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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열창한 장사익 님 !

2007.06.10 13:28

이 상옥 조회 수:409 추천:61



어제 토요일,
난 무척 바빴다.
저녁에는 친한 친구의 아이가 고등 학교를 졸업하여 졸업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과  낯에는 타운의 낚시대회까지 아무튼 부지런히 뛰여 다닌 하루였다.
드디여 저녁이 왔고
장 사익씨 공연을 가기 위해 저녁 7시 시카고 다운 타운까지 잘 아는 미스터 서의 고급 차인
메르세데스 벤스 S 420를 타고 두집이 가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그러나 좀 늦게 연락이 왔지만
친구의 아들이 SAT 1600점 만점을 받았고
ACT도 36점 만점을 받아 경사가 나 있는 집을 아무리 장 사익씨가 중요해도
외면 할 수가 있는 형편이 아니였다.
얼른 5시 30분에 들리기로 아내와 약속 했다.
5시 30분 쯤에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의 아들 페트릭이 무척 반가워 했다.
우리는 잠시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집 책상에는 그 동안 신문에 난 그 아이이 사진이 가득 하다.
오늘은 그 동안 페트릭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오시는 날이란다.
나는 친구의 설명을 좀 듣다가 시간이 되서 아쉽게 작별을 해야 했다.

미스터 서집에 가니 벌써 부부는 집 밖에 서성이며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이른 시간이지만 우리는 곧 미스터 서 집을 떠나
다운 타운 아우디토리움 극장을 향했다.
약간 시간이 남아 우리는 인터스테잇 90번 맥더널드에 들려
혹시 저녁을 굶을지도 몰라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다시 다운 타운을 향했다.
인파들 속에 나는 차 안에서 졸다 다시 깻다가 하며
아우디토리움 극장 앞을 지나니 시간이 저녁 6시 45분이였고
차를 파킹시키고 극장에 들어간 시간이 7시 5분전 이니까 우리는 정확하게
시간을 지킨 모양이 됏다.

아내끼리 같은 World Children,s  Foundation  간부들이 만나 인사와 수고 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여 나와 미스터 서는 알아서 다른 자리로 갔다.
그리고 잠시후
곧 우리는 시간이 돼여 3층 자리로 가서 앉아 아내가 만난 사람 이야기를 했다.
드디여 조용히 불이 어두워 지며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 됐다.
나는
눈이 나뿐데다가 안경도 돋보기를 끼고 와서 저 멀리는 어른 거려
잘 보이질 안는다.
아내가 걱정 스러워해서 " 뭘 노래만 잘 들을 수 있으면 괜찮아  ! "
난 이렇게 말을 해 그녀를 안심시겼다.
대략 무대 중앙까지 거리가 35야-드 정도 돼는 듯 싶었는데
그양반 키가 큰지 적은지도 모르니까 얼굴은 윤곽도 전혀 볼수가 없었지만
내가 조금전 아내에게 말을 했던대로 정말 그 양반 노래 듣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역시 처음 듣는 노래지만 미국에서 산 내게는 모두 느낌조차 생소한 노래였다.
가끔 그 엣날 누군가가 불렀던 노래도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받은 느낌은 그분은 정말
열정적으로 우리 한국의 한을 표현하려 하는 듯 보였다.
특히 그 분을 따라온 반주자들이 어듯 듣기에도
대단한 실력자들 같았다.
그렇게
일부 순서가 끝나고 이부 순서가 시작 돼는 인터 밋션시간까지
고수들이 먼진 연주를 해서 잠시도 시간을 허비하는 순간이 없었다.

이부 순서는 장 사익 선생이 미리 이야기 했듯이
우리들의 이 고향 떠난 설움을 어루만져 주려고 애써 만든 순서 였다.
우리들 입에 익고 귀에 익은 노래가 천천히 극장 안에 울려 퍼질때
우리는 휫바람도 불고 발을 구르며 열광 했었고 또 함께 열창 했다.
나는 그분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기립 한 채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 뿐 만이 아니고 입장했던 모든 관객 마음이 다 똑 같았으리라.

