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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홍영옥


   빈 꽃상여는12시에 다운타운2가와 그랜드 에서 출발하였다.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며 나무관세음 보살을 읆조리며 맨 앞에 걸어 나갔다. 푸른 허공으로 비둘기가 후두둑 높이 날아올랐다. 그 뒤로 할머니의 영정을 가슴에 안은 검은 양복이 뒤따랐다 그의 이마에는8월의 한낮 따가운 햇볕으로 송글송글 땀이 배어났다 새하얀 국화꽃으로 휘감아 덮인 꽃상여는 건장한 남자 여섯 명이 어깨에 올리고 뒤따라갔다.그 뒤로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 수십여 명이 줄지어 당당하게 걸어갔다.점심 시간에 햄버거나 샌드위치라도 먹으러 나온 미국인들은 낯설은 모습에 저건 뭐야 하는 얼굴이었다.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할머니 미안해요- 라는 말을 곱씹었다.보이듯 보이지 않는듯이 홀로 떠있던  낮달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꽃상여를 말끄러미 내려다본다.꽃상여가 서서히 앞뒤로 흔들거리며 상여소리를 구슬프게 울리며 놀이를 시작하자 꽃상여위로 지나가는 뭇사람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에헤~ 에헤 어허넘차 어허~
   불쌍허네  불쌍허네
   이용녀 할머니  불쌍허네
   어어노 어어노 어어 어어노……
   못 가겄네 안 갈라네
   차마 서러워 못 가겄네
   내 설움을 두고는 못 가겄네
   커다란 꽃상여 그림자와 뒤따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거리를 덮어 그늘이 되었다. 고인의 분노는  흔들흔들 너울너울거리는 모습으로 여기저기서 상여소리로 대신했다. 이어 안타까운 죽음을 위한 곡들이 슬픔을 배제한 은은함으로 흘러나왔다. 모두들 고개를 푹 꺾고 말없이 걸었다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오열,일본대사관까지는 불과 두 블락이었다.
   큰길로 접어들자 짖궂은 운전자들이 빵-빵-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꽃상여는 딛는 걸음걸음마다 닿는 눈길마다 지나칠 때 툭,툭 그리움을 헐어내었다
   뼛속 깊숙이 울음을 파묻고 가쁜 숨소리로 몇 십년을 버티다가 나비가 되버린 이용녀할머니.국화꽃 향기로 뒤덮인 꽃상여 행렬이 멈춘 곳은 일본 총영사관 건물 앞 광장. 비어있는 꽃상여 안에서 이용녀 할머니가 돌덩이처럼 부르짖었다 
   “나는 죽어서도 일본 정부가 공식사과 하는 걸 꼭 보고야 말거야!”


   노파가 처음 우리 동네에 이사왔을 때 뭐라 딱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남편은 아마 미국인일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노파는 무명천으로 만든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항상 입고있었다 그녀의 한복 입은 모습은 단아하고 고왔다.그리고 눈빛이 신비로웠다.주름살이야 많았지만 노파가 먼 곳을 바라볼때의 눈빛은 사뭇 보석같다는 느낌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느짓느짓 땋아 길쭉이 틀어올린 쪽진머리에 반짝거리는 은비녀를 질끈 비틀어 꼽았다 그 즈음의 나는 눈빛보다 비녀에 더 관심이 많았다.당초 문양이 양각으로 새겨진 은비녀였다. 노파의 뒤통수에 둥글게 말려 올라간 쪽진 머리는 풍성하고 고아했다.그 풍성한 머리뭉치가 은비녀 하나로 지탱하며 버틴다는 사실이 아슬아슬하게 여겨졌다.위태롭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듯 했다.언젠가 노파의 은비녀를 내게 주고 가리라. 외출이라도 하는 날엔 혼곤함이 짙은 은비녀가 푸른색 옥비녀로 바뀌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녀의 작은 입술은 언제나 진빨강색이었다 얼굴형은 동그랗고 피부색은 약간 가무잡잡만 누런색이지만 어딘가에는 슬픈 표정도 보였다 그녀는 영어로 말하는 걸 좋아했다. 영어는 매우 유창하게 항상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매혹적으로 말했다 노파는 동네공원에서 수많은 새들에게 날마다 먹이를 주었다 가끔은 저 너머로 음울한 분위기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공원 둘레 길에서 산책하다가 마주치면 나를 무척 반가워 했다.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같은 핏줄을 가진 한국 사람이고 같은 여자이며 더구나 한동네에서 같이 더불어 산다는 것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공통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노파는 말수가 적었다. 노파가 무슨 말인가를 하면 나는 그게 마치 점괘처럼 느껴져서 길흉을 판단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신경을 써야했다.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살았던 넓은 집을 경매로 빼앗기고 처음 이 아파트에 이사왔을 때부터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노파가 창밖을 보며 자카란다 꽃잎파리가 다 떨어졌네 라고 무심코 던지는 날에는 더욱 괴로웠다. 
   “꽃잎은 항상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야 내년에 다시  피어 나잖아요.”
   나는 감정을 될 수 있는 대로 숨기기 위해 가물거리는 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그래요. 나도 그 점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죽으면 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겠죠.” 노파는 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그녀는 웃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그녀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저 슬픈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친해졌던 것 같다. “꽃이 참 예쁘죠. 나는 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답니다.”
   그녀는 심심한 여인이었다. 하물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사라진건 아니었다. 오히려 말하지 못한 녹슬음이 쌓이고 쌓여져서 가슴을 두드리며 절규할 때마다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나는 그녀의 슬픔에 녹아 들 때도 있었지만 현실의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더 문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서브프라임사태의 여파인 극심한 불경기로 20여년 동안 하던 가게 문을 닫았고 식료품조차 구입할 마켙비가 없어 동동거리던 날의 연속이었다.그래서 부유하지만 자식이나 피붙이가 한명도 없는 저 노파의 상냥한 딸이 되어 아름다운 중년을 보내는 즐거운 일탈을 상상하기도 했다.그 노파의 시선이 내 몸을 한번 훑고 지나갈 때는 전신에서 오스스 찬 소름이 돋았다 어느 날은 노파 앞에 무릎을 꿇은채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예쁘고 곱게 늙어갈수 있으며 재산을 늘려갈 수 있는지 비법을 알려달라고 사정을 하는 꿈을 꾸다가 깨기도 했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그녀가 내게 내민 손에는 은비녀가 얹혀있었다.

