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철학

by 김사비나 posted Feb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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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버지 철학

아버지는 찬바람에 나뭇가지에 홍시 하나
남겨 놓으라 했다
논둑 길을 굽게 가지 말라 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으라 했다
등에 진 석양은 언제나
잘 대접해 보내라 했다
햇볕 한줌도 같이 앉아 나누라 했다
아버지가 가시던 날
하얀 구름이 내려와 지키다가
달빛이 나오니 능선을 넘어갔다
억새가 부딪치며 울었다
앞마당으로 깔리던 저녁 연기가
포복을 하며 샛길로 건너 갔다
담 넘어 오던
이웃집 인심들이 말을 놓고 갔다
누구의 가슴에 심을
삶이 거기 널 부러 지고
박꽃이 시리도록 희게 익어 갔다
문밖 도랑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낭랑 했다
어느 집 책 읽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