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feminism)문학이란 무엇인가?/이승하

2005.04.05 10:04

미문이 조회 수:1353 추천:25

페미니즘(feminism) 문학은 여성주의문학이라고 번역해야 할까요, 여성해방문학이라고 번역해야 할까요? '여성들을 자녀의 양육에 묶어두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음모를 고발하는 문학'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학자가 있더군요.

우리 나라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는 늘 여성이었고,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도 늘 여성이었습니다. 왜곡된 유교문화의 악습이 수세기나 전해 내려온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조선조 후기에는 모성 인정 문화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대부 집안 남자들의 의관과 여성이 담당한 노동(한겨울의 빨래와 한여름의 길쌈 등)을 생각해보십시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크게 바뀌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출산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성비의 심각한 격차를 가져왔고, 성장기의 성차별은 여아에게는 열등감을, 남아에게는 우월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남성의 우월감은 성인이 된 후 가정폭력을 유발하기도 하고, 이혼율 증가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의 성차별은 여성의 사회진출 자체를 가로막고 있거나, 제한된 분야의 일만 하게 합니다. 결혼·출산·승진 등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회생활을 그만두게 합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가정에서의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확보는 아직도 요원한 일로 여겨집니다.

대한민국이 이렇듯 봉건적인 가부장제와 유교적인 인습의 족쇄를 벗지 못하고 있을 때 바다 바깥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즘'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왔습니다.

1848년 미국 세네카 폴스 전당대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찾자는 정치운동이 시작된 이래 20년 만인 1869년에 이르러 전국여성참정권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협회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1920년에 마침내 여성 참정권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여성이란 존재는 밥을 해 남편에게 바치는 '부엌데기'일 뿐이었습니다. 거안제미(擧案齊眉)라는 한자성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성의 지위는 1960년대 초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제고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성문학론은 1970년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을 시발로 논의되기 시작해 1985년 산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에 의해 『여성들에 의한 노튼 문학선집』이 출간됨으로써 하나의 문학론으로서 당당히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성의 정치학』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관계로서의 사랑 또는 본능적인 관계로 신비화 되어왔던 성행위가 사실은 남녀의 지배-종속관계이며 권력관계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밀레는 이 책에서 여성을 사고 파는 교환혼으로 시작된 고대의 가부장제가 그 후에 일어난 온갖 노예 매매제를 위한 유익한 실례가 되었다는 것을 해박한 비교문화사적 지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가부장제 아래서 성관계는 여성의 품위를 잃게 하는 것이며, 성은 배설 및 폭력과 일치되고, 여성은 남성의 성적 위안을 위한 합법적 희생자에 지나지 않음을 D.H. 로렌스·헨리 밀러·노먼 메일러·장 주네의 작품 분석을 통해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한국 여성시의 계보를 살펴보면 제1기에 해당하는 이가 김명순(김탄실), 김일엽, 나혜석 세 사람입니다. 이들은 1920년대에 여성의 자유와 개방을 주장, 여성지위 향상운동을 폈습니다. 오랫동안 폐쇄된 규범 속에 묻혀 있어야 했던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문단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놓았던 것입니다.

김명순은 『청춘』지 현상공모로 등단했습니다. 김동인의 『김연실전』이란 소설에 '남편 많은 처녀'라는 별명으로 등장하는 김명순은 여러 남자와 스캔들을 일으키다 정신착란을 일으켜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김일엽과 나혜석은 「폐허」 동인으로 문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김일엽은 동아일보 문예부 기자였고, 최초의 여성지 『신여자』를 간행하여 주간이 되었지요. 신여성의 자유연애가 사회적 통념으로 용납되지 않아 그이는 불교에 귀의하고 말았습니다.
나혜석은 최초의 여류서양화가요 여권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고 남편한테서 이혼을 당한 그이는 정신장애자와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 생을 비참하게 마감하고 말았지요.

세 명 여성의 인생행로를 보면 당시에 여성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자유연애'를 했다고 하여 여성은 '화냥년' 취급을 당했지만 남성은 '한량'으로 받아들여졌으니 얼마나 끔찍한 성차별이었습니까.

제2기는 노천명·모윤숙(소설의 박화성·강경애·백신애·최정희·김말봉·장덕조·임옥인), 제3기는 김남조·홍윤숙(소설의 손소희·한무숙·박경리), 제4기는 강은교·김승희·최승자·김혜순·고정희·천양희(소설의 박완서·오정희·윤정모·이순), 제5기는 안정옥·박서원·허수경·나희덕·최영미·신현림·이연주·이경림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페미니즘이 이론의 울타리를 넘어 문학 작품 속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박완서·오정희·윤정모·이순·이경자 등의 작가들이 모성의 위대함과 여성만이 겪는 아픔을 작품 속에 그려내기시작해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또 하나의 문화』(평민사), 『여성운동과 문학』(실천문학사), 『여성』(창작과비평사) 등의 무크지(부정기 간행물)가 나와 국내 페미니즘 비평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박완서는 가부장제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각종 수난과 소외, 아픔을 그렸습니다. 모성에 대한 강조는 박완서 소설의 장기지요. 이경자의 『절반의 실패』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유형별로 다룬 소설집이었습니다. 공선옥과 공지영은 이혼녀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그 편견에서 오는 고달픈 삶을 많이 그렸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이들 외에 권여선·김형경·신경숙·이혜경 등의 소설가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거론될 만한 수준 높은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사회가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아직도 '용모 단정'입니다. 그래서 실업학교 여고생은 고3이 되면 성형수술까지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을 받는 세상이라면 여성도 한 명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남녀의 육체적 차이가 남녀 차별의 원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여성해방은 남성해방이요, 나아가 인간해방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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