여름 밤처럼
아직까지 훈훈한 밤을 미스터 서 차를타고 World Children,s  Foundation간부들 중에
미국 중서부 지부장인 미쎄스 서와 시카고 부회장 아내가 그 분들께
감사하는 식사 대접을 준비 하기로 했단다.
가장 수고가 많았던 총회장님이신 심 정열여사를 돕기 위해
우리가 가긴 갔지만
노으드 부룩 우리식당 사장님이 기꺼이  장 사익씨와 일행을 위해 한턱 쏘신다는 말에
우리 역시 좋은 일에는  언제나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이렇게 비일 비재한 모양이였다.
나는 아내 대신
상자리를 미리 웨리트리스들과 함께 돌아 봤다.
역시 주인이 한 턱 쏘는 푸짐한 자리란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었다.
잠시후
총 회장이신 닥터 심부부 소리가 들렸고
곧이여 키가 좀 작은 듯 싶은 장 사익씨가 들어 와서는 우리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모두들 황송해 하는 듯 싶은 표정이였다.
나도 그 분과 인사 할 기회가 생겨 악수를 했다.
나는 그분께 " 공연이 참 훌륭 했어요 ! "라고 솔직하게 말 했다.
그랬더니 그 양반 미소를 지으시며 " 다아 당신 덕분이요 ! "라고 대답 했다.

와 우    !
정말 굽고 마시고 신나는  밤이였다.
갑자기 그 양반들 초록색 웃 옷을 걸치더니
이 옷 감사해서 한 곡조 하시겠단다.
뒤에서 겻다리로 노래 하시던 분들이
한 곡조를 뽑아 제끼시는데
" 와우   !  고기맛 좋고 또 쐬주맛 입에 감기겠다 ! "
자그만치 네곡을 부르데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악을 쓰며 앵콜이란 소리를 지르자
그 양반들 또 한곡조를 뽑는데
저 " 신고산이 와르르 함흥차가는 소리에       ,,,,,, "도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은    ,,,,, "은 더욱 아닌
그 옛날 비틀즈가 불렀던 " 오불라디 오블라다  ! "였다.
왜냐하면 어느 양반이 팝쏭을 불러 달라 했기 때문이였다.
" 난 이런 기회가 생전 첨이랑께요.  히히히히히히  !  좋아 죽겄어 정말  !  "

그러다가 어느 양반이 ( 노래는 곧 잘 하는 것 같았음. )
아마 타주에서 장 사익씨 보려고 불철주야 운전을 해 오신듯 싶은 사람답게
감격해서 장사익씨 힛트 친 노래 중 한곡을 뽑아 재끼는데
( 아 당신 말요, 솔직히 말해서 공자 앞에서 지금 문자 쓰는 것 아닝가베요  ? )
이 야반 대답이 그럴듯 해요( 장 사익 선생).
아니 내노래를 부른다면서 왠 찬송가 비슷한 걸 불러요 ?하시더니
곧 자신이 목청을 가다듬어 부른 노래가 바로 아내에게 받치는 아내 찬송가 아닌던 가요 ?
' 행 !  아거 클났다. 내가 저 노래를 빨리 배우던가 아니면
저 양반을 우리집까지 모시고 가던가   ?
아니면 아내에게 디립다 꼬집힐 텐데 어쩌지 ? 아이공 !  '

이제 집으로 가시는 분들을 위해 문 밖에서 인사를하고 계시는 장 사익씨다.
때마침 어느 기자 양반인지 아니면 아마추어 인지 커단 카메라가 눈에 띠여
난 염치 불구하고 한장 부탁 했다.
그리고 나서 얼른 뛰여가 장사익씨와 단둘이 한장 짤깍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