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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소설 연구> 12

2008.11.10 19:39

박영호 조회 수:978 추천:49

<미주 한인 소설 연구> 12

1980 년대의 미주 한인 영문소설 (상)
                                                                                               박영호

들어가면서
1930년대부터 등장한 미주 한인 영문소설은 전기했던 것처럼 유일한, 강용흘, 박인덕, 김용익, 김은국 같은 소수의 작가들에 의해서 196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이 발표되어 왔지만, 작가나 작품의 수적인 면에서는 아주 미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그런대로 우리의 문화나 문학을 현지에 소개하는 시대적이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면에서 큰 업적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강용흘이나 김은국 같은 분들은 그들의 작품 발표시기는 각기 다르지만, 당시 뉴욕 서점가에서 각기 비소설 부분과 소설 부분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정도로 현지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점은, 미주 한인 이민 문학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고, 김은국 이외에는 그들의 이름이나 작품이 아직 체계적으로 확실하게 한국 문학사에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이들의 업적이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어 있지 않는 것은, 우선 고국의 재외동포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아직까지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많은 고국 문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아직도 비교적 보수적인 사고에 매어있는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상기한 일세 작가들에 의해 이룩된 미주에서의 문학적인 성과는 1980 년대부터 미국문단에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 미국 소수민족 문학의(Ethnic Minority Fiction)의 하나인 코리언아메리칸 문학((Korean-American Literary )과 함께 한국계 미국소설(Korean-American Fiction)이라는 새로운 문학형태의 태동에 밑거름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미주 한인들의 제2의 미주 이민물결이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초엽부터 시작된 한인의 대량이민이 이루어지고 있던 이 시기에는 국문소설과 함께 한인 영문소설 모두 잠시 공백기를 맞고 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국문소설과 한인 영문소설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1982년에 <딕태>(Dictee. 1982)를 발표한 차학경(Theresa Hack Kyung Cha 1951-1982)을 필두로 1987년 토담(The Wall)을 발표한 이난영(1926-1987 Ron young Kim)등, 수많은 영문소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로써 한국인 일세에 의해서만 쓰여오던 종전의 미주 한인 영문소설이 이 때부터 획기적으로 이민 1.5세나 현지에서 태어난 이 민2세들에게도 바통이 이어지게 됐고, 이들의 작품이 곧바로 현지에서 특별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이창래(Chang Ra Lee)나 수 잔 최(Susan Choy) 그리고 노라 옥자 캘 리(Nora Okra Kelly ) 등, 수 많은 작가들이 등장해서 미주 한인 영문소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을 두고 일찍이 미주 한인 영문 소설과 그 작가에 대한 특별한 연구와 소개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류선모 박사(경기대 영문학)는 ‘한국계 미국소설의 르네상스’ 라는 표현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많은 한인 영문 소설이 등장할 수 있게 된 배경은 우선 대량이민으로 인한 한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상관이 있고, 역시 미국내의 소수민족 문학의 태동과도 상관이 있다 할 것이다.
이 시기의 미국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찾아 새로운 21세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고, 미국의 건국이념과도 같은 자유와 평등사상이 차츰 성숙되어 가고 있었던 시기다. 따라서 이로 인한 소수민족의 권익 도 많이 신장이 되면서 소수민족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 미국 소수민족 문학 운동의 태동과 그 뿌리
미국 소수민족 문학의 형태는 그 근간을 우선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학이라고 하는 흑인문학의 뿌리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의 뿌리는 일찍이 미국 남부지방에서 하나의 지방문학 형식으로 발생하였고, 그 바탕이 인권과 자유 평등사상이 나타나 있어서 그들이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학이 하나의 힘의 결집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20세기 초 미국 남부지방에서 새로운 흑인의 시대(new negro)를 선포했던 랭스턴 퓨즈(rang ton Hughes)의 활동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가 있다, 당시 미국 문학이란 철저하게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앵글로색슨 계통의 백인에 의해서 장악되고 있었고, 이외의 여성이나 흑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작품은 거의가 무시되고 있었고 이는 1950년대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학은 미국의 독립정신에서 비롯된 자유와 평등사상 같은 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민주사상과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것이어서, 큰 저항 없이 꾸준하게 그 가치가 무시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고, 이차대전 이후 급속하게 번지기 시작한 자유 평등 사상에 대한 현실적인 추구와 함께 새롭게 일기 시작한 민권운동 등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 이주한 유럽 유태인들의 특별하고도 독립적인 문학활동에 힘입어, 그들 역시 왕성하게 활동을 했고, 이 시기에 공적을 남긴 작가로는 1950년대 <Native son> 을 발표한 리차드 라잇 (Richard Wright)과 1952년에 <Invisible man>을 발표한 랄프 일리슨(Ralph EIlison,)등이 대표적인 작가이고, 드디어 1980 년대부터는 이름난 개인적인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학이 되었고, 이것이 바로 미국 속의 대표적인 소수민족 문학이다. 