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들 / 도종환

2005.05.04 11:16

미문이 조회 수:1502 추천:55

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 할 표현들


1.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화폭에 산, 나무 들, 꽃, 하늘, 사람의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놓고, 나무는 고동색, 나뭇잎은 초록색, 하늘은 푸른색 이런 식으로 화폭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색칠을 해나간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선험적으로 얼굴은 살색, 머리는 까만 색 땅은 황토색으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앞에 있는 나뭇잎 색깔이나 하늘의 변화하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서 그리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늘 그게 그것 같고 새롭지 않다. 나무둥치에 고동색을 가득 칠해 놓은 아이에게 고동색 크레용을 들고 가 나무에 직접 대보게 하며 "어때, 색깔이 같니?" 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다.

사물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세히 관찰하며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 이것은 아마 예술 창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추억을 실은 버스가 나의 마지막 종착역에 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서쪽하늘 가까이에서 실려오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황금벌판 풍요로움에 홀쭉한 고향길을 말없이 걷는다. 어린 시절이 벌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였던 숱한 언약들이 다시 귓전에 들려온다. 살아오면서 버려진 덧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처럼 가슴 설레어 눈망울 적시었고 마음은 이미 바다와 들판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에 백지장처럼 깔려버렸다.

하얗게 깔린 백지장 위로 그리운 사연들이 써져 내려가고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잔잔한 갈등을 일으킨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밉던 얼굴마저 그리워져 모질게 내쫓았던 당신에게 다시 돌아온 것은 이곳이 나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 「애착」

이 시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쓴 시이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의 인식은 어떠한가. '황금벌판 풍요로움~.' 그는 고향 벌판을 바라보며 황금 벌판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피상적이다. 오늘날 농촌의 실제 모습이 어떤가 하는 구체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농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묘사하던 상투적인 관용어구를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이런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흔적은 이 작품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 이런 표현도 마찬가지이고, 고향을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라고 묘사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2. 상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의 시 '애착'에서 보는 것처럼, 삶 또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은 자연히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표현, 그 호수에 돌을 던진다는 표현 등은 너무 흔하게 쓰여온 표현이며, 따라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눈부신 밤거리
달빛 한 가닥 들어설 틈도 없다.

휘황한 불빛 속엔
검은 하늘 향해 벌린 하얀 살뿐이다.

아무 것이든 빨아들이는 불가사리 식욕
붉은 웃음은 잿빛 거리를 휘돌아 하늘에 퍼지고

현란히 부서지는 물결 속에
검은 세계는 찬란히 부상한다.

달이 떨어져 나무에 걸려 있다.

- 「밤거리」

이 시에 나오는 '붉은 웃음' '잿빛 거리' '검은 세계' '하얀 살' 등의 표현은 각각의 색깔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면서 쓰고 있다. 밤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답답한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 시인의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이다.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는 깊은 밤, 너는 눈물을 흘리는데 나의 키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막해지는 심정을 '적막해지는 나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신선하지 않는가.

첫 키스의 느낌을 각자 한 번 시로 표현해 보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첫 키스의 느낌을 수식하는 말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황홀한' '달콤한' '갑작스런' '아련한' '부끄러운' '잊지 못 할' '지워버리고 싶은' '감미로운' '떨리던' 등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표현들 중에 참신한 표현은 무엇일까. 잘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 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그런 참신한 말로 표현했다. '날카로운'이란 형용사는 키스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광물질적인 속성, 금속성 이런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말이 결합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적인' '강하게 다가온' '찌르듯이 내게 온' 이 모든 느낌이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의미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신선한 언어의 만남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 다음의 시를 보자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을 둘러 앉혀 놓고
지글지글 고깃근이라도 구울 때
소위 오르가슴이란 걸 느낀다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
그것은 마치 중생대의 지층처럼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을 층층히 켜켜로 머금고
낯뜨거운 오르가슴에 몸부림친다
그 환상적인 미각을 한 점 뜨겁게 음미할 새도 없이
식구들은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은 뒤 폐허 같은 밥상은
..........
헐거운 행주질 한 번으로도 절대 깨끗해지질 않는다
하얀 손등에 사막의 수맥 같은 파란 심줄을 세우고
힘주어 밥상을 닦는 아내의 마음속엔
수레국화 꽃다발 사방으로 흩어지고

- 「돼지」 중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 그렇게 표현했다. 비유가 신선하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보며 떠올린 '중생대의 지층' 그리고 '층층히 켜켜로 머금은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 이런 비유들은 이 시를 쓴 사람만이 본 독특하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와 오르가슴을 연상시킨 비유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전혀 상투적인 데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가 새로운 느낌을 준다.

