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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소설 연구 13

2009.03.13 16:53

박영호 조회 수:1292 추천:73

  

작 성  자  :
  박영호 [] [회원정보보기] (2009-02-14 20:45:49, Hits : 8, Vote : 1)  

홈페이지  :
  http://myhome.mijumunhak.com/parkyoungho
제      목  :
  미주 한인 소설 연구 13


1980 년대 한인 영문소설 (하)

김난영 (Ronyoung Kim 1926~1987 )의 《토담》(Clay Wall)
그녀는 1926년 미국 엘에이에서 출생한 이민 2세로 그의 미국명은 글로리아 김(Gloria Kim )이며 한국명은 김난영인데, 1945년 6월 결혼한 뒤의 그의 이름은 글로리아 한(Gloria Hahn)이고, 난영 김(Ronyoung Kim)은 그의 필명이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쌘프란시스코 대학에서 미술사 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 동양미술사 프로그램에 관여 하는 등 많은 동양학에 관계된 문학활동을 했고, 1986년 11월에 소설 《토담》(Clay Wall)을 발표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토담》을 출간한 다음해인 1987년2월 61세로 암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소설 《토담》은 우선 한인 이민 2세에 의해서 쓰여진 최초의 미주 한인 영문소설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고, 소설의 내용은 이민 2세인 작가가 이민 1 세인 그의 부모들의 이민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부모가 낳아서 키운 자신들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한국의 전통적인 한 여인인 자신의 어머나인 혜수(Heasu)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 많은 호평이 쏟아져 나왔고, 그 대표적인 것은 뉴욕 타임즈의 기사로 “한국계 이민자들의 시련을 묘사한 첫 번째 작품으로, 이곳에 서술된 정치적 역사적 장면은 이 소설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독자들은 은밀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소설의 세계에 초대된 것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New York Times, Book review 1987 1,11) 라고 소개 했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지에서는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초창기 한국계 미국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쓴 《토담》이 알렉스 헤일의 베스트셀러 ‘뿌리’의 한국판으로 추천되고 있는 것은 놀만한 일이 아니다.’ (Christian Science Monitor 1986 10 3)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순교자》의 저자 김은국은 “ 김난영은 미국인의 꿈과 인생에서 거의 잊혀지고 무시당해온 영역을 발견하고 탐구함으로써 미국문학의 깊이와 넓이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했다. 그녀는 명쾌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와 명료하고 확실한 문체로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서술했다. 그리고 동족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그들의 삶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부드럽게 속삭인다. 우리는 역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줄곧 이곳에 있어왔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이 작품은 그 해 풀리쳐 문학상 후보작품 1위에 선정되었고, 미국 교육위원회와 공보부가 개최한 출판 박람회에서 선정한 100선 작품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원래 이 소설은 작자가 《Clay Wall》(진흙벽)이라고 썼으나, 한국에서 <진흙벽>이 아닌《토담》 (동문사 김화자 역 1990년)으로 번역 소개됨에 따라 토담으로 바꿔 불리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크게 3부 형식으로 1장에서 3장까지 첫 번째
이야기는 작가의 어머니이며 주인공인 이민 1세 혜수(Heasu )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인 2장에서는 아버지인 이민 1세인 전(Chun)씨의 이야기(4장)이다. 그리고 나머지 3부는 혜수의 딸인 본인 페이(Faye)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이민 일세와 이민 2세가 함께 등장하고 고국과 현지가, 그리고 고국문화와 미국문화가 부딪치는 이중적 구조로 형성되어, 한 가족의 이민의 삶에 대한 고통이 표현된 작품이다. 결국 한 가족의 이민의 삶을 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현지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인 딸의 입장에서 이민 1세들인 두 부모의 이야기와, 이민 2세인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첫째 문제점은 이민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이민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일찍이 현지 아메리카에 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1930 년대 강용흘의『초당』과 『동양선비 서양으로 가다』로 표현한 바 있는데, 이는 이민에 대한 꿈이 아닌, 신세계나 신학문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서양에 대한 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바로 미국계 한인(이민 2세)에 의해서 쓰여진 최초의 이민의 삶과 이민의 꿈을 다룬 영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소설의 미학적 가치나 소설로서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은 우선 제 1부 혜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유복한 이름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농가 출신인 전씨와 결혼을 하고 이민을 왔다. 그의 부부는 초기에는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도 힘들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아들의 입대와 남편의 방종으로 인해 혼자서 가계를 도맡는 등, 전 생애를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힘든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전력을 다하는 그녀의 끈질긴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힘있는 한 여인의 빛나는 삶과 그의 강인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가 있다. 이러한 혜수 여인에 대한 표현을 두고 점을 두고 김난영의 남편인 리차드 한(Richard S. Hahn)은 그의 부인의《토담》소설의 집필을 두고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평을 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나타나는 주제는 한 여인의 이민의 힘든 삶에 대한 극복이다. 이러한 정신의 바탕에는 그녀가 어려서부터 고국 가정에서 지도 받아온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동양의 전통적인 여인의 부덕에서 오는 가치관이다. 이러한 점은 현지에서 태어나 자유사상에 젖어있는 그녀의 자녀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전통작인 관습에 대한 주장이 그녀의 자녀들이 막연하게 현지에 동화되어버리지 않고, 그들 스스로 주체성에 대한 자각을 느끼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녀의 유교적 전통의식의 주장은 하나의 주체성에 대한 고수 내지 확립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은 그의 애국심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주인공인 그녀는 그처럼 어려운 이민의 삶 속에서도 현지에서 결성된 애국독립 단체에 가입해서 기금 마련에 협력하고 현실적으로 교
육계 획에도 참여한다. 이러한 애국심은 그의 두드러진 배일정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한 예로 그의 큰 이들이 현지의 극심한 인종차별로 미국 장교가 되지 못했을 때도 “그래도 원수보다는 미국 사람이 낫다.”는 표현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녀가 그녀의 남편의 사망 후 재혼과정에서도 가까운 양씨가 아닌 조선정치에 관한 저술에 힘쓰는 민씨와 결혼을 하는 점에서도 그녀의 고집스런 애국정산과 주체성을 잘 엿볼 수가 있다. 아무튼 그의 부인 혜수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세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아간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민의 삶의 고통과 실패와는 또 다른 삶의 가치로 이러한 삶에 대한 끈질긴 의지의 자세가 바로 그들의 자녀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제 2부에서는 그녀의 남편인 전(Chun)씨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주제는 아메리카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소설에 나타난 이민의 꿈은 실패로 끝난다. 다만 필자인 두 부모의 딸인 페이가 남자 친구인 윌리 구씨가 해군 병원에서 폐렴으로 죽게 되는 슬픔을 맞지만, 대단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인 단으로부터 온 편지를 받아 읽는 다는 점으로 미래의 꿈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진행형으로 남을 뿐이다.
