 그것도 실제로 전해오는 내용은 극히 미미한 것뿐이다.
이러한 고대 제천의식이 바로 고대 예술의 발생 동기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우선 이러한 예술의 발생 동기를 살펴보면, 우선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인간의 개인적인 욕구인 심미적 쾌락적(Dulce) 충동에 의한 내적인 동기설과 둘째는 인간의 집단적 유용적(Utile) 그리고 실용적인 사회적 필요에 의한 외적인 충동 동기설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개인적인 충동설은 다시 모방본능설,, 유희 본능설, 자기표현 본능설 등 세 가지로 구분이 되고, 집단적 충동설은 사회적인 충동설과 신앙적인 충동 설의 두 학설로 구분할 수가 있다.
우선 모방 본능설(Imitative Impulse)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에 의해 제창된 것으로 모방이라는 예술적 충동에 의해서 쾌락을 느끼고자 하는 심미적 본능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예술이라는 ‘art’의 어원이 ‘Ars ‘이고 이의 뜻이 ‘모방의 기술’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예술 발생의 직접적인 동기를 밝혀주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유희 본능설(Play Impulse)은 이보다 훨씬 후시대인 칸트(Kant)나 스펜서(spenser) 등이 정립한 학설로 ‘시는 상상의 자유를 즐기는 유희를 표현 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이를 ‘정열의 여유’(Surplus Emerge)라는 정신학적인 면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예술의 목적론에도 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세 번째의 자기표현 본능설(Self Exhibiting)은 허드슨 (Hudson)의 제창 학설로 인간의 욕구나 흥미 상상 등의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본능에서 예술이 발생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서도 궁극적인 목적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이고, 비교적 인간의 개성적 실존적 내용이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창조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흡사한 학설로 수용 본능설 (Instinct to attract others by pleasing)이 있는데, 이는 진화론자인 다윈(C. Darwin0에 의해서 주장된 학설이고, 다분히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표현된 학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려는 생물학적인 본능을 말하는 것으로, 이도 엄밀히 따지면 자기 표현 본능설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자의 생각을 한가지 더 첨가해 본다면, 예술의 발생이나 그 목적이 인간의 부단한 ‘창조적 개발 본능’에서 시작되었다는 표현을 첨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예술의 기능이나 구실과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모방이란 행위는 있는 그대로의 재현을 의미하는 한정된 표현일 수 있어서, 모방 자체만으로는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으로 보기가 힘들고, 결국 창조적 욕망이 첨가 되어야 비로소 예술이 성립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인류 문명의 발생이나 발전과도 상관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예술에 대한 미학적 개념은 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학문으로 형성된 ‘미학’에서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다음은 개인적이 아닌 집단적인 사회적 차원에서 예술이 발생했다는 학설로 사회적 기원설과 종교적 기원설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사회적 기원설은 사회라는 집단적이고 사실적인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 연구해서 설정된 학설이다. 고대사회의 예술품인 유물을 통해서 추출해 낸 결과로 많은 예술품이나 도구가 실제 생활이나 사회의 필요(수렵, 전쟁, 농경)에 의한 실용적 공리적 동기에서 제작된 점과 원시 시가가 수렵 전쟁 연애 노동 등 실제 생활과 실용적 대상을 대상으로 형성되었음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다음의 종교 기원설은 사회적 집단적 종교의식에서 필요에 의해서 하나의 표현방법으로 형성되었다는 학설이다.  이는 원시종합예술의 발생을 근거로 주창된 학설로 그들이 절대시했던 대상이 신이고 신화가 최초의 서사적 이야기이고, 주술이나 송가 등이 최초의 서정시였다는 점과 이러한 것이 자연발생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고대 시가(詩歌)의 발생
상기한 바와 같이 집단 제례의식에서 발생한 종합예술 형태에서 송가나 주술 등의 형태로 시가가 발생 했음 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것이 시문학으로서의 환전한 형태는 될 수가 없고, 이것이 완전한 문학적 기능으로 자라잡기 시작한 것은 역시 극시가 분화해서 극시와 서사시로 나누이는 과정에서 생성된 서사시로부터 라고 할 수 가 있다. 따라서 문학이라고 하는 완전한 형태는 문자로 표현된 서사시 형태가 최초의 완전한 시가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최초로 나타난 완전한 문학 형태인 서사시 라고 하는 ‘Epic’이란 말은 원래 ‘Epos’에서 유래된 말인데, 그 뜻이 말을 적은 ‘문구’(文句) 혹은  ‘글’이라는 점에서도 설명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뒤세이로 치지만, 사실 고대 시가의 형태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신을 칭송하는 개인적인 단시(短詩)인 송시(頌詩, Nomos)와 개인적인 음송(吟誦 rhapsodia)과 독창과 합창으로 발전된 디튀람보스(Dityrambos) 등이 있어 왔다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그 완전한 형태를 찾을 수가 없고, 다만 그 흔적만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연극을 통해서 나타난 대본 형태가 비로소 문자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최초의 시가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는 결국 구비문학(Oral Poetry)이 기록문학(Witten Poetry)으로 변화된 것이 완전한 형태의 시가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시학(古代詩學 Poietes, Poetike)의 형성
    원시 종합예술의 형태로 발생된 예술의 표현 대상은 자연이나 신과 같은 대상이었지만, 이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표현 대상이 차츰 인간 자신에게로 확대되고, 신에 한정된 제례의식에서 차츰 생활 주변과 사람들을 향한 표현 방법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 대상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조금은 특정한 인간, 다시 말하면 조금은 신령하다든가, 위대하다든가 하는 등의 집단적 찬양의 대상이 되는 특정한 인물을 표현대상으로 삼았고. 표현 방법 역시 신을 향한 몽환적이고 주술적인 표현에서 차츰 인간을 향한 현상적 사실적 표현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원시 종합예술 형태에서 발전된 고대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대 연극을 통해서 여러 예술 형태가 혼합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우선 문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주로 비극이라고 하는 연극의 형태를 통해서 주로 서사적 시가가 최초로 형태를 갖추고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관객이 형성되고 이를 주관하는 사람과 지도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고 여기에서 이러한 논란이나 연극에 대한 지도자의 입장이나 의견을 밝히는 경우가 생기게 되어, 이를 문자로 기록한 일정한 형식의 지침서 등이 하나의 시론이라는 형태로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단편적이고 원시적인 시학들은 전해오는 것이 거의 없고, 다만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내포톨레모스(Nepotollemos, 철학자, B.C 3세기경)에 의해서 쓰인 시학이 있었다는 기록 뿐이다.
