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김영희 수필 작품해설

by 김우영 posted Jun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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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2011.6.19 일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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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뉴스 > 칼럼 > 김우영의 세상사는 이야기  
            


김영희 수필에 대하여  
<김우영의 세상사는 이야기>

2011년 06월 19일 (일) 09:00:11 김우영 작가  -  




<들어가는 시>

연분홍빛 살구꽃
고향마을 뒤덮는 때.

두만강 나루터
뱃놀이 즐겁다.

고향
내 마음 쉼터

종달이도 하늘 솟구친다!

- 圖延 金英姬 詩 ‘고향’ 全文

    
김영희 어곡전 .고향 중국 도문은 도연의 문학창작의 영혼에 안식처  







1. 작품집 ‘별이 빛나는 하루’ 탄생 배경

2011년 3월 주말이었다. 중국 연길의 도연(圖延) 김영희(金英姬) 수필가는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해외문화교류회 강희정 대표에게 인사차 대전에 내려왔다. 5월 7일 중국 연길에서 개최 예정인 중한문화교류협회 제2대 허명철 회장님 취임식 초청장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대전의 지리가 생소하기에 도연을 안내하여 강 대표님이 머무는 대전 유성 덕명동 소재의 한밭대학교 교정으로 갔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어깨에 메고 간 무거운 키타를 내려놓고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지난 7080세대의 가수 윤항기의 유명한 노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주하였다.

“너와 내가/ 맹세한/ 사랑한다는 그 말/ 너와 내가/ 맹세한 / 사랑한다는 그 말 …… 後略/ ”

강희정 대표님 강의동 앞 벤치에 앉아 심심파적 삼아 키타를 치며 7080 추억의 뒤 언저리를 배회하였다. 키타연주와 노래를 하는 중년의 남녀를 지나가는 풋풋한 젊은 대학생들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 아저씨 아줌마들이 남의 학교에 와서 웬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열창을 하지. 그 것도 해가 뜬 대낮에 후후후---호호호---”

잠시 후 강의를 마친 강희정 대표가 학교에 근무하는 교수님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며 우리를 안내한다. 일행은 가까운 덕명산 골짜기 아래에 수려하게 자리를 잡은 수통골 ‘두부전골’ 식당으로 갔다.

덕명산 골짜기 아래에 있는 이 식당은 막걸리와 두부, 산나물 등 자연식의 웰빙식단이었다. 동행한 한밭대학교 교수님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키타를 치며 낭만의 자리를 풀어갔다. 이 때 옆에 있던 어느 중년 여인 둘이서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다.

“키타소리가 너무 정겹고 좋아 지난 젊은시절이 생각이 나요. 그래서 교수님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싶어요.”
“좋아요. 우리는 찬성입니다. 짝짝짝---”

앞 자리의 체육전공의 최 교수님이 박수를 치며 여인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도연 김영희 수필가 한 사람의 여성만 있다가 두 여성이 합석했으니 분위기는 주석의 금상첨화를 이루며 열기를 더 해 갔다. 내가 들고 있던 통키타는 그야말로 ‘울어라 키타줄아!'를 외쳐대고 일행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지난 젊은시절로 돌아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외치며 흥겨워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생략)

    
제2대 허명철 회장 취임식 도연과 나은의 별이 빛나는 무대연출/중국 연길 한성호텔  



이 날 통키타를 치며 부른 노래는 ‘만남‘ ’사랑해‘ ‘별이 빛나는 밤에’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비의 나그네’ ‘밤에 떠난 여인’ 등 주로 7080시절의 노래로 돌아가 마냥 젊은시절 청년의 모습으로 즐겁게 놀았다.
이렇게 시작한 점심식사는 3-4시간으로 연장되어 저녁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이 날은 ‘별이 빛나는 삶’ 그 자체였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도연 김영희 작품 ‘별이 빛나는 하루’란 작품이 탄생하고 작품집 제목도 ‘별이 빛나는 하루'로 결정을 하는 결실을 낳았다.