이러한 아메리카 드림의 실패는 그의 부친인 전(Chun)씨의 이야기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데, 고국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양반인 혜수와 결혼하여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된다. 그러나 늘 당당한 부인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도박꾼의 속임에 넘어가 라스베가스에서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리노의 한 모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다가 끝내 병들어 죽고 만다. 결국 이민 일세인 그의 부친은 이민의 좌절 속에서 죽음으로 그의 이민의 꿈을 마감한다.
이러한 이민의 꿈에 대한 평가는 작자의 남편인 리차드 한(Richard S. Hahn 이민 3세)과 유한모 교수(경기대 영문학 교수)와의 대담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단정적으로 “미국의 꿈은 신화에 불과 합니다.”(American deam is a miyth)라고 말하고, 미국의 꿈은 비극적인 물질에 대한 허상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는 부분적일 뿐 일세 이민자로서는 완전한 꿈의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부인 혜수는 이를 극복하고 세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아간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민 삶의 실패와는 또 다른 삶의 가치로 이러한 삶에 대한 끈질긴 의지가 바로 그들의 자녀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표현된 주제는 혹심한 정신적 고통의 하나인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다. 이러한 점은 그 시대의 모든 이민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이처럼 《토담》의 주제는 이민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쓴 작자 자신은 이러한 구체적인 주제의식 보다는 이를 보다 근원적이고 대국적으로 주제를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의 남편 리차드 한(Richard S. Hahn)과 유한모 교수와의 대담 사이에서 나타난 것으로 그녀의 남편의 말을 빌리면 “아내가 말하고자 한 ‘보편성’은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삶의 내용, 인간의 추구와 희망, 성공과 실패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삶의 전반적인 면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한국어판 서문에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소설의 대단원에 나타난 페이를 들어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표현 하고 있다고 대단원의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김기정(Kichung kim) 교수는 《토담》의 주제에 대해“ 혜수나 그녀의 가족 같은 사람들이 보낸 혹독한 시련의 여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고, 승리에 찬 것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난영은 그의 소설이 발표된 다음해에 죽고 말았지만, 그의 남편인 이민 3 세인 리차드 한(Richard S. Hahn)에 의해 그녀가 쓰고자 했던 속편과 같은《Clay Wall-A Sequel》(1996년 집필)을 써냈다
1922년 네브라스카 주에서 출생한 그는 그녀가 죽자 충격을 받아 한 동안 정신적으로 피폐해서 중국 한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김난영이 토담의 속편을 쓰고자 했던 유지를 받들어 그가 쓰기 시작했는데, 내과의사였던 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대학에 나가 문학 수업을 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야기는 1943년부터 시작된 그녀의 부인인 난영에 대한 회상의 이야기를 통해 부인 가족의 이민사와 함께 그녀의 가족 이민사와도 흡사한 자신 가족의 이민사를 밝히고 있다. 특히 독립투사였던 조부에 대한 이야기로 애국사상을 중점적으로 피력한 점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 토담의 속편 구실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셈이다. 다만 그는 페이가 없는 자신의 삶이 비극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서 그의 이민의 꿈은 결말에 비극적으로 표현된다.
아무튼 소설 《토담》은 이민 2세인 미국계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최초의 영문 소설이라는 점과 함께, 완전한 정통 미주 한인 영문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현지에서 태어난 그리고 한국적인 특색이 있는 곳에서 한국적인 면과 미국적인 양면을 체험한 사람이 쓴 소설이고 이러한 한국인을 중심 주제로 한으로 한국적인 이야기를 씀 순수한 미주한인 영문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Kichung kim 과의 대담에서)
결국 소설 《토담》은 한국인 2세에 의해서 한국인을 주제로 한 현지의 이야기까지 다룬 최초의 한인 영문소설이란 점이 최대의 가치가 될 수 있고, 다음으로 이민의 삶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조명된 이민 소설이라는 점이 특별한 가치다.
이러한 과도기적인 영문 소설의 출현은 다음 90년대에 나타나게 될 많은 미주 한인 아메리칸 영문소설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터 현(Peter Hyun  1960-1993)의 《만세》(Man Sei 1986)
《 》    ≪ ≫    『 』
피터 현은 하와이에서 1906년 출생한 이민 2세이지만, 목사인 그의 부친(Soon Hyun)이 서울 정동교회 목사로 부임함에 따라 그의 부친을 따라 귀국해서 서울에서 성장했고, 그가 17세 되던 해에 다시 하와이로 가족을 따라 이민을 왔다. 따라서 그는 출생은 미국이지만 1,5세나 다름없다. 그는 하와이 Kawai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Indiana DePauw 대학에서 철학과 연극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뉴욕으로 옮아가서 뉴욕 어린이 극장의 디랙토와 유명극장의 무대 책임자를 지냈으며 그 스스로 ‘Studio players in Cambridge, Massachusetts’ 를 설립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때는 군 기관에서 언어관계에 관한 일을 했다. 전쟁 후에는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주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가 은퇴한 후에는 소설쓰기에 전염했는데, 1986년에《만세》(Man Sei)를 발표했고, 다음으로 1993년에《신세계》(In the New World)를 발표했다.
