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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바른 행로行路에 대한 탐색

2008.09.12 18:13

박영호 조회 수:738 추천:53

<평설>  서용덕(徐龍德) 시인의 시 세계

   ‘소리의 통로’를 따라 찾아가는
    생의 바른 행로行路에 대한 탐색
                                                    
                                                 (시인・평론가) 박영호

처음 서용덕 시인으로부터 평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다. 이유는 우선 내가 서시인을 잘 모르는 처지인 데다 서시인의 작품을 별로 읽어 보지 못했고, 또한 서시인이 시집을 낸지 가 바로 얼마 전인데 곧바로 제 2시집을 낸다는 조금 예외스런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시인의 제 2시집은 첫 시집과 달리 꼭 미주에 있는 분에게 평을 받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을 해와, 그럼 생각해 보자고 반승낙을 했다.
그리고 바로 서시인이 보내주신 첫 시집과 제 2 시집에 실린 작품들을 함께 읽어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승낙을 했다. 이유는 우선 서시인에게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시에 대한 남다른 특별한 열정과, 여기저기서 번뜩이는 예지에 빛나는 소리꾼으로서의 특별한 재기(才技)와 감각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시인은 비교적 어려운 역경 속에서 살아오신 분이고, 거의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하신 분으로 아는데, 이 짧은 시간에 그것도 변방과 같은 외로운 지역에서 힘든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만한 양의 작품을 써 낼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시작詩作에 비교적 과작寡作인 필자로서는 차라리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먼저 그의 시집에 대한 하나의 서시라고 할 수 있는 시 ‘소리꾼’을 보면 그는 수사적 치장이 전혀 없는 아주 친근한 말로 ‘오늘은 참 따습다’라고 말한다.
이 손쉬운 말에서 우리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서시인의 의식세계와 그의 시 정신에 대한 많은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살아온 보이지 않는 통로 속에서 느꼈을 가슴에 박힌 멍울 같은 생의 고통과, 그 고통의 터널을 통해 터득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리고 그가 앞으로 찾아가 게 될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세계의 안식이나 사랑의 세계까지도 모두 엿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영육이 함께 불타는 그의 뜨거운 사색의 통로를 통해 그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며, 그의 시적 추구의 핵심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이 사랑이란 가치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선 자연의 순리나 신의 섭리도 그렇고, 모든 존재적 가치가 바로 이 사랑의 정신이 근원이 될 것이다. 자연만 하더라도 그렇다. 자연은 그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존재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있지 않는가?
결국 ‘ 불타는 소리 속의 통로’ 라는 표현은 시인이 그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그의 가족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를 향해서 행하는 하나의 사랑의 불지피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시인 스스로가 그의 발간사에 적고 있듯이, 그의 젊은 날의 혹독한 가난과 방황 속에서 느꼈던 그 뼈아픈 좌절과 외로움에 대한 슬픈 기억과, 또한 역경 속에서도 홀로 고생하시며 그의 형제자매를 잘 키워주신 홀 어머님에 대한 못다 한 가슴  아픈 사랑의 회환을 적고 있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그는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죄로 벌을 받았던 불과 고통의 신 프로메테우스와, 또 다른 불의 신인 장인匠人 헤파이스토스의 불의 정신을 함께 이어 받은 불과 고통의 화신인지도 모른다.

구석방에서 나온 얼굴들이
차갑게 주름진 마음들이
모닥불에 빙 둘러 앉아

오늘은 참 따습다!