물론, 최근 도연은 연변에서 최고의 창작동화작가를 꿈 꾸는 딸 ‘샛별’ ‘려화’와 함께 용정 명동촌 윤동주 시인 생가와 시비, 모교 등을 방문하면서 ‘별이 빛나는 하루’를 통하여 모녀가 문학여행을 한 바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별이 빛나는 하루’와 중국에서의 ‘별이 빛나는 하루’가 각 각 연결되어, 결국 앞으로 오랫동안 ‘별이 빛나는 하루’가 영생으로 이어질 것 같다.
아래는 한국에서의 ‘별이 빛나는 하루’의 수필의 도입부 일부내용이다.

“내가 사는 중국 연변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여기 한국은 봄 빛이 완연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하여 어디로 소풍가고픈 생각이 굴뚝같지만 인천에서 대전으로 귀한 분들 만나러 가기에 봄 놀이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중한문화교류협회 부회장직을 맡다보니 돌아오는 5월 초순에 맞이할 행사 때문에 우리협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해외문화교류회 대표이신 강희정 교수님과 사무국장이신 김우영 작가님을 만나러 대전에 갔다.

나는 어려운 분들을 만나 우리 협회 행사에 참석해주십사 하고 초청하러 갔기에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다행히 김우영 작가님과는 작년부터 행사일로 여러번 만나다보니 많이 편했는데 강희정 대표님은 공식자리에서만 몇 번 뵈였기에 많이 어려웠다.

마침 강희정 대표님이 회의가 있어서 조금 늦는다기에 김우영 작가님과 먼저 만나 행사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이번 제2임 회장취임식에 해외문화교류협회 대표이자 우리 중한문화교류협회 자문위원장이신 강희정 교수님과 자문위원이신 김우영 국장님 김홍우 대표님 등 여러분들을 정식으로 초청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中略)

한밭대학교는 캠버스가 너무 커서 한 눈에 보이질 않았다. 아담한 정원이며 멋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깨끗하고 정연한 분위기가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 같았다. 정각 1시에 강희정 교수님가 두 분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반가움이 앞서서 긴장했던 마음이 나도 몰래 사라졌다.

강희정교수님은 오랜만에 만났다면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강희정 교수님과 함께 들어오신 한밭대학교 처장이신 최원오 교수님과 이혁 교수님과도 차례로 악수를 나누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일단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인사들 나눕다.”

강희정교수님 말씀에 김우영 작가님이 대답하신다.

“네. 그리하지요.”

주위에 배나무들이 꽉 들어섰지만 아직 초봄이라 별거벗은 모습이여서 자연풍경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야외에 풍막을 쳤는데 안에는 의외로 손님들이 많았다. 간판을 보니 <두부전골> 집이다. 겉은 허술해도 웬지 운치가 있었다. 만약에 꽃피는 5월이라면 엄청 아름다운 풍경이겠다는 상상이 간다.

우리 일행 5명은 긴 나무 밥상에 긴 나무 의자에 마주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희정 대표님은 오늘 이렇게 야외에서 마주않아 편한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의외로 소박하시면서도 소탈하여 어려움이 한결 누그러 들었다. 그리고 함께 오신 한밭대학교 처장이신 최원오 교수님도 점잖은 미남형인데다가 남자다운 강직함이 엿보여 말 붙이기 힘들 것 같았다.

“나 명색이 대학교수이지 사실 힘께나 쓰는 체육선생님 올시다.”
(중략)

고풍스러운 누런 납 주전자에 잔도 앙증맞게 만들어진 누런 납잔이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취흥을 돋구려고 멋과 랑만을 아시는 김우영 작가님이 통기타를 치면서 웅글진 목소리로 노사연이 부른 만남을 부른다. 우리도 나즈막하게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김우영 작가님의 키타반주 노래가 어찌 좋은지 다른 테이불에 앉았던 손님들도 <앵콜> 을 보낸다.

