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새집 / 천숙녀

by 독도시인 posted May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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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jpg

 

아버지의 새집 / 천숙녀

흰 차일이 산허리를 덮었다

여든 여섯

그리도 꿋꿋하시던 생애

흙덩이에 덥혀 답답해 어찌 하실까

차곡차곡 겹쌓은 나날

기쁨과 노여움과 흐리고 맑은 모든 것

붉은 천 쪼가리의 명정銘旌 한 장에

영양潁陽 千公 鎬子 昶子

이렇게 묻힘으로 끝이라니

침구철학인鍼灸哲學人의 불꽃이던 삶

눈물바다의 일엽편주一葉片舟 아니면

구름 꽃길 가시느라 꽃가마 타신 걸까

큼지막하게 참을 인자를 쓰셔

벽에 붙여주시곤 성큼성큼 돌아서 가신 아버지

참을 인자 획 하나에 배어있는 혈맥血脈

끓어오르는 부정父情의 깊은 샘물

우물가를 휘덮은 하얀 천의 차일

그 끝자락 휘감는 바람이 아프다

부디 새집에 드신 아버지로부터

이제는 참 편안 하구나라는 편지가

곧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