역시 최초로 쓰인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이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B.C 65-80)가 쓴 <시학>이고, 이도 그의 제자에 의해 편찬이 된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을 빠뜨린 사항이나 그와 상반된 견해가 표현되어 있고, 특히 시작의 기술적인 면에 대한 표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또한 여기에서 말하는 고대 시학이란 오늘날 말하는 시학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오늘날의 시학은 시문학의 자체에 한정된 표현이지만, 고대의 시학은 서사시와 함께 연극, 그리고 대사, 비극작가 등의 문예전반에 대한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연극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 배우까지도 모두 시인에 포함되고 심지어 리듬 있는 글로 표현된 철학서나 의학서까지도 시로 포함하고 있었던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 시학, 詩學 》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의 시학(Poetics. Poetike))의 내용이 비교적 체계적이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된 것으로 보아서도 그 이전에도 이와 흡사한 시학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만, 문자로 전해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최초다. 그러나 이 시학도 2 권 중 1권만 전해지고 있고, 그것도 많은 부분이 소실 되어 있고, 또한 전해오는 부분도 많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오랜 세월 동안 전해 온 탓으로, 장의 구분이나 구성 등이 원전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많고, 부분적으로 변형된 내용들도 더러 있으리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또한 이 시대의 초기 시학은 거의가 비극에 대한 내용들이고, 실제 시에 대한 표현은 극히 일부분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그 시대에는 시와 연극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고, 실제 연극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 조차도 시인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 시대에는 시의 의미가 보다 광범위하게 쓰였던 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와 비극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고 문학 전반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더러는 예술 전 분야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학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실로 광범위 하다고 할 수 있고, 17-8세기까지도 많은 문학자들에 의해서 시문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
아리스토텔래스는 처음에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쓴 저술들( Exoterika) 중에 시학이 있었으나 이는 전해오지 않고, 다만 키캐로(Cicero)가 그 시학에 대한 칭송의 글이 남아 있을 뿐이고, 오늘날 전해지는 시학은 그가 설립한 학교에서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저술한 책들(Akroamatika) 중에 포함된 2 권의 시학인데, 이것도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인인 안드로니코스<,andronicos)가 이를 편찬 발행한 것이고, 오늘날 전해오는 것은 그  1 권뿐이다.
그러나 이는 인류 최초로 쓰여져 전해 오는 최초의 문학 비평서라는 점에서 우선 크게 가치가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해서 그 시대의 문학 전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가 있고, 특히 수없이 인용되고 있는 작가나 작품을 통해서 그 시대의 시에 대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 시학의 표현 방법은 주로 그 시대에 거론된 비극과 서사시의 문제점, 특히 플라톤 등의 <국가>나 <정치>등의 저서를 통해서 표현된 예술관이나 호메로우스의 서시시에 대한 구체적 지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 답변, 반론, 등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학의 내용은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을 우선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초반부의 내용은 시인들의 모방의 방법에 의해서 구분되는 비극과 서사시와 희극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고대시의 성격에 따른 분류와 모방을 통해서 표현되는 비극과 시인들의 예술성이나 그 가치를 표현하고 있고, 두 번째는 비극의 플롯(Plot )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플롯을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규정 짓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세 번째는 주로 서사시에 대한 특색을 비극과 비교해서 그 구성 원칙 등을 밝히고, 특히 마지막 23-26장에서는 비평의 형식으로 그 당시 지적되어오던 서사시에 대한 부정적인 문제점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비평적인 논술 형식으로 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연극을 주로 이야기 하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은 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고, 특히 플라톤의 ‘국가론’ 등에서 표현된 모방론이나 여러 비판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데에도 호메로우스 서사시의 우수성을 들어 대변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또한 모방에 의한 예술의 발생동기나 그 가치를 밝히고 있고, 예술의 기능적 가치를 파토스(Pathos)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예로 들어 표현하고 있는 점도 대단한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학은, 시론 자체에 대한 표현보다는 연극을 이야기 하기 위한 소극적 방편으로 시가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고, 우리가 그러한 연극을 통해서 시가 지니고 있는 문학의 공통적 특색이나 가치를 추출해서 간접적으로 고대 시문학의 특색과 가치를 이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또 하나의 결점은 가장 중요한 시의 주제에 대한 사상적 표현이 아주 빈약하다는 이야기다.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부분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주로 선악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 뿐이고, 시나 연극의 사회성이나 시대적 가치 등에 대한 표현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한 지나치게 구체적인 논리의 전개로 독자에게 차라리 혼란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근원적인 면에서 빠진 점도 많고. 그 시대의 시적 특색의 표현에도 미흡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시에 대한 구체적 저술이라는 점과, 그 시대의 문예 전반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표현되어 있어서, 고대 시문학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학의 내용에 나타난 그 시대의 시의 성격이 오늘날에 그대로 전부 적용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를 오늘의 시적 특색에 비교해 봄으로써 오늘날의 시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정립해 보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시학의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독자의 편의를 위해, 26 장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연극에 대한 표현의 장은 생략하고, 주로 시에 관계된 주요한 장만을 10장을 인용하고, 인용된 장에서도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설명 하고자 한다.  또한 인용된 사례에 대해서는 각 장의 뒤에 간략하게 주해(註解)를 적었고, 장 전체의  표현이 너무 장황하거나 간접적인 표현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가 장의 말미에 시의 내용으로 바꾸어 압축 요약된 내용으로 <참고> 라는 표를 달아 적어 넣었음을 밝힌다.