이어서 그들의 자유와 평등사상이 다른 모든 소수민족은 물론, 미국 전 사회의 기본이 되는 정신과 이념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문학 발전에 촉매 역할을 했던 점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세계 대전 이후에 유입된 유럽유대인(European Jew)들이 그들의 고유한 유대 언어와 정서와 함께 그들의 종교적 전통을 통해서 나타낸 민족문학 이라는 그들대로의 문학적 성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처럼 문학활동에서 힘을 과시하는 동시에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어 막강한 힘(Ethnic power group)을 이룩하게 됨으로써, 이민자 중에서는 맨 먼저 소수민족 문학이란 형태로 인정 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곁들여서 소수민족문학 활동의 태동에 보다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제창된 뉴프런티어 운동이다. 이의 구체적 사실의 하나로 새로 제정(1965제정 1968년시행)된 이민법을 들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미국에 대량으로 이민이 유입되기 시작한 점이다. 이 때부터 전통적인 아메리칸 흑인 문학과 유태계의 문학이 크게 부흥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아시안계까지 합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소수민족 문화운동은 먼저 교육계에서 등장하기 시작 했는데, 이전까지는 WASP (white-Anglo Saxon Protestant)라고 해서 미국 주류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전통적인 언어, 가치, 행동 및 생활양식 등의 수용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일종의 동화론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로버트 파크(Robert Park. 1950)등은 이러한 동화 작업(Acculturation process)의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방법 까지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80년대 초가까지만 해도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하는 비교적 합리적인 동화론으로, 모든 문화나 언어를 하나로 화합하여 새로운 하나의 문화를 창조해 내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얼핏 보면 이는 아주 그럴싸한 자유 평등사상 같지만, 백인사회로의 일방적 흡수로 소수민족 집단(Racial Minority)은 더욱 소수로 남는 모순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멜팅팟 정신은 문화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구조적으로는 불합리하다는 점 등이 밀튼 고든(Milton Gordon.)에 의해 제시되면서 다시 보다 새로운 동화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80년대에 나타난 아브람슨(Abramson)의 다원주의(Pluralism)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소수민족의 문화나 언어도 미국의 문화와 언어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다원주의는 다만 민족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결과만을 달성했을 뿐, 권리라고 하는 정치적 기득권만은 양보하지 않으려는 이중적 구조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적 다원론(unequalitarian Pluralism)으로 모순점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평등적 다원론(Equalitarian Pluralism)으로 소수 집단들이 문화적 구조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권력까지도 평등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유태인들이 민족 동원으론(Ethnic Mobilization Theory)이라고 하는 이념으로, 그들만의 혈통과 신앙과 고유한 언어를 바탕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며, 동족 서로의 유대와 단결력으로 경쟁력을 지닌 일종의 ‘보호된 집단 적소’(Protected Niches)를 형성하여, 힘을 발휘하고 정치적 권리까지도 완전히 지니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민 1세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이를 교육에 투자하여 2세들로 하여금 정치적 힘까지도 지니게 되는 정치적 동화 방식이 대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노력으로 유태인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집단 세력이 형성되었고, 또한 이러한 결과가 실질적으로 미국 사회에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와 통계로 입증이 되자, 현지 정책 입안자들도 결국 소수민족의 힘을 인정하고 그들이 지향하는 문화 언어 보존에 적극 동조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1950 년대부터 끈질기게 이어온 흑인들의 민권 운동과 흑인 문학자와 소수 민족 문학자들이 이 땅 위에 끈질기게 펼쳐온 평등과 자유 사상 등이 1980년대부터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소수 민족집단이 현지에 동화 적응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동족간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지리적인 민족 기반(Ethnic Base)를 형성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나아가서 이제 모든 소수 민족들은 서로 병행해서 일종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가 협력해서 완전한 권리 행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WASP(white-Anglo Saxon Protestant)라고 하는 종전의 일방적이고 거의 강압적인 동화 정책으로 규격화 된 단일문화(Mono-Cultural Pattern)에서, 이제는 모든 소수 민족이 그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자기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다문화 주의 (Multiculturalism)속에 살게 되었다. 이는 바로 스테인 글래스(Stain Glass)문화나 모자익 문화(Mosaic Culture), 또는 샐러드 볼 문화(Salad Bowl Culture)로 표현 되고 있다. 이는 종전의 백인 문화로  향한 일방적 동화론에 대한 소수민족의 다원주의론 (Pluralism)의 빛나는 승리이며, 자유 평등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미국 건국이념의 실현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병합된 여러 형태의 소수민족 문화의 확산 및 문학활동의 결실로 유태인 소수민족 문학이 크게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1978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사무엘 벨로(Samuel Bellow)를 필두로 버나드 맬러모드(Berard Malamud)와, 필립 로스(Philip Roth)등이 바로 소수민족 문학의 선두 주자로 소수민족문학자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1980 년대에 들어서자 먼저 아프리카아메리칸 소수 민족 문학의 많은 흑인 작가들의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그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와 토니 모리슨(Tony Morrison)이다. 