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찾아 중국 다녀온 95세의 피천득시인 5세연하 中여인 루충페이… "짝사랑했지, 허허허" 워즈워스·두보 등 번역시집 8년만에 개정판 내 ▶피천득/시인 올해 95세가 되는 국내 최고령 현역 작가 피천득(皮千得)씨가 이달 초 첫 애인을 찾아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다. 1937년 상하이 호강대학을 졸업한 지 거의 70년 만이다.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요. 허허허.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통은 여자가 오래 사니 아직 살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며칠 후면 그는 생일(5월29일)을 맞는다. 마침 그가 번역한 작품을 모은 ‘내가 사랑하는 시(詩)’(샘터)의 개정판도 8년 만에 나왔다. 그걸 핑계로 서울 반포 자택을 찾았다. 그는 겉표지가 낡은 영문 성경을 펼치더니 갈피에서 조심스레 사진을 꺼냈다. 담뱃갑 크기의 사진은 누렇게 변색됐건만, 그 안에는 턱선이 고운 21살 여인이 아직도 수줍게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름이 루충페이라고 했어. 신문에 쓰면 안 되는데…. 한번 만났으면 어떨까 했지. 주소도 있거든. 미국에 갔든지 아니면 대만에 갔든지 했을지도 모르겠고.” 무려 70년을 간직한 사진을 꺼내들고 피 선생의 얼굴이 소년처럼 붉어진다. 그 모습이 ‘먼 옛 추억의 연인 이야기’를 담은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사진 앞면에는 ‘1936년 5월 8일’, 뒤에는 ‘금릉(金陵)대학에서’라고 써 있다. 호강대 연인들이 금릉대로 놀러가서 찍은 사진일까. 그의 대표 수필 ‘인연’에도 아사코(朝子)라는 일본 여인이 나온다. 중국 여인은 처음 밝히는 이야기다. 이상(李箱)과 같은 해에 태어난 그는 30년대 상하이에 유학했다. 조국을 잃은 청년 영문학도 피천득과 중일전쟁 이후 쇠퇴일로를 걷던 중국의 처녀 루는 서로의 처지를 깊이 위로하며 가까워졌다. 당시 호강대학 영문과에는 학생이 불과 4명밖에 안 됐다. “영문과… 밥벌이도 시원찮고 출세에도 도움이 안 됐지. 여학생은 셋이고, 남학생은 나 혼자였소. 그러다 다섯 살쯤 아래인 그 학생과 사귀게 됐소. 깊이는 아니고 평범하게.” 사진을 꺼내고 다시 사진을 집어넣는 손길이 가늘게 떨렸다. 본인에게 정말로 귀한 사진인 듯 카메라 렌즈가 가까이 오자 슬몃 감춘다. 상하이 방문도 정말 오랜 만이다. “졸업하고 처음 간 것이니, 그것도 70년이 다 됐소.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곳이 있어요. 지금의 루쉰공원 근처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우치야마(內山) 서점이 있었어요. 그곳에 루쉰(魯迅) 선생이 숨어 계셨거든. 한번 찾아가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쉬워.” 이번에 개정판을 낸 번역시집에는 그가 좋아하는 셰익스피어, 블레이크, 워즈워스, 바이런, 도연명, 두보 같은 대문호들의 명편들이 묶였다. 그중 앨프레드 테니슨의 “‘인 메모리엄’ 중에서”라는 시를 애송시로 꼽았다. “백조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요. 이 시는 테니슨의 스완송인 셈이오. ‘무어라 해도 나는 믿노니/ 내 슬픔이 가장 클 때 깊이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람을 잃는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고’.” 그는 요즘 신문과 방송도 빼놓지 않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 일에 대해 논평을 하는 일은 삼가고 싶다고 했다. “절대 얘기 안 합니다. 늙은이들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래서 점수가 많이 깎였다며? 오히려 잘 됐지. 관여하지 말라니까.”(웃음) 그는 클래식 음악을 늘 가까이 하고, 가까운 곳으로 산보도 하면서 맑고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모두가 아는 소식가(小食家)다. “아침은 혼자 먹고, 점심은 친한 친구와 먹고, 저녁은 적(敵)과 먹으라는 말이 있어요. 적과 먹으면 많이 먹을 수 있겠소?” /사진=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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