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찾은 내 유년

by 김우영 posted Mar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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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찾은 내 유년  
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2013년 03월 27일 (수)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webmaster@cctimes.kr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거기엔 개울이 하나 그리운 물 빛 입안에 청포도처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개울가 가장자리엔 미루나무가 듬성듬성 큰 키를 뽐내고 서 있으며, 그 옆엔 오래된 고목나무 있었다. 개울 상류쯤엔 물레방아도 뎅그라니 있던 그런 개울가였다. 또 마을 뒤엔 산이 있었다. 가랑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지막이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저녁 밥 짓는 연기가 낮게 초가를 덮는 산마을이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도 오래군 정들면 닿으리 마을. 정들면 장터 옆 정류장에 내리면 웅성웅성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가고 보따리를 지고 또는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수런수런 거리며 분주히 발길을 내딛는 곳. 닿으리를 가려면 다시 정들면으로 가는 시오리 버스로 바꿔타야 된다. 그렇게 창 밖으로 펼쳐진 시골들녘과 저만치 아스라이 능선으로 중첩된 야산을 보며 시골버스로 터덜터덜 가면 나오는 닿으리 산골 마을.

한 여름 세차게 소나기가 지나간 뒤 시원스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소나기로 부풀어진 개울가로 송사리를 잡으러 뛰어 다니던 마을 앞 강변. 어머니 몰래 체를 챙겨 소나기 한바탕 지나간 뒤 구름 걷힌 유난히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강변을 뛰는 우리의 마음은 너 나 없이 구름따라 한없이 날고 있었다.

미역을 감는지, 송사리를 잡는지, 한나절 등줄기를 햇살에 태우다 검정고무신 속에 송사리 몇 마리를 조심스레 담아 개울이 떠나갈 듯 노래 부르며 돌아오곤 했다. 가을날 들녘에 익은 벼는 고개 숙이고 바람따라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뒷산 밤나무는 또 한 차례 우리들로부터 수난을 당한다. 지게 작대기로 마구 흔들어대다가, 휘이익-휘이익-돌멩이의 난사에 우수수 떨어지는 밤송이, 손가락을 찔려 가면서 입안 가득 밤알 털어 놓고 오물거리며 뒷산을 어슬렁거리던 옛동산 그 곳은 유년시절 정 깊은 추억이 실안개 마냥 피워 오르던 마을이다.

겨울에 산이라도 갈라치면 동네 강아지도 모두 졸졸졸 뒤 따라 오른다. 눈에 양말이 젖어 발이 퉁퉁 젖어도 추운줄 모르고 겨우 한두 마리 놀라 뛰는 토끼를 쫓아 온 산을 누빈다. 어김없이 봄은 다시 찾아오고 산은 진달래와 철쭉 핑크빛으로 채색되며 언제 겨울이 있었느냐 만산홍엽(萬山紅葉)미소 짓던 마을 뒷산의 봄옷 단장.

지금의 우리나라 산하는 어떠한가 우리가 토끼몰이 하던 바로 그 산과 계곡은 모조리 불도저에 깡그리 무너져 골프장이 만들어지고 있고 강변엔 웬 러브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까아맣게 유리를 색칠한 고급승용차들이 먼지를 내며 오가고 있었다. 둑가 개울은 메워지고 번듯한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명맥을 겨우 유지하며 검게 변하여 흐르는 개울물엔 송사리 비슷한 놈은 까아만 기름덩어리가 험상궂게 아이들 주먹처럼 뭉쳐지고 있었다. 미류나무는 베어져 없어지고 그곳에 살던 까치며, 소나기 뒤 시원스레 울어주던 매미는 다들 어디로 떠났는지…. 탱자나무 뒷간 물레방아가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된 이야기. 먼지를 풀풀 날리며 터덜터덜 버스가 다니던 길은 4차선으로 포장되어 많은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시골버스를 타고 해변 오솔길을 지나 널직한 바위에 앉았다. 불란서의 ‘폴 발레리’ 시인을 흉내내듯 술 한 잔을 따르려는 순간 무심히 바닷가 가장자리에 시선이 머문다. 빈깡통, 휴지, 나뭇가지들, 고철 ,개똥 등이 천연스럽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