앨리스 워커는 1982년에  <The Color of people>을 발표해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풀리쳐 (Pulitzer)문학상을 수상했소고, 이어서 토니 매리슨은 1988년에 <Beloved>를 발표해서 역시 퓨리쳐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드디어 아프리카아메리칸 문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상(1994년)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이쉬멜 리드(Ishmael Reed)와 트레이 엘리스 (Trey Ellis), 그리고 존 와이드 맨(john Wide man)등 같은 수많은 유명 흑인작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다른 소수 민족문학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아메리카 치카노 문학(서사시 코 Corido 위주 )과 아메리칸 인디언 문학 등이 있고, 이와 함께 아시안 계의 소수민족 작가 소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는데, 이들 소수 민족 작가들의 공통된 내용은 각기 자신들의 나라의 문화 와 역사와 전통 등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하나의 특색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이 현지인들에게 보다 큰 새로운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라별로 각각 중국계 아메리칸, 한국계 아메리칸 등, 소수 민족 국가별로 분류되어 불린다. 아울러 이러한 소수 민족 문학이 현 미국 문단에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수민족에게는 다시 없이 좋은 현상이며 각 소수 민족 문학이 크게 부흥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셈이라 하겠다. 따라서 현지 미국인들의 시각 역시 전통적인 미국문학에서 보다 새로운 미국의 정신을 찾아 보려는 노역이 시작되었고, 차츰 비판적인 시각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소수민족 문학의 열풍에 편승하여, 우리의 문화나 문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우리의 고유한 민족혼까지도 깃든 이중문화의 꽃을 현지에 이룩해서 새로운 세계 문화 창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문학의 세계화의 길이고, 우리의 문학과 문화를 보다 글로벌적으로 계승 발전 시켜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1980 년대의 한국계 미국인 영문소설의 등장
아시안계의 소수민족소설 중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은 바로 중국계의 작가들로 맥신 홍 킹스톤(Maxine Hong Kingston)을 비롯해서 애미 탠(Amy Tan) 등이고, 인도의 바라티 모캐리(Barati Mukerjee)와 필립핀계의 제시카 해지돔(Jessica Hagedom )등도 대표적인 아시안 계 소수민족 작가로 손꼽힌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현지의 삶과 함께 자신들의 고국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정신 세계나 고유한 문화를 표현함으로써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시기인 1980 년대 한국계 작가로는 차학경(1951-1982 Theresa Hak Kyung Cha), 김 난영(1926-1987 Ronyoung Kim) 등이 있고, 그리고 1990 년대는 이창래 (1967-Chang Rae Lee. 예일대 교수)와 수잔 최(1969- Susan Choi), 김기정(Kichung Kim 1933-) 노라 옥자 (Nora Okja Kally) 등 많은 작가가 코리언 아메리칸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들쳐 없고 등장했다.
위의 작가들 중 김기정을 제외하고 모두 1.5 세나 이곳에서 태어난 2, 3세 들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들은 종전의 소설들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선 종전에는 없던 소수 민족소설가(Ethnic Minority Fiction Writer)라는 별도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계 소설가 또한 한국계 미국소설가(Korean-American Fiction Writers)라고 구분하고 있음에 유의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표현은 80년대의 한인영문 소설의 성격을 표현한 말로서, 우선 형태적인 면에서 순수한 미국소설과는 아직도 구분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미국 소설의 엄격한 의미의 정의는 프레드릭 칼 (Fredrick R Karl )의 말처럼 언어와 내용과 작가가 철저하게 미국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Must became America’s Fictions” - Fredrick R Karl) 이는 상대적으로 이 시기의 영문 소설들의 복잡한 작가들을 구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적인 작가란 앨레인 킴(Elaine H Kim U.C 버클리)씨나 소설가 김 기정(Kichung Kim U.C Berkeley 문학박사 1960)씨의 지적처럼,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로서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과 이와 비슷한 경우의 작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영문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해도 일세들에 의해 현지가 아닌 한국의 이야기가 표현된 종전의 소설은 미국 소설일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비록 영문으로 쓰여졌지만 미국소설이 아닌 차라리 한국소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점은 결국 소설의 작가적 신분에 의해서 미국 영문 소설의 성격이 우선 구분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3) 1980 년대의 한인 영문 소설의 특색
가) 형태적인 특색
  이 시기의 미주 한인 영문 소설은 종전과는 달리 무척 다양한 형태의 소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종전과 같이 가족이나 한 개인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는 자전적 혹은 전기적인 형태의 이야기가 여전히 많이 포함되고 있으나, 이는 반드시 현지의 이야기를 위한 전제되는 내용인 점이 종전과 다르고, 이와 달리 완전한 창조적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현대 소설 형태의 모습을 지닌 작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찍이 고국에서도 보기 힘든 포스트 모던이즘의 형태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의 한인 이민이 대량으로 이루어진 탓과 이민의 삶이라고 하는 또 다른 복잡한 삶의 구조에서 비롯된 복잡한 갈등의 세계가 좀더 복잡하게 표현된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시기의 소설은 근대적인 요소와 현대, 그리고 초현대적인 전위적인 소설 형태까지 포함해서 무척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 그 다양성이 바로 이 시기의 미주 한인 소설의 형태적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주제적 특색
