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的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005.05.04 11:18

미문이 조회 수:1425 추천:65

詩的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 이향아


왜 詩를 쓰는가? 인간은 왜 시의 가치를 창조하였는가?
시는 일종의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 것이며, 이 표현의 욕구는 인간 정신의 갈증을 해결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詩(文學)가 인간의 이상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시인이 시의 창작활동을 통하여 그 정신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독자의 편에서도 시를 향수하는 과정을 통하여 시인이 성취한 것과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시를 통하여 자아의 주체를 유지하고 시를 통하여 자아의 결함을 복구하며 시를 통하여 정신적 균형과 통일을 완성한다.
그것은 시를 통하여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예감 아래 자기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아와 타인, 자아와 세계, 주관와 객관을 연합하여서 조화와 통일을 이루려는 시각을 시적 세계관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시적 세계관이란, 자아 가운데서 세계를 발견하고 세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려는 인간 정신의 지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욕구는 인간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공통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것이 노출되었을 경우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매우 자연스럽고 강열한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詩人은 주체인 자아와 객체인 세계(여기서 세계라고 하는 것은 자아 이외의 모든 대상을 의미한다)와의 만남을 통하여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현상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주체와 객체가 만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동일성, 즉 일체감을 중시한다. 시인으로 하여금 한 편의 작품을 쓰게 하는 모티브는 외부 세계로부터 받은 하나의 충격 혹은 감동인데, 이 충격 혹은 감동을 달리 표현하면 '자아와 세계가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승화되었을 때', 곧 주객일체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일성이라는 말은 문학용어이기 전, 현대에 이르러 제반 학문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기에 앞서 우리들의 현실 생활에 밀착된 가치개념이기도 하다.
<세계와 나> 사이에 동일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때,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소외감과 고독감이다. 동일성이 결여되었을 때 우리는 우주와 세계로부터 유리된 듯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거기서 존재에 대한 회의와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과다한 동일성을 발견하면, 우리는 너무나 쉬운 물아의 혼연일치 속에서 오히려 자아의 위치를 상실하거나 객관적 시각을 잃어버리는 혼돈과 오류에 빠지게 될는지도 모른다.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각 장르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취급되어 온 테마는 사랑이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당연한 일이다. 사랑이란 바꾸어 말하면 동일성의 발견이거나 동일성에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경우에도 자아와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 세계와의 합일을 꿈꾸지 않은 사랑은 없다.
이토록 자아로부터 세계, 세계로부터 자아를 발견하려는 갈망은 詩의 본래의 모습인 동시에 詩人이 회귀하기를 갈망하는 정신의 고향인 것이다. 김준오는 이러한 상태, 곧 자아가 세계와의 융화를 꿈꾸는 상태를 '서정적 자아'라고 불렀으며, 서정적 자아에 대하여 조동일은,

'서정적 자아는 객관과 맞서 있는 주관도 아니고 이성과 구별되는 감정도 아니다. 서정적 자아는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정의 구분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것이라고 보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서정적 자아는 세계와 접촉해서 세계를 자아화하고 있는 작용을 지칭한 것이 아니고 세계와의 접촉이 없어도 존재하는 자아라고 보아야만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정의 구분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인정될 수 있다.'고 하였다.

서정적 자아가 '주관과 객관, 이성과 감정의 구분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성과 감정이 미분화된 카오스(chaos)적 합일의 상태이며 주객이 화해를 이룬 혼연일체의 경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서정적 자아에 대립하는 개념으로는 역사적 자아(Historical I), 논리적 자아(Theoretical I), 실용적 자아(Practical I)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오늘날 물신 숭배의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자아를 가리키는 말들이다.
우리는 문명이 발달된 사회에 살아갈수록 점점 자연과 신으로부터 멀어져 세계와의 합일이 아닌 세계와 대립하여 대결하려는 의식을 강화시켜 가고 있다. 세계와 조화하고 화해를 지향하는 서정적 자아야말로 동일성의 회복을 실현하려고 하는 시적 정신의 바탕이 될 것이다.