가까이 앉았던 멍울들은
너무 뜨겁다고 저 만치로 물러나
그 사이 무엇이 녹아 내렸는지
진하게 흐르는 것 훔치며
숨죽인 소리로 느껴 나온다

지나는 바람으로 묶어내
저 높은 하늘로 띄워 보내는
맺힌 것 터져버린 멍울들이
잔가지로 모아 타오른
텅빈 가슴으로 듣고 싶은 소리
-「소리꾼」의 전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난 다음에 느꼈을 그 안식과 평화와도 같은 그런 포근함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골방에 갇혀 있던 주름진 마음들, 이는 바로 자신이 살아온 생의 힘든 모습이며, 또한 그의 부모형제들의 모습이고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 눈물겹도록 험난했던 생의 통로를 빠져 나온 시인은 이제 사랑의 불을 지피고, 모든 고통을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소진되어버린 텅 빈 가슴으로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참 따습다!’ 라는 사랑의 소리이고, 이것이 바로 소멸의 미학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소진된 다음에야 생성되는 새로운 가치로,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구원의 정신이며 또한 불교 정신의 한 축인 연기緣起의 미학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그의 새로운 발견은, 바로 그가 겪었던 뼈아픈 고통과 슬픔의 극복이며 또한 생의 빛나는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강인한 힘의 승리가 아닌, 차라리 빙벽 녹듯 웃어 보인다는 사랑의 따사로움으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불행이나 생의 아픔을 결코 힘겨운 저항이나 피나는 극기克己가 아닌, 차라리 사랑이란 포근함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버린  점이 바로 이 시인이 지니고 있는  남다른  특별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메마른 자갈밭에
새벽 이슬만 받아도
꼿꼿이 버티고 살았어

내 속은 얼음덩이야
숯불로 달구운 작살로
살 집을 쑤셔 주는 것이
뜨거워서 참 좋아

작살로 맞은 만큼  
빙벽 녹듯 웃어 보인 거
보는 눈들이 놀라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선인장 1」의 일부

시인은 자갈밭과 얼음덩이 같은 길 위에서 겪는 아픔을 그는 뜨거운 작살과 빙벽을 녹이는 웃음으로 극복하고, 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쓰라린 고통을 얼음덩이로, 그리고 숯불로 달군 작살로 살집을 쑤셔주는 것이 뜨거워서 좋다는 표현은, 독수리 에게 간을 쪼아 먹혔던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다시 연상케 하는, 아픔과 뜨거움의 감각을 극단으로 대칭 조화시킨 표현은 가히 절묘한 표현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아픔의 통로 속에서 느끼는 감각 세계를 그는 이제 신공귀부神工鬼斧나 다름없는 솜씨로 눈물과 아픔의 서정을 고산유수(高山 流水)의 물길처럼 아름답게 쏟아낸다

너 울고 나 울어도
밤 깊은 골짜기에
마른 눈물은
홀로 듣는 소리로 깨어 있구나.
-「부엉이」 일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은유의 표현인가. 보이지 않고 마르지 않는 영원히 가시지 않는 눈물이기에 소리 없는 눈물이고, 가슴에서 흘러내리니 눈에 보일리 없고 마를리 없다는, 그 혹독한 아픔의 깊이를 상징한 표현은 가히 절창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욱 빛나는 표현은 바로 ‘홀로 듣는 소리’ 란 표현이다. 너 울고 나 울어도 내 울음은 소리 나지 않는데, 그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홀로 듣는다’ 는, 이것이 바로 성무청(聲無聽)의 소리의 미학인 것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소리를 듣는다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적 발상인가.

그는 음악인이 아니다. 그래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그 는 그의 시 ‘피아노’ 속에서 피아노의 건반을 오르내리며 소리 나지 않는 언어로 무한한 소리를 연주한다. 이 소리 나지 않는 연주가 바로 그의 시의 세계다. 그래서 그는 시집의 표제를 ‘영혼이 불타는 소리의 통로’라고 쓰고 있다.

그는 모든 사물을 흐르는 통로를 통해 보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온 생도 그렇고, 그가 앞으로 찾아 갈 미래의 영혼의 세계까지도 모두 통로 속을 흐르는 소리를 통해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물을 그냥 막연하게만 보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살아 흐르는  통로를 찾고, 그리고 본다. 통로를 따라 흐르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사색 하고 정도正道라고 하는 길을 찾아서 간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적 공간이며 바로 그의 시의 세계다. 이래서 그는 살아있는 시, 시의 생명이 라 할 수 있는 시의 생동성을 바르게 붙들고 있는 특출한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그의 사랑의 종소리가 그의 시를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울리고 어떻게 사랑으로 물들이는가를 보자.

뜨거운 소리되어 울린다
삼발이에 냄비 걸어놓고
종소리가 불을 지핀다

땡그랑 땡그랑  
불타는 소리로
빨강 냄비가 끓는다

모두 함께 나누는 사랑으로
뜨겁게 나누는 마음으로
뼛속까지 시린 날씨를 끓인다
-「빨간 냄비」 일부

땡그랑 땡그랑 하며 종소리가 울린다. 이 종소리 가 뼛속까지 시린 날씨와 빨간 냄비를 끓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끝내는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물들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이고 빛깔인가. 한 마디로 절창이 다. (실제 이 작품은 ‘구세군 회보’를 통해 여러 언어로 세계 삼십여 개국에 소개되었다.)
이처럼 그의 소리의 통로를 통한 사랑의 불 지피기는 시인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세상을 뜨겁게 달군다. 그렇다. 그는 프로메테우스 화신답게 사람들에게 불보다 더 따뜻한 사랑의 정신을 전해주고 있다.