먼저 《만세》(Man Sei 1986)의 작품배경은 그가 어린 시절에 자랐던 시절의 한국 땅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은 자신의 아버지인 주인공 순현(Soon Hyun) 이야기다. 그의 부친은 유명 목사이고 그는 실제 독립운동의 한 각료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이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전후의 국내 사정과 그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 많이 기술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통한 만세사건(삼일 운동)이 중심 스토리이고, 소설의 주제는 어린 시절의 고국에 대한 소개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과 그 구체적인 독립정신과 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삼일 독립운동 이후부터 쓰여온 이전의 일세 작가들의 소설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다음으로 1993년에 두 번째 소설인 《신세계》(IN The New World 1993) 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그가 하와이로 이주하게 된 17세 이후부터 시작해서 그가 임종한 1993년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밝힌 작품으로 ‘독립 만세’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중심 주제 역시 조국에 대한 구국정신과 애국정신이다. 내용은 삼일 운동 이후 그의 가족이 중국으로 망명을 해서 지내던 시절 이국살이의 어려움과 함께 그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에 대한 실제적 사실이 기술되고 있고, 특히 우리 국민이 지니고 있던 피압박 민족으로서의 그 고통과 함께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그 굳은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하나의 소설적 가치보다는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사회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중심 주제는 일종의 피압박민족의 저항 정신이 잘 나타나있는 일종의 저항 문학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어린 시절에 손수 경험했던 고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대한 회상이 잘 나타나 있어 하나의 망향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찍이 유일한의 소설 ‘내 어린 시절의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고국의 토속적인 모습과 그에 대한 언어가 많이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이민 1세 작가들의 의식은 고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현지의 삶에 대한 고통이나 비판 의식은 전혀 찾아볼 길이 없는 것이 일세 작가들 작품의 공통된 특색이라고

Ty Pak (1938- )의 《죄의 대가》(Guilt Payment 1983)
그는 서울법대 졸업 후 영자신문사의 기자생활에 종사하다가 유학으로 미국에 건너와 Bowling GreenState Univercity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1세 작가다. 그는 수학 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 하면서 1983년에 작품 《죄의 대가》(단편집 Guilty Payment)를 발표했고, 1999년에는 단편을 모아 《통곡하는 한국》(단편집 Cry Korea Cry)을 펴냈다.
우선 단편 작품 《죄의 대가》(Guily Pament)를 보면 주인공이 어머니 없이 편부인 자신 슬하에서만 성장한 사춘기의 딸과 사소한 일로 다투는 과정에서, 그는 이제까지 딸에게 감추고 살아온 딸의 친모이며 자신의 아내인 그녀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그는 고국에서 과거 한국전쟁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처와 그녀의 딸인 자신의 딸을 버린 숨은 비밀을 지니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 때 자신은 처와 딸을 버렸으나, 그의 처는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비밀을 지니고 살아온 그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딸의 무리한 요구들을 다 들어 주는 등 잘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죄의 대가》다.
이처럼 이 소설집의 단편들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의 참혹함과 함께 한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 수난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의지가 표현된 작품이다. 아울러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본연의 속성들이 표현되는 작품들이 많아, 이는 일종의 전쟁 심리를 나타낸 일종의 전쟁심리 소설들 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발표한 《통곡하는 한국》(단편집 1999)에서도 역시 모든 작품들이 일찍이 과거 한국에서 경험했던 사실들에 대한 기억이 현지의 삶에 연상되는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과거 고국에서 경험했던 전쟁과 죽음과 이산의 고통과 가난에 대한 상처가 묻어난다. 따라서 내용은 미국 소설이라기보다는 한국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주제 의식은 전쟁이란 비극적 삶의 잔재가 반세기가 지난 이곳에서까지도 살아 남아서 아물지 않고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특히 혼열아인 무무(MooMoo)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낳게 된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혼열아에 대한 비극적 삶이 표현되고 있다. 이는 마치 게올규의 ㅇ한 전쟁소설 25시처럼 전쟁이란 타의에 의해 내동댕이쳐진 불행한 혼열아가 겪는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의 고통스런 삶이 표현된다. 이는 미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과는 또 다른 차별과 혼란이 나타나는 사회적 모순이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인 혼혈아는 조국의 슬픈 역사와 함께 태어난 자신과 같은 비극적 인물에게는 전쟁의 정의나 이념이나 애국도 하등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고 표현하고, 그저 절망과 고통과 슬픔이 있을 뿐이라고 표현된다. 그래서 그는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대단원의 주제는 이민자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고국에서 겪었던 아픔이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도 하나의 상흔으로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김기정(Kichung Kim 1933- )의《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
그는 193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53년 미국에 유학을 왔고, 1960년 UC 버클리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영문학교수이며 또한 비평가이며 번역가인 동시에 소설가다. 오랫동안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었고, 한국 고전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국 고전 문학 소개서’ 향가에서 판소리까지’(1996)를 펴냈다.
