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장태숙

2005.07.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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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솔성을 위한 정신적 추구(追求)와 미주의 시인 장태숙 시를 써 오면서 많은 시론에 대해서 보고 듣는다. 시의 이론서뿐만이 아니라 온갖 문예지나 세미나 및 시인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마저 넘쳐난다.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좋은 시란 어떤 것인가? 이 끝도 없는 질문에 많은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이 나름대로의 학설을 펼치거나 의견을 제시했다. '감동이 있어야 하며 시적 형상화가 되어야 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탁월한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뛰어난 비유로 사물을 변용 또는 치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언어를 조탁해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운율이 있어야 한다.' 등등, 이 모든 이론들은 다 맞다. 이 이론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작품이야말로 진정 좋은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시로 나타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 이 시간에도 많은 시인들이 시의 질적 향상을 위해 번민하고 정신적 고통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논한 시론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현재 한국시단이 양산하고있는 수많은 시들의 질적 구조는 피라미드형으로 구분된다. 이름이 알려지고 잘 나간다는 세칭 유명시인들의 시와 중간층, 그리고 저변에 깔린 수많은 무명시인들의 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선은 명확하지가 않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평론가나 시인 자신들조차도 미흡한 시들을 함량미달의 시라거나 조잡한 시라고 함부로 토로한다. 그리고 간단히 시의 위기시대라고 진단하며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집들이 공해라고까지 일컫는다. 어떻게 시인이 혼신의 힘으로 엮은 시인의 시집을 공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시인들 스스로가 시인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물론 아직 기본이 덜 되어 있거나 모자랄 수도 있다. 그러나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를 아는 시인으로서는 그렇게 쉽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아무리 많은 시가 홍수처럼 넘쳐난다 해도 그 중에서 옥석은 구별된다. 이 시대 독자들은 대부분 좋은 시를 판단할 능력이 있다. 여전히 좋은 시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뿐 아니라 모범이 되기에 많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지 않는가?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습작기간을 거쳐야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습작기간을 거치지 않은 시인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시가 지녀야 할 기본이나 품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시들을 함부로 경멸하거나 모독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시를 아예 외면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시인들은 진정으로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성실한 독자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 고통을 겪으며 더 큰 시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란 그 범위가 워낙 넓어서 사소한 신변잡기 정도를 써 놓고도 시라고 하면 그 사람에겐 시가 된다. 시는 주관적이며 독자에 따라 그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가 아니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꼭 뛰어나고 잘 쓴 시만이 시라고 할 수 있는가? 시는 영혼을 정화시키고 삶을 진솔하게 투영한다. 시는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문학의 장르 중의 하나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또한 시이다. 그만큼 그 폭은 넓고 높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시를 쓸수록 좋은 일이다. 고 조병화 시인은 '온 국민이 시를 쓰면 좋겠다'고 했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는 이 시대에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과 정신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모든 예술작품에는 그 수준과 가치가 따로 있다. 시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인으로서의 이름을 가졌다면 시인 스스로가 책임을 느끼고 더 나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에 많은 시인들이 밤을 새우며 좋은 시 쓰기에 골몰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아픔과 고통을 아는 시인들이 다른 시인의 시를 가볍게 모독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만난 김남조 시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를 평할 때는 모질게 말하지 않는다. 자라나는 싹을 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듯 오랜 세월 진솔하게 시를 갈고 다듬으면, 언젠가는 뛰어난 시는 아닐지언정 고르고 참된 시가 탄생하리라 믿는다. 시는 위안과 행복과 성취감을 준다. 