다음으로 이 시기에 나타난 영문 소설들의 내용은 종전의 영문 소설들과는 크게 다르게 철저한 이민 문학의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미주 한인이 1900년 초엽부터 이곳에 옮겨와 살고 있었지만, 실제 완전한 이민을 목적으로 옮겨온 것은 1970년대부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찍이 1910년대의 국문소설이나 강용흘의 소설 속에도 미국의 꿈이나 현지에 대한 관심이 표현되지만 이 시기에 나타나는 꿈은 아메리카 드림과는 내용이 다르다. 그 때의 꿈은 궁극적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한 꿈이고, 이를 위해 서구의 위대한 힘을 배우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관심과, 단순한 경제적 금의환향이 꿈이지만, 이 시기의 소설에 나타나는 꿈은 말 그대로 이민의 꿈이고 아메리카의 드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소설이 이민의 삶이나 이민의 꿈을 직접 주제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음 두 번째의 주제적 특색은 애국정신의 표현이다. 이러한 애국심은 종전의 일세 작가들의 대표적 주제였지만, 이 시기의 소설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것은 이 시기의 소설들이 바로 과도기적인 시기에 쓰인 소설들이고, 그 시대적 배경이 1세 작가들과 똑같이 조국의 일제 강점기 시대나 아니면 광복 이후의 혼란된 시기가 표현되고, 이것이 현지의 모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역시 이 시기의 영문소설이 완전한 미국소설이 되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다음 세 번째의 주제상의 특색은 이민의 삶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갈등의 세계다. 이러한 갈등은 꽤 다양하게 나타난다. 동양의 가치와 서양의 가치의 대립, 이로 인한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그리고 1.5 세나 2 세들이 안팎으로 부딪치는 이중적 갈등, 그리고 극심한 인종차별에서 오는 실망감 등, 실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방황과 좌절을 낳기도 하는 등, 이민자들의 고통과 한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점은 1세 이민자들에게 더욱 극심하기 나타나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1세들의 아메리카의 꿈은 모두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것을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꿈을 향해 힘있게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이민 1세들이 지닌 내일을 위한 빛나는 희생이고, 힘든 이민의 삶에 대한  가치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네 번째 주제상의 특색은 이러한 갈등과 방황을 통해 찾아가게는 주체성과 정체성에 대한 표현이다.  여기에서 주체성과 정체성의 차이는, 우선 주체성은 이민 일세들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전통이나 가치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고, 이와 달리 정체성은  갈등과 방황 속에서 올바른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성에 대한 내용은 주로 애국정신과 상관된 1세들의 정신세계에서 많이 나타나고,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주로 1.5세와 2세들의 작품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주로 소수민족 문학의 중심 재제(材題)로 인정받고 있고, 이러한 점이 소수민족 문학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가 거의 모든 소수 민족문학 소설이나 한인 영문소설에 공통적인 주제로 나타나기 마련인 셈이다.
다음으로 다섯 번째의 중심 주제는 페미니즘에 대한 주창이다.
우선 이 시기의 작가들이 여성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점이 이를 짐작하게 하고 있는데, 그 주요작가들이 차학경, 난영 김, 노라 옥자 캘러, 수잔 최, 등이다. 이들 모두는 여성의 권익과 평등, 그리고 부당한 역사적 수난과 고통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힘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차학경의 <딕테> 속에 나타나는 여인들을 통한 이야기와, 다음으로 김난영의 <토담>에서 역시 이민의 삶을 극복해가는 한 여인의 동양적 부덕에 대한 삶의 표현과, 노라 옥자의 종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고발 표현 등이다. 이러한 여성작가들에 의한 페미니즘 운동은 일찍이 1950년대의 박인덕 여사의 영문 소설 <구월의 원숭이>속에서 그 맥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 )작가적 특색
  또한 이 시기 소설의 특색의 하나가 바로 다양한 형태의 작가군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첫째가 한국계 미국소설가(Korean-American Fiction Writter)라고 하는 종전의 일세 작가와 똑 같은 1세 작가군인데, 그 대표적인 작가가 김기정(Kichung Kim 1933-)과 Ty Pak(1938- ) 이다. 김기정은 20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온 작가이고, Ty Pak은 서울에서 영자신문 기자 생활을 하다가 도미한 작가다. 이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우선 그들이 함께 일세 작가들이고 그들의 작품 주인공 모두가 이민 일세인 자신과 자신의 부모들인 이민 일세들이라 점이 특색이다.
다음 그룹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Korean American Writer) 라고 하는 그룹으로, 이들은 다시 이민 1.5세나 이민 2,3 세 작가 군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먼저 이민 1. 5세들은 그들이 교육을 마치기 이전인 어린 시절에 부모를 따라 이민 온 세대들로, 이들은 여러 이민 세대들 중에서 가장 애매하고 불편한 의식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세대다. 이들은 고국에서 태어났으나 주요 교육을 미국에서 마쳐 영어에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이라는 내적 사회와 현지사회라는 외적 사회 사이에서 이중 문화와 이중언어의 혼란을 겪으면서 자란 하나의 경계인들 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 세계에서는 이러한 문화에 대한 갈등과 함께 민족 정체성의 (Ethnical identity)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미국 시민권자 들이고, 그들의 의식 구조는 한국인이라기 보다는 보다 미국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종국에는 현지에로 동화되어가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구세계인 고국에서 멀어져 간다. 이러한 1.5세의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차 학경(Theresa Hak Kyung Cha)과 이 창래(hang Ra Lee) 노라 옥자 캘리(Nora Okja Kally ) 등이다.
다음은 미국에서 태어난 완전한 미국시민인 이민 2세 및 3세의 작가군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태어난 완전한 미국시민이어서 그들의 의식 구조는 거의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들은 한국어를 거의 모른다. 따라서 이들의 영문 소설에서는 1세들이나 1.5세의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게,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과 함께 자신에 관계된 현실적인 문제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조부모나 부모에 대한 야기가 추적 형태로 나타나기 십상이고, 그래서 역사에 대한 재조명 내지 비판의식이 표현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또한 자신들이 외부에서 겪었던 인종적 차별과 갈등의 세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처럼 자신들의 뿌리인 조상들에 대한 기억이나 힘들게 살았던 초기 이민자들의 행적에 대한 관심을 조명하려는 노력의 대표적인 작가는 김 난영(1926-1987 Ronyoung Kim)과 수잔 최(1969- Susan Choi) 등이다.
