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56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4월 16일에 돌아가신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두 분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두 분이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당신에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니 쑥스럽지만 신부님의 부탁이니 적어보려 합니다.


  편지를 쓰려니 옛날 내가 서울의 미동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당신에게서 거의 매일 받았던 편지 생각이 납니다. 그때 당신은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고 시도 적어 보내고 하면서 결혼해달라고 졸랐지요. 동료교사들한테서 놀림을 많이 받았던 생각이 납니다.


  결혼할 처지도 못 되었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내가 당신의 끈질긴 구애와 진실성에 마음이 움직여서 결혼을 승낙했지요. 추운 겨울 12월 27일, 방학을 이용해서 상주의 초라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5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습니다.


  가난했던 내가 가난한 당신과 결혼해서 고생 참 많이 했지요. 세 아이를 낳아 키우며 공부시키기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되돌아보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동하, 승하가 교수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당신과 나는 성격이 맞지 않아 젊은 시절에는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듯이 금세 풀리곤 해서 그럭저럭 살아왔지요.


  돌이켜보면 당신이 내 속을 많이 아프게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장사가 당신 취미에 맞지 않아서 문방구 할 때 가장 많이 싸운 것 같아요. 세월은 잘도 흘러가 어느새 50년이 지났군요. 3남매 서울 유학을 시킬 때 우리는 얼마나 절약하고 열심히 일했던가요. 가장 먼저 가게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닫으며 휴일도 없이 오직 자식 뒷바라지 잘하기 위해 살아온 세월을 새삼 돌아보게 되네요.


  제가 몸이 약해서 당신을 힘들게 한 점이 많았음을 압니다. 수혈받을 피를 구하려고 애썼던 나날, 귀 뒤의 상처 때문에 7년간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 다닌 일 등 고마운 일이 새삼스럽게 회상되네요.


  가끔 잘난 체, 똑똑한 체해서 당신을 화나게 했던 점 인정하지만 나도 당신의 잘못 많이 덮어주고 참아가며 살아왔다는 것 알아줘야 합니다.


  이제까지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 고맙게 생각하며, 앞으로 남은 날 건강 잃지 않고 잘 살다가 저세상에서 부르면 큰 고통 없이 갈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2005년 금혼식 날
                                                                                                                           아내 박두연.



  하늘나라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당신이 이승을 떠난 지 벌써 9개월이 되었네요. 금혼식을 치르지 않은 신도들을 생각해서 성당에서 주선한 금혼식 날에 신부님께서 부부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당신은 편지를 써서 내게 주었으나 나는 부부간이란 이심전심으로 살아온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새삼스레 편지 쓰기가 어색하여 쓰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오늘은 학생들이 말하는 빼빼로 데이이기도 하니 하늘나라의 당신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당신과 나, 결혼해서 51년 한 달 23일 동안 같이 살면서 기쁘고 즐거움 속에 지나온 세월보다는 괴롭고 힘들었던 세월이 너무 많아 참으로 미안하고 후회스럽기 한량없네요. 도내 방방곡곡으로 1년이 멀다하고 전근 다니면서도 가방 하나 살 형편이 못 되어 언제나 보자기에 옷가지, 가재도구 싸갖고 다니면서 ‘보자기 생활’을 했지요.


  그 틈새에도 당신은 가계에 보태겠다고 힘겹게 교단에 서곤 했었지요. 교단에서 생긴 돈을 모아 대구 근처 무태의 논 두 마지기를 샀을 때 하늘 꼭대기에 오른 듯이 좋아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후에 시청 앞에 땅을 구해 문방구점 가게를 열기로 했지요. 그 논 팔고, 결혼반지, 아이들 돌반지까지 돈 되는 것은 다 팔아 보태고, 또 건축업자에게 당신이 눈물을 흘리며 사정사정해가면서 빚을 잔뜩 얻은 돈으로 가게를 지어 문을 열었지요. 그래도 이것이 내 가게다 하고, 삶의 희망에 부풀어 상호를 ‘희망사’로 짓던 일이 어제 같은데 당신은 이 세상을 뜨고 없네요.