시학《詩學》내용
<제 1장>
   우리의 주제는 시학이므로, 나는 시의 일반적 본질과, 그 여러 종류와 기능에 관하여 말하고, 이어서 훌륭한 시가 필요로 하는 플롯(Plot)의 구성과 시의 구성 부분의 수와 성질과, 그 밖에 이 연구 분야에 속하는 다른 사항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그럼 자연적 순서에 따라 기본적인 내용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서사시와 비극, 희극과 디튀람보스,(1) 그리고 피리 연주와 키타라(2) 연주는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 모방(3)의 양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 가지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니. 즉 그들이 사용하는 모방의 수단이 그 모방의 종류에 따라 상이 하든지, 그 대상이 상이 하든지 그 양식이 달라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색채와 형태를 통해 사물을 모방 모사(摸寫)하고ㅡ혹자는 기술에 의하고, 혹자는 숙련으로 –다른 사람은 음성으로 하는 바와 같이 상술한 예술들도 모두 율동과 언어와 화성(和聲)(4)모방을 하는데, 때로는 단독으로 사용하고, 때로는 혼합으로 사용한다. (중략)
그 때 화성 없이 언어 만으로 모방하는 예술이 있는데, 이 때 언어는 산문이 아니면 운문이며, 운문인 경우에는 상이한 운율이 혼용되기도 하고 동일한 운율만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라나 이러한 모방에는 일정한 명칭이 없다. (생략)세인들은 운율의 명칭에다 .시인’이란 말을 붙여 애가시인이다. 서사시인이다 하고 부르고 있지만,ㅡ 그것은 시인들이 행하는 모방의 양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시인들이 사용하는 운율에 근거를 두고 붙인 공통된 명칭이다. 왜냐하면 의학이나 자연 철학에 관한 것이라도 운문으로 씌어 있으면 그 저자를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메로스와 엠패도클래스(5) 사이에는 운율 이외는 아무런 공통점아 없다. 끝으로 상술한 모든 수단, 즉 율동과 노래와 운문을 모두 혼합하여 사용한 예술이 있는데, 주신송가와 송시(6) 와 비극과 희극이 그렇다. 이들의 차이점은 어떤 것은 상술한 수단들을 함께 사용하고, 어떤 것은 따로 따로, 그리고 교대로 사용하는데 있다. 여러 예술의 이러한 차이점은 나는 모방의 수단에서 오는 차이라고 본다.
<註解>
(1)디튀람보스(Dithyrambos)- 대표적인 주신송가의 하나로 기원 전 8 9세기 경에 발생 기원전 5세기경에 경연대회가 있을 정도로 번성 했으나 기원전 4세기경부터 쇠퇴하고, 운문보다는 음악부분으로 발전되었다.
(2) 목적(牧笛)- 피리의 원시적인 형태의 악기로 주로 목동이 부르던 피리와 같은 악기라고 할 수 있다 .