거창한 시대적 요구나 인류의 구원은 못되더라도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진실한 삶을 추구하며 정신적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여기 내가 살고있는 미주의 시인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낯선 이국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인종들 틈에 끼어 생존하기엔 삶이 너무 벅차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갓 이민을 왔거나 나이가 젊을 때에는 문학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활에 전심전력을 해야만 영어권인 이곳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 하여 자녀들을 전부 교육시키고 은퇴를 할 나이쯤 되어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때쯤 되면 인생이 허망해지는 것이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왜 앞만 보고 바둥바둥 살아왔는지... 한 때 문학을 했다거나 문학소년, 소녀였던 사람들은 옛날을 생각하며 뒤늦게 문학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못 이룬 문학에의 꿈을 머나먼 이국에서 인생의 황혼기에 펼치는 것이다. 그 열정은 눈에 부셔서 젊은이들 못지 않다. 그래서 이곳엔 유난히 나이 드신 문인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영어로 생활하면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무디어진 감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시단의 수준에 맞춰 시를 발표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어찌어찌 본국문단에 이름을 올려도 발표할 지면을 얻기도 힘들며, 지면을 얻는다 해도 일회성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본국지향의 문학을 자제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타국에 살아도 우리는 한국인이며 한글로 시를 쓰기에 그 무대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본국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곳에서도 나름대로 문학활동이 펼쳐진다. 그러나 문학적 정보가 늦고 한국에서 발행되는 문예지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으니 자칫 우물안 개구리 격이다. 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많은 시인들이 매일 한국과 교신하며 한국시단의 정보와 최근의 시들을 섭렵하고 자신의 시를 올리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더욱더 연마하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고뇌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는 다수의 시인들에게는 먼 얘기일 뿐이다. 이민생활에서 얻어지는 외로움이나 슬픔들을 한 줄 시로 적으며 행복해 하는 미주의 시인들에게 완성도가 높은 시만을 강경하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뒤늦게 황혼을 불사르며 눈물겨운 모국어로 시에 몰두하는 시인에게 시의 품격이나 위상을 내세워 함량미달이라고 비난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곳의 시인들에게는 모국어로 쓰는 시가 삶의 위안이며 가치이며 행복 그 자체이다. 시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부족한 시일지라도 시는 그렇게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위의 경우와는 달리 시 쓰는 일을 취미활동쯤으로 여기는 부류들을 보면 안타깝다. 시를 쓰고자 하는 치열함이 없이 적당히 시인이라는 말을 멋으로, 혹은 장식처럼 달고 다니며, 시도 쓰지 않고 시인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가슴 아프다. 시인은 가슴으로 시를 쓰며 그의 영혼 속에 시의 혼이 깃들 때 비로소 시인이다. 피를 짜내어 쓰는 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진솔한 영혼으로 쓰는 시여야 하지 않을까? 시인은 거저 얻어지는 이름이 아니며 시는 고통 속에 피어나는 영혼의 꽃이기 때문이다. 미주에서도 가끔 '시는 취미생활이다'라고 얘기하는 시인 아닌 시인을 볼 때마다 난감하다. 비록 잘 쓰는 시는 아니더라도 애정을 가지고 고뇌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내게 있어 시는 생활이며 신앙이다. 힘들고 외로운 이국생활에서 시가 없었다면 난 어떻게 살아냈을까? 자문하기도 한다. 내 열정과 혼과 삶을 빚어 시를 쓰지만 늘 부족하고 허기지다. 언제쯤 보석은 못되더라도 유리알 같은 시 한 수 빚을 수 있을까 고심하지만 시는 절대 만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며칠을 밀쳐두고 있으면 괜히 불안해지니 이것 또한 무슨 조화 속인 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시로 쓴 적이 있다. 이쯤 와서 뒤돌아보네 주춤거리던 내가 망연히 서서 나를 보네 한때 바다를 꿈꾸며 들끓던 열병 손수건 만한 옹달샘 하나 만들지 못하고 꽃들 여러 번 피었다 져도 영혼이 스쳐 간 자리에는 잡풀만 무성하네 나의 길은 가늘고, 가볍고, 쓸쓸하네 - 졸시 '길'의 일부 -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맑은 시의 샘물을 길어 올릴 우물하나 만들 수 있을까? 내 시가 걸어 온 가늘고 가볍고 쓸쓸한 길.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그것조차 욕심일 것이다. 이미 시가 내 내부에서 나를 키우고 내 삶을 이끌어 간다. 그것으로 족하다. 때론 가슴 저리게 절망하는 순간도 많지만 시는 그런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안다. 평생 시와 함께 하리라는 것을... 최근에 쓴 시 한 편을 끝으로 맺는다. 난 매일 꿈꾸지, 포획의 순간을 높은 나뭇가지 끝에서, 외로운 벼랑 위에서, 고즈넉한 빌딩 옥상에서 푸른 하늘 등지고 공중에서 홀로 떠있는 동안에도 번뜩이는 내 눈알은 한치 오차도 없어야 해 쏜살같이 내려가 낚아채야 해 소리보다 먼저 빛보다 빨리 뾰족한 부리의 날카로움이 때론 힘겹지만 잘 벼린 꼬챙이 같은 발톱이 가슴을 후벼파지만 아직 팔딱거리는 저 여리고 보드라운 생명들, 한 순간 비명 없이 보듬어야 해 깃털 하나 하나까지 긴장하고 소리 없이 해치워야 해 얼음처럼 차가운 내 혈액에 저장되는 따스한 숨결, 언어로 뱉어내 피로 쓰는 한 줄기 글이 된다면 서늘하도록 시린 핏물이 맺힌 내 부리 나뭇잎에 짓이겨도 좋아 그 순간에도 세상은 고요하고 나의 침묵은 뜨겁게 날개를 펴지 내가 삼킨 것들이 지금 꿈틀꿈틀 튀어나오려고 해 - 졸시 '매'의 전문 - - 우이시 2005년 7월호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에 수록 - (본란은 한국의 중견시인 및 비평가들이 시에 대한 평소의 지론을 자유스럽게 발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한국 현대시의정체성 형성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우이시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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