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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소설 연구 (10)

2008.02.23 05:39

박영호 조회 수:478 추천:32

(미주 한인 소설 연구) (10)  

             1980 년대의 미주 한인 국문 소설  
             송상옥의 등장과 미주한인 현대 국문 소설의 정착  (2)
                                                                                                        
(3) 송상옥의 작품 세계
  송상옥의 작품 세계는 우선 두 형태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우선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방법과 또 다른 하나는 작품 내용에 따른 구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시대적인 구분과 내용적인 구분울 병합해서 밝혀 보기로 한다.  
우선 시대적 구분에 의하면 그가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한 1959년부터 그가 이민을 오기 전까지인 1981년 이전까지를 전기, 그리고 그가 이민을 와서 현재까지의 시기를 후기라고 크게 두 시대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후기에 해당하는 이민 이후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 세계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전기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 하리라 생각되어 이를 간략하게 살펴 보면. 우선 그의 전기 작품은 총 3편의 장편 소설과 6권의 소설집과 문학 잡지에 발표한 수많은 단편들과 그리고 많은 수필과 한 권의 콩트 집이 있다.
이러한 그의 전기 작품에 나타난 특색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닥 없는 陷穽>이나 <黑色 그리스도>등에 비교적 잘 나타나 있는데, 우선 작가 자신의 평을 들어보면 그는 "주로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표현 하려 했다' 라고 그의 우직한 성품처럼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우선 필자가 접한 그의 전기 작품에 대한 비평 중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이 태동교수(서강대)의 표현을 빌면  " 그는 독특한 바다와 여인의 이미지가 깔려있는 환상적이고 회화적인 스타일로 인간의 현존 현상과 삶의 부조리를 끊임 없이 표현하고 있다."(문예출판사 <부조리와 인간의식>'송상옥 론'에서 1981)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잘 엿 볼 수가 있다.
이처럼 그는 부조리한 현실 상황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갈등과, 그리고 이를 안고 방황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자아발견과 함께 참된 인간성을 찾아간다는 것이 그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중심 주제이고, 표현방법에서도 그는 극히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기법으로 특별한 미학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극히 탐미적이고 상징적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난해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은 이 태동 교수의 또 다른 글 <조선 중앙> 605호 '60년대의 한국문학'1980)에서도 거론되고 있지만, 그의 소설은 이처럼 지극히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데다가 이를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어서 그의 소설은 사실에 의한 흥미 위주로 쓰인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당시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영자의 전성시대>와 같은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작품은 그에게는 없다. 따라서 그는 소설미학적인 측면에서 치밀한 구성이나 특수한 전개 기법에 의해 주제가 설계되어있는 순수소설의 특색을 비교적 가장 잘 살려내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흑색 그리스도>에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는 허무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탐미의 세계를 찾아 방황하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당시 사회에 팽배해 있던 젊은이들의 현실적 허무와 방황을 표현하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끝까지 방종해 버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치와 함께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이 비교적 상징적이고 실존 미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머리에 원형 탈모증을 지닌 주인공인 나는 중학 시절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개가를 하게 된 형수가 "도련님 그렇게 얼굴울 찡그리지 마세요. 바다 보다도 역시 사람의 일이 중요한 거랍니다."하고 생글거리며 옆구리를 찌르던 유혹에 영합하지 않고, 냉소와 반항으로 마음에 슬픈 기억이나 아픔이 일 때면 누군가 여인을 넘어뜨리려 하는데, 그는 끝내 바다로 뻗은 흰 길 위에서 영희를 쓰러뜨리게 되고, 그리고 그를 버리고, 다시 그는 자꾸 뭔가 앞이 훤히 트이는 것 같은 유혹에서 향순이, 미스 윤. 등의 여인들에게 다시 다가서지만, 그는 모두가 어긋나는 현실적 모순만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그는 끝내  "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리스도는 이제 아무도 데도 없어."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하숙집 건넌방에 살던 경자의 자살 기도 앞에서 그는 비로소 삶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느끼게 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가면서 죽은 형이 남긴 싯귀를 떠올린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네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를……'
그는 비로소 형의 죽음에 무관했던 자신을 깊이 후회 하고, 자신의 시골집에서 어머니 곁에서 자신의 어린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 영희에게 돌아 가기로 작정 한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존재가치와 삶의 가치를 바르게 찾아간다는 비교적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주제로 표현된 작품이다. 이처럼 내용은 까뮈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일종의 실존적 휴메니즘이 표현된 작품이랄 수 있고, 표현 기법은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주로 의식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의 <날개>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탐미적이고 환상적인 그의 작품 경향은 작품 <열병>이나 <바다와 술집' 그리고 시계와 예수 그리스도> <바닥 없는 함정> 등에서도 두루 잘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찍이 이어령씨는 그의 <바닥 없는 함정>을 두고  "한국 소설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는데, (사상계, 1959년 9월호) 이러한 그의 전기 작품 경향이 그의 후기에 와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이민을 오게 되고 그의 삶의 장이 고국에서 이국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자명한 노릇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변화되어 나타나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의식의 흐름을 중심으로 다분히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탐미적 가치를 찾아 헤매던 전기 작품 속의 그의 정신적인 방황이 그가 미국에 건너온 후에는 정신적인 방황이 아닌 보다 구체적인 삶에 대한 현실적인 방황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특별한 변화들이 나타나는 그의 후기의 이민 작품 세계는 우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가 있다.
그가 이민을 와서 생활하다가 고국에 귀국하기까지의 1980 년대를 제 1기로, 그리고 그가 서울에서 머물렀던 1990년대 중반을 제 2기로, 그리고 그가 다시 도미해서 현재까지를 제 3기로 구분해서 살펴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4)작품 감상