<앵콜>을 보내는 다른 객상에 앉았던 두 여자손님도 우리와 합석하였다. 그 두 여성분은 알고보니 원주민이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멋진 수통리 폭포가 있는데 어렷을 적에 그 수통리폭포에 많이 다녔고 처녀시절에도 수통리폭포에 자리 깔고 앉아 랑만을 즐겼다면서 동네 자랑을 많이도 한다. 우리는 그렇데 격을 깨고 모두가 평등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김우영 작가님의 열창과 멋진 기타반주에 맞춰 너나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생애 가장아름다운 추억수첩을 만들고, 계룡산아래 수통리 별이 빛나는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내게 되였다. (中略)

그동안 내가 왜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제적 재부를 창조했어도 마음은 오히려 늘 허전하고 방황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마다 세계관이 틀리고 생각도 이상도 취미도 다양하듯 나도 내 취향에 맞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것은 돈으로 향수누리면서 사는 것도 아니요, 손가락, 팔, 귀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은보화를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닌 바로 내가  가장 즐기는 글을 읽고 쓰면서 글 속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글을 배우고 쓰면서 내 심령과 정신세계를 빛나게 만들고 싶었고  그 속에서 자호감과 성취감도 느끼고 싶었다. 그래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고 찾던 삶이고 내가 가야할 길이다. 아마도 이 삶이 내 제2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지난 유년시절 중국 도문 소학교 시절 몸이 아파 병원에 있을 때 병원을 찾은 김정숙 선생님은 그 당시 지금의 인생에 길을 열어주셨다. 병원을 찾아오시어 나에게 ‘오스뜨롭쓰끼’의 작품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유년시절’ ‘나의 대학’ ‘인간들속에서’와 같은 소설책들을 가져다 주시며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의사가 되기를 말씀하셨다.

“의사가 되어 너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면 얼마나 좋겠니?”
“네, 선생님.”

그 후 선생님과 약속한 것처럼 의사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펜(PEN)의 마법사’가 되어 그늘지고 외로운 사람을 위하여 좋은글로 치료하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 지금 책과 씨름하며 200자 원고지를 잡고 한 자루 촛불을 켜고 긴 밤을 지세우고 있다

작품해설 문장 도입부에 김영희 수필가의 ‘별이 빛나는 하루’의 문장을 할애 한 것은 이 작품속에 도연의 삶과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그렇다.

십 수 년 한국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여유있게 살아가는 도연(圖延). 그의 철학과 가치관이 녹녹하게 묻어난 수필작품을 보면서 중년여인의 원숙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고아한 생활의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생활수필이란 삶의 조화에 미(美)를 잃지 않는 가치있는 문학이다. 한가한 심경에 따라 마음의 여유에서 솔직한 독백을 통해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표현하는 산뜻한 글이다. 어떠한 제재든지 개성과 분위기를 담담하게 담아 써내려 가야한다.

생활수필은 온아우미(溫雅優美)의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아담하고 결고운 문장속에서 그윽하게 들어나는 미셜러니(Missellany)이어야 한다. 개인주의 주관적 느낌과 흥미 인상 등을 나타내는 수필, 개성적, 체험적, 예술성 부드러운 정서적인 수필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수필문학관이다.



    
덕명호텔에서 김우영.김영희의 축배.한국에서 10수년 사업을 한 도연은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 모놀로그(Monalogue)독백 휴머니즘(Humanism)의 문장

다음에는 도연의 수필 ‘잊을 수 없는 나의 은사님’이란 수필문장이다. 일부 인용문을 살펴보자.

“벌써 30여년이란 세월의 일이다. 나의 소학교 담임을 맡으셨던 김정숙 선생님의 고마운 마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평생을 두고 꺼내며 먹고 살 아련한 유년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이리라!