빗물로 거두어
세상 바닥을
빗물로 거두어
너른 바다로 모아놓고

길이 없는 길에
길이 있는 길로
무정세월이 지나는
무딘 바람으로 말리고

하늘빛으로 물들인
영혼으로 통하는 마음은
타는 사랑을 눈빛으로 담아
풋내나는 시간으로 말려본다
-「통로 1」의 일부

이제는 불과는 상반된 개념이지만 불과 같이 모든 생명과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을 통해서, 마치 천지 창조나 노아의 홍수와도 같은 천지개벽으로 이 땅 위에서 길이 아닌 길을 모두 쓸어내고, 길이 있는 길- 바른 길을 내 면 그곳에 새 세상이 열리고 사랑이 흐른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는 빗물로 지상의 악이나 모순 같은 그릇된  것을 모두 거두어 바닷물로 정화 시키고, 길正道같은 길인 바른길을 내야 한다는 시인의 인간 사회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꿈이 표현된 아름다운 서정시다.      
사람 마음도 양파같이
벗기고 벗겨보면
알맹이가 있을까?

양파처럼
겹겹이 싸여있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있으면서 없는 무?
-「있으면서 없는 무無」의 일부

이어서 그는 만물은 무無에서 생성된다는 무중생유無中生有란 노자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으로 그 근원은 모두가 무無라는 것이다. ‘있으면서 없는 무’ 이는 바로 물질적인 형상은 존재하지만 그 핵심인 가치나 영혼은 없다는 것으로, 이는 결국 시인이 사회나 한 개인의 존재적 가치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은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유의 세계를 마음껏 유영遊泳하면서 통로 속의 소리로 내 보낸 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의 메타포의 통로다. 이곳에만 들어가면 그것이 철학적 사유든 물리적 사유든 모두가 그대로 용해되고 연금鍊金되어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로 풀려 나온다. 이것이 바로 그의 서정시의 통로다. 이제 이러한 통로를 통해서 나온 그의 자연시들을 보자.

만년을 쌓아 모인
고이 간직한 기다림은
북망산에 잠들은 망자들의 혼.
-「만년설」의 일부

실로 경이로운 모습이다.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과 그 신비함 이 인류의 미완의 꿈과 함께 만년설로 하얗게 쌓여 있다.
인류는 신과 자연을 영원히 닮을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이 인류의 미완이 꿈이고 한일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두고 기다림 속에 죽어간 망자들의 한이 만 년이나 쌓여 만년설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만년설의 북망산, 이 얼마나 긴 기다림과 명상 속의 산이며 깊은 관조(觀照)의 세계인가.
이처럼 그는 장엄하고 신비한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지 않고, 인간과 조화의 대상으로 그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을 보는 점이 특별한 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을 통해서 우리는 시인의 남다른 사색적 깊이와 폭을, 그리고 독학이라고 하는 그의 문학수업에서 특별할 수 있는, 그의 독서의 깊이를 잘 알 수가 있다.

혼 불로 모인 저승 망자들이
넋을 달래는 축제의 불꽃들이
살풀이춤을 추어대는 구름 무지개

생명이던 혼 불이 순간으로 생기고
영혼이던 혼 불은 어둠 속에 사라진다.
-「극광 <오로라>」 일부

이처럼 살아 숨쉬는 인류의 꿈과 한이 찰나와 영원이라는 철학적 명상의 세계로 조화된 표현은, 이제 그의 서정시가 거의 목무전우(目無全牛)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순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가 영원하다는 깊고 무거운 철학적 사유를, 하나의 관념이나  논리가 아닌, 꿈과 서정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이러한 점이 바로 그가 서정시의 달인이라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그의 심안心眼과 시안詩眼을 통한 통로 속의 바른 행로 찾기는 이제 영원이라는 영혼의 세계로 이어진다. 결국 그의 통로 속의 바른 길 찾기는 이 지상에서 끝나지 않고, 이제 본향이라는 영혼의 세계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고향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이다

