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은 존재하는가?


지난 24일 미당(未堂) 서정주가 별세했다.

대부분의 중앙언론에서는 안타까움을 표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주로 한국 순수시단을 대표하는 한국 최고의 시인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아마도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문인들과 사회 각계각층의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으리라 싶다.

미당의 죽음을 통해서 흔히 우리 문학에서 분류하는 이분법인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에 대해 평소 생각했던 의문점을 전개해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국어교육을 통하여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지던 그 이분법이 고교를 졸업한 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의문부호로 다가왔다.

우선, '순수(순수)'라는 사전적 의미부터 되새겨 보기로 하였다. 양주동 선생이 감수한 국어대사전을 뒤적여 보니 '순수'에 대하여 이렇게 풀이되어 있었다. '다른 것이 조금도 섞임이 없음'. 한편 '순수문학'의 뜻풀이는 '목적이 예술로서의 작품 그 자체에 있는 문학의 총칭'.

본래, 순수문학의 반대말은 '참여문학'이 아니라 '통속문학'이 된다.
'순수문학'이라는 '높고 고상한 문학' 에 비해 '문학적 소양이 없는 일반사람들을 상대로 한 흥미본위의 문학'이라 하여 '통속문학'이라고 분류한 발상 그 자체도 우스꽝스럽다.

문학의 기본요소 중에는 '흥미'가 무척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소설은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시(詩)도 그렇다. '시적 긴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여 끝까지 읽히게 할 뿐더러,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어떤 문학도, 어떤 예술도 흥미가 없는 작품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흥미자체만이 문학의 본질이 아닌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다시 본래 논의로 되돌아오기로 한다.

참여문학이란 분류는 과연 어떤 근거에서 누구에 의해 정의된 것일까? 나는 그 분류를 처음 주창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지하다시피 참여문학은 '다분히 현실 비판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문학'이다. 그렇다면 과연 참여문학은 순수하지 못한 문학인가? '순수문학'만이 순수한 예술적. 문학적 순수성을 인정받아야하는 것일까?

그런 사고방식은 아마도 반공이데올로기가 민주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강요당하던 시절에나 들어맞는 사고 방식은 아닐까?

일제하에서도 우리는 매우 훌륭한 문인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 문학사에서는 한층 풍성한 문학적 성과를 우리 민족의 유산으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그 '순수문학'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에 대하여 공격을 감행하고자 한다.

한 예를 들겠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억지가 될 수도 있겠다. 다만 나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중고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오래도록 수록되었던 시들 중에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가 있다. 그 시는 단시(短詩)이면서도, 암울한 일제하에서 당시 방황하는 지식인들의 체념의 정서와 우리 민족의 슬픈 정서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매우 훌륭한 시로 평가받고 있다. 밑줄을 쳐가며 싯귀, 시행을 분석까지 해가며 배운 기억이 난다.

과연 그 시는 우리 국문학사에서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위대한 시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그 시는 결코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실어서는 안 될 시들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는 주지하다시피, 조지훈이 목월에게 보낸 완화삼이라는 시에 대하여 화답하여 보낸 시이다. 그 시가 발표된 것은 1946년 4월에 <상아탑>이었지만, 본래 일제 말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나는 그 시에 대하여 '일제 말의 암담한 현실에서 달랠 길 없는 민족의 정한을 나그네라는 시적 화자를 통하여 낭만적인 시정을 담은 시'라고 배웠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 시는 결코 순수시가 아니다. 차라리 그 시 밑바탕에 깔린 시적 화자의 의식에 비추어보면 참여시에 가깝다. 그리고 목월의 <나그네>보다는 지훈의 <완화삼>이라는 시가 민족의 정한을 더 절절히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지훈의 그것에서는 시인의 탄식과 체념 뿐만 아니라, 지사적 풍모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목월의 <나그네>는 가장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시들 중 하나라고 감히 단언한다. 우리 민족 대부분의 성원들과 특히, 민중들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한 삶을 살아가면서, 급박한 위기의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시적화자이자 시인인 지식인은 나그네로서, 체념에 가까운 방황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가장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우리 민족과 민중들의 진솔한 삶을 외면한 시는 아닌가. 차라리, 궁상스럽고 처참하더라도 그러한 민중들의 삶을 시적가락- 나그네는 7.5조의 운율을 띄고 있지만-에 담아 시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한편의 시만 가지고 한 시인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목월이나 미당 뿐만 아니라 당시 상당수의 시인들과 문인들이 낭만적이거나 퇴폐적인 작품들을 다수발표하며, 민중들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들을 끼치면서 우리 민족에게 '피해의식의 합리화'와 '체념' 내지 '숙명의식'을 갖도록 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 및 자주성에 악영향을 끼친 점이 많다고 감히 생각한다.

