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사랑받는 문인들의 쉼터

2006.04.22 07:57

미문이 조회 수:1660 추천:81

한지에 쓴 詩들이 걸려있는 인사동 `시인학교` 한옥을 개조한 `인사동 사람들` 시집 박물관 `시떼` “우린 오늘도 `시인학교` 간다” (1) 집보다 사랑 받는 문인들이 쉼터··· 공간으로서 술집은 어떤 곳일까? 그것은 운명(運命)이라 불리는 본질적 고독과 만나 자신을 도청(盜聽)하는 곳, ‘지금 여기에서’ 삶의 해방을 꿈꾸는 은밀한 곳, 서로의 닫혀진 존재에 도달하고자 하는 말들의 공간이다. 그런 가하면 별과 폭풍, 침묵과 분노가 교란(攪亂)하는 광기와 죽음의 장소이며 말의 환영(幻影)들이 정적(靜寂) 속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영감의 장소이며 육체와 자본이 교환되는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신화적으로 제의(祭儀)와 풍요, 도취와 황홀경 속에서 신(神)과의 완전 합일을 꿈꾸는 열광적인 것이었다. 그러기에 술은 우리들의 숨겨놓은 정적 속에 스며들어 격정적인 약동을 요구하며 생(生)의 본질에 입김을 불어넣는다. 술집에서 시화전과 전시회도 1921년 ‘개벽(開闢)’ 제17호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술 권하는 사회’는 일제 강점하에서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지식의 절망을 그린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새벽 2시 대 취하여 들어온 남편에게 “누가 이토록 술을 권했느냐”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말하고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내를 두고 다시 밖으로 나가버린다. 비단 사회뿐이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문화적 기호(記號)로서의 술은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며 설득과 가학(加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술집을 찾아가는 5월은 푸르렀다. 인사동 ‘시인학교’(02-738-9555).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는 인사동. 그러나 가장 한국적 문화를 온후하게 보여주는 곳이라는 세평(世評)에도 불구하고 몰 주체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거리는 말끔하게 단장했지만 길은 사람을 찾아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잡아 끄는 표정을 하고 있으며, 90년대 초반까지 살아 있던 골목의 한옥(韓屋)들은 거의 다 헐린 채 자본주의적 문화에 바쳐졌다. ‘시인학교’는 인사동 네거리 못미쳐 한 빛 은행 건물 옆 2층에 자리하고 있다. 83년 문을 연 술집으로 주인인 시인 정동용(42)씨는 그 자신이 마치 술을 마음껏 마시려고 술집을 차린 듯이 술에 절어 사는 사람이다. 공간 내부 전면에는 한지에 쓴 시(詩)들은 녹녹치 않은 볼거리며 동동주에 감자전, 그리고 대추 차와 같은 전통 차들은 풍성한 먹 거리를 제공한다. 그림 전시회를 비롯하여 최근 이재무 시인의 시화전(詩畵展)을 연 바 있는 시인학교는 시인 신경림 민영 박철 임동확 이산하 함민복 이윤학 박형준, 소설가 현기영 그리고 백기완과 민미협(民美協)화가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인사동 사람들’(02-723-1236)은 ‘학고재(學古齎)’와 ‘수도약국’ 사이에 교수(敎授)들의 출입이 잦은 ‘선천집’과 ‘낮에 나온 반달’ ‘시인과 화가’ 중간에 위치해 있다. 한옥을 개조했는데 입구의 한 평 공간에는 맷돌에 연잎을 띄우고 꽃으로 장식했다. 이곳에서는 가곡과 피아노곡을 주로 틀어주는데 “술이 거나해지면 음악을 끈 채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 부르기도 한다”고 풍물패인 ‘단비’ 회원이기도 한 주인 정윤정(48)씨가 귀띔해 준다. 