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웅 시인의 시세계(문예운동) / 박영호

by 관리자 posted Jul 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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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영호  
   김신웅 시인의 시세계(문예운동) / 박영호




‘문예운동‘ 여름호 특집으로 김신웅 시인의 <신작 소시집>란에 신작시 10 편과 함께 게재된 필자의‘김신웅 시인의 시세계'를 소개합니다.

미주에서도 피는 한국 순수 서정시의 꽃
<김 신웅 시인의 시세계>

박 영 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에게 남다른 감동과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시는 역시 오랜 세월으 두고 우리와 숨결을 함께 해온 우리의 전통적인 순수 서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 미주에서도 고국에서와 같이 많은 형태의 시들이 쓰여지고 있으나, 그래도 늘 큰 강물과도 같이 도도히 흘러 내려오고 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순수 서정시가 이곳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대표적인 한 모습을 김 신웅 시인의 시작품 속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김 시인은 일찍이 고국을 떠나 미주에서 이십 여년 이상을 살아 오면서 한결같이 모국어로 시를 써오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1950년대 말 ‘대합실’ (김 시인의 첫시집, 필경본,1958년)을 떠나온 그의 시작에 대한 열정이 길고 긴 여정 끝에 이제 이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고국이 아닌 먼 이국 땅에서 오랜 세월을 살면서도 이처럼 모국의 언어와 정서를 지키고, 이처럼 뛰어난 시편들을 써낼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시는 모두가 한 폭의 산수도(山水圖)처럼 부드럽고 밝은 모습으로 고전적인 고국의 정서가 짙게 어려있고, 그 속에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적 고뇌가 주로 자연에 대한 관상(觀想)을 통해서 얻어지는 순결한 영혼으로, 자기구현의 세계가 서정적으로 잘 형상화되어 있지요
고래로 이역을 떠도는 유랑의 길 위에서 쓰여진 많은 시편들은 숱한 고뇌와 굴욕의 울분에서 오는 회한과 탄식의 눈물이 베어 있으나, 김 시인의 시작품 속에는 그러한 암울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는 그러한 어둡고 괴로운 고통의 세계까지도 초연하게 아름다운 영혼으로 정화시켜, 불자의 몸에서 빚어지는 사리(舍利)와도 같이 정제(精製)된 언어들로,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표현방법이 직접적인 감정(emotional)표현이 아닌 감정환기(emotive)표현기법을 택하고 있어서, 언뜻 보면 아주 손쉬운 서정시로 보이나, 사실은 그 내면에 깃들이어 있는 그 연상(聯想)감정 내지 그 구체적 모습(descriptive Image)이 산곡처럼 깊고 바다처럼 넓습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이제 김 시인의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 보도록 하지요.

흔들리는 나무 가지에
깃털 고르는 새를 보아라
어둠의 꼬리를 딛고
일어서는 햇살로 부채질하여
발을 허공으로 이끌어
길도 길게 거기에 떠 있다

겨울산 골짜기에 잠자던 낙엽 밟고
기어오르는 산등성이를 향해
팔을 뻗는 청솔가지 위로
햇살 두루치며 날아 온 새
숨가쁘게 숨 가쁘게
들꽃 불러 깨우고 있다
‘이른봄 산에서’ 전문

이 시는 봄의 산을 배경으로 중심 소재인 새의 움직임을 통해서 생동하는 봄의 산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여, 생명에 대한 환희와 가치 있는 삶의 결실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늘 눈을 뜨고서도 꿈을 꾸듯, 마음의 눈을 열어 이른 봄의 산을 시각적으로 유영(游泳)하며, 보다 크게 떠오르는 인생에 대한 사색과 관념의 세계를 자연을 통해 순화된 서정적 진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 시인은 사실적으로 표현된 시각적인 봄의 산의 정경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감동 뒤에 오는 연상(聯想)으로 작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표현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우선 새의 몸짓을 통해서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과거를 떨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서면, 새 세계로 향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떠있는 긴 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둘째 연에서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힘있게 옮아가는 새의 몸짓과 같은 자연의 역사(役使)를 통해, 삶의 결실이고 가치인 들꽃을 피워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국 시의 주제인 시인의 생동감에 넘치는 삶에 대한 환희와 미래에 대한 꿈의 열망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김시인의 환기적(換起的) 표현방법에 의한 시작 경향은 그의 모든 시에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은‘봄꿈'이라는 시입니다.