(3)모방(模倣)-여기에서는 예술 내지 창작을 의미한다
(4)화성(和聲)-여러 가지 노래
(5)앰패토클래스-시켈리아의 자연 철학자로 <자연론>과 피타고라스 이론. 그리고 윤회설을 증명한 <정화론> 에서 일부가 전해 온다.  또한 모든 저술이 육절 운율로 되어있어서 과학자인 그도 시인으로 지칭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송시(頌詩)- 신들을 찬미하는 의식 행사에서 부르는 칭송의 노래로 주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일종의 서정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고, 서사시와는 구분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모방이라는 예술은 수단 대상 양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밝히고 있고, 시는 모방을 통해서 표현된 예술과 문학의 한 분야이고, 운율을 지닌 언어 예술이라는 점으로 이는 시의 근원적인 성격을 밝히고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제 4 장 >
시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모방 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닌 본성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도 인간이 모방을 가장 잘한다는 점이며, 처음에는 모방을 통해서 인간은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이고, 또한 인간은 출생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중략)
이와 같이 모방과 화성(和聲)과 율동에 대한 감각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인바, 인간은 이 같은 본성에서 출발하여 이에 점진적인 개량을 가함으로써 즉흥적인 것으로부터 시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시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품위 있는 시인들은 고상한 인물과 고상한 행동을 모방한 데 반하여, 저속한 시인들은 비열한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였는데, 전자가 찬가(1) (讚歌,Hymonos)를 주로 썼고, 찬사(2)(讚辭, Enkomion,)를 쓴 후자는 처음에는 풍자시(3)(諷刺詩)를 썼다. 호메로스 이전에는 이런 시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시인들이 쓴 풍자시는 한 편도 전해오는 것이 없지만, 호메로스 이후에는 많았다. 예컨대 호메로스의 ‘마르기네스’(4)(margites,)와 이와 유사한 다른 시인들의 작품이 있다. 이들 풍자시는 단장격운율(5) (短長格 韻律)이 적합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이 운율이 오늘날도 풍자시(Iambeion)라고 불리는 것은 이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운율로 서로 풍자(Iambizeein 욕설 )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옛 시인의 일부는 영웅시 작가가 되고, 일부는 단장격 운율시의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고상한 대상을 모방한 데 있어서 탁월한 시인 이지만, (그는 훌륭하게 작시한 점이나. 모방이 드라마적 한 점에서는 독보적 존재였다.)개인적 비방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을 드라마화 함으로써 맨 처음으로 희극을 윤곽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극과 희극이 등장하게 되자. 시인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두 가지 경향 가운데 한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어떤 시인들은 단장격 시 대신 희극 작가가 되었고, 어떤 시인들은 서사시 대신 비극의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새로 등장한 형식이 옛 형식보다 더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중략)
비극은 디튀람보스의 지휘자들로부터 유래하였고, 희극은 아직도 많은 도시에 남아있는 남근찬가)(6)(男根讚歌)의 지휘자로부터 유래 하였다. 그 후 비극은 여러 가지 요소를 개량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많은 변화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비극의 발전은 정지되었다. (후략)
<註解>
(1)찬가(讚歌,Hymonos )-주로 신에 대한 찬양을 말함
(2)찬사(讚辭, Enkomion,)-주로 영웅이나 위인 등 인간을 찬양하는 노래
(3)풍자시(諷刺詩)-희극으로 엮은 짧은 형식의 단막극의 노래
(4)‘마르기네스’(margites,)-돈 많은 바보를 등장시킨 풍자적인 서사시
(5)단장격운율(短長格 韻律)-짧은 대사 형식의 리듬으로 주로 풍자극에 사용되는 형식  
(6)남근찬가(男根讚歌)-일종의 음담패설 등의 유머스런 내용
<참고>
인간의 모방과 쾌감의 본능설을 밝히고 있고, 이를 통해서 발생된 극의 두 종류인 비극과 희극의 성격과, 시의 두 형태인 서사시와 풍자시에 대한 구분을 밝히고 있다.

<제 6 장>
육질운율에 관한 모방과 희극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먼저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부터 비극의 본질을 이야기해 보자.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의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 부분에 따도 따로 삽입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간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1)를 행한다. 나는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 “ 란 말로는 율동과 화성(和聲)을 가진 언어 또는 노래를 의미하고, “작품의 상이한 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는 말로는 어떤 부분은 운문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에 의하여 진행됨을 의미한다. (중략)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부분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여섯 가지 부분에 의하여 비극의 일반적인 성질도 결정되는데, 플롯(2)과 성격(3)과 措辭(4)와 思想(5)과 場景(6)과 노래(7)가 곧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모방의 수단에 속하고, 한가지는 모방의 양식에 속하고 세 가지는 모방의 대상이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사실상 모든 시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사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드리마는 장경(場景) 성격 플롯 조사(措辭,) 노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註解>
(1) 카타르시스,(Catharsis)- 즉 공포와 연민이나 비애를 통해서 정서 정하(淨化)나 교화(矯化)를 통한 감정이입(감동)을 일으키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연극의 핵심이고, 이는 예술의 구실이나 주제와도 상관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의 배설 내지 폭발을 의미하는 생물학적 견해도 있다. 이는 또한 파토스와도 밀접하게 상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 플롯(Plot)-아리스토텔래스는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창작 기술적인 면에서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성격- 이는 인물에 대한 표현이고, 인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4) 조사(措辭)- 이는 연극에서의 대사와 같고 하나의 삽화(揷話 )라고도 할 수 있다.  
