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섬

2004.07.03 21:55

미문이 조회 수:1068



문인귀[-g-alstjstkfkd-j-]년여 만에 제2시집 <떠도는 섬>을 냈습니다.
이 시집에는 모두 85편이 수록되어 있고 홍문표교수의 시평이 들어 있습니다.
시평에서 몇 군데를 발췌해 올립니다.

존재의 성찰과 청음의 시학
-문인귀 시인의 시집 <떠도는 섬>을 중심으로

-홍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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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은 여섯 묶음으로 되어있다. 내용을 보건대 묶음·하나는 자아와 세계의 존재인식에 관한 깊은 성찰의 언어이고, 묶음·둘은 시간과 공간 속에 경험되는 세계의 감각적 반응이며, 묶음·셋은 시인과 더불어 사랑으로 얽혀진 혈연들, 묶음·넷은 아직도 뜨거운 가슴의 노래, 묶음·다섯은 신앙시와 동시, 묶음·여섯은 시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시집은 문 시인의 삶과 인생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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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시인의 [거울을 보며]는 거울을 통해 나를 보고 내 목소리를 듣고자 함이다. 거울은 나의 반영이고 거울은 나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진실은 모두 거울로 현상된다. 그러나 거울은 표면만을 드러낼 뿐 그 이면까지 보여주지 못한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 즉 내면까지를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눈빛을 통하여 나의 고독은 자세를 고치게 되고 그 웃음을 통하여 나의 울음을 지우는 변화와 갱생까지도 모색한다. 사실 우리들 일반의 풍속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것도 내면 깊이의 영혼이 아니라 표면에 드러난 감각적 현상만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문 시인은 그 표면의 인식이 아니라 그 내면의 진실, 그 깊은 심층의 자아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찰을 통하여 자아의 새로운 발전을 시도한다. 여기에 시인의 성실성이 있고 진실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거울에 대한 시학은 그만큼 철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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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그는 [길·셋]에서 종착점의 그의 성격을 놀랍게도 시발점이라 했다. 길에 대한 성찰은 결코 공리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적이다. 그는 종착점을 향한 구도의 길을 햇살들, 노래들, 가슴앓이, 좌절된 흔적, 발자국 등으로 은유화했고, 그것은 종착점이자 마침내 시발점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지상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은 다시 별빛이라 하였다. 역시 시적인 결론이다.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이라는 영원회귀의 초월은 결국 별빛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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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시인의 돌섬은 다양한 상징적 언어의 숲으로 가리워져 있어 명쾌하게 감지되지 않는 매력이 있다. 다만 [올 봄에 찾는 나의 시어는]을 통하여 그 진실이 어느정도 드러나고 있다.

나의 노래는 의미를 버리고 소리만 남겨 혹은 파도가 되고 파도에 깨어지는 돌섬이 되고 그 꼭대기에 앉은 갈매기 한 놈의 그 보드란 잔등도 되고 혹은 그 잔등에 묻은 햇볕도 되고 섬 소나무 솔잎 끝에 매어 달린 이슬도 되고 굵은 주름의 섬 바위같은 그런 시어이고 싶다.
- [올 봄에 찾는 나의 시어는]에서

세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돌섬의 정체가 비교적 선명하게 밝혀지고 있다. 첫 연에서는 돌섬 꼭대기에 앉아 몰려오는 멸치떼와 갈매기 그 잔등에 누운 햇볕의 따스한 평화이기를 소망한다. 가장 자연스런 공간에서 평화를 만끽하는 돌섬, 둘째연에서는 사랑이나 소망의 황홀함마저도 부럽지 않은 돌섬, 그리고 인용된 마지막 연에서는 일체의 의미를 거부하고 그냥 순수한 소리가 되고 돌섬이 되고 파도가 되고 햇볕이 되고 이슬이 되는 일체 인위가 배제된, 물아일체, 무위자연, 바로 자연과 어울어지는 순수한 본심이다. 그것이 돌섬이고 시이고 인생이고자하는 시적인 욕망이 바로 돌섬으로 형상화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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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귀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학은 소리를 알아듣는 깨달음의 언어다. 나이 육십이면 모든 말을 알아 듣는다는 이순(耳順)이란 말도 있지만 이는 단지 인격적인 성숙의 측면에서고 필자가 말하는 청음(聽音)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자하는 능동적인 노력과 그 내면의 소리를 깨닫는 발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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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인귀 시인의 시법은 존재의 성찰이라는 진지한 시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한결같이 예리한 투시력과 열정적인 애정으로 사물을 본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사물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경청함으로 완전한 시적 통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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