  기찻길 바로 옆이라 소음이 너무 심해 피난을 가다시피 한 다락방은 앉을 수도 없는 낮은 방이었습니다.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고 숨 막히는 여름밤에는 모기와 밤새 싸우면서 30년을 고생한 당신, 그 고생을 시킨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7남매의 맏이로서 동생들 뒷바라지 다 못하고 결혼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었지요. 우리 자식들한테는 경제 문제 등으로 좌절이나 실망의 상처를 주지 말자고 무한히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뇌를 이겨내면서 세 자식 성장하는 모습에 즐거움을 찾으면서 말했지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의 반열 속에서 아들아, 밤하늘의 혜성같이 빛나라”고 말하며 크게 웃던 당신의 모습은 영영 볼 수가 없네요.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전생에서 정해져 있는 것 같네요. 당신은 일제시대, 조선인은 모집 정원의 1할만 뽑는 경성여자사범학교에, 천재만이 가능한 합격을 당당히 해내어 세라복 차림으로 꿈을 키우고 있는 여학생이었는데 나는 기름옷 입고 도시락 들고 공장으로 가는 철공소 직공으로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 극과 극의 삶이라 할 수 있었지요. 그런 두 사람이 서로 인연을 맺어왔던 지난 세월 속에 호강은 고사하고 고통과 극기의 세월을 보내게 하였으니 참 미안했고, 이를 견디어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오로지 당신 고생의 그 결실이 인천이씨 족보에 두 아들, 큰며느리가 나란히 박사, 교수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 고생의 열매가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지요. 이것은 모두가 당신이 눈물과 땀으로 일구어낸 열매입니다.


  여보! 하늘나라에서 큰아들 동하네 가족들, 작은아들 승하네 가족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면서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선영이를 잘 보살펴 모두가 건강하게, 그리고 이 사회에 빛나는 존재가 되게끔 인도해주길 바랍니다.


  이승에서 가졌던 그 수정같이 맑은 심성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평화와 즐거움 속에 꽃향기 가득한 낙원의 오솔길을 천사들과 함께 걷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생로병사는 만고의 진리라고 하였으니 머지않아 곧 나도 당신 곁으로 가겠습니다. 그때 만나서 이승에서 못 다한 정 나누면서 고통과 질병과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낙원에서 영생을 누립시다.


  여보! 이승에서 참으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는 그날 영원 속에 함께 손잡고 영생을 노래합시다.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만나는 그날까지 편히 쉬세요. 못났지만, 당신의 남편이 이 글을 영전에 바칩니다.



                                                                                                                               2007년 11월 11일
                                                                                                                                   남편 이재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60 (동영상시) 어느 따뜻한 날 One Warm Day 차신재 2016.12.01 74460
2259 화가 뭉크와 함께 이승하 2006.02.18 2297
2258 (낭송시) 사막에서 사는 길 A Way To Survive In The Desert 차신재 2016.02.25 1923
2257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니 이승하 2010.08.26 1518
2256 봄의 왈츠 김우영 2010.03.03 1417
2255 희곡 다윗왕가의 비극 -나은혜 관리자 2004.07.24 1401
2254 희곡 다윗왕과 사울왕 -나은혜 관리자 2004.07.24 1400
2253 가시버시 사랑 김우영 2010.05.18 1391
2252 리태근 수필집 작품해설 김우영 2010.07.11 1338
2251 김천화장장 화부 아저씨 이승하 2009.09.17 1307
2250 김우영 작가의 산림교육원 연수기 김우영 2012.06.25 1199
2249 아버님께 올리는 편지 -이승하 관리자 2004.07.24 1197
2248 플라톤 향연 김우영 2010.02.24 1194
2247 중국 김영희 수필 작품해설 김우영 2011.06.18 1179
2246 우리 시대의 시적 현황과 지향성 이승하 2005.02.07 1144
2245 코메리칸의 뒤안길 / 꽁트 3제 son,yongsang 2010.08.29 1138
2244 미당 문학관을 다녀 오면서 file 김사빈 2010.06.23 1074
2243 노벨문학상 유감 황숙진 2009.10.11 1071
»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남긴 편지 이승하 2011.04.30 1056
2241 체험적 시론ㅡ공포와 전율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승하 2009.10.14 104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3 Next
/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