(5) 사상(思想)- 연극에서 표현되어야 할 이야기의 내용으로 이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6) 장경(場景)- 이는 분장으로 표현되고 있고, 후기에는 이가 명실공히 무대라고 하는 배경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7) 노래- 고대 비극의 주요 요소인 음악으로 이는 기악과 성악으로 구분할 수 있고 성악은 바로 시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참고>
비극의 본질과 구성 요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연극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연극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고, 연민과 공포를 환기 시킨다는 카타르시스라는 표현만으로 대신하고 있는 셈인데, 우리는 이 카타르시스를 통해서 연극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주해 참고) 이는 연극의 구실과도 같은 것으로 시의 본질적 구실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비극의 구성 요소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구성요소는 플롯, 성격, 조사, 사상, 장경, 노래의 여섯 가지를 들고 있다.  이를 우리가 현대적 개념으로 정리하면 인물 배경 주제 대사 플롯으로 표현할 수 있고, 고대 비극에서 필수였던 노래가 현대의 비극 구성요소에서는 넣지 않는 점이 바로 현대와 고대 연극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 7 장 >
우리는 비극이 여러 가지 구성 부분을 분석하였으니, 이번에는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이것이 비극의 제일 우위적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럼으로 플롯은 아무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되고 앞에서 말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생물이든,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물이든지 간에, 그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유는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 속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무 작은 생물은 아름다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지각은 순간적이므로 분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또 너무 큰 생물, 이를 테면 길이가 수백 척이나 되는 생물도 아름다울 수 없다.왜냐하면 그런 대상은 단번에 관찰 할 수가 없고, 그 통일성과 전체성이 시계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사물이나 생물은 일정한 크기를 가져야 하고 그 크기는 쉽게 통관할 수 잇는 정도의 것이어야 하듯이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 데 그 길이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후략)
<참고>
여기에선 플롯(구성)의 기본적인 구성 단계와 길이를 이야기 하고 있으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점은 미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미의 본질은 크기와 질서에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결국 미의 본질인 아름다움 이란  ‘조화’(알맞아서 어울리는)에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제 9 장>
시인의 임무는 이미 일어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일, 즉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 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와 시인의 차이점은 운문을 쓰느냐 산문을 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로도토스의 작품은 운문으로도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문으로 쓰던지 산문으로 쓰던지 그것은 역시 일종에 역사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일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인 것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다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 는 것은 여차여차한 성질의 인간은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여차여차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시가 등장인물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시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을 말한다.’ (중략)
이상 말한 여러 가지 사실로부터 명백한 것은, 시인은 모방하기 때문에 시인이요, 또 그가 모방하는 것은 행동인 이상, 시인은 운율보다고 플롯의 창작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쓴다 하더라도, 그는 시인임에는 다름이 없다. 왜냐 하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 중에서도 개연성과 가능성의 법칙에 합치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이상 그는 이들 사건의 창작자 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가지 삽화 (揷話) 상호간에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도 없이 계기(繼起)될 때 이를 삽화적 플롯이라 고 부른다.
그런데 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이러한 사건은 불의(不意)에, 그리고 상호간의 인과 관계 속에 일어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 사건은 이와 같이 발생할 때, 저절로 또는 우연히 발생할 때보다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어떤 의도에 의하여 일어난 것 같이 보일 때, 가장 놀랍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후략)
<해설>
시인이 역사가와 달리 예술가 일 수 있는 점은 모방, 다시 말하면 플롯을 통해 창작 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개연적이고 필연적일 수 있는 가능의 세계나, 필연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시의 우월성과 예술성을 말하고 있고, 이는 모든 창작 문학의 공통적인 사실이고, 특히 소설에 있어서의 주요 구성요소인 사간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는 내용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제 12 장>
비극의 구성 요소로 서 사용되어야 할 여러 부분에 관해서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양적인 면에서 본다면, 비극은 프로울로그(1)(prologos)와 삽화(2)(Epeisodion)와 結尾(Exodos) 코오로스의 노래로 구분되며,코오로스는 다시 등장가(3)와 정립가 (4)(Stasismon)로 구분된다.  이 두 가지는 모든 비극에 공통된 것이나, 본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와 애탄가(5)는 소수의 비극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프롤로그는 등장가에 선행하는 비극의 전체 부분이고, 삽화는 코오로스 전체 노래의 사이사이에 삽입된 비극의 부분이다. 등장가는 코오로스 최초의 발언 전체이고, 정립가는 자리에 정립해서 부르는 애탄가는 배우가 코오러스와 합창으로 부르는 비탄의 노래다. (후략)
<註解>
(1) 프로울로그(prologos)- 맨 처음에 시작되는 독백이나 대화로 연극의 주제나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일종의 전제나, 발단과 같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 삽화(Epeisodion) – 배우가 연출하는 대사로 현대극에서 막과 장 같은 구실로 콩로스의 방향제시 등이 구실이었던 것 같다.
(3) 등장가(登場歌)-코오로스가 무대에 오르면서 부르는 노래로 일종의 서곡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4) 정립가(定立歌) 본 위치에 자리잡고 부를기 시작하는 노래.
(5)애탄가(哀嘆歌 Commos)-슬픔을 노래하는 비가로 주로 죽은 사람을 칭송하는 서정적 (Lyric)노래를 말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서정시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비극에서 구성되는 노래의 성격과, 각 노래의 구실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제 16장 >
  반전이 무엇인지 관해서 위에서 설명한 바가 있다. 발견(1)의 종류에 관해서 말한다면 맨 먼저 언급될 것은 가장 비 예술적인 것으로, 시인들의 창의성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은 표지에 의한 발견이다. (중략)
예컨데 오뒤세우스는 똑 같은 상흔에 의하여 유모에게 발견되고 돼지치기에도 발견(2)되지만,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 남에게 믿게 하기 위해 표현하는 표지나 이와 유사한 표지는 모두 비 예술적이다. 이에 비해 목욕 이야기와 같이 급전에 의한 발견은 보다 훌륭하다. 다음으로 시인에 의해 조작된 발견된 것이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비 예술적이다. 세 번째는 기억에 의한 발견 이고, 네 번째는 추리에 의한 발견 이며, 다섯 째처럼 오류 추리에 의한 발견도 있지만, 가장 훌륭한 것은 소포클래스의(3)<오이뒤푸스>(4)나 <이피게네이아>(5) 에 있어서와 같이 사건 자체로 유발되는 발견인데, 이 경우는 사건의 자연스런 진행에 의하여 경악이 야기된다. 이러한 발견만이 조작된 표식이나 목걸이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다음 가는 것은 추리에 의한 발견이다.
