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신춘문예 詩 가작 시각장애인 손병걸 씨
절망 속에서 피워낸 시 한송이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항해'란 시로 가작에 뽑힌 손병걸(37·부산 해운대구 좌동)씨.

그에게 실명 증상이 나타난 것은 8년 전인 1997년. '새파란' 30세 때였다. 실명은 어둔 광풍처럼 그에게 갑작스럽게 몰아닥쳤다. '다른 합병 증상은 없었고 처음 실명 증상이 나타난 이후 1년 사이에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실명의 원인은 이렇다. 그는 87~90년 특수부대에 근무했다. 훈련의 강도는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관절염,척추 디스크가 왔다. 그런데 관절염 등에 의해 피가 탁해지면서 혈관염이 생겼고,더욱 탁해진 피가 가장 미세한 시신경을 손상시키면서 급기야 실명이 왔던 것이다. 그가 결혼한 지 4년째 되던 해였다. 딸 아이는 3살이었다. 병명은 '베체트병'이었지만,원인 판명은 명확하게 안됐고,따라서 보상도 받을 수가 없었다. 실명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없었습니다. 빛이여 쏟아져라면서,그리고 죽고 싶어 벽에 머리를 수없이 처박고 했지만 세상은 온통 암흑인 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무턱대고 아내와 이혼하자고 했죠. 아내와는 당시 서울의 한 직장에서 만나 2년여를 사귀면서 95년 결혼했는데 제가 완전히 실명을 했던 98년에 아내는 27살이었습니다. 아내의 젊음이 아까웠습니다.'

그는 '나만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라고 했다. 물론 충동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 어느 날,절망은 불현듯 그를 엄습했고,그는 부엌칼로 배를 찔렀다. '참으로 죽기도 힘들더군요. 칼이 부러졌습니다. 더욱 열심히 살아가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느꼈습니다. 절망과 암흑을 눈물로 쏟아냈습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삶을 새롭게 발견했다. 암흑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삶이었다. 그 삶은 죽음의 유혹과 절망을 이겨내는 시였다. 그는 '실명 뒤 귀와 코의 감각이 '뜨였다''고 했다. '매사에 손으로 만져봐야 하는 사물들의 촉감,구불구불 휘어진 달팽이관을 파고드는 미세한 소리,고요 속에서도 짜릿하게 코끝에 매달리는 냄새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제 아무리 하찮은 사물일지라도 미세하게 제 감각을 건드리며,전율로 몸서리치게 했던 그것들은 어떤 생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의 고향은 강원도 대관령이다.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늘 공납금을 못낸 탓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 가난의 열등감 사이로 어슬픈 시들이 스며들었다. 시도 간간이 썼다. 그리고 또 대관령의 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실명 뒤 섬세해진 그의 감각 위로 대관령의 바람과 빛,어슬펐던 청춘의 시들이 다시 밀려왔다. 그는 쓰고 읽고,읽고 썼다. 2년만에 1천편을 썼었다. '모두 휴지더라고요. 버렸지요.' 그리고 다시 썼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음성프로그램이 정말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읽고 싶은 게 있으면 복지관에 부탁을 하면 자원봉사자들이 컴퓨터 텍스트로 만들어 주는데 그 텍스트를 음성프로그램이 콤마,괄호까지 그대로 다 읽어준다는 것. 음성프로그램은 그래픽이나 이미지를 빼고는 문자로 된 모든 걸 소화할 수 있는데,지금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이 무엇보다 고맙죠.' 그가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근년에는 혹 혼자 외출을 할 때 길을 잃어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면 두세 사람이 달려온단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참 아름답다. '시를 도 닦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실명도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삶이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빛을 잃고 더욱 환한 빛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시가 있습니다.'

그는 '생의 지혜를 찾아가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시를 쓰고 싶어요. 그리고 장애인과 정상인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시도 쓰려고 해요.' 그는 동심을 특히 '아이 성(性)'이라고 표현했다. '아이성이 담긴 아름다운 시를 쓸 것입니다.' 에피소드 하나. 그는 보이지 않는 덕에 신춘문예 투고 원고의 겉봉을 잘못 적었다고 한다. 받는 사람 자리에 자신의 주소를 적어놓으니 투고는 그의 집으로 배달이 됐다. '안 되는구나,생각을 했죠. 그런데 알고보니 아내가 대신 또 보냈더라고요.' 그의 아내는 4개월 전에 다니던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그는 조만간 아내와 딸과 떨어져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간다고 한다.


/최학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