결국 이들은 전통적인 우리의 문화적 가치를 완전한 영문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작가들이어서, 미주 한인 영문 소설의 미래는 이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현재까지 한인 영문소설의 중심 주제가 현재의 이민의 삶이나 민족 정체성에 있었던 점이, 앞으로는 그 주제가 다문화나 이중문화에 대한 글로벌적인 내용으로 그 중심이 옮겨 가리라는 판단에서다.  
다행하게도 1970년대 이후의 2세들은 부모들의 모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모국어를 많이 익히고 있고, 그리고 고국의 국력이 꾸준히 신장되고 있는 점은 미주 영문소설을 위해서는 퍽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민 1세들에 의한 제 1기의 한인 영문소설들이 미주 한인영문 소설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면, 제 2기인 1980년대의 제 1.5세들은 이를 계승한 미주 한인 소설의 확인이라 할 수 있고, 이민 2, 3세들에 의한 제 3기인 1990년대 이후의 시기는 미주 한인 영문 소설이 크게 빛을 보게 된 일종의 미주 한인 소설의 정착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1980년대의 작 가 및 작품 연구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의 딕태(Dictee 1982)
그녀는 우리 나라에서보다 미국에서 먼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사진작가이며, 설치미술가이며, 행위예술가이자 프로듀서일 뿐 아니라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녀는 일종의 종합예술가라고 할 수 있고, 그녀는 그녀의 작품이 일찍이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한국계 작가로는 백남준 이후 두 번째로 전시회를 갖기도 했던 유명한 작가다.  그처럼 다재 다능한 그녀는 소설 <딕테>를 출간한 직후 1882년 11월 5일 그의 아파트 지하차고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총격을 받아 31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생전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죽은 뒤 그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십여 년이 지난 뒤에는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부친 차형상씨와 모친 허영순 씨의 5남매 중 셋째로 1951년 3월 4일 부산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부모는 일찍이 만주 용정에서 살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전쟁 중 부산으로 내려와 살았으나, 그녀가 10살 되던 해인 1962년에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가족은 1964년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고 그녀는 가톨릭 계통의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불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했으며, 이곳에서의 교육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가톨릭 종교의 감화 속에서 성장했으며, 불어와 신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녀의 작품에도 기도문과 가톨릭 교리문답송 등 신앙적인 내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가톨릭 재단 사립대학인 샌프란시스코 대학(university of Sanfrancisco)에 입학했으나 곧바로 UC Berkeley 로 학교를 옮겨 미술과 불문학과 비교문학 그리고 영화와 공예 등 많은 학과를 함께 수강했다. 이처럼 그녀는 여러 예술분야를 함께 공부했고, 한국의 현대시는 물론 유럽의 많은 작가들에 대한 책을 탐독했다.  버클리 대학에서 1973년 비교문학사 (BA)학위를 받은 그녀는 다시 버클리 대학 부속 시설인 영화 예술관 안내원으로 일하면서 영화의 전반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서 1975년에 미술학사 학위를 받고 곧바로 대학원과정을 시작했다. 이 때 그녀는 벌써 ‘입에서 입으로’(8분 길이) 라는 영화를 제작해서’아이즈너’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다음해 1976년에 프랑스로 건너가서 일년 동안 많은 ‘미국영화 연구소’ 에서 공부하면서 수많은 유명 영화 이론가들과 교우하면서 영화 전반에 대한 공부를 했다.
다음해에 그녀는 버클리 대학에서 자신의 사진작품으로 ‘스튜어틑 멕캐나 넬슨 기념상’(1977년) 을 수상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국에 귀국해서 2년간 머물다가 1980년에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녀는 Tanam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수필과 논문을 모아 ‘Apparatus’를 출간했고, 1981년 다시 귀국해서 남동생과 함께 ‘몽고로부터의 하얀 먼지’라는 영화를 촬영했다.
다음해인 1882 년 다시 도미해서 뉴욕에서 5월 리차드 반즈(Richard Barners)와 결혼을 했고, 이어서 <딕테>(Dictee.Tanam Press, 1982)를 출간 했으나, 바로 사흘 뒤 그녀는 애석하게도 그녀의 아파트에서 피살(1882 11. 5) 당했다.
그녀가 죽고 난 뒤 그녀를 기리기 위한 그녀 가족의 부단한 노력으로 1991년에 그녀의 출신 학교인 UC버클리 대학에서 대학부설로 그녀를 기리기 위한 ‘버클리 미술관 / ‘태평양 필름 아카이브’에 ‘차학경 아카이브’란 개인 기념관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다음해인 1992년 뉴욕의 위트니 미술관에서 그녀의 회고전<관객의 꿈>이 열렸고, 다시 2001년에 UC 버클리 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리고 이어서 두 해 동안 미국 내 5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회가 열렸었고, 고국에서도 서울(쌈지스 페이스 1993 9월5일~10월26일)에서 국제 심포지엄과, 연극 <말하는 여자>와 흑백 비디오 <입에서 입으로 >(1975)등이 전시 공연되었고 지방에도 순회공연이 열렸었다.