<註解>
(1)발견(發見)-여기에서 발견이란 사건의 변화나 반전을 가져올 수 있는 극적 효과를 가져올 계기에 대한 표현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점을 밝히고 있다.
(2)유모- 유랑에서 돌아온 오뒤세우스는 나그네로 변장하고 그의 짐을 찾아간다. 손님에 대한 대접으로 하녀가 그를 목욕시킨다. 그 하녀는 글의 어린 시절의 유모인데,, 그의 발을 씻다가 그가 어린 시절 사냥하던 중 맷대지에게 물린 상처를 보고 그가 집주인임을 알게 된다.
(2)돼지치기- 변장으로 자기 집에 머물고 있는 그는 횡포를 일산고 있는 자기 처의 구혼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예부터 오랫동안 자기 집에서 돼지를 치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기 발목의 상처를 보이고 옛 주인임을 밝힌다는 것을 말한다.
(3) 소포클레스(Sophocles B.C 384-322)ㅡ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 작가 <오이디푸스> <테래우스><안티고네>등 17 여 편의 희곡이 전해 옴 의 저자
(4)오이디푸스(Odipous) – 소포클래스의 대표적인 비극, 신에 의 해 정해진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골육상쟁과 근친상간을 통해서 표현 하고 있다. 인간의 성격과 심리 분석 연구에 대한 주요 자료로 사용되어오고 있다.
(5)이피게네이아 – 원명은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로  ‘에우리피데스’가 쓴 작품이다.  
<참고>
여기에서의 발견이란 사건의 전개에서 숨어 있는 사실에 대한 독자의 발견이란 의미이며, 이는 시인의 표현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건 자체의 진행으로 유발되는 당위성에 대한 설명으로 이를 통해서 반전이 되고 다음으로 충격과 고통과 애탄 등의 파토스(pathos,)적 상황이 전개되어 극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시에 있어서는 하나의 모티브 유발 내지 진성성(眞正性)발견 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진정성에 대한 발견은 시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진정성의 표현이 감동을 불러올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제 23 장 >
단지 서술하는 시, 즉’무대상의 행동 없이’ 운문에 의해서만 모방하는 시(1)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비극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서사시 스토리의 구성은 드라마의 그것과 같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스토리는 시작과 중간과 종말을 가진 하나의 전체적이고 완결된 행위를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작품은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닌 생물과도 이 살아나며, 그에 고유한 쾌감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역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행위를 취급하지 않고, 한 시기와 그 시기에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취급하며, 사건 상호간에 연관성이 없어도 무방하다. 살라미스 해전(2)과 시켈리아 섬에서의 카르케돈인과의 전투(3)는 동시에 일어났지만, 동일한 결말을 향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전후하여 일어난 경우에도 그로부터 하나의 결말이 생기지 않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작시하고 있다.
그로므로 호메로스는, 위에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점에 있어서도 다른 시인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것 같다. 그는 트로야(4) 전쟁이 처음과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의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선박의 목록’(4) 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후략)
<註解>
(1)무대 없는 운문의 모방시-이는 바로 서사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 살라미스 해전-아테나이인이 페르시안을 무찌른 해전 (B.C 408)
(3) 카르케돈인과의 전투- 시켈리아의 성주 겔론이 카르게돈인을 무찌른 전쟁으로 살리미스 해전과 같은 해에 일어났음
(4) 트로야 전쟁-이는 신화 속의 이야기로 미인에 대한 질투로 시작된 그리스와 트로야의 긴 전쟁
(5) 선박의 목록’-<일리아스>의글 중 그리스의 장군들이 인솔해온 배의 수를 열거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해설>
  시는 압축 생략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압축된 내용 속에도 일정한 구성 요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에도 머리 몸통 다리가 있어야 하고, 생각과 감정 등의 의식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나 다름없다. 그래야 생명이 있는 살아 숨쉬는 작품이 된다는 이야기다.

