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엇이 詩가 되는가. 꼭 같은 대상. 혹은 事案이라도 시가 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다. 시인의 주체적인 감동의 분위기가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감동만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의문, 어떤 사안에 대한 회의 나아가서 관심의 집중도에 따라 그냥 스쳐 갈 수도 있고 엄청난 시적 동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입각해서 詩想을 적극적으로 떠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관찰자로서의 부지런한 근성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즉 시인의 감수성과 특유의 인식방법이 항상 지속적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시인의 외부지향성의 방법이 된다. 한편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경험했던 일들,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었든 간접적인 것이었든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보게 되는 것들에서 시인은 인간만이 헤아릴 수 있는 삶의 페이소스를 느낀다. (인생의 지혜와 우리의 섭리 그리고 나아가서 죽음 다음의 세계까지 생각하게 되는 종교적 哲理를 깨우쳐 가고 있다. 이 대목에 철학자의 몫이 있고, 신학자 내지 종교적 신앙인의 몫이 있다. 이와 함께 시인의 몫도 있음을 상기할 수 있어야겠다. 이것을 과거지향성 내지 사색적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를 들자. 시인 자신의 내부지향성이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없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 가져 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정신적인 자기 성찰의 논리가 대부분 사라져 가고 있다. 이것은 현대인의 '비극적인 운명'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바로 시인은 이 점에 깊이 있는 자기 내부에의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라고 본다. 이렇게 시가 될 수 있는 세 가지 차원을 들었다. 그것을 차례로 요약하면 공간성 내지 시각세계, 시간성 내지 인식세계 그리고 주체성 내지 각성의 세계로 들 수 있다. 적어도 필자가 시를 써 온 관행으로 볼 때 이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적인 충동이요, 원인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시가 완성되는 것은 언어에 의해 형상화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는 만물과 수시로 바뀌는 나 자신의 정서가 서로 교감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시인의 센스이다. 이를 언어를 통해 옮겨 놓는 일, 옮겨 놓는다는 표현보다는 대신한다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대신'한다 함은 바로 문자로 집약하는 것으로 기호화되고 암호화되며 나아가 상징화되는 과정의 의미가 숨어 있다. 이것부터 이미 시의 형식성을 갖춘 것이 된다. 그 후 시 한편 한편이 지니는 언어미, 형태미에서 시작(첫 줄)에 끝(마지막 줄)까지의 과정이 그 시만의 형식적 개성을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운율성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 繪畵性이나 논리(사상)성에 힘입게 되는 경우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항상 새로 쓰여지는 시는, 시가 갖춰야 할 요건들에 대해 새로운 시도(실험)라도 보는 것이 마땅한 애기이다. 내가 좋게 읽은 시, 그것이 어떤 차원에서이든 그 시는 내가 또 한편의 시를 짓는데 훌륭한 보기가 된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서의 모방의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2 누구와 살다 이 세상을 떠났나 못이뤘던 사랑이 波濤에 밀려나와 수런대는 갈밭에 보름달을 띄웠네. 肉身은 어찌할꼬 달빛에 드러난 저 얼굴, 울고 가는 기러기 사연에 외롭다 下直하는 落葉속에 묻어라. --「溺死」전문 한 畵集을 보던 중에 발견한 충격적인 장면이다. 누구의 그림인지도 기억 못한다. 바닷가에 떠밀려 올라온 시체. 남성으로 옷을 입은 채였다. 나무껍질이나 기타 쓰레기와 함께 밀물에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반은 물에 잠겨 있고 반은 모래바닥에 올라와 있는 장면이었다. 이런 그림을 서양화가들의 畵集속에서 본 지 몇 달이 지난 다음 쓰게 된 것이「溺死」이다. 화집에 수록된 한 폭의 그림이 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림일 수 없는 저 안개, 印象主義風의 신비로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6月의 敎會堂에 들어서면 나는 제단에 놓인 한다발 안개꽃에서 나의 형상을 찾아낸다 십자가를 지는 아픔과 부활하는 기쁨을 나는 안개꽃에서 찾아낸다 기도드리는 會中의 良心의 소리가 저 안개꽃의 향기로 스며 온다 --「안개꽃」전문 이것은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본 어느 主日의 풍경이다.「溺死」는 30전후의 나이에 쓴 것이요,「안개꽃」은 40대 초에 쓴 것이다.「溺死」는 화집속에서 보고 몇 잘 뒤에 쓴 것이요.「안개꽃」은 예배를 보면서 즉석에서 써낸 것이다. 성가대가 합창하는 성가들과 예배보기 위한 참석한 회중에서 나오는 잡음들, 기침소리,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신도들의 감사와 참회의 어눌한 반성 등이 교회당 안의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강대상 옆에 자리잡은 한다발의 안개꽃은 다른 어떤 것들 보다 압도해 오는 聖에 속하는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溺死」에서 떠올릴 수 있었던 상상력의 세계가 구체적인 정황이었다면「안개꽃」에서는 반대로 추상적인 개념들이었다. 또 전자가 대상에의 감정이입에 따른 상상력의 반동이라면 후자는 대상을 통해 자기 내부의 정신상태를 점검하고 각성하는 계기의 온 것이다. '무엇이 시가 되는가'의 대답은 한 상황 속에서 사물의 특수성과 시인의 정서적 특수성이 서로 교감하는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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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상처가 나를 살린다/이대흠 미문이 2007.01.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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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미문이 2007.04.2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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