<제 1기 > 이민의 불합리한 삶에서 오는 갈등과 고통을 표현
송상옥은 그의 이민 초기 라고 할 수 있는 1987년에 미주 한인으로서는 최초인 미주한인 첫 소설집인 《소리》(창작과 비평사)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이민자들의 체험과 함께 그들의 의식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그 자신이 이민 초기에 지녔던 의식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기를 송상옥 작품 세계의 후기(미주 이민 이후) 중에서 첫 번째인 제 1기로 설정해 볼 수가 있다.
그는 이《소리》작품집을 통해서 주로 자신과 함께 초기 미주 한인 이민자들의 의식 세계를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현장소설이라는 의미가 짙고, 이는 바로 초기 이민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의식 세계에 대한 특색을 하나의 문제점으로 제시한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이민자들의 의식 세계 중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민의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아픔이다. 이 아픔은 결국 그들의 환경이 일시에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뀐 것들이어서, 이민의 삶이 하나의 개척이나 모험과도 같은 극히 험난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더러는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도 있고, 이민의 삶을 극히 상공적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결같이 이민의 삶에 심한 갈등을 느끼게 되고 이를 아픔으로 지니고 살아간다. 이러한 까닭은 이민자들이 먼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고 나면 반드시 문화적인 면에서 보다 큰 갈등과 좌절을 맞보기 때문이다. 물론 체념이나 자기만족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바의 마음의 고향 같은 평화는 결코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점은 그들의 노력이나 아픔의 대가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다음 1.5세나 2 세들에게서나 기대해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아무튼 작품《소리》에서는 이러한 초기 이민자들이 불합리한 삶에서 느끼는 정신적인 갈등과 여러 형태의 좌절과 아픔을 하나의 소리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아픔은 우선 먹고 살기 위해서 겪는 일차적인 현실적 삶의 물리적 고통이 아닌, 다분히 의식의 세계에서 비롯되는 정신적인 고통이다.
송상옥의 개인적인 경우만도 그렇다. 그가 이 작품집을 출간한 것은 이민을 떠나 온지 육 년만이고 그 간의 세월이 그렇게 긴 세월이라고 할 수 없고, 또한 그는 본국에서처럼 좋은 위치는 아니더라도 고국에서와 같은 신문사에서 근무해 왔다. 그런데도 그는 이민에 대한 깊은 회의와 갈등을 느끼고 이를 아픔으로 느끼고 있고, 이 아픔은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물리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아픔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이러한 그의 아픔을 말 그대로 아픔이라고 직접 표현한 곳은 바로 그의 작품 '돋아나는 말' 에서이다.
"그것은 아픔과 말로 시작 되었다. 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말과 아픔이었다. 그곳을 떠나는, 그의 아내는 눈물을 지었고,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도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다. (돋아나는 말 102 p)
그의 가족은 그들 스스로가 ' 초원의 작은 집 ' 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며 십여 년간 정들어 살던 교외 자연 속에 묻혀 있던 집을 정리하고, 한인들이 많이 사는 엘애이로 이주를 결정한다. 까닭은 바로 잊혀져 가는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 때문 이었다. 화자는 이주를 결정한 다음에 언젠가는 새롭게 다시 돋아나는 모국어로 중단한 소설을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는 다시 쓰기 시작할 소설의 서두는 위같이 시작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이처럼 그는 아픔의 시작이 바로 모국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 또한 그는 훗날 귀국해서 고국에서 발표한 작품 '말과 아픔으로 시작되었다' 에서도 이국어에 대한 어려움과 함께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바로 아픔이었다고 쓰고 있다.  
"모든 것은 아픔이었다. 그러나 '아프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로서는 꼬집어 낼 수가 없었다. 특히 고국 소식을 듣거나 어쩌다 고국에서 온 사람 과, 가령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 같은 데서 걸려온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아픔이 더했다."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188,p)
이처럼 이국어에 대한 어려움과 함께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이 바로 아픔이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결국 이민의 가치나 그 결과는 보다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측면에서 큰 가치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우선 개인적으로는 누구에게나 고통과 갈등이 앞서기 마련이고, 한결같이 고달프기 짝이 없는 삶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작품 《소리》에서는 이처럼 비교적 살벌하고 외롭고 암울한 삶의 고통이나 아픔을 서사적이고 사실적인 일반 소설 문장과는 조금 달리 비교적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문장으로 바꿔 표현 시키려는 노력으로 일부 작품에서는 시 귀나 노래와 같은 글을 삽입하는 것으로 문장을 보다 서정적으로 순화시키려는 점이 작품 《소리》의 또 다른 하나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1) 아메리카의 꿈이 부른  '아메리카 아메리카' 의 비극  
미주 한인들 중에는 아메리카의 드림을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이에 패배한 아메리카의 비극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은 바로 소리에 수록된  '비 오는 날' '아메리카 아메리카' '쌍권총의 사나이'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비극은 거의가 고국이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슬픔에서 시작이 된다.
이민자들에게는 각기 그들이 지니고 있는 꿈이 있다. 이러한 꿈이 이루어지질 못했을 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고, 더러는 이 아픔을 가슴에 안고 망각의 세월 속으로 노을처럼 사라져 간다. 이것은 분명 아메리카의 꿈이 아니고 문명 아메리카의 슬픔이고 비극인 것이다.
'아메리카아메리카' 의 주인공인 남달리 꿈이 많은 장호영은 서울에서 이것저것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하자,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미국에 건너와 힘든 막일을 해 가면서 홀로 살아간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그가 이곳에서 돈을 모아 성공을 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란 거의 무망한 상태다. 그러한 말 못할 아픔을 지닌 그는 시간만 나면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에 나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것이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서울 아내로부터 돌아오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최후 통첩을 받지만 그는 그래도 돌아가지 못한다.
그 뒤 그를 보았다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는 더욱 얼굴과 몸이 일그러지고 쪼그라든 모습으로 더 멀리 떨어진 교외 한적한 바닷가에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망각의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간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이처럼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이 더러는 인생을 통째로 마감해 버리는 죽음의 비극으로 까지 몰아가기도 한다. '비오는  날' 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화자가 좋아하는 친구 여주인공인 현영이는 엘애이가 사람을 까닭 없이 말리는 곳이라면서 이곳을 떠나는 날이 자신에겐 거듭나는 날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는 돌아 갈 수가 없는걸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이런 상태로……또 마음이 걸레처럼 너덜해진 상태로는. 기다리는 사람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문제가 안 돼요 그만한 사람도 드물어요. 단지 제 자신이 그럴 수가 없을 뿐이에요."
  "가끔 엄마와 통화를 하면 한 시간도 좋아요 나중에 둘 다 울음을 터뜨리지요 그러다 지쳐서 끊게 되지요"<비 오는 날 27 p>
그들은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이렇게 사람마다 돌아 갈 수 없는 또 다른 말 못할 사연 들이 있다. 죽도록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얼굴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아픔인 것이다. 이처럼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을 지닌 현영이는 자신의 아픔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 화자는 슬픔에 젖어 다음과 같이 회상에 잠긴다.
" 한국에서 기다린다던 청년에게 왜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런 상태론 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갈 수 있는 상태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서울과 이곳은 열두 시간의 거리에 지나지 않는데…… 죽음에 이르는 길보다 더 멀었단 말인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나고 싶었는데……"(비 오는 날 20 p)