아침 풀밭을 걷다가
달팽이를 밟았습니다

크레카 부서지는 소리
흙발로 밟아
죄짓는 소리

우주의 천장이
내려앉았습니다

벗겨진 하늘
드러난 맨몸둥이
쏟아지는 빛이며 아우성이며
나는 춥고 어지러워
몸을 움츠리었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로 갈까
그 자리에 눈 감고
주저앉았습니다
- 이 향 아 <달팽이> 전문 -

위의 詩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달팽이와 시인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자아는 세계와의 동일시를 통하여 무력함, 왜소함, 고독함과 절망을 구체적 실감하고 있다. 무심코 달팽이를 밟은 시인은 자신의 흙발의 감각을, 발 밑바닥에서 '바삭'하는, '크레카 부서지는 소리'로 느끼고 있다. 동시에 시인은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어떤 흙발의 감각을 크레카 소리를 내며 부서질 듯한 자신의 머리 위에서 동시에 감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詩의 서정적 자아는 한 마리의 달팽이로서, 춥고 어지러워 몸을 움츠리고 동서남북 어디로 갈까 몰라서 그 자리에 눈을 감고 주저앉아 버리는 절망과 두려움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의식적으로 자아와 세계의 합일점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동화(assimilation)이며 다른 하나는 투사(projection)이다.
동화는 시인이 외부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 들여서 그것을 인격화하는 작업이다. 원래는 시인의 자아와 갈등. 대립의 관계에 있던 세계를, 시인의 감정과 가치관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며, 이는 달리 세계의 자아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투사는 시인의 자아를 상상적으로 세계에 조영하는 것으로 주체인 자아와 객체인 세계의 동일화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동화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동화가 세계의 자아화라고 할 수 있는 데 반해 투사는 자아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즉 투사는 자아의 감정을 세계에 移入하여 자신과의 동일성을 이루려는 일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
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
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나무> 전문 -

시인이 여행길에서 만난 여러 형태의 나무들은 '수도승'처럼 '과객'처럼 혹은 '파수병'처럼 서 있었다. 그들 나무들은 시인의 마음 속에 '뽑아 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로 뿌리를 내려 시인과 일체가 되어 버린다. 즉 시인은 세계에 자신을 합일 시키고 있다.
<달팽이>에서는 자아와 대립 관계에 있는 '달팽이'를 시인의 내부로 끌어들여 시인의 가치관에 맞게 동화시킨, 외부세계의 자아화 작업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나무>에서는 세계에 자아의 감정을 이입하여 동일성을 이루려고 한 투사의 성격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동화니 투사니 하는 분류는 편의상 동일화의 성격을 논의할 때에 필요한 것일 뿐이다. 작품상에 표현되고 있는 동일화의 작업은 동일화의 작업으로 나타날 뿐이며 동화와 투사는 완전히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일체를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풀꽃에 닿은
내 쓸쓸함까지는
그대 못 따라오네
풀꽃이 먼지 같은 꽃 하나
완성하고 있는 걸
그대는 크게 눈떠도 안 보이네
그것은 그대가 부자인 때문.

새 꽃들이 불밭처럼 켜지고
이 밝음 속에서는 더욱
모래같이 작은 꽃은 보이지 않아
그대는 눈멀어 저쪽에 서서 있고
나의 쓸쓸함이 가는 길을
나 홀로 비추며 비밀히 따르고 있을 뿐이니
아무리 먼 길도
내 쓸쓸함과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면
저 山 밑 홀로 사는
풀꽃의 쓸쓸함에 초대되리라

그대여 바람이 불면
홀로 거기 욕망에 흔들리게
나는 풀꽃 속에 들어가 작은 향기로 흔들릴 터이니
풀꽃에 들어간 내 쓸쓸함을
그대는 결코 갖지 못하네.
- 김선영 <쓸쓸함> 전문 -

