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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의 개요(2)

2008.09.28 14:22

박영호 조회 수:783 추천:50

작성자 /박영호 [회원정보보기] (2008-08-16 01:00:18, Hits : 16, Vote : 0)

  국문학의 개요(2)

4)최초의 고대 시가들

가)황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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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편황조 (翩翩 黃鳥)              펄펄 나는 꾀꼬리는
자웅상의(雌雄 相依)               암수가 정답게 노니는데
염아지독(念我之獨)                홀로 외로운 나는
수기여귀(誰基與歸)               그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고구려 2대 유리 왕이 재위 3년(B.C 17년)에 스스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가이다. <삼국사기>권 13’고구려 본기’에 기록 설화와 함께 전해오고 있다. 내용은 유리왕의 원비인 송(宋)씨가 죽은 뒤 고구려 여인 화희(禾姬)와 중국에서 온 여인 치희(稚姬)를 왕비로 맞았으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다투던 중, 하루는 유리 왕이 기산이란 곳으로 사냥을 간 사이에, 두 왕비가 서로 다투다가  ‘중국의 천한 계집’ 이란 화희의 심한 욕설에 치희가 분을 참지 못하고 시녀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놀란 유리 왕이 말을 달려 그를 쫓아가 만류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끝내 떠나 버리자, 홀로 쓸쓸히 돌아오는 길에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면서, 나무 가지 위에서 즐겁게 노니는 한 쌍의 황조(꾀꼬리)를 보고 유리 왕이 그 외로움을 노래한 것으로, 이는 남녀의 애정을 노래한 우리나라 최초의 애정시 라고 할 수 있다.

나)구지가(龜旨歌)

구하구하(龜何 龜何)          거북아 거북아
수기현야(首基現也)           네 목을 내 놓아라
약불현야(若不現也)           그렇지 않으면
번작이계야(燔灼而계也)      구워서 먹으리

신라 유리왕 19년(A.D 42년)에 가락국의 김수로 왕의 왕림을 축수하는 주술이다. 따라서 이는 우리 고대 사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영신군가. 구지봉영신가, 가락국기, 영군가 라고도 하는데 삼국유사 권 2에 설화와 함께 전해온다. 1백호 7만 오천의 백성을 족장인 구간(干)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후한 광무 3월 상사일에 북쪽산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거기 누구 있느냐? 하고 말소리가 들려 자세히 들어보니 땅속에서 ‘산꼭대기 흙을 파고 노래를 불러라’하는 소리가 들려 그대로 따라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자 하늘에서 주홍빛이 비치고 이를 따라 금함이 내려와서 이를 열어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아도간이 집에 가져가서 보살폈더니 12일만에 알에서 여섯 동자가 탄생하고, 그 중 한 분이 가락국의 김수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고대 사회에서 발생한 일종의 주술로서 최초의 무격 서사시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다음 신라 성덕 왕 때(7세기) 해가(海歌)로 발전되어 비슷한 리듬으로 재현됨을 볼 수 있다.  

다)공무 도하가 (公無渡河歌)            

공무도하(公無渡河)           임아 물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公竟 渡河)          님은 필경 물을 건너가고
타하이사(墮河而死 )          물에 빠져 죽는구나
당나공아(當奈公何 )          가신님을 어찌 할꼬


진나라 최표의 <古今注>에 기록된 내용을 조선 정조 한치훈이 <해동 역사>에 옮겨 기록하여 전래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이를 중국의 노래로 보려는 학자도 있다.
箜候人의 노래, 또는 여옥(麗玉) 노래 라고도 하며, 설화와 함께 기록되어 전해오는 고대 4언 4귀의 서정시다.
箜候人의 노래, 또는 여옥(麗玉) 노래 라고도 하며, 설화와 함께 기록되어 전해오는 고대 4언 4귀의 서정시다.
유래는 한 백수광부(白首狂夫)가 물을 건너려 하자, 그를 뒤 쫓아 오던 그의 아내가 공무도하, 공무도하, 하고 소리치며 이를 만류하지만, 끝내 그 광부가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이를 본 그의 아내가 통곡하며 구슬피 울며 노래를 하자, 어부인 곽리자고(藿里子高 )가 곁에서 이를 보고 그의 아내 여옥(麗玉. 공후부인이라고도 함 )에게 말하여, 그녀가 이를 노래로 지어 부르고 그래서 여옥의 노래라고도 하며 그녀가 다시 그의 이웃집 보이프랜드(笑)인  청년 여용(麗容)에게 전하여, 이 여용이 노래를 불러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노래로,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죽음을 초월한 애정의 영원성을 노래한 아름답고 구슬픈 애정시라고 할 수 있다.

라)도率歌
이 노래는 신라 유리왕(5년 A.D 28년) 때 지어진 노래이나 내용이나 가사가 전해지는 바가 없고 다만 삼국사기에 명칭과 함께 ‘이 해에 태평을 노래하며 ‘도솔가’를 지으니 이는 노래의 첫 작품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에는 ‘도솔가는 사뇌가의 첫 작품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형태는 하나의 집단적인 궁중가악 형태 음악이라 할 수 있고, 형태는 집단 찬양이나 축원이 담긴 서사시의 형태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신라 향가인 사뇌가 발생의 근원이 되고 있다. 또한 내용은 신을 찬양한 돗노래(신곡)라는 설과 집단 사역을 찬양한 두레노래(농악)라는 설이 있다.(경덕왕 A.d 760년에 지어진 도솔가와는 다르다)
따라서 도솔가는 개인적인 서정시가 집단적인 서사시로 변형되어 나타난 최초의 집단적 서사시라고 할 수 있고. 사뇌가(思腦歌)의 첫 작품이란 표현에서 우리는 이 노래가 향가와 같은 정형의 노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황조가, 공무 도하가, 구지가, 도솔가 등이 고대시가의 초기 작품들이라 할 수 있고, 이를 시작으로 해서
고대(삼국시대)시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향가문학이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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