씨앗을 뿌려준 아버지(天) 이고
씨앗을 가꾼 어머니(地)였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눈 귀 입이 열리면서
나를 키워준 고향 땅이 있었고
바람 부는 대로 떠돌다
터 잡은 땅들도 모두 고향이었다

고향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바람꽃으로 피어나는 하늘일까
어느 날 꿈속에서 찾아간 본향은
이 땅이 아닌 하늘이었다.
-「바람꽃 하늘 3」 일부

그는 고향을 한 곳으로만 보지 않는다.
씨앗을 뿌려주고 가꿔 준 부모도  고향일 수 있고, 그가 자란 곳이나 떠돌 다 터 잡고 사는 곳도 모두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찾아가는 참된 고향은 바람꽃이 피어나는 하늘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꿈속에서 본 하늘이 바로 본향이라고 말한다.
이러고 보면 고향은 이 땅에는 그 어디에도 없고, 현생은 모두가 바람처럼 떠도는 나그네 삶이고, 이국에 사는 이민의 삶도 결국 나그네 길에 놓인 하나의 나그네의 삶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향을 찾아가는 자신은 바람의 신세나 다름없고, 바람처럼 이 세상을 떠돌다 천상에 가서 영혼의 꽃인 바람꽃을 피우겠다는 것이다.
바람꽃, 이 꽃은 전설의 꽃이다. 이 땅에서는 결코 필 수 없는 꽃으로 바람 속에 떠돌다가 천상이나 구름 위에서 핀다는 환상의 꽃이다. 그래서 영혼의 꽃이고 영원불멸의 꽃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이나, 사랑의 영원성이나 절대성을 상징하는 꽃이고, 또한 영혼의 세계를 상징하는 피안의 꽃이다.
따라서 그가 소리 나지 않는 바람꽃 소리를 찾아서 가는 그의 통로 속에서 그가 바라는 것은 결국 본향의 안식과도 같은 바로 그런 따뜻한 사랑의 소리일 것이다. 이것이 그의 생의 최대의 가치고, 시적 추구인 영원한 꿈의 세계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는 인종이나 지역 그리고 이승과 저승에도 별로 구애받지 않는, 글로벌 적이고 우주적인 철저한 자유인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얗게
익어가는 달밤에 살포시 덧문 밀치고
따스하게 둥지를 틀어버린 것
잊을 수 없는 싱싱하게 떠오르는 이름들
저 멀리 태평양 너머
달빛으로 익어버린
가득하게 그려보는 얼굴들.
-「그리움 2」 일부

역시 두고 온 고국에 대한 향수를 적은 이민 서정시다.
‘따스하게 둥지를 틀어버린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서정의 표현인가. 달밤에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생겨날 수 있는 아름다운 정경들이 한 눈에 떠오르게 하는 이 짧은 표현은, 바로 서정시의 특색인 압축과 생략과 그리고 은유의 묘를 그대로  살려낸 시적 표현기교가  두드러진 수작이다.
이러한 그의 서정시의 뛰어난 시적 표현은 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것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찾는, 그의 통로 속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연금鍊金과 절차탁마切磋琢磨에서 비롯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으로 내려치는 망치질
가슴을 꽂아 붙잡은 정
단단한 바위 살점을 쪼아
내 모습을 찾아가는 일

바위 같은 세월 속에
세월도 바위처럼
쪼아서 찾아가는 내 모습.
-「석공」의 일부

날카로운 정으로 자신의 살점을 쪼아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조탁彫啄의 표현에서 우리는 그의 생에 대한 바른 길 찾기와 그의 시작詩作에 대해 노심초사 하는 모습을  잘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이 막상 그 스스로 자 신을  소개할 때는 자신과 자신의 글을 두고 “시인은 정말 못 생긴 얼굴 같은 시를 선보여 대단히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다. (시 ‘죄송합니다’의 작가메모에서) 이 얼마나 겸손한 표현인가. 앞으로 서시인의 시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과거 플러스 현재는 미래’라는 점으로 생각해 보면, 앞으로 그의 시가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다 큰  감동으로 더욱 더 가까이 다가오리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서시인은 보다 크고 웅장한 하나의 대 건축물과도 같은 그런 큰 시가詩家를 이루어, 밤하늘의 혜성처럼 빛나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글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