더구나, 미당 서정주 등은 결코 '순수하지 못한 의식'으로 창작을 하고, 작품을 발표하면서 우리 국문학사뿐 아니라, 민족사를 왜곡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한 그의 행보는 해방 후, 독재정권들에서까지 버리지 못하는 '천박한 명예욕'과 '현실타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시창작'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차라리, 그들이 붓을 꺾고 침묵을 했더라면... 붓을 들어 '개소리'로 억지춘향격으로 컹컹 짖어대기보다는 말이다.

미당은 본인의 창작활동을 보장받기 위하여 당시 우리 민족과 민중의 피폐한 삶과 비참한 현실과 다른 한편에서의 씩씩한 민족자주성회복의 노력- 문학적으로는 참여문학 혹은 다른 한편에서의 실천적인 독립운동 등-을 애써 외면하면서 씻을 수 없는 치욕감을 안겨준 '대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서정주 등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징용에 징집되는 우리 민중들과 정신대에 끌려가는 조선의 여인들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하여 그것을 부추기는 매우 선전 선동적인 '같지도 않은 글'들을 썼다.

이제 '순수문학의 허구성'에 대하여 결론을 내릴까한다.

사전적 의미는 차치하고 '순수'란 무엇인가? 과연 '순수문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순수함'은 무엇인가?

나는 순수는 곧 '양심'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떤 사회적, 통념적 잣대는 차치하고라도, 그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보았을 때 가장 자신의 양심이 편안할 때 쓸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해야 하는 존재이다. 혹자는 신에 가장 가깝게 근접해 있는 부류의 사람이 시인이라고도 한다. 또한, 진정으로 순수한 시인은 결코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는, 그야말로 자신의 생명인 문학자체를 지켜낼 수 있는 '지사적 시인'이어야 하고, 어떠한 비굴함과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시인이 결코 신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시인이 지사(志士)가 될 수도 없거니와, 모든 시인이 결코 그리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시와 문학행위를 하고, 논하기를 원한다.

독자를 기만할 수도 있다. 민족를 기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양심과 순수성은 속일 수가 없음이다.

가장 깨끗하고 순수해야할 시와 시인에 있어서, 자신의 순수성과 양심을 속이고 '문학지상주의'를 부르짖는다면 그것은 문학의 기본정신마저 외면하는 '배임행위'일 뿐이다.

문학하는 행위는, 시를 쓰는 행위는 자기자신 고독을 씹으며 즐기는 지적. 정서적 유희나 언어유희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계가 가장 진실한 마음과 마음을 통하여 은밀하게 때론 큰소리로 교류하는 창(窓)은 아닐까.

미당 서정주의 타계와 작금의 다양한 반응들은 우리 시사(詩史)에, 문학사에, 민족사와 현재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간 우리 문학사는 다소, 우리 민족사와 사회를 무시하고 억지를 부려온 경향이 다분한 것 같다. 문학은 결코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이 누려야 하는 '고상한 취미이며 유희'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마저, 못난 민족성마저 끌어안고 가는 '천하디 천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을 상대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묘사해온 문학의 본질추구'와도 가깝지 않을까.

'문학적 완성도' 내지 '예술적 완성도'는 그 후에 논의되어야 할 가치기준은 아닐까 싶다. 양심적이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한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 믿음과 생각은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은 변하지 않는 '미련한 믿음'이 될 것이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와 김수영의 "시인이여, 침을 뱉아라"라고 일갈(一喝)한 사자후(獅子吼)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Email Article   Print Article  김태섭 (zpdml29)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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