시인인 고은 정진규 이근배 서정춘 남진우를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황석영 신경숙, 문학 평론가 김화영 도정일 등이 들르는 곳이다. “우린 오늘도 `시인학교` 간다” (2) 집보다 사랑받는 문인들이 쉼터··· ‘인사동 사람들’ 바로 옆에 위치한 현대시학(現代詩學) 사무실에서 만난 주간 정진규 시인(62)은 “인사동이 옛날같지 않다”며 50년대 최불암 어머니가 경영했던 명동의 ‘은성’과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있었던 종로 2가 관철동에 있었던 ‘낭만’과 선술집 ‘용금옥’ 그리고 사직공원 쪽에 있었던 ‘대머리집’을 감회어린 표정으로 회고했다. “광화문에 ‘아리수다방’이라고 있었지. 그곳에 가면 현대시 동인은 물론 목월, 지훈, 남수, 수영, 종삼, 봉건 시인들이 일대 포진하고 있었지”라며 어서 ‘평화 만들기’에 가보라고 한다. ‘평화 만들기’(02-732-3106)는 유독 기자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소설가 유정룡이 경영하던 시절부터 잘 알려진 곳이며 80년대 ‘시운동’ 동인들의 합평회(合評會) 장소로도 유명했다. 타계한 시인 기형도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려 오기도 하는 이곳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예술가들의 가장 유명한 집합소이다. 바로 그 옆 ‘볼가’를 지나 ‘울력’(02-733-3192)은 고가(古家)를 그대로 살린 채 테이블 4개를 놓고 아담하게 자리해 있는데 시와 시학 주간인 문학평론가 김재홍 정현기를 비롯해 시인인 오세영 오탁번 김종해 나희덕 장석남 이홍섭 등이 이따끔 들르는 곳이다. 김지하는 마포 ‘동루골’자주 찾아 인사동의 시집 박물관인 ‘시떼’(02-725-1085)는 ‘가나아트’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상업화된 인사동을 지키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시인을 초청하여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비 3000원만 내면 차를 마음껏 마실 수 있을뿐더러 자사(自社) 도서는 “30% 할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혜택을 준다”고 최명애 관장(43)은 말했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가정용 맥주 아주 큰 병을 4000원에 판매하되 땅콩과 포와 같은 안주는 무료로 제공하여 주머니가 가벼운 시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곳에 가면 단기 4292년 7월 10일이라고 씌어진 신석초의 시집 ‘바라춤’을 만날 수 있으며 1955년판 값 500원이라고 씌어진 ‘이태백 시선’도 만날 수 있다. 대학로로 발걸음을 옮겨볼까. 대학로의 호질(764-6822)은 주인의 손길이 따뜻한 곳이다. 연암의 소설 제목에서 옥호(屋號)를 정한 것만 보아도 주인의 품성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여주인은 노래를 구성지게 잘해 좌중을 압도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흑맥주에 마른 김을 기본안주로 줘서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 남다른 데가 있다. 시인 조정권 최동호 이학성, 문학평론가 김종회 강웅식, 소설가 박덕규 등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그밖에 마포 불교방송국 뒤쪽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는 ‘동루골’도 주인 나경희씨의 생선찜 솜씨에 시인 김지하 이시영 강형철 고형혈 등이 자주 찾는 곳이며 역시 마포 홍대앞 술집 ‘섬’은 문학평론가 정과리 이광호, 시인 김정환 채호기 윤병무, 소설가 김인숙 공지영 등이 오랜 단골로 찾는 곳이다. 강남에는 양재역 근처 속칭 뱅뱅사거리에 위치한 ‘도이치 호프’는 모듬 소시지 안주가 유명한 곳으로 소설가 김원일을 위시해 문학평론가 이경호 문흥술 김수이, 시인 김수복 등이 포진해 있으며 한때 ‘사당동파’라고 불리던 시인 황동규 임영조 천양희 김명인 홍신선 등이 대교방송국 앞에 있는 ‘남원 추어탕’집에 둥지를 틀고 있다. -조선일보 작가와의 만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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