내가 중국 길림성 도문시 제2소학교 2학년에 다니던 때 일이다. 나는 천식이라는 고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거의 1년이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침침한 병실에 누워있노라면 외로움이 엄습해와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학들의 모습을 부럽게 바라볼 때면 마음이 한없이 서글퍼졌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절망에 빠져 그 어린 나이에 죽고 싶은 생각까지 하였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한테로 어느 날 김정숙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영희야, 많이 힘들지? 그 동안 선생님이 잘 돌봐 주지 못해 참 미안하구나!”

나의 손을 꼭 잡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웬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생님께서는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셨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고 민족식당으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랭면을 사주었다. 오랜만에 맛깔스런 점심을 먹고 나니 그동안 울적하고 답답하던 가슴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밥도 많이 먹고 용기를 내어 병과 싸워야 한다. 공부걱정은 하지 말아라. 못배운 것은 후에 다시 배우면 되니까. 지금은 병마와 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거야. 알겠니?”

이런 말씀을 남기고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가슴에는 따뜻한 난류가 흘렀다. 이튿날 학급의 친구들이 병실로 찾아왔다.

“영희야, 선생님께서 널 그림을 그려 바치라고 했어.”
“그게 정말이냐……?”

그림이라는 말에 나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미술에 남 다른 취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취미를 이용하여 우울한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고 일부러 애들을 시킨것이라는 것을 나는 후에야 알았다. 그때 순진했던 나는 내게 미술재간이 있어 시킨줄로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후 부터 친구들은 엇바꾸어 자주 놀러 왔는데 그때마다 내가 열심히 그려놓은 그림을 선생님께 바쳤고 친구들은 또 선생님께서 보신 나의 그림을 가져다주군 했다.

“야! 우수를 줬네!”

나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함께 기쁨이 찰랑거렸다. 그래서 나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순간 나는 즐거움에 빠졌다. 얼마 안되어 나는 교과서의 그림을 다 그리고 나중에는 창작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그 한 장 한 장의 그림마다에는 모두 ‘우수’ 라고 큼직하게 쓴 선생님의 글씨가 박혀있었다. 그래서 그림그리기는 나의 전부였고 죽어가는 나의 마음에 삶의 희망을 가져다준 원천이였다. 김정숙 선생님도 한 달에 두 세 번씩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오스뜨롭쓰끼’의 작품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라는 소설의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주셨다.

“사람이 큰일을 해내자면 ‘빠웰’처럼 강해져야 한단다. 어릴 때부터 강한 의지를 키워야 하고 고생스러울 때에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있다는걸 생각해봐야 한다.”

그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유년시절’ ‘나의 대학’ ‘인간들속에서’와 같은 소설책들을 가져다 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은 마디마디가 나의 가슴에 와 닿고 나도 점차 용기와 신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그 시절 그 책과의 인연이 되어 오늘날 수필가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後略)
    - 2002년7월호 청년생활잡지에 발표된 수필

    
제3회 중한문화교류 행사(중국 연길 덕명호텔/ 중한문화교류협회는 도연 삶의 산실.  

이 글에서 도연이 얼마나 어려서부터 그림과 책을 좋아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른바, 모놀로그(Monalogue)형태의 독백 문장에서 도연의 고향 도문시 두만강 강물처럼 순수와 해맑음이 보인다.

어려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을 사랑하는 도연. 그의 가슴에는 책을 통한 흐믓한 보람으로 ‘별이 빛나는 하루’ 삶이 일구어 질 것이다. 한국의 유명한 박목월(朴木月)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그것에게 지식을 얻으려 하는 공리적인 목적보다 그것을 즐긴다는 일이다. 책 속에 펼쳐있는 무한의 공간 속에서 함께 살면서 그 것과 더불어 영원을 호홉하고 열중하고 정신을 집중한 연후의 흐믓한 충만감 그 것이 독서의 목적이요 즐거움인 것이다.”


