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2012.12.24 13:19

박영숙영 조회 수:318



박영숙영[-g-alstjstkfkd-j-]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의 근원, 사랑

박영숙영 시인의 시는 섬세한 세공과 긴밀한 축약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정적 표현과 사실적 진술이 근간을 이룬다. 완전한 삶을 구현하고 영원한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사랑의 정서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서정성이 더 적합하며, 타락한 현실의 개선을 위한 자기 수련의 필요성을 권유하기 위해서는 사실적 진술이 보다 효과적이다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화합이 이루어짐으로 인한 기쁨이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슬픔은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사랑의 정서가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해일이 몰려와도
바라보는 수평선은 흔들리지 않듯이
광풍이 몰아쳐도
육지를 뚫고 솟아난 산 능선 그대로 있듯이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보고 싶은 마음이
벌집을 쑤신 듯하지만
  
정작으로 당신 앞에 서게 되면
눈부신 태양을 맞이한
아침 꽃처럼 수줍기만 합니다.
  
저 넓은 창공 속에
달이 뜨고, 별이 뜨고
태양이 솟아나서
육지를 끓어 안고 돌고 돌듯이
  
신비한 사랑의 샘물을 파 놓은 듯이
내가 가진 모든 것
내가 가질 모든 것이 당신의 가슴속에 있어서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그 사랑 줄기에
오늘은 또 다른 삶의 향기 꽃 피우며
내일을 여는 미래의 문 앞에서
행복한 듯, 수줍은 듯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습니다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전문
  
작품 전체를 이끄는 정서는 행복함이고 그 배경에는 사랑의 정서가 내재하고 있다. 이를 시인은 불변의 자태, 자연의 섭리 그리고 영원성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1연부터 3연까지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와 그 같은 위협에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자세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해일, 광풍, 기다림이 나의 사랑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면 수평선, 능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변의 자태를 유지하면서 불안 요인을 불식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시인의 정서는 자연의 섭리와 영원성으로 확장되면서 시인의 의지를 강화시킨다.

달과 별 그리고 태양의 운행과 같이 결코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일러 자연의 섭리라 한다. 시인은 변하지 않을 자신의 사랑을 자연의 섭리와 등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의 사랑은 오늘의 삶의 근원이며 나아가 내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듯이 나의 사랑도 영원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 같은 확신 때문에 시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시인에게 있어 님은 모든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근원이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주는 대상이다. 그러한 님이 시인에게 향하는 마음을 나는 사랑이라 하고 그 사랑의 빛으로 인하여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고백한다. 오늘은 어제 못 다 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며, 새로운 날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시작된다. 따라서 시인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은 곧 시인의 영원한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징표일 뿐이며 사랑의 정서는 시인에게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는 근원으로 작용한다.
사랑의 정서를 얼마나 내밀하고 애틋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박영숙 시인에게 이 같은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랑의 정서가 우리 삶에 무엇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고 해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3. 상생과 조화의 근원, 자기 수련

박영숙영 시인에게 현실은 외로운 공간이며 타락한 세계이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시는 즐거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라는 메슈 아놀드(M. Arnold)의 진술처럼 시가 지녀야 할 교시(敎示)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현실을 파악하는 부정적 인식이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긍정적 의지의 기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무엇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를 위하여 엄정한 자기 수련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박영숙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첫 번째는 완전한 삶을 구축하고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의 정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우리 현실이 상생과 조화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수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이 같은 자세는 추상적 구호와 관념적 유혹이 아닌 실천 가능한 현실적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는 다양한 소재를 시적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각 작품이 드러내는 주제와 의미 또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시인의 의지가 큰 흐름을 유지하면서 일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등 삶의 모든 것들과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조국을 떠나 다른 문화를 배우면서 살아야 했던 시인에게 삶 그 자체가 늘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도전은 성취와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보다 큰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취와 좌절의 순간 시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인은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소망과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소망으로 확장시켰다. 이 같은 박영숙영 시인의 자세가 소중하게 인식되는 것은 시의 영역이 사적 공간으로 위축되고, 시의 의미가 관념으로 퇴행하는 오늘 우리 현실에서 회복하여야 할 시의 영역과 시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