그는 도미한지 16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고(1969년) 이때 보고 느낀 고국의 모습을 일찍이 <귀향> (A Home Coming. 1973년)이란 작품으로 펴냈다. 따라서 이 작품은 1970년대에 쓰여진 최초의 1.5세 영문소설이라 할 수 있고, 당시의 고국의 모습을 외국에서 머물다 온 한국인이 표현했다는 점에서 우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작자의 주체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표현되고 있는데, 작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시골 모습과 달리 급변하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이를 마치 미국과 한국 사이의 문화적 거리감처럼 연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남신(Namshin)이란 주인공은 본국인들에게 그가 미국인으로 여겨지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주체성이나 정체성과는 배타적인 것으로, 소설에서 부모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불효스러운 표현 등으로, 고국인들에게는 하나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현지에서 나타나는 세대간의 갈등이나, 고국과 미국과의 문화적 충돌에 대한 하나의 예견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동양과 서양 그리고 1세대와 또 다른 세대 간의 갈등의 세계가 과도기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란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말에 의하면 이 작품은 그가 쓰고자 하는 장편소설의 서두라고 할 수 있고, 다음에 쓰게 되는 작품들과 연계되어 있다. 다음으로 그가 1988년에 발표한 《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America America!)에서는 그는 한 한국 이민자의 이민 생활을 통해서 개인적인 꿈의 성취로 가정이 파괴되고 불행을 맞게 되는 한 가정의 이민 생활을 전개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인 닥터 Cha가 아메리카 꿈을 안고 미국에 유학을 와서 개인적으로 성공을 하지만, 그는 가정적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이기적 꿈의 추구로, 결국 그와 관련된 그의 처나 세 자녀들은 가정적으로 큰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주인공과 그의 부인은 서로 상반된 이중적 심리구조로 나타난다. 부인은 남편의 가정적인 피해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전통적인 동양의 현모양처이고, 그의 남편은 현실적인 가치에만 전염하는 전형적인 허상의 꿈을 지니고 있어서 두 꿈의 세계가 조화되지 못하고, 결국 파괴되고 만다. 결국 이민자들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아메리카 꿈의 실현은 한편으론 이처럼 힘든 삶과 불행 등의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이 설명되고 있는 셈이다.
그의 부인은 그의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동양적인 부덕을 지닌 여인이어서, 남편이 자식들의 곁을 떠난 것도 자신이 남편보다 더 늙고 자신이 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해서라고 체념하고 만다. 결국 남편을 잃게 된 그녀의 죽음으로 치닫게 되리라는 암시를 “I should die, I should die”로 표현하고 있고, 그녀의 딸은 “ No, never…… It’s all because of him.’ (절대 아니에요. 모든 것이 아버지 때문이에요.)라고 그의 부친을 원망한다.
결국 이민으로 인해 그것도 한 개인의 아메리카의 꿈을 위해 한 가정이 파괴되는 모순이 표현되고 있다. 결국 이는 아메리카 드림이란 근본적으로 허황한 것이며 그것이 물질이나 생활향상 등 외형적인 꿈은 이룰 수 있으나 정신적인 면까지 조화된 완전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다음으로 1991년에 《The death of Uncle Chuhon》(주헌 삼촌의 죽음)이란 소설을 펴냈다. 이 작품은 그가 고국 어린 시절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삼촌에 대한 이야기로 그의 삼촌은 글을 쓰며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던 분이고 29살 때 요절했다는 이야기로 그 배경과 이야기는 바로 고국이다. 따라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엮은 것이고 앞서 발표한 작품들과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그의 모든 작품은 그가 이민 1세의 작가라는 점을 우리에게 환기시고 있는 셈이고, 그의 작품의 세계 역시 다른 1 세들의 작품 세계와 크게 다름이 없다.
이처럼 1980년대의 한국계 영문소설은 8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나게 될 이 창래나 노라옥자 캘러 그리고 수잔 최 등의 완전한 한인 영문소설 형태를 위한 마지막 과도기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창래(Chang Rae Lee 1967~)의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1995)
이 창래는 고국에서 의사인 부친 이영용씨와 농구선수 출신인 홍인지씨 사이에서 1965년7월 29일 출생했고, 서울에서 1968년 3살 때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아버지 이영용(65)씨가 68년 미국에서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밟기 위해 도미했을 때 따라와서 미국에서 성장한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이민 1,5세다. 그는 뉴욕 주 웨스트체스터에서 성장했고 예일 대학교 영문과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월가의 주식 분석가로 일하다가 오리건대학교에 옮겨가 문예창작 석사학위(MFA)를 받았고, 그곳 오리건대에서 문예창작과 교수(1993년)로 재직했다. 또한 1998년에 미국 뉴욕시립대 헌터 칼리지로 옮겨와 창작과정 학과장을 지냈고, 다음 2002년에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겨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1995년 처녀작《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를 발표하여 단번에 미국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많은 언론 매체로부터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다. 이로 인해 반즈 앤드 노블스 신인작가상(1996년)과, 미국 펜 문학상, 헤밍웨이재단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작가’(2000년)로도 뽑혔으며 2003년 에는≪Newyorker≫지가 선정한 ‘40세 이하 대표적 미국작가 20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고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지난 1995년 미래사에서 권순만씨의 번역으로 《네이티브 스피커》로 소개되었고, 다시 2005년에 《영원한 이방인》(정영모 역. 미래의 숲 간)이란 제호로 재 출간되었다.