2)이국이기에 더욱 슬픈 비극적 사랑
사람이 사는 곳과 그 사는 방식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어디에나 사랑이 있고 외로움과 그리움이 있고, 슬픔과 아픔이 있다. 그러나 이역 땅인 이민 살이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이야기는 좀더 애절할 수 밖에 없고, 그 이별과 슬픔과 아픔이 더욱 서글프게 나타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있고, 사랑의 도피행각으로 고국을 떠나온 변칙적인 사랑이 있고, 파멸과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사랑이 있다. 남녀 애정을 다룬 《소리》속의 작품 중에는 사랑의 순결이나 절대성을 다룬 탐미적인 작품 '꽃의 얼굴' 이나 '기다리는 사람들'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다룬 이야기도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랑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애절한 아픔의 이야기들이다.
'그 가을의 끝.' 은 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친구인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언니와 가족의 시선을 피해 그를 따라 이곳에 와서 동거를 하게 되지만, 결국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끝내는 서로 헤어지게 되어, 그녀는 홀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쓸쓸히 살아가다가 그가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자,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이처럼 애정 도피 행각의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장미 시들다' 에서 역시 나이 많은 홀로 된 외로운 노인이 이국에서 가족에게 소외된 채 외롭게 살아가지만, 사라져가는 마지막 불꽃처럼 결코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비련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코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그리고 고통, 그는 병실에서 죽음의 직전 까지도 숨을 거두어 가면서 그녀에게로만 눈길이 가는 애처롭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 인륜을 넘어선 사랑의 절대성 내지 인간의 원색적인 사랑이 인간의 원죄의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추하지 않게 아름답게 형상화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룰 수 있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지