일찌기 중국의 성인 공자도 이렇게 갈파했다.

“책을 많이 읽어서 교양과 학식이 풍부하다면 나는 나이에 관계없이 기꺼이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른바, 지성의 숯돌로 불리는 동서고금 성현들에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그들은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이나 학교의 선생님, 또는 주변상황으로부터 책을 읽을 수 여건과 환경에서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느 국회의원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신체적 장애라는 것이 결코 책을 읽는데 ‘장애’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강연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규칙적으로 책을 읽었다. 수족(手足)이 불편했던 터라 어머니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했고, 때때로 나 스스로 공공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소설이건 철학이건, 과학책이건 좋은 책이라면 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이 무려 1만권 이상이라고 한다. 지금 그의 서재에는 그가 책을 읽었던 흔적들이 있고, 그것을 볼 때마다 그는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왜냐하면, 책이란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훌륭한 장식품이기 때문이다.

도연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휴머니즘(humanism) 수필가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품성이 온유하며 따듯한 그는 눈물과 웃음을 아는 사람이다.

아래 글은 돌아가신 아버님을 그리는 회억의 ‘언덕 위에 집 짓자던 아버지’라는 글이다. 함께 살펴보자.

“해마다 청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을 허비도록 아버지 생각에 또 다시 눈시울이 젖어 온다. 이 때만 되면 나는 ‘아버지’라는 슬프고 긴 그림자에 갇혀 목이 매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3년이나 되셨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지금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 차가운 곳에서 홀로 얼마나 외로우실까……?

나는 아버지 돌아가실 때 한국에 있었기에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그것이 늘 가슴이 아파오지만 그것보다는 아버지 살아 생전에 시골마을에 자그마한 정자도 해놓고 텃밭도 조금 일구면서 사시는 것이 꿈을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딸 자식으로서 그렇게 소박한 꿈을, 또 평생소원이자 마지막 소원인 것도 해드리지 못한 자책에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다. (中略)

우리자식들이 아버지 건강이 걱정이되어 두만강산책이라도 다니시라고 해도 듣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자조섞인 말씀을 하셨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시내가 언덕위에 내 집을 짓고 살고프다. 터 밭에 상추도 심고 흙에 묻혀 살고 싶구나! 시골에가 살면 오래오래 살 수 도 있을 것인데……!” (中略)

“아버지, 내가 이번에 중국에 들어가면 앞마당에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공기 좋은 곳을 선택하여 아버지께 멋진 별장을 지어들이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들어갈 때까지 밥을 많이 잡수시면서 건강하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힘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응 ~ 그래, 알았다. 내 그래서 요즘 밥도 많이 먹고 있단다.”

내 전화를 받고 나면 기분이 좋으신지 약도 꼬박꼬박 챙겨드시고 식사도 더 하셨단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셨으면 그렇게 강인하시고 엄하신 아버지가 애들 마음처럼 그랬을까 싶다. 그러던 2007년3월 29일 오전에 울먹이는 남동생의 국제전화가 왔다.

“누나, 아버지 아침에 돌아가셨소!”

“뭐, 무어야, 아, 아버지가 ……?”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않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된다. 이어 눈물이 비 오듯 좔좔 흐른다. 무슨 정신으로 공항까지 갔는지 모른다. 겨우 자리가 있어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는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가 있었다. 조용히 눈감고 계시는 아버지가 그렇게 가엾고 애처로울 수 가 없다. 나는 아버지 하얗고 초췌해진 얼굴을 만지고 또 만지면서 울었다.