시인은 山 밑에 홀로 피어 있는 먼지처럼 작은 풀꽃의 쓸쓸함에 동화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크게 눈을 떠 보아도 그 쓸쓸함을 모른다면 그것은 '바람이 불면 홀로 거기 욕망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고 아직도 '풀꽃의 쓸쓸함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대는 눈이 멀어 저쪽에 서서 있'기 때문이라고 이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자신이 풀꽃 속에 들어가 작은 향기로 흔들리면서 시인 자신도 풀꽃처럼 쓸쓸해지고 있음을 기뻐한다.
시인이 자신을 소멸하여 풀꽃 속에 합일하려고 한 점에서 이는 자아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이 풀꽃이 되는 경로를 따라 풀꽃도 시인 속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요컨데 詩를 쓰는 작업은 주체와 객체, 곧 자아와 세계 (시인과 사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세계와 자아와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세계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그 존재 가치를 해석하며 양자간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순간적인 조우를 포착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우는 세계와 자아 사이의 동일성의 발견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저 나뭇잎 뻗어 가는 하늘은
천 날 만날 봐야
환장할 듯이 푸르고
다시 보면
얼마나 적당한 높이로
살랑살랑 미풍을 거느리고
우리 눈에 와 닿는가.
와서는, 빛나는, 살아 있는, 물방울 튕기는,
광명을 밑도 끝도 없이 찬란히 쏟아 놓는가.
이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쉰이 넘는 지금까지
손에 잡힐 듯했지만
그러나 그 정체를 잘 모르고
가다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가운데
반쯤은 명상을 통하여 알 것도 같아라.
그러나 다시 눈을 뜨고 보면
또 다른 미지수를 열며
나뭇잎은 그것이 아니라고
살랑살랑 고개를 젓누나.
- 박재삼 <찬란한 미지수> 전문 -

시인은 세계로부터 동일성을 발견하기 이전 미지수를 먼저 발견하였다. 그것은 '찬란한 미지수'이다. 영원히 도달할 길 없는 거룩한 세계에 대한 미지수임을 시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쉰이 넘는 지금까지 손에 잡힐 듯 했지만 그러나 정체를 잘 모르'는 자연의 신비와 우주의 섭리와 그리고 삶의 이치와 비밀에 대하여 시인은 미지수라고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가다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가운데 반쯤은 명상을 통하여 알 것도 같아라'라고 발견의 기쁜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이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광명으로 차 있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시인의 정신이 추구하는 궁극, 그 영원한 향수를 시인은 자연과의 친화와 교감을 통해서 미지수화하고 있다. 자연과의 교감은 자연과의 동일성이다. '나뭇잎은 그것이 아니라고 살랑살랑 고개를 젓'을 때, 시인은 벌써 그 대답을 듣고 있지 않을까?
담담하고 솔직하게 미지수를 고백하는 시인의 육성에서 우리는 시인의 정직한 개안을 축하할 수 있게 된다. 미지수를 고백하는 시인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지수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의 교감과 응답은 세계와의 합일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17 문학축제 김종회 교수 강의 원고 미주문협 2017.08.24 254
공지 미주문학 USC 데어터베이스 자료입니다. 미주문협 2017.08.14 234
34 책도 이젠 맛보고 산다 미문이 2006.03.16 1806
33 2006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모음 미문이 2006.01.20 1547
32 신춘문예 당선시 연도별 감상하기 미문이 2006.01.13 1283
31 2006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24개 신문) 미문이 2006.01.13 2538
30 우리는 왜 문학을 갈망하는가 미문이 2005.12.02 1415
29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설립 미문이 2005.10.03 1317
28 현대시 100년사 최고 시집은? 미문이 2005.10.03 1207
27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 뿐" 미문이 2005.09.10 1094
26 吳圭原의 '새와 나무와 새똥… 돌멩이' 미문이 2005.09.09 1579
25 시인이 시인에게 물었네 ‘시시(詩詩)콜콜’ 미문이 2005.07.11 1364
24 페미니즘(feminism)문학이란 무엇인가?/이승하 미문이 2005.04.05 1353
23 <font color=blue>좋은시의 조건 </font> 미문이 2005.04.05 1046
22 <font color=red>삼월, 그대에게</font> 미문이 2005.03.18 1353
21 『05년 서울신문 당선작』흔한 풍경.. 김미령 미문이 2005.03.14 982
20 『05년 문화일보 당선작』즐거운 제사.. 박지웅 미문이 2005.03.14 1091
19 『05년 한국일보 당선작』나무도마..신기섭 미문이 2005.03.14 1033
18 『05년 동아일보 당선작』단단한 뼈.. 이영옥 미문이 2005.03.14 894
17 문인이 뽑은 가장 좋은시! 가재미/문태준 미문이 2005.05.04 1357
16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장태숙 미문이 2005.07.04 1623
15 영시감상<누군가의 상처를 이해한다는건> 미문이 2005.06.05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