아무튼 이 작품은 대단한 관심을 끈 작품이었는데, 우선 이 작품에 대한 주요 언론 매체들의 평을 들어보면 ‘서정적이면서 신랄하고 명민한 언어로 이민세대와 2세들의 고뇌를 용해시킨 수작으로 코리안 아메리칸과 아시안계 미국인들 사회에 자신들의 뿌리와 영혼을 되찾으려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New York Times)라고 했고, ≪USA TODAY≫에서는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대가의 솜씨가 번득인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결혼 인종, 혈통 사랑으로 이루어진 원시적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다.’ 라고 평하고 있고, 매거진 ≪GO≫에서는“이 창래의 작품은 잘 절제되고 교활하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문체로 쓰여져 독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며, 감탄과 비탄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라고 했고, ≪Cish Jen≫에서는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동을 주는 아주 드문 작품이다. 잘 다듬어지고, 나름대로 계몽적이고, 가슴 속 깊이 비애를 느끼게 하는 이창래의 이 놀라운 데뷔 작품은 미국의 아시아계 문학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고 했고, ‘ 자신감 넘치는 문체와 소설 전체의 리듬 그리고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통찰력 있는 주인공을 통해 말하는 형식을 통해 문학적으로 세련되고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The Details≫에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고, ‘서정적이고 미묘한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가슴에 남는 아련한 우울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뛰어난 세련미와 편안치 않는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 ≪Book List≫ ‘정체성,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문화적 혼돈에 대한 예술적 명상의 세계가 표현되고 있다. (New York) 이처럼 모든 언론의 매체가 빠짐없이 모두가 한결같이 극찬하고 있다. 또한 국내 각 신문사에서도 서평을 통해서 작품의 가치를 밝히는 등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요약 정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어문통권’(어문각)에 쓰인 김미영의 글을 보면 ‘이창래의 소설들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혼합과정과 이주민의 정체성 문제를 통해, 월경적(越境的) 인구이동이 급증하는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주제를 형상화하여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적 관점에서 이문화간의 혼종(混種)과정을 포착해 낸다. 이창래 소설에서 한국은, 억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주체로서의 품위와 저항을 잃지 않는 한국여성의 존재와 상부상조와 권위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가족주의로 표상되는 한국문화를 통해 재현된다. 또한 그는 이문화 융합의 길을 소수민족 내부의 식민성 극복으로 풀어 간다. 구체적으로 이는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갈등을 일방적 동화나 회피로 무화(無化)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 차이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면서, 그 자장(磁場) 속에 증식해 갈 이산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인종이나 문화를 내파(內破)해 가는 데 있다.” (어문각 어문통권 129 –P. 21 김미영)
이처럼 많은 찬사와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평들에서 우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소설로서의 바탕이 되는 문장과 구성에 대한 찬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설에 나타나는 주제의 다의성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여러 주제가 종합적으로 표현된 다의적인 작품이다. 복합적으로 많은 사건이나 내용을 조직적으로 연결시켜 보다 많은 사실을 한꺼번에 무리 없이 소화해낸 작품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이 작품에는 크게는 동서양의 문화적 대립과 함께 미국이라는 다중문화 사회의 남녀 애정문제와 함께 가족간의 유대와 대립, 그리고 부자간의 갈등과 그리고 이중국적자로서의 정체성 문제 및 사회적인 정의와 가치문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각기 병렬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내용의 문제점들이 하나의 문제나 사건으로서의 표현일 뿐, 이의 결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소설이 그 어떠한 사건이나 문제에도 명료한 답이나 결과를 표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 자체가 탐정소설의 형태로 진행되는 탓도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 지니 매력이고 가치가 되고 있다.
이래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주 작자의 의도나 작중인물의 의도를 헤아려 보는 사색에 잠기게 하고,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제시된 많은 문제에 대한 의문으로 생각에 머물게 한다. 이러한 점은 그에 대한 서평들 속에 이 소설이 명상적이라고 말하는 점에서도 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은 읽는 사람의 신분이 원주민이냐 아니면 이민자이냐에 따라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은 이민자인 우리보다 원주민인 그들에게 보다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감동이 갈등과 분노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느끼게 되는 우리와는 또 다른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감동이란, ‘원시적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다.’  ’감탄과 비탄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가슴 속 깊이 비애를 느끼게 하는’’가슴 속에 아련한 우울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편안치 않는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라고 하는 그들의 서평에서 잘 엿볼 수 있듯이 이민자들에 대한 그들의 반성과 함께 새로운 인식으로 옮겨가는 우리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사건의 결말이나 그 가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공간을 남기고 있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첫 번째로 제시되는 것이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갈등과 고통의 세계다. 주인공은 미국이민 1.5세인 헨리 박(Henry Park)이다. 그는 개인 신상정보를 조사하는 일종의 정보 수집 회사에 몸을 담고 탐정과 같은 일에 몰두한다. 이러한 일 자체가 미궁 속을 헤매듯 작품의 서두부터가 뚜렷하게 집히는 이야기가 없지만, 단지 단 하나였던 그의 아들 밋(Mit)이 7살 되던 해 백인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과정에서 비참하게 죽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목에까지 찬 기름 속을 헤매듯 말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가 맡아서 하는 비밀스런 일로 두 사람은 더욱 더 멀어지고, 그의 부인인 릴리아는 이혼 통보서나 다름없는 그의 남편에 대한 17 가지의 평가 항목서를 그에게 남기고 그의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주인공이 비참하거나 고통스런 갈등 같은 구차하게 외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메시지의 내용을 통해서 그녀와의 애정이나 가족문제나 이민자가 겪게 되는 제 특수한 상황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불법 체류자, 황색 위험정서, 이민자. 부친 콤플렉스, 이방인, 반역자, 스파이’ 이러한 그녀가 남긴 평가항목이 간접적으로 그의 의식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소설의 서두는 주로 주인공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상을 통한 기억과 현재가 교차되는데, 이 속에 그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갈등과 고통의 세계가 숨어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를 찾아서 느끼게 하는 세련된 서술이 바로 이 소설이 지닌 표현상의 특색으로 소설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 그녀를 만나게 되었던 일,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던 일들을 회상하고 그의 아들 밋과의 즐거웠던 일을 회상하고, 밋을 잃게 된 쓰라린 고통을 담담하게 감추듯 품고 지나간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민자가,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대를 이어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의 세계인 것이다.
그는 지난 2003년 귀국해서 경기도 고양시 그의 숙부 집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과정에서 이씨는 "경제적으로 풍요했던 점이 어린 내가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가족이 정착한 부촌인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플레슨트빌의 주민 1만 5천여 명 중 동양인은 이씨 가족뿐이었다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친구들은 모두 파란 눈에 금발뿐이었고, 이씨는 쉽게 급우들의 놀림감이 됐다고 말했다. . 이러한 내용은 그의 아들 밋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은 정말 너무 가혹한 것이고, 그의 아들 밋의 죽음은 이 고통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은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들 부모와 그리고 그들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조부모들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겪게 되는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은 끔직한 사고로 그의 아들 밋이 죽게 되는 사건 뒤 일년이 지난 뒤 죽은 밋의 조부인 이민 일세인 그의 부친에 대한 표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가족만을 위해서 비굴하리만치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고, 미국의 유명한 게토지역 한 곳에서 25년 동안이나 채소 과일 장사를 했고, 그 일만을 위해서 그는 전력을 다했다. 결국 그는 이민 일세로서 그가 바라는 바의 재정적인 이민의 꿈을 이룩한 사람이다. 단 그의 부인을 간암으로 일잃지만,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경제적으로 성공을 했고, 그의 2세를 미국사회의 지식인으로 교육시키는데 성공을 했다. 주인공 헨리에게 비친 그의 부친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함으로 그의 가슴에 남아있다. 그가 남긴 행적들은 아주 강한 인상들이고, 이민자 일세들의 꿈과 고통과 신념과 그리고 비굴함까지도 모두가 그대로 묻어있고, 그는 늘 그의 부친과 가벼운 대립관계로 갈등을 느끼고 있었던 점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느끼는 갈등은 그의 부친이 겪는 갈등과는 또 다른 이방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친에 대한 부정과 갈등이 그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작자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표현하지 않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바로 주인공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가 있다.