“아버지~이 셋째 딸이 왔습니다. 눈 좀 떠 보세요. 왜 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벌써 떠나셨습니까? 건강하게 기다리신다면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까? 이렇게 가시면 난 어쩌란 말입니까……?” (중략)

“아버지 ~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식이 너무 늦게 왔습니다. 아버지 ~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눈물에 아버지 얼굴이 희미해진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그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내가 하루 빨리 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셨을까? 문득 옛시조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도연은 2010년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단 등단 .덕명호텔 행사 윤용호, 김영희 박상구, 전운상  

“나무는 고요히 서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어버이를 받들려 하나 기다리지 않는다!”(中略)
‘아버지 ~ 다음 세상에서는 제가 꼭 아버지에게 멋진 별장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위 글은 자신을 책망하며 눈물로 쓴 편지글이다. 눈물이 있는 사람은 아픔을 알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람다운 내음이 난다. 도연은 그만큼 정(情)과 한(恨)을 가진 질곡의 삶, 풍한세파(風寒世波)를 겪으며 자랐다는 얘기이다. 이제 그 굴곡진 삶의 원형질을 수필이란 바구니에 하나씩 하나씩 담아내는 것이다.

아래는 도연의 작품 ‘하늘이시여!’ 라는 수필이다. 감상해보자. 도연은 홀어머니의 병원 입원으로 그간 자신이 못해드린 불효의 아픔과 회환에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하늘이시여, 과연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나요? 만약 하느님이 이 세상에 있다면 누구보다도 착하시고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에게 어찌 이 같이 가혹한 시련을 줄 수 있나요?

육 년 전 한 차례 큰 수술을 받게 하신 것도 모자라 우리 불쌍하신 어머님을 또 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게 하나요?

젊었을 적 몸매도 날씬하고 얼굴도 그 예쁘신 우리 어머니가 모진 세월의 풍상고초를 다 겪다보니 이제는 앙상하고 왜소한 노구를 가진 백발머리 할머니가 되셨다. 그런 모습을 쳐다만 봐도 마음이 안쓰럽고 알알해 나는데 그 몸에 시퍼런 수술칼자국을 두 곳에나 댄다고 하니 우리 자식들은 정신이 아찔하여 까무러칠 것만 같다.

보름 전 어머니께서 허리 통증이 심하셔서 도문시병원에 찾아 갔더니 얼른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계셨다. 그 말은 전해들은 둘째언니와 나는 부랴부랴 도문에 달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연변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게 하였다.

의사선생님이 잠간 진찰을 하더니만 다짜고짜 입원부터 하란다. 우리는 처음에 ‘신(腎)결석’이거니 생각하고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헌데 병원에 입원해서부터 나흘 동안이나 각가지 검사만 할 뿐 확실한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나흘째 되는 오후에야 우리 가족을 불러서 병명을 설명한다.

어머니 병명이 신 결석이 아니고 신장에 물이 차는 병인데 신장을 떼여내야만 된다면서 CT사진까지 보여주며 상세히 설명한다. 신장을 떼여낸다는 소리에 우리는 연세가 80이 되는 어머니가 그 큰 수술을 견뎌낼 가 싶어 근심이 태산 같은데 또 신장과 방광사이에 악성종양이 있다는 것이다. (중량)

중한문화교류협히 회원님들한테 부담이 갈 까봐 어머니 병 소식을 극력 숨기려고 했지만 결국 알게 되여 많은 회원님들이 댓 글로 어머님 쾌유를 빌어 주시였고 한국의 럭셔리 김광희님은 ‘어머니’라는 시(詩)까지 지어 따뜻한 위로를 해주시였다. 그 시를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에 읽어보아도 가슴이 찡해난다.

어머니
거룩하다 못해 순결함이
솟아나는 석정처럼
높고 넓은 하늘보다
크신 사랑.

검은 산 횐 눈 내리고
인생계급장 이마에 달고
박애정신 희생정신
호령하시던 당신.

꽃길 마다하고 가시길 가며
산과 바다 높고 넓은
모진풍파 비바람 속에
크나큰 고목이 되셨네. (중략)

‘하늘이시여, 제발 우리 어머니 아픔을 씻은 듯이 가져가시고 건강한 모습을 찾아 주시옵소서!’온 하루 흐린 날씨에 짖굿게 내리던 비도 어느덧 서서히 그치고 서산마루에 어머니의 건강한 미소 같은 진 붉은 저녁노을이 곱게 피어 났다.

