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31 07:45

영혼을 담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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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나는 대구에 다녀왔다. 대구방송국(TBS)과 안동시가 공동으로 제정한 제1회 이육사문학상의 심사를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작품세계의 질은 물론이거니와 시정신과 시인으로서의 행보에 있어 늘 정도를 걸어왔다고 여겨지는 시조시인 정완영 씨로 결정이 났다. 시상식은 7월 31일, 육사의 고향 안동에서 있었다.
  이 상이 제정된 이유가 있다. 2004년 올해는 육사 탄생 100주년에 서거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 말기에 거의 대다수 문인이 친일의 족적을 남겼지만 이육사는 한용운·윤동주 시인과 더불어 일제에 아부하는 글을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글은 후세에 영원히 남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갔던 것처럼 이육사도 중국 북경에 있는 일본영사관 소속 경찰감방에서 40년을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독립운동을 어떻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경찰의 요감시 인물이었던 육사는 1943년 늦가을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다. 북경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이유는 육사가 중국 남경의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을 내왕하며 모종의 독립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조사와 심문은 지독했을 것이다. 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한 이후 몸이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그 사건은 장진홍이 일으킨 것으로, 사건 발생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장 의사가 일본에서 체포되어 육사는 풀려났다. 중국으로 압송되었을 때 폐결핵에 걸려 있던 육사는 치료는커녕 잘 먹지도 못했을 것이고, 추운 감방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고 1944년 1월 16일에 절명하였다.
  최근 언론 보도 중에는 미당시문학관에 시인의 친일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7월 14일부터 친일작품 11편 중 6편과 자신의 친일행위를 해명한 작품 1점, 전두환 전대통령을 찬양한 시 1편 등 모두 8편을 액자로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의 거목인 미당 선생이 남긴 오점은 나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글은 후세에 길이 남는 것이기에 내 양심과 영혼을 담아서 써야 한다는 교훈을 두 시인은 함께 가르쳐준다.
  전시된 작품은 [송정오장 송가(松井伍長 頌歌)] [항공일에]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무제-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 등 친일시 4편과 친일수필 [스무 살 된 벗에게], 친일소설 [최체부(崔遞夫)의 군속지망(軍屬志望)], 해방 후 자신의 친일을 해명한 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전두환의 56회 생일을 맞아 헌사한 축시 [처음처럼-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등이다.

  항일시인과 친일시인

  이 가운데 [송정오장 송가]는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되어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서 미 항공모함에 자폭하여 죽은 황해도 개성의 인씨 성을 가진 조선인 학도병의 죽음을 예찬한 작품이다. 다른 조선인 학생들도 그의 죽음을 본받아 용약 성전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이다.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소리 없이 벌어지는 고운 꽃처럼/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당시 항공기를 몰 수 있는 오장(소대장)은 전문대학생 이상이어야 했다. 연희전문이나 보성전문에 다니던 스물한 살 먹은 인씨 성을 가진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운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내 대학시절의 스승이신 서정주 선생님은 절대로 쓰지 말았어야 할 시를 썼고, 이 시는 나를 무척 슬프게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

  시문학관의 이번 조치는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와 태평양전쟁유족회 고창지부가 2년 8개월 동안 요구한 '친일·친독재 작품 병행전시' 요구를 미당시문학관 이사회가 받아들여 이뤄졌다. 잘한 일이다. 우리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될 글을 쓴 위대한 시인의 오점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과연 친일작품을 한 편도 쓰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나를 옥죄는 엄숙한 명제이다. 그런데 한용운·윤동주·이육사 등을 보라. 육사는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엄동설한 한겨울에 이국의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두 시인의 행보를 보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써야 할 글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쓰지 말아야 할 글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1회 이육사문학상의 심사를 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었다.

  ―<포스코신문>(2004.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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