이처럼 그녀는 미국에서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비데오 영상, 설치미술, 사진작가 및 영화 제작 작가로 먼저 알려져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비데오 영상 작품은 <눈먼 목소리>(Aveugle Voix•1975) <비데오엠>(Videoeme•1976)< 망명자>(Exilee•1980)등인데, 그녀는 이들의 작품을 통해 언어 유희를 통한 모국어 상실과 그 고통을 표현하고, 제목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복합 구성하는 등 이민자의 언어를 통한 의식 세계의 혹심한 고통 등을 언어의 다의성이나 상징성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특히 그의 대표적 퍼포먼스인 <입에서 입으로>(1975)의 비데오 작품에서는 한글 발음시의 입술의 이미지와 물 흐르는 소리의 변화에 따른 표현을 통해서 모국어 상실에 대한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작품 <딕테>는 먼저 뉴욕에서 출간(1982년 11월 Tanam Press)되었으나 1995년 UC Berkeley(Third Woman Press)에서 재차 출간되었고, 2001년에 다시 출간(UC Press) 되었다. 고국에서는 1997년 최초의 번역판(김경년 역, 어문각)이 나왔고 2003년에 역시 재출간 되었다. 또한 극단 미토스가 (오경숙 대표)<딕테>를 각색한<말하는 여자>를 연극으로 상연(1999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딕테>가 출간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빛을 보게 된 것은 그 내용의 난해성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별로 읽히지 않았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평론가들에게는 평론가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텍스트적인 가차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 대학과 국내 대학의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포스트 모던이즘에 대한 덱스트 북으로 많이 쓰이고 있고, 한동안 평론가들에 의해 미주 10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딕테>는 일반 소설처럼 일정한 스토리가 없고, 일기나 메모, 그리고 애송시나 고해송 교리문답, 그리고 사진, 한자 문자, 인체 조직도와 음성기관 도해 등, 실로 잡다하게 실려있어 얼핏 보기에는 소설이라고 보기에 힘들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의 내용에 줄거리가 있고 그 핵심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나의 주제는 언어에 관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중심 주제는 언어에 대한 것으로, 자신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모든 것을 언어 구조로 재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그 주제는 자신의 근원인 모국어 상실에 대한 고통과 새로운 언어에 대한 강압과 혼란이 표현된 것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얽혀있는 사실들이 언어적 구조로 재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적인 것이 으뜸 주제라고 보면 이는 분명 소설이고, 언어예술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이처럼 일정한 소설문학 형태에서 벗어난 모든 장르의 문학과 미술 역사 그리고 개인의 의식 형태가 혼합되어 있어, 내용 역시 한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닌 보다 많은 인물에 관한 역사적 시대적 사회적 종교적인 이야기가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소설의 특색이 되고 있고,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자신의 이민의 삶 속에서 언어를 통한 그 고통과 그로부터의 탈출을 위해서 가능한 자신의 의식 속에 기억된 모든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이처럼 그의 예술은 장르에 개의치 않고 모두 장르가 그와 함께 숨쉬면서, 언어와 음성 시각 행동이 모두 함께 혼용 표현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종합예술과는 그 형태가 또 다른 장르 경계의 파괴로 시작되는 언어의 반란과도 같은 것으로,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소설이 현대 포스트모던이즘의 문학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소설 <딕테>(DICTEE)에 대한 평을 들어보면 "성경과 같아서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을 만큼 다원적이다." (UC 버클리 김경년 교수)라고 말하는가 하면, “90년대 이후로 많은 평론가들이 현대의 불확정성, 분열, 그리고 바뀌기 쉬운 복합적인 정체성 사이에서 자유로운 태도를 견지하는 포스트모던적인 개념과 <딕테>의 유사성에 매혹되어 왔다.”(일레인 김. 산호세 대학)고 극찬하고 있다. 또한 국내 평론가들은 역시 “그녀의 글쓰기가 미주 한인문학의 주류를 이루던 자서전적 작품과는 구별되는 주요 이유로 그가 미주 한인문학과 한국 이산문학의 지평을 비약적으로 넓혀놨다.” 라고 평가하고 있고, “그 단어의 뜻이 받아쓰기, 지시, 명령을 나타내듯이 이 작품에 나타나 있는 이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불안과,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리적 욕망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딕테>의 제목에서 의미하듯 한국인이라고 하는 한 유색인의 언어에 대한 받아쓰기이자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현지 언어에 대한 받아쓰기의 거부인 셈이다."(국민일보 서평)라고 말하는 등 실로 수없이 많은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많은 비평가들이 한결같이 그녀의 <딕테>에 표현된 한 이민자의 언어적 문제를 통한 정체성에 대한 그 주제적 가치와 형식을 초월한 전위적인 구성과 표현 방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딕테>는 그녀가 1979년 17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고, 종전 미국에서 느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이민자의 혼란과 방황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이 시기의 귀향에서 느낀 또 다른 좌절과 분산되고 혼란된 언어에 대한 문제와, 이와 관련된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결국 <딕테>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민자가 겪는 혼란과 갈등의 세계가 언어라는 개인적인 특수한 감각적 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장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딕테>의 핵심 소제는 언어에 관한 것이고, 이를 통해서 언어 샤머니즘과 그리고 여성주의와 애국주의와 고전주의, 그리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등 실로 다양한 주제를 표방하고 있다.