3.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사람들은 돌아오고 흐느끼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도 앓는 소리 듣지 못하고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왔다
피는 물 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 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유방들이
다가올 봄을 대비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수많은 옷가지들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나는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간다
속이지 말라고 사람들은 외치고
그래도 나는 속인다
나는 속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내가 죄를 벗어나는 길은
죄를 잊는 길밖에 없다
나의 원죄는 이토록 망각 앞에 무력하다
또한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
위안을 찾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란색 가로등에 뿌리는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
하염없이 달리는 차창가에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

-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

이 시속의 시적 화자는 지금 죄 때문에 괴로워한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속이고 있어야 하는 괴로움에 마치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가고 있는 듯한 부끄러움에 싸여 있다.

시적 화자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를 쓴 사람이 이 시를 통해서 결국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지가 불명확한 데 있다.

1연 3행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 왔다'는 것은 어디일까. 끝까지 읽어보아도 그곳이 어디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2연에 와서 죄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한다는 이야기가 길게 전개된다. 그런데 18~19행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 위안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무슨 위안을 찾는다는 것일까. 그리고 21행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와
23행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앞에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죄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끝 구절이기도 한 18행부터 23행까지는 역시 모호한 채로 던져져 있다. 2연 1행부터 7행까지는 이 시 속의 시적 자아가 서 있는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들인데, 죄의식을 느끼게 된 원인과 어떤 연관을 갖는다든가 아니면 상징적인 구실을 한다든가 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주제를 향한 응집력도 부족할 뿐더러 '유방' '병정' '종이' '운명' 등의 시어들이 이해되지 않는 채 자꾸만 걸린다. 거기다 제목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는 시 전체 내용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다.

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더 보자.

이름보다 먼저 그대 귀를 찾았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더한 부름으로 버거웠던지
유령처럼 스르르
가버렸다

- 「겨 드 랑 이 에 각 개 표 로 손 을 끼 워 넣 는 건 그 어 느 한 쪽 의 필 요 만 은 아 니 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버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 서 있다. 이 시의 제목대로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것은 어느 한 쪽의 필요에서가 아니듯 서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사랑했을 텐데 그냥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내용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거기에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해서 한 편의 시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겨드랑이~'로 시작되는 긴 제목이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제목도 내용도 다 미완성으로 끝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 내가 지금이 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다음 시는 어떤가 함께 읽어보자.

돌담은.....,
아닙니다.
어릴 땐 가지런한 층층에 끄덕머리 하다가, 흔들고 다시, 여물게 손가락질 하나 둘 헤다가, 마침내 올라서서 이쪽과
저쪽 세상 가운데를 걸으며 조심스레 팔저울도 했지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는 이미 많이 자라서 한여름 놀던 그 그늘, 한 겨울 고인 볕뉘와 속살거림, 모두 까닭 없었어요. 때로 생각이야 나지요. 가을이었어요 누군가 싸리비 하나 꺽어들고선 저 산 너머로 가라며 저를 자꾸 내쫒았어요.
가라면 간다며 그 길로 돌담 등지는데, 때깔 곱게 물든 단풍 숲 사이 바알간 노을이 깃들더니 이내 두 눈 가뭇가뭇 멀게 했어요.

그 후론 여기 이 바깥 세상에 쭉 살았지요. 어떤 날은 취해 밤낮을 바꾸고 또 어떤 날엔 싸우다 승리, 패배,
승리 패배 패배했어요, 삭신 다 닳은 세월 속절 없지만 아파서 제겐 더 살뜰한 기억이지요.

다만 잊을 수 없는 건
그 낮은 돌담. 웃자란 키로 들여다봅니다.
안팎으로 그늘과 속살거림 거느린 것이며, 자라지 못하는 속엣 것들 고즈넉이 품은 모양이며, 누군가 또 싸리비 꺾어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거라며 저를 쫓아내는 것까지도 두고 올 적 그대로지만, 삶이란, 예전에 그랬듯, 홱 떠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안됐거든요.

저물 무렵
그 모든 게 노을 함께 지면
참 안돼 보이거든요.

이제 와서 저는
슬퍼할 밖에요.

- 「돌담」

많은 쉼표와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들락거리는 구성은 자칫 혼란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속에도 정연한 내적 질서가 있다. 돌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유년기와 성장기, 세월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아름답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떠나기 싫던 우리들 근원적 삶의 터전과 그 터전을 떠나와 끊임없는 싸움을
되풀이하며 성장 해야하는 현실의 경계에 돌담이 있다.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제를 내포한 구절도 자연스럽게 시 속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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