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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 산책

2006.11.29 12:36

박영호 조회 수:414 추천:43


화원 산책

나는 생업 관계로 낮에는 교외 도시로 나가 머무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 시간이 나면 가까이 있는 화원을 찾아가 산책을 즐기곤 한다.
그곳에는 갖가지 꽃들과 함께 많은 과목과 정원수들이 있어서, 나는 그 사이를 거닐면서 잠시나마 일상 생활에 대한 시름을 잊는다, 그리고 더러는 탐스런 꽃들 앞에서 시선을 멈추고, 아름다운 여인 앞에라도 선 듯이 꽃에 취해서, 그 꽃잎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암술들의 은밀한 정사를 관음으로 즐기는 등, 나만의 비밀스런 세계에 젖기도 한다.
이처럼 내가 즐기는 화원 속에는 참으로 많은 세계가 숨어 있다.  그 곳에는 두고 온 내 고향도 있고, 내 사랑과 꿈도 깃들여 있고, 지난 날 내 삶에 대한 회한이나 상처도 볼 수 있고,, 일찍이 잃어버린 내 시간의 조각들 같은 많은 빛깔이나 소리 등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하늘빛 같은 푸른빛 꽃밭 사이를 거닐고 있노라면 문득 먼 바다도 보이고, 파도 소리도 들리고, 먼 뱃고동 소리도 들리고, 문득 종착역을 향해 달려 들어오던 막차의 긴 기적소리도 들린다. 이처럼 화원 속에는 그리운 옛 도시가 들어있고, 산과 바다도 들어 있고, 크게는 우주도 들어 있다.
옛날 고국 서울에서는 가끔 남대문 곁을 지날 때면 일부러 남대문 꽃 시장을 찾아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갈 때마다 번번이 꽃을 살 수 는 없었지만, 그래도 값싼 안개 꽃이나 아니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버들개지 자루를 한 묶음 사가지고 돌아와, 둥근 청자 모양의 꽃병에 꽂아두고 겨우 내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날씨가 풀리고 봄이 되면 제일 먼저 그 버들개지 눈에서 뽀얗게 솜털이 부풀어 오르고 푸른 잎새들을 내밀어 봄을 알려주곤 했다.
지난번에는 그 버들개지가 문득 생각이 나서, 화원을 돌며 찾아 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고, 화원 구석에 거의 버리다시피 놓여진 시들어가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곳 화원 살이가 힘에 겨운 듯 고개를 숙이고 지쳐있는 들꽃 같은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이국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 같아 부쩍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화원도 여러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이곳 다인종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화원이 하나의 꽃동산으로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는 각양 각색의 꽃과 나무들이 함께 모여 있어야 하니 말이다. 사실 크게 고운 꽃들도 그 이름 모를 들꽃 같은 작은 꽃들과 함께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 사회도 우리와 같은 소수민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나, 그런 노력이 있기 때문에 이곳 사회가 더욱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도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만 궁해져도 이내 반 이민을 부르짖고 주인으로 나선다. 그러나 소수민족도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그들의 친구이고 동반자이며, 함께 이 땅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그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미도 원래는 들꽃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듯이 이 화원의 주인은 누군가 사람이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피고 지는 꽃과 세월을 이어가는 씨앗은 구름과 바람이 만들고, 그들을 키우는 태양과 대지는 하늘만이 주인인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누구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 주인이 될 수 있고, 우리도 이 땅에 한 그루의 나무나 한 무더기의 꽃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면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신의 의지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