  내가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꽃상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나는 꽃상여 뒤를 따르다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다 그런데를 끌려가셨어요.”
   “이야기를 하면 길어. 아니 짧다면 짧을 수가 있지. 우리 한국인이 볼 때는 너무 길어서 평생 다 하지 못할 이야기지. 하지만 일본이 볼 때는 우린 그저 위안부였어. 그게 다여.”
   노파의 말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바람을 따라 날아가는 그 곳에 낮달이 떠 있다. 그랬다. 낮달이 떠 있는 그날 노파는 그 동안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던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 내듯 조용히 털어 놓기 시작했다.
   내 고향은 경기도 여주, 한없이 넓은 들판이 매우 아름다운 평화로운 동네였어.우리 부모님은 가난이 가득한 농사꾼이라 그 당시엔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지 어머님은 식구 하나라도 줄일 생각으로 큰딸인 나를 남의집살이로 보냈어  어느 날 그 동네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배타고 멀리 가서 간호원 기술배우면 돈을 많이 벌수 있어-
   그때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인데, 옥같이 예쁜 나이 열여섯살이었지.아무 것도 모른채 간호사가 될수있다는 막연한 설렘과 기대로 배를 탔어. 간호원이 되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반짝반짝 빛나는 꿈을 꾸면서 그 사람을 따라간거야. 차가운 달빛을 의지하고 별만 쳐다보면서 16살에 위안소란 불구덩이로 우리 소녀들은 끌려간거야. 하지만 도착한 그곳을 보고는 심상치 않음을 알았지.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은 꾸깃꾸깃 꾸겨져 바다에 던져졌어. 일본 군인들은 으르렁거리며 넘실넘실 밀려왔어. 속적삼은 갈기갈기 찢기고 단속곳 피 낭자하던 그 끝은 비명과 통곡의 지옥이었어.순하고 숫되던 복숭아같은 어린몸의 살갗을 낮밤없이 파헤치고 들쑤셔놓았어.믿기 힘들겠지만 군인들의 숫자는 줄어드는게 아니라 점점 더 늘어나는거야. 1943년 중국 목단강 위안소로 끌려가 ‘똑같은 지옥’에서 생활하던 비슷한 소녀들을 추스르며 고향, 엄마, 아빠를 불러보지만 산속 불구덩이에 쳐넣어지는 위기를 넘기려 일주일을 한끼도 먹지 못했어. 어머니의 젖처럼 포근하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밤이면 고향집의 아늑함과 가족들이 한없이 그리워 숨죽여 울기도 많이 울었어.
   저렇게 낮달이 뜨면 달아 달아 너는 우리 집을 들여다 보고 있겠지. 나는 가도오도 못하는 이런 신세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같은 동족에 의해 차별은 심해졌어. 주위사람들의 쑥덕거림에 늘상 잠들지 못했지. 그 고통의 순간들이 내 삶을 메마르게 했고 그 당시의 지난 일들이 어제 일처럼 사라지지 않더구나. 우리 남은 이들은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단다. 평범하게 생활하던 소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위안소로 끌려가 당했다는 일들. 소녀들이 불 속에 버려지기까지 했다는 것 일본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주름진 위안부 피해자 우리들은 나머지 생도 하염없이 살았어. 손가락 끝에 봉숭아 물을 들이던 시절로  돌려놓을 수 없는 청춘도,몸부림치며 허리꺾여진 무참한 과거인 것이다.

  꽃상여가 드디어 일본 대사관 앞 광장에 도착했다.다운타운 빌딩 숲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한 덩어리씩 날아들곤 했다 잿빛하늘은 못내 흐느끼다 피울음을 쏟아낸다 모두 숨죽여 울먹이고 목놓아 울부짖는 우리의 노래가 일본 대사관앞 광장에 가득 고인다. 나는 인파들에 둘려있는 꽃상여 위에다 은비녀를 넣었다.꽃이 된 당신에게 바치는 8월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거기서 무얼 성취했는가.우리는 한국을 공산주의로 부터 지켰어. 우린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행복했다. 죽어서도 영원한 자유를 사랑한 당신은 죽어서도 산 새 생명이다 영원히 기억되는 사람, 끝내 눈물이 되어버린 사람 심장이 무거워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일본은 다 해결지었다 하고 우리정부는 빠져있고 그러면 어느 나라에 말을 해야 합니까? 내가 당한 거 해결되지 않으면 눈을 감고 못 간다”  할머니의 소낙비 같은 욕설에 그들은 그저 비가 오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다시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할머니의 욕설에는 돌멩이처럼 단단한 진짜 미움이 들었다.그러나 억울하다는 그 욕설은 번번히 표적을 빗나간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도 이 짓을 멈출수 없다. 먹색으로 죽어있는 종군 위안부들의 모든 슬픔을 위하여 내 노래가 누군가의 몸속에 메아리로 들어가 있다가 다시 나와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은 진실 일 것이다. 진실은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법이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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