누군가 앉았던 자리
지금도 거기 가면 볼 수 있을까
겨울꼬리 감추는 산허리
따라 나서는 날들

때아닌 바람에 가지가 울어
기억을 흔들어 놓는다

바람 속을 추스르고 추슬러
다시 가보는
다달은 해질녘
노을에 하나로 묶이고


햇볕에 졸던 아이 보이지 않는다
‘봄꿈’ 전문

말 그대로 봄의 꿈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고국에 대한 망향의 서정을 노래한 이민시 입니다.
이처럼 사실적으로 눈앞에 나타나 있는 현상적인 모습과 함께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고국의 구체적인 한 공간으로부터 시작된 향수가 계절과 세월에 따라 흐르고, 더러는 고국에 대한 애증이나 실망이나 투정 등의 바람으로 그 모습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찾아가는 고국은 끝내 해질녘이고, 이제 세월의 끝 자락에서 그리움만이 노을처럼 붉게 물들 뿐, 이제 그 곳에는 그가 바라는 고향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찾아가는 향수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만 붉게 물들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이 얼마나 애틋한 그리움입니까?
더욱이나 마지막 연에서는 즐겁게 뛰놀던 옛 어린시절 고국의 모습을 ‘햇볕에 졸던 아이’ 라고 다시없이 평화롭게 재현 시키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라는 표현으로 잘라, 이제는 되돌아갈 수도, 그 모습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의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그는 망향의 꿈을 극히 서정적이고 상징적으로 묘사하여, 더 없이 아름다운 향수의 미학으로 형상화 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다음은, 그가 그의 삶을 통해서 생명처럼 여기고 혼신의 힘으로 열망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시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눈길 주는 당신은
언제나 뒤돌아 보지 않고 가기에
등만 보고 가는 슬픔이 된다

(중략)

당신을 따라 쫓는 마음
당신이 계신 곳을 찾아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다
‘어느 시인의 편지’ 에서

시에 대한 열망으로 뮤즈의 신을 임으로 사모하여 열심히 찾아 가지만, 임의 등만 보고 가기에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그래서 그 안타까움이 슬픔이 되지만, 그래도 오직 임만을 찾아 가겠다는 시인의 시에 대한 열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이분의 시의 작품성(Poeme)보다는 시정신(Poesie) 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시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 열정을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작품인‘어느 시인의 편지 (3)’에서는 이러한 김 시인의 시에 대한 피나는 노작(勞作) 과정이 더욱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시를 하나의 생명처럼 여기고, 이를 낳기 위해 산고와 같은 긴 고통 속에서 시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진지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시를 하나의 자기구현으로 여기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기에, 이분의 시가 산곡간을 흐르면서 수없이 정수(淨水)된 강물처럼 맑고 깊은 여운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하겠지요.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김 시인의 시의 세계는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한국의 전통적인 순수 서정시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김 시인이 기독교 장로님이신데도 이분의 시에서 서구 기독교적인 분위기 보다는 차라리 동양의 고전적인 서정의 분위기가 두루 풍기고 있는 점에서도 설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필자는 우리의 전통적인 순수 서정시가 시대에 따라 더러는 부분적으로 그 몸짓을 바꿔 가기도 하겠지만, 우리의 고유한 서정성과 '시'라고 하는 강물이 존재하는 한, 결국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시의 강물로 계속 흘러가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점은 요사이 논란이 되고 있는'좋은 시’나‘위대한 시’그리고 ‘서정과 서사’에 대한 논란에 대한 한 답변이 될 수도 있고, 고전적인 순수 서정이라는 미학적 가치가 자꾸 폄하되어 가는 듯한 현상에 대한 하나의 반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끝맺습니다.

2004-06-07 19:16:43 / 66.214.133.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