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외품

by 성백군 posted Jan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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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외품 / 성백군
                                                                                  


금 간 사과, 벌레 먹은 복숭아,
기미낀 배, 주근깨 범벅인 오렌지,
가을볕에 화상을 입은 먹 감들이
마켓 바닥 한구석 광주리에
세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들어있다.
다 상한 것들이라서
세간의 주목에서 밀려나
돈 많은 사람 성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가난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의 눈에만 들어오는 것
비록, 진열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저들의 삶이 하잖은 것은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다 안다
새도 알고 벌레도 알고 단 것만 쪼아먹고 파먹는다
익을 대로 익어서 더는 못 견디고 떨어져 깨졌으니 얼마나 맛있겠나 마는
돈 되는 것 겉모양만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치이고 밀려나
싸구려 취급을 받는다고, 버려져 썩어간다고
광주리에 담긴 몇 개,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사람도 냄새를 풍긴다
홀아비 냄새 홀어미 냄새
이마엔 주름살 늘어나고 눈꺼풀 처지고 이빨 몇 빠지고
귀먹고 눈 어두우면 노인 냄새가 난다
등외품들이 모여드는 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인고의 냄새가 난다. 그 냄새 맡을 줄 아는 사람 역시
등외품이다
등외품 과일이 등외품 사람을 쳐다보는 눈길이
따뜻하다.

   *시마을 작가회 2013년 11월의 詩 선정작
                 563 - 1102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