이제 <딕테> 내용의 구성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그리스 시인과 아홉 사람의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시신(詩神 )들 이름으로 그들이 주관하는 아홉 가지 내용 등 총 열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로 서두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먼저 최초의 여성운동가인 희랍 여류 시인 ‘사포(Soppho A.D 6 세기) 의 글쓰기에 대한 간구를 인용함으로 해서 그녀 자신의 언어에 대한 감각의 문을 열고자 하는 일종의 제식(祭典)의 접신(接神)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실제 그 스스로도 무즈들에게 자신도 그들처럼 신화 속의 언어처럼 표현되어 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내장된 받아쓰기 같은 불어 단어와 영어 단어와 문장들을 단락으로 나누어 적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의식 속에 잠재된 언어의 억압과 충돌 내지 혼란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표현은 모두 ‘그녀’ 라고 하는 자신을 대신하는 ‘말하는 여자’를 통해서 표현된다. 수많은 받아쓰기의 문장이나 단어에 대한 번역, 연습 등, 언어에 대한 글들이 단락 형태로 표현되고 있어서, 이는 작가 자신의 언어에 대한 과거의 기억과 그리고 오늘의 혼란과 고통과 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주제는 자연 받아쓰기를 통한 언어의 문제가 중심이고 이것이 글 전체의 핵심 주제가 되고 있다.  
두 번째의 말하기인 클레오 역사(Clio History)는 역사와 여성과 애국정신을 말하고 있는데, 첫 페이지에 유관순의 사진, 두 번째 페이지에 유관순 출생기록, 그리고 男과 女의 대문자 한문 그리고 유관순의 빛나는 애국에 의한 순국과 잔 다르크와 안중근의 이름이 거명되고, 일제의 음모에 대한 폭로와 미대통령에게 보냈던 탄원서가 쓰여 있고 다음으로 일본의 만행이 서술되고 있고, 그리고 일본군의 동학군 학살장면 사진이 끝을 맺고 있다.
결국 이러한 내용은 유관순의 순국의 행적을 통한 애국주의와 여성주의, 그리고 탈 식민주의 등에 대한 고발과 문제 제기 등이 표현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의 ‘칼리오페 서사시’(Caliope Epic Poetry)에서는 어머니 사진을 첫 페이지에 싣고 어머니를 통해서 망국의 슬픔과 그 슬픔으로 조국을 떠나온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겪어야 하는 삼국의 말을 하면서 살아야 했던 만국과 이민의 살의 고통을 밝히고, 민족의 애환이 젖어있는 민요 봉선화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조국의 모든 여인들의 슬픔과 기다림을 나타내고 있다. 父와 母의 한자어 페이지가 있고, 계속해서 신체적으로 연약한 어머니의 고달픈 이주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 자신이 그녀 어머니에게 말하는 서간문 형식의 글로 표현되고 있다. 서사적인 내용은 서사적이지만 문장은 하나의 서정문처럼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외할머니 사진을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 결국 어머니가 겪었던 망국과 유랑과의 슬픔과 이민에서 오는 갈등과 고통을 조명하고, 민족의 역사적 수난과 혼란을 통해서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한국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여인으로서의 또 다른 고통과 슬픔이 표현되고 있다.
네 번째 우라니아 천문학(Urania Astronomy )에서는 우리의 인체학과 음성기관의 도해를 통해서 우리의 신체와 음성 언어는 우리의 과거가 기록된 것이고, 그것이 언어라는 형태로 기호화 되어 표현된다는 극히 물리적인 신체와 정신의 구조가 언어적인 측면에서 표현되고 있는 샘이고, 비교적 여러 연으로 길게 쓰여진 서사시가 표현되고 있고 이야기는 거의가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체의 음성기관에 대한 도해와 설명이 표현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언어적 구조에 의해서 기억되고 표현되고, 인의 감정도 언어적 구조에 의해 기쁨도 고통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언어를 인간 생물학적 측면에서 설명하려는 노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멜 포모네 비극’(Melpomone Tragedy)에서는 남북 분단의 비극을 통해서 이어지는 역사적인 현실을 어머니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녀가 18년 만에 귀국(1979)을 해서 그녀가 서울 거리에서 직접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보고, 어머니가 겪은 한국전쟁과 자신이 어렸을 때(7세) 보았던 4.19 를 연상해 가면서 역사적인 측면에서의 고국의 비극적인 모습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적고 있다.
첫 페이지에 휴전선이 그어진 조국의 분단된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이는 조국의 힘든 역사에 대한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적고 있는데, 결국 조국의 힘든 역사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자신에게 이어지는 그 혼란과 아픔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에라토 연애시’(Erato Love Poetry)에서는 잔 다르크와 성 테레사 수녀인 듯한 사진이 처음과 끝에 실려 있고, 주로 여자에 대한 그년의 산문이 적혀있다. 이곳에서의 특색은 우선 극장 영상에 대한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선 하얀 백지의 공간을 틈틈이 사용하여 영상의 흑백 효과를 지면에 활용하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이러한 기법에서 우리는 그녀의 놀라운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여성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 표현하고 있는데, 여성의 입장에서 본 연애와 사랑, 그리고 남녀의 결혼과 결혼 후의 여자의 의식세계 등이 설명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의 위치에 대한 표현을 통해서 억압된 여성의 권익과 평등에 대한 관심을 표현 하고 있고, 특히 프랑스의 성 테레사의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나타낸 기도문을 자신의 여인에 대한 가치관을 간접으로 표명하기도 한다. 결국 ‘에라토 연애시’에서는 여성에 대한 페미니즘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엘리테르 서정시’(Elitere Lyrie poetry)에서는 삼일운동 당시 광화문 주변에 가득 모여있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시작되며, 내용 전체가 하나의 서사시로 표현되고 있고, 중심 내용은 억압된 언어의 고통을 통해 민족의 고통을 말하고 이에 대한 출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흰색이라는 민족의 상징적 빛깔과, 그리고 여인의 순결을 표현 상징하는 등, 억압된 언어와 에 대한 출구를 찾아 헤매는 의식 세계가 극히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민족과 여성과 그리고 애국과 언어의 속박 들이 표현되고 있다.