그의 부친은 상처를 하지만, 재혼은 하지 않고 서울에서 독신 가정부를 데려와 함께 산다. 주인공에게는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가정부 역시 그에게는 또 다른 멀고먼 나라의 이방인이라는 점이다. 더욱이나 미국인인 그의 처의 그녀에 대한 접근과 관심에 단호하게 거부하는 가정부의 동양의 극단적 태도는 당혹스러울 정도이고. 이런 미묘한 대립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녀의 수수께기 같은 인생이나 그 무엇에 대해서도 그녀가 죽어 화장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밝혀지는 것이 없다.
인종간의 갈등에 대한 극단 대립의 한 표본과도 같은 셈이다.
아무튼 다인종과 다인종 문화로 이룩된 뉴욕처럼 한 이민자들의 가족 속에서도 각기 다른 인종간 그리고 세대간에 충돌과 고통과 갈등이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다시 소설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그의 상사라고 할 수 있는 호그랜드의 지시에 따라 시의원 경력을 지닌 교포 일세인 유명인사 존 쾅의 뒷조사를 하기 위한 일에 종사한다. 그는 자신을 위장하고 존 쾅에게 접근하여 모든 정보를 수집하며 이중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존 쾅은 한국인 일세로 이년 전에 시의원에 당선된 유망한 인물이며, 다음 시장선거 출마자로 당에서 추천을 받은 유망한 지도자다. 결국 그는 아주 크게 성공한 이민자들의 우상 같은 이민 일세 인물이다.
주인공은 존 쾅에게 밀착되어 그의 신임을 받게 되고, 그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어 일거수 일투족을 살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가끔 존 쾅에게서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그에게서 아버지와 비슷한 점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동족의 문화나 정서에 대해 좀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길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 상대의 신상과 그의 후원자 명단을 작성하는 일을 남몰래 계속 수행하지만, 그가 작성하는 정보의 내용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또는 그 정보를 앞으로 전달하게 될지 아닐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부인이 긴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함께 잘 지내고 있지만, 그들이 다시 재결합하게 되리라는 구체적 표현이나 거론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가 부인을 위해 그녀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직접 일을 돕는다는 상징적인 이야기들뿐, 그들이 다시 결합하게 되리란 점에 끝내 밝히지 않고 소설이 끝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가 부정적이거나 긍정에 대한 접근 제시뿐 아무런 긍정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점이 바로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인 견해가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민자들의 꿈은 이룩되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존 쾅의 사무실에 폭파 사건이 발생하고 그의 재정 책임자가 죽게 됨으로써 그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예상과 달리 그는 정면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나쁜 여론에 휘말려 몰락의 구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 때 헨리는 그가 나타나서 그의 신념대로 그가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그는 기부금에 관계된 나쁜 소문에 휘말리지만, 끝까지 그는 재기의 기미 없이 수렁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끝까지 그의 생각들이 흔들리지 않고 사건의 추이를 주시한다. 결국 이러한 그의 존 쾅에 대한 이해와 연민은 그가 차츰 찾아가고 있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감자할 수가 있다. 결국 그는 혼란된 기로인 경계에서 차츰 원래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미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인 일 수도 있지만 두 쪽 다 일수도 있고, 두 쪽 다 아닐 수도 있는 그 어느 한 쪽에도 완전하게 속할 수 없는 이중인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소설에서 표현되고 있는 대표적인 내용이다.
끝내 존 쾅은 주인공의 기대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또 다른 불미스런 사고로 종말을 치닫게 된다. 결국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고국으로 추방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로 끝이 난다. 결국 이민자가 이 땅에서 자리 잡고 현지인들 위에 군림하며 솟아 오르기란 거의 무망하다는 부정적인 결과가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이민자들이 보다 성공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견해보다는 부정적인 면의 그 특별한 갈등과 고통의 세계가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 두 번째로 발표된 그의 작품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 1999년) 역시 호평을 받았고, 이로 인해 아니스펠트 울프상과 아시아 아메리카 문학상을 수상 했다.