위 글에서 도연은 어머니 병환으로 자식으로서 가슴 아파하고 있다. 얼마나 마음이 여리며 정이 많은 소유자인가를 엿 볼 수 계기가 된다. 애호박잎처럼 여린 가슴, 정이 많아 주변에 베풀기 좋아하고, 눈물이 많아 울기도 자주하는 도연의 가슴 언저리를 대변하는 유일한 창구는 역시 수필이라는 바구니이다. 이 것만이 그의 리리시즘(realism) 수필문장을 살찌우게 하는 계기가 되어 독자에게 전달하는 카타리시스(Catharsis)로 승화할 것이다.

어머니 병환을 겪으면서 지나온 삶을 회한하며 귀납적방법(歸納的方法)을 차용 답답한 심경을 수필이란 문장을 통하여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위 글에서 얼마나 어머니를 사랑하는지 극명하게 들어나 있다. 부모님에 대한 지고지순(至高至純)하며 더 할 나위없이 높고 순수한 그녀의 정(情) 많고 눈물 많은 그의 고운 심성에서 수필문장의 멋은 감동으로 와 닿는다. 요컨대, 현자(賢者)가 이르기를 이렇게 갈파했다.

“돌이 되려거든 자석이 되고, 사람이 되려거든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중한문화교류회 모임을 통하여 ‘별이 빛나는 하루’라는 작품집이 탄생한다. 덕명호텔 행사 마치고 전체촬영

3. 귀납적방법(歸納的方法)문장으로 풀어낸 이야기

이번에 출간하는 ‘별이 빛나는 하루’ 란 작품집에는 여러편의 맛깔스런 수필문장이 선 보인다.
‘잊지못할 설 명절’ ‘멍에의 법칙’ ‘제2의 인생’ ‘한 영혼의 외침’ ‘황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3․8선으로 가까워진 이웃’ ‘기사엄마’ ‘ 와인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나의 봄’ ‘천사표 어머니’ 등이 녹녹하게 실려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도연의 수필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책과 함께 글을 쓰며 느끼는 참다운 삶의 의미
2) 중한문화교류회와 한국문화교류회를 통한 문학할동
3) 생활속의 삶을 감칠맛나게 우려내는 생활수필
4)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느낀 일반적인 편린의 삶
5) 가족들과 함께 일구어낸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

도연의 수필문장 전개는 연역적방법(演繹的 方法)보다 귀납적방법(歸納的方法)의 문장서술처럼 생활속 현상 하나하나의 사항을 연구 실험하여 그로부터 공통된 점을 추출하여 하나의 인식에 도달하는 경험주의를 주지한다고 볼 수 있다. 삶의 리얼리즘(realism)을 바탕으로 하여 작품속 나레이션(Narration)과 나레이터(Narrator)를 적절하게 교합시켜 유추(類推.Analogy)해 나가는 과정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 들면 신화(神話)가 된다고 한다. 도연은 자신의 삶을 문자라는 기록으로 남겨 훗날 자신은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바구니에 담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앞으로 도연(圖延) 김영희(金英姬)수필가의 ‘별이 빛나는 하루’ 에 신에 가호가 함께 하기를 저 밤하늘의 별들에게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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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작가. 서천출생으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1989년 한국수필지와 시론지에 각 각 2회 추천 완료 문단에 등단 ,장편소설집「월드컵」단편소설집「라이따이한」외 저서 총27권 출간. 한국문예대상, 서울시 시민대상, 독서문화공로 문화관광부 장관상.한글유공 대전시장상 등 수상. 대전중구문학회,한국농촌문학회,한국해외문화교류회 사무국장. 2009문화체육관광부 전국지역예술가 40인 선정.017-477-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