<제 24 장>
  그 외에도 서사시의 종류는 비극의 그것과 동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것은 단순하던가 복잡하든지, 성격이든지 파토스적(1) 이어야 한다. 또한 그 구성 부분도 노래와 장경(場景)을 제외하고는 비극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까닭은 서사시도 급전과 발견과 파토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상과 조사(措辭)도 그 나름대로 훌륭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최초로, 그리고 적절하게 사용한 시인은 호메로스이다.  그의 두 시는 각각 그 구성이 상이한데, 일리아스는 단순하고 오뒤세이아는 복잡하고 (이 시는 도처에 발견이 있다.)성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두시는 조사와 사상에 있어서도 다른 작품들을 모두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서사시에 있어서는 그 길이와 운율에 있어서 비극과 상이하다. 서사시의 길이에 대하여 말하자면, 위에서 말하고 있는 한계로 충분할 것이다. 즉 작품의 시초와 종말을 통관 할 수 있는 정도라야 한다. (중략)
서사시는 길이를 연장하는데 있어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비극은 여러 부분이 진행되는 것을 모방할 수가 없고, 오직 무대에서 배우에 의하여 연출될 수 있는 부분만이 국한되는데 반하여, 서사시는 서술 형식이므로 동시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을 그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경우에는, 시의 분량은 증가한다. 이것은 시의 규모를 웅대하게 하고, 모든 자의 기분을 전환 시키고, 여러 가지 삽화를 삽입 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극이 무대상에서 실패하기 쉬운 것도, 그 사건의 단조로움이 곧 관중으로 하여금 실증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영웅시의 운율이 모든 시의 운율보다도 가장 서사시에 적합하다는 것은 경험에 의하여 알려져 있다. 이 운율은 다른 운율보다 방언과 은유를 너그럽게 받아 들이며, 이 점에서도 서사시는 다른 시들을 능가한다. 지금까지 영웅시 이외에 다른 운율로 긴 서사시를 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연이 그 자체가 그와 같은 스토리에 적합한 운율을 선택하도록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작품 내에서 시인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칭찬을 받을 만 하다. 시인 자신이 작품 중에 나타나서 말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는 모방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시인들은 자신이 계속해서 작품 중에 나타나고, 모방하는 바가 적은데 비하여 호메로스는 짧은 머리말을 한 다음에 한 남자나 한 여자, 아니면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그 어느 인물도 무성격 하지 않고, 모두 성격이 뚜렷하다.
비극에 있어서도 경이(驚異)스러운 것(2)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서사시에 있어서는 경이스러운 것의 주요 요인인, 있음직 하지 않은 것이 더 많이 허용된다. 그 까닭은 서사시에 있어서는 행위자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핵토르를 추격하는 장면(3)이 무대 위에서 연출 된다면 우스울 것이다. —. 희랍군은 발을 멈추고서 그를 추격하자 않고 아킬레우스는 그들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머리를 흔들고. 그러나 서사시에서는 그러한 것이 눈에 띄지 않지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아무튼 경이스러운 것은 쾌감을 준다. 그 증거로 모든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는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생각에서 과장된 말을 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을 조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호메로스다. (중략)
가능하나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 직 한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 스토리는 있음직하지 않은 것으로 구성되어서는 안되고, 그와 갚은 사건은 가능한 한 하나도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 호메로스는 그의 여러 가지 장점으로 양념을 쳐서 불합리한 점이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있다.  
<註解>
(1)파토스(pathos)-연민, 울분 비통 슬픔 등의 격정적인 감정의 동요를 유발시키는 형태나 상황이고 이는 카터르시스를 일으키는 직접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2)경이스러운 것 – 영감적이고 신령한 것을 의미
(3)핵토르-<일리아스>22권에 나오는 그리스인들의 추격장면
<참고>
시의 세계가 연극보다 보다 더 경이스럽게 표현될 수 있다는 시의 우수성을 호메로스의 작품을 들여 밝히고 있고,, 한정된 무대를 통해서 표현되는 연극의 한계를 들어 비극의 시인보다 서사시인이 더욱 모방시인일 수 있다는 시인의 우월성을 말하고 있고, 이러한 점은 시인이 개연성과 필연성 그리고 상징성에 의해 작품을 쓸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호메로스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제 25 장>
여러 가지 문제점과 그 해결을 관하여 이들의 종류가 얼마나 되며 또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고찰하면 명백해질 것이다. 시인은 화가나 다른 모상(模像)(1)작가처럼 모방자이므로, 사물을 언제나 그 세 가지 국면에서 한 국면을 모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는 사물이 과거나 또는 현재에 처하고 있는 상태를 모방하거나, 혹은 사물이 마땅히 처하여야 할 상태를 모방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이러한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방언이나 은유나 여러 가지 변화된 형태의 말을 혼용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이러한 말들의 사용을 시인들에게 허용(2)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시학과 정치학 또는 기타 예술에 대하여 동일한 정당성의 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중략)
먼저 작시술 그 자체에 대한 비평에 관하여 시인이 불가능 한 것을 그렸다면, 그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오도 그것이 시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바지 하거나 그것이 속한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놀라운 것으로 만든다면 정당화가 될 수 있다. (중략)
  다음, 시인이 그린 바가 사실이 아니라는 비평을 받는다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소포클래스는 자기가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다고 말한 것 같이, 시인은 인간의 이상(3) 상태를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다른 종류의 서술에 관해서는 시인이 그것을 그린 것은, 그것이 이상적이기 때문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실제로 그랬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등장인물들의 언어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판단하려면은 언어나 그 행동 자체만 보고 그것이 고상한 것인지 저속한 것인지 검토할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자나, 말하는 자, 그 상대자, 때, 수단, 동기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다른 비평(4)에 대해서는,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고찰해서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a) 방언을 사용하는 점으로 답변이 가능하다.  호메로스는 방언인 노새를(5) 표현해서 파수꾼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으리란 생각이다.
b) 다른 표현들은 은유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은유법)
c)기타 난점은 氣音이나 악센트를 바꿈으로써 해결 (발음이나 음성의 강약)
d) 구두점,
e)다의성(多意性)으로 해결할 수 있다. (술 따르는 시종 놋갓장이))(중략)
따라서 불가능 한 것이라도 그것이 시의 목적에 이바지 하거나. 혹은 이상 상태를 말하거나, 세인들의 견해일 경우에는 정당화 될 수 있다. 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믿어지지 않는 가능 사 보다는 믿어지는 불가능사를 택해야 한다. (중략)
  따라서 비평가들의 비난은 결국 다섯 가지 과오에 기인한다. 그들의 주장인즉 어떤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합리 하거나, 유해하거나, 모순을 내포하거나, 기술상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에 대한 해결은 상술한 여러 가지 항목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은 열두 개다.