이 소설의 내용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인 가정에 입양되고 성장해서 일본인 장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외형적으로 성공하게 된 주인공 프랭클린 하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종간의 문제와 제스처적인 그릇된 삶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함께 한국의 종군 위안부들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작자가 미국에 이민와서 살면서 그의 애인과 그의 양녀를 통해서 겪게 되는 사회 규범과 갈등과 양심의 문제 등을 다룬 전반부와, 회상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자신의 과거인 일본군 장교로서 그가 경험했던 종군위안부 문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 이렇게 이야기가 이중 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전쟁 때 일본인 장교로 한국 종군 위안부를 직접 관리했던 과거 속에서 종군위안부인 여인과 사랑에 빠졌으나 끝까지 그녀를 지키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죄책감을 지닌 사람으로 그는 종전 후 미국으로 건너와 일본인 행세를 하며 백인사회에 동화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녀의 백인 애인 메리(Mary)와의 관계도 그렇고, 양녀로 입양한 선이(Sunny)와도 갈등을 빚게 된다. 결국 그가 미국인 행세를 하며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이를 외형적으로는 이루어내지만, 이는 한낱 제스처적인 삶일 뿐, 결국 한낱 경계인으로 밖에 남을 수 없다는 이민자의 삶을 밝히고 있다. 결국 이 소설에서는 하타가 인생을 진실되게 살지 못하고 사회의 규범에만 적응하려는 일종에 제스처적인 삶으로 인해 이러한 삶은 결국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진실과 양심의 문제를 다룬 역사적이고 사회성이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민자가 겪어야 할 인종문제와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인종의 화합 문제를 밝히고 있고, 종군 위안부라는 특수한 역사적 사실을 페미니즘적인 측면으로 조명하여 인간의 진실과 양심의 문제를 다룬 일종의 교훈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발표한 세 번째 작품인《가족》(Aloft. 2004)역시 인종문제와 이민 문제를 통해서 현대 사회의 다인종 가족이 겪는 위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한국 부인과 사별한 60대 이탈리아 계 미국인이 주인공으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로 종전의 소설과는 달리 주인공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설정한 점이 이채롭다. 이 작품 《Aloft》는 평단에서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이러한 점은 어쩌면 주인공이 비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낳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결국 그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모두가 한결같이 다인종 가족을 다루고 있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다인종간의 충돌 등의 가족간의 갈등이나 화합 같은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직은 화해와 화합 쪽 보다는 혼란과 부정적인 견해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많다. 정체성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엄밀히 따지면 1.5세나 2세들의 정체성 문제도 아직도 정체성 확립 쪽보다는 혼란과 갈등과 방황 쪽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 자신의 정체성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그가 고국 방문 시(2003년) 문학강연회에서 했던 말을 보면 “영어로 쓰는 내 작품을 한국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그의 생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영어라는 언어는 하나의 표현 수단인 기호적인 의미이고, 영어 속에 녹아 있는 내용은 전혀 미국적이 아닌 내용이 표현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자로만 문학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또한 그가 수년 전 북 사인회 참석차 L.A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그는 자신을 한국인을 대표하는 한국인 작가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했는데, 이러한 말 역시 필자의 견해로는 마땅치가 않다. 이유는 앞서 말 한 것처럼 그는 코리언 아메리칸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인종적 배경과 함께 그의 작품 역시 한국 이주민이 겪는 갈등의 세계라는 특수성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동양인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 세계가 관심의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보다 더 확고한 정체성(한국인이라는)을 바탕으로 해서 다중문화인으로 조화되어야 하고 세계문화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가 미국인으로서가 아니고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활동해갈 수 있는 것이 그의 창작활동의 진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욱이나 이러한 점은 그 스스로도 한국 기자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한 바가 있는데, 1991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 홍인자씨에 대한 그의 기억은 어머니가 농구부 출신이어서 이씨에게 농구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너는 한국인 이다" 라며 이씨에게 한국을 가르쳤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보내 군대에 가도록 하겠다"며 다그쳤다고 기억하고 있고, "성장할 때에는 혼자만 동떨어진 것 같은 괴로운 현실, 그것과는 반대되는 고향에 대한 막연한 동경 사이에서 이중적인 감정(더블 필링•double feeling)을 많이 느꼈다"고 회고했던 것처럼, 그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이민자에 대한 관심이 그의 문학에 뼈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라 옥자 캘러(Nora Okja Kaller 1965~)의《종군 위안부》(Comfort Woman)
그녀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사이에서 1965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그녀가 세 살 때
미주로 이주해서 두세 곳을 전전하다 그녀가 여섯 살 되던 해에 하와이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하와이 대학에서 영어와 심리학을 전공했고,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USCS)에서 미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나, 다시 유니버시티 산타크루즈(US Santa Curz)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하와이 대학으로 옮겨와 그곳에서 미국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녀는 대학에서 스타인백과 헤밍웨이의 작품에 심취했고, 특히 중국계 소설작가 맥신 홍 킹스톤의 작품을 읽고서 아시아계 소수민족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1993년에 처음으로 단편 <모국어>(Mother Tongue)(Bambridge Press Hawai)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다음《종군 위안부》앞부분이 되고 있다. 이 단편은 그녀가 하와이대학에서 ‘군대위안부’출신인 황금주 할머니의 연설을 듣고 소설을 쓰기 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언론인인 친구에게 이 얘기를 쓰라고 부탁했으나 했으나, 친구가 오히려 ‘당신이 한국인이니, 이 얘기는 당신의 얘기다’라며 그녀에게 권유해서 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이 단편으로 그 해에 소품으로 발표된 최고의 단편작품에 수여되는‘푸쉬카트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 모국어를 서두로 구성해서 1987년에 드디어 《종군 위안부》(Comfort Woman)를 펴냈고, 바로 그 해 ‘Detroit Free Press’가 선정한 ‘97년 최고의 도서’로 뽑히면서 미국 문단의 관심을 끌었고, 이어서 다음해에 ‘아메리칸 북어워드’를 다시 수상하면서 미국문단에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종군 위안부라고 하는 전쟁과 침략 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있었던 특수한 배경의 여성문제를 다룬 점에서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품이라 할 수 있고, 역시 특수한 여건의 여성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통이 표현된 여성 이민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중심 내용은 두 모녀간에 느끼게 되는 세대적 갈등과, 이를 이해와 화해로 연결시키는 두 모녀간의 끈끈한 사랑이 극히 신화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미국문단이 주시하는 대표적인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가 되었고, 그녀의 《종군 위안부》는 미 대학 교재로도 채택되는 등 촉망 받은 동양계 여성작가가 되었다.