‘탈리아 희극’(Thalia Comedy)에서는 언어와 기억의 상관관계가 주로 표현되고 있다. 옛 기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옛 타이핑의 편지 사본과, 옛 필기체 서간문의 사진 등이 실려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세 개의 기억이라는 글을 통해서 여인의 순진한 어리석음과 사랑, 그리고 여인의 순결과 결혼과 그리고 여인들만이 겪는 환희 다음의 평범한 속성, 그리고 모성 등에 대한 자신들도 모르게 내장되어있는 은밀한 감정의 세계를 언어를 통해 표현한다. 이를 표현하는 언어는 기억을 스스로 표현하려는 자율성으로 표현된 것이고, 그래서 말하는 사람과 언어가 각기 다를 수도 있는 하나의 모순일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희극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에서 이러한 표현이 작자의 언어에 대한 감각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텔프시코레 ‘(Terpsichre Choral Dance)합창무용은 언어에 대한 보다 자연적이고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세계를 동양의 성리학이나 역학적 사상과 연기내지 도교적인 사상을 통해서 표현 하고 있다. 또한 언어를 보다 밝은 음악적이고 율동적이고 생동적 측면으로 밝게 표현함과 동시에 파괴나 단절과 이동의 아픔으로 나타내는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역시 작자의 언어에 대한 열망이나 그리고 또 다른 단절 등이 표현되고, 이로 인한 고통스런 의식세계가 함께 표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폴림니아 ‘(Polymnia Sacred Poetry)성시에서는 고국의 서정적인 우물가의 한 아름다운 이야기와 창문가의 어린이와 그의 눈을 통해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과 미래를 향한 꿈을 통해서 우리의 토속적이고 동양적인 고유한 전통미를 언어를 통해서 보다 미학적이고 신화적인 영원성으로 승화시켜 보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첫 이야기인 우물가의 이야기는 우리민족의 정적이고 그늘처럼 깊은 민족의 얼과 한을 미학적 극치로 끌어올린 아름다운 글이다. 수려해서 수려한 문장이 감동적이고, 이러한 점이 그녀의 난해성이 고도로 의도된 그녀만의 특별한 기법임을 설명하고 있는 샘이다.
두 번째의 이야기는 창문과 침묵과 그리고 밧줄과 종소리라는 언어들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과 우리의 미래에 대한 꿈을 보다 동양 철학적이고 심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딕테>의 내용은 이 작품이 소설에만 국한된 글이 아닌, 모든 예술형태가 함께 녹아 있는 하나의 종합 예술작품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우선 그 구성이나 표현기법과 그 전개 방식이 포스트모던 이즘의 경전처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문장으로만 구성되는 소설에 사진은 물론 백지 지면을 이용한 명암 효과와 필기, 도해 도면, 붓글씨, 카피 등 보다 직접적이고 복합적인 자료를 삽입하고 있고, 그 내용 역시 시 소설 산문 의 혼합 사용과, 일기, 메모, 기도, 문답송 등 다양한 문장과 활자 역시 바로 쓰기 뉘여 쓰기, 서예글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구성 기법이 이 작품의 특별한 가치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딕테>는 언어 예술의 최전위적인 작품으로 새로운 문학 형태에 대한 텍스트적 가치가 있다. 이러한 점으로 문학 비평뿐만 아니라 역사 예술 및 언어학과 그리고 정분석학 등 많은 분야에서 비평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딕테>는 언어를 통한 개인 의식 구조의 재현을 통해서 나타나는 언어 미학의 표현이 으뜸을 가치로 지적되로, 이러한 언어의 사머니즘적인 가치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비판하고, 여성문제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리고 이민자가 느끼는 방황과 갈등,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표현 등, 실로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주제가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딕테>의 주제에 대해 김경년(UC 버클리 교수, <딕테> 번역자.)은  “그녀는 역사 속의 사건 속에서 민중 신화를 발견하고 이를 언어로 신화를 엮어 내고 있다.  차학경의 천재성은 바로 이런 “신화성의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감히 우둔한 생각을 해본다.” 라고 요약하고 있다.
역시 그녀는 언어를 하나의 주술(呪術)적인 세계로 승화시켜, 민족의 혼과 한을 보다 가치 있는 미학적 세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녀 역시 사포와 함께 그리스의 아홉 무즈와 함께 동양의 사포 내지 한국 신화 속의 무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천재 문학자가 31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것은 우리 미주한인 영문소설을 위해서는 애석하한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