<참고>
이 장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론이다. 또한 시문학이 다른 예술과 달리 홀로 지닐 수 있는 언어의 모방자 (언어 예술자)라는 특색(사실적 기능 이외의 특수한 기능들)과 여러 가지 언어의 예술적 가치를 밝히고 있다. 또한 잘못이라고 하는 지적들에 대한 반론을 문장과 수사론과 시적 표현특색 등을 실제 예를 들어 해명하는 비평문 형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註解>
(1)  모상(模像)- 이는 형태를 모방한 조각이나 공예품을 이름 (2)허용- 언어를 연근(漣金)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이르고 있다.
(3) 이상- 이상적인 사상(思想)을 표현한 말
(4)비평-일종의 비난을 지칭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5)노새 – 파수꾼에 대한 상장적 표현

<제 26 장 >
우리는 서사시적 모방과 비극적 모방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수한가 하는 문제를 제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덜 저속한 모방이 더 우수한 모방이고, 더 훌륭한 관객을 상대로 하는 모방이 항상 덜 저속한 모방이라면, 아무나 가리지 않고 상대로 하는 모방 이 아주 저속한 모방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중략)
그러므로 서사시는 제스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교양 있는 관객을 상대로 하고, 비극은 교양 없는 관객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다. 만일 비극이 이처럼 저속한 예술이라면 그것은 서사시보다 열등한 예술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 첫째 이러한 비난은 비극시인의 작시술에 관계된 것이 아니고 배우의 연기에 관계된 것이다. 둘째는 비극은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가지고 있고, 그 밖에 장경(場景)과 음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드라마의 쾌감을 가장 생생하게 산출한다. 그리고 비극은 그것을 읽을 때도 무대상에서 연출되는 것을 그대로 실감한다. 또한 비극적 모방은 더 큰 쾌감을 준다. 그리고 서사시인의 모방은 통일성이 적고, 여러 개의 비극으로도 만들어 질 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비극이 이러한 모든 점에서, 그리고 또 시적 효과를 산출하는 점에서 더 우수하다면, 그것은 서사시보다 시의 목적을 더 훌륭하게 달성하므로, 더 우수한 형식의 예술임이 명백하다.
<참고>    
비극과 서사시의 예술적 가치나 그 효과를 비교하고 있고, 이는 비극이 서사시보다 더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플라톤이 그이 저서에서 비극은 교양 있는 부인들과 소년들에게 애호되고 있지만, 서사시는 나이 많은 젊잖은 사람들에게 애호되고 있어서, 서사시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있는 점에 대한 반론을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어서   24장 의 표현과는 상반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맺음말
이처럼 아리스토텔래스의 시학을 통해서 본 고대 시학의 내용은 상당히 상징적이고 철학적이고 포괄적이어서 시의 본질만을 따로 구분해서 이해하기란 손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을 요약 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은 하나의 개연성과 필연성이 있는 서사적 사실이나  서정적인 이야기를 적은 글이고, 형식적인 면에서는 일정한(어떤 형태이든)리듬을 지닌다는 점이 일반 산문과 구분될 수 있는 핵심 요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결국 시의 장르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가 지니는 특색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아리스토텔래스(Aristoteles )의 다음에 나타나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의 시학은 물론 모든 근대 시 학자들 까지도 변함없이 말해오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현대시에서 일부가 주장하는 리듬의 완전 배제는 시라고 하는 형태에 대한 완전한 반역이고, 시에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리듬이라고 하는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리듬이란 청각적인 음악만을 한정한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 시는 노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소리 내어 부르는 노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로 이해해야지 시는 리듬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라는 점에 우의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말할 수 있는 시의 주요한 특색의 하나는 그 내용이 극히 상징적이고 생략된 방법으로 표현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 역시 시의 형식에 관한 이야기로 앞서 말한 시의 리듬과 함께 시의 형식에서 쌍벽을 이루는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시의 내용으로서 아리스토텔래스의 시학이 말하는 바의 시의 내용이란 연극의 대사와 같이 개연성이나 사실성이 있는 그래서 관객이나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진실이나 진정성이 있는 비교적 교훈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시의 근원적인 성격을 밝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상기한 점들을 좀 더 요약해 보면 내용상으로는 진정성(眞情性)이 있는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하고, 형식상으로는 음악성이, 그리고 표현 방법으로는 상징과 생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이 시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시의 근원적인 성격이 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시라고 하는 문학 형태가 시대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그 몸짓을 조금씩 달리 하거나, 더러는 새로운 형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하고 있는 시라고 하는 그 특유의 근원적인 특색만큼은 하나의 큰 강물과도 같이 크게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리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러한 설명이 요사이 논란이 되고 있는 리듬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한 답변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변화되어 가는 시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보다 유연하게 대처해 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인용 시학
       *    < Aritoteli, De Arte Poetica>( Oxford. 1958)를 번역한 천병희의 <아리스토 텔레스,호라티우스  詩學>
              (문예 출판사 1977)
         *    <註解>는 본문과 조금씩 다를 수 있음.
      *   <참고> 독자를 위한 필자의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