먼저 이 작품의 첫째 주제가 되고 있는 종군 위안부에 대한 작자의 견해를 보면 “군대위안부 얘기를 쓰면서 전쟁의 비극을 여성의 눈으로 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군대위안부는 역사적으로 지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지금도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이 많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소설을 우선 페미니즘적 측면에서 먼저 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또 다른 핵심 내용은 작자 자신의 경험을 통한 모녀간의 갈등을 통해 느끼던 문화적 충돌과 세대의 차이와 함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다분히 그의 성장과정에서 느꼈던 그녀 자신의 어머니와 고국의 정서에 대한 부정이나 거부감이 소설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데, 그녀는 이점에 대해 “책에서 베커가 어머니에게 반항을 많이 하는데, 그건 제 청소년기 경험의 반영이에요. 전 그냥 미국인이고 싶었어요. 한국계 미국인인 게 싫었고 부정하려고 했죠. 김치 등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기 싫다고 하고, 저보다 영어를 못하는 엄마에게 '이런 말도 모르느냐' 며 발음을 흉보고 버릇없는 행동을 많이 했죠." 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했던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어머니에게 속죄하고 화해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이 소설은 우선 크게 두 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은 어머니인 베커(Becker)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음은 그녀의 딸인 아키코(Akiko)의 이야기다. 먼저 베커의 이야기는 그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아키코(김효순)가 출생 이전부터의 이야기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고, 모친 아키코의 이야기에 대한 응답으로 딸 베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소설은 아키꼬의 고백 같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아키코는 12세에 큰언니 결혼 지참금 준비로 돈을 받고 팔려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팔려간 곳은 일본군 위안소였고, 그녀는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치욕의 삶을 살게 된다. 다행히 그녀는 이년 뒤 그곳을 탈출하게 되고, 미국 선교 쎈터의 도움과 미국선교사의 도움으로 그와 결혼을 하게되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그러나 남편의 정신적인 학대와 성적 폭력에 시달리며 고통스런 삶을 살며 딸인 베커를 출산한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시절의 그 혹독한 학대와 악몽이 되살아나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고, 이로 인해 어린 딸이던 베커가 정신적 상처를 입는 등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죽고 나자 점성가로 생계를 이어가며 힘들게 살아간다.
이어서 베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쓰라린 기억들을 지니고 있다. 성장해오면서 혼열아로서의 소외감과 갈등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어머니를 원망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가 성장해서 아버지의 5주년 기일에 그녀가 아버지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서두로 하는 모친의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로 인해 그녀는 비로소 어머니의 슬픈 과거와 그 고통을 알게 되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을 회개 하고,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어머니가 죽기 전에 마련해둔 그녀가 남긴 선물을 보고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함께 화해와 사랑의 정신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감동적인 화해와 사랑의 대단원이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미학적으로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미 죽어버린 모친의 영혼과의 화해와 사랑이 영원성으로 빛나며 신화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상징하는 꿈 속에 표현된 불빛의 타래가 두 모녀의 사랑과 영혼을 연결시켜 평화를 느끼게 하는 점이 다시없이 미학적이고 신비하게까지 느끼게 한다. 결국 이 불빛이 두 여인의 영혼을 하나의 영원성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독자들은 그녀가 살아있을 때 이해 받지 못하고 죽은 다음에야 그녀의 딸로부터 이해를 받게 되는 점이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 작품이 보다 감동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이처럼 특별한 숙명적인 환경 속에서 겪어야 했던 두 모녀를 여성의 불행과 고통을 그리고 두 모녀간의 힘든 이국 생활의 고통을 통한 정체성 찾기와 그리고 두 모녀간의 세대적인 갈등과 화해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과 혈연의 끈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실제 작자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저도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부친과 이혼했어요. 저도 애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애들은 나중에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했어요. 그리고 뿌리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아이덴티티가 구체화됐습니다. 내 미들 네임 '옥자' 는 바로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고, 어머니는 내가 갈등을 느낄까 봐 영어만 가르쳐서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고, 한국어를 모르는 것을 굉장히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죠.“하고 모친에게 불손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함께 확고하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인 뿌리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그녀는 2002년에 두 번째 소설인 《여우소녀》(Fox girl)를 펴 냈는데, 평단의 절찬을 받았다.
이 작품 역시 한국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한국 기지촌을 배경으로 하여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불우한 한국여인들의 힘든 삶의 모습을 통해서 전쟁으로 비롯된 한국여인들의 한과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도 그는 여성들의 모녀 관계를 비극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점이 특색으로 표현된 여성문학이라 할 수 있고, 여전히 한국여인들의 비극적 삶을 조명한 페미니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소설 내용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60-1970년대의 한 미군 기지촌을 배경으로 혼혈아인 자녀를 데리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힘겨운 삶을 다룬 작품으로, 두 세대에 이어지는 전쟁 피해 여성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소개되는 일종의 여성문학 소설이다.
이러한 점으로 해서 이 소설이 페미니스트 소설에게만 수여되는 영국의 'Orange Prize'에 후보작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나가면서
이처럼 1980~90년대 한인 영문소설들은 종전의 자전적인 일세 작가들의 작품과는 달리 철저한 이민의 꿈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민의 꿈은 80년대 이전이나 다름없이 1,5세나 2세에서도 거의가 실패로 끝이 난다. 그러나 이에 절망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을 향해 힘있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희망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힘든 이민의 삶을 통해서 겪게 되는 고통과 방황이 그대로 표현되고, 다음으로 표현되는 것이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찾아가게 되는 정체성 문제와 그리고 1.5세나 2세들에 의해서 부모들의 삶과 그리고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자신들과의 관계로 재조명해 보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민의 삶 어디에서나 가장 크게 나타나는 모순이 바로 이 이중적인 구조에 대한 모순이다.
현지문화와 고국문화의 충돌, 부모와 자식의 세대간의 충돌,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과 이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현지에 동화되고 싶은 두 사실이 늘 이율배반적으로 팽배해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구조의 모순과 갈등이 이 시기의 모든 한인 영문소설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이를 상반되는 개념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병행이나 아니면, 화합과 조화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이중문화이고 글로벌문화적인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다음 시기인 2000년대의 한인 영문소설은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조화되는 이중문화인에 대한 그런 창조적인 새로운 소설이 등장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러한 기대는 현재 미 대륙에서 부흥하고 있는 소수민족문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문학형태에 편승해서 손쉽게 이루어지리라 믿고, 이러한 점은 이미 이창래, 노리옥자 켈러, 수잔 최, 단리(DON LEE), 에드 박(Ed Park•) 등이 2000년대에 들어서서 발표한 그들의 신작 소설에서 부분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1980-90년대는 한인 영문소설이 미국문단에 굳게 자리 잡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