이룰 수 있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지

진짜 사랑은 해서는 안될 사랑……
금지된 사랑
오, 이 마음을 어이할까. "<소리 55 p>
외로운 노인의 이처럼 흥얼대듯 읊조리는 노래도 같고 시구절도 같은 글속에서 우리는 노년기의 서글픈 이민 생활에서 느끼는 남 다른 비애와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임종 직전까지도 남몰래 홀로 사랑하는 새 며느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한 노인의 철없는, 그리고 애절한 사랑의 감정이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노인이 겪는 외로움과 애정에 대한 이야기는 '산타모니카에서의 죽음'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국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말년에 이민을 온 장 교수는 그가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신문사로 화자를 찾아와 자신의 글이 신문에 실리기를 바라지만, 이제 그 글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글이다. 그는 이제 노을처럼 서서히 꺼져가는 자신의 생에 대한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에게 뜻하지 않게 젊은 날 사랑했던 첫사랑의 여인이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도 없는 노년의 현실 속에서 가슴 아파하다가 끝내 싼타모니카의 해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 하고 만다.
이러한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여름이 간 뒤 ' 그리고 '쌍권총의 사나이'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3)화색 풍경'과도 같은 힘들고 암울한 아픔
"지구 끝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모두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바람소리 589 p)
이는 이민자들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  '바람 소리' 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데, 이 아픔이 하나의 상처로 남아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서마저도 말 할 수 없는 비감을 느끼게 된다는 인종 차별에서 오는 아픔에 대한 아픔의 바람소리다. 화자는 결국 그곳을 떠나 교외에 있는 조그만 뜰이 있는 독립된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의 아내는 뜰에 핀 꽃들과 날아드는 나비와 새들을 바라보고 넋을 잃고 있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는 그의 마음과 눈에 안개막 같은 것이 끼어 있는지도 모른다며 몇 해가 지나야 그것이 벗겨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새벽녘에 눈을 뜨면 들려오는 바람 소리ㅡ 대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이 그 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쓸어갔다.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으로 흘러왔다. 그 들은 각기 무슨 의미를 남기고, 또 어디로 떠나게 될 것일까.
그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과도 같은 몇 줄기 밝음과 함께, 깊디 깊은 비감을 안겨주는 바람 소리에 귀와 마음을 온통 내 맡기고 이었다. <바람소리 65 p)
  이처럼 그의 귀에 들려오는 비감의 바람 소리는 결국 지나간 그리고 다가올 이국에서의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울한 비감으로 이는 하나의 영혼의 슬픔과 아픔을 바람소리라고 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그 영혼의 공허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아픔이 '불꽃놀이'에서는 자녀문제에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우선 자녀문제는 많은 이민자들이 고국을 떠나올 때 지니고 오게 되는 대표적인 이민의 꿈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러한 꿈이 하나의 좌절이나 실패로 무너질 때의 부모들의 아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사춘기에 이른 자녀들의 몸과 마음에 불꽃이 일기 시작하는데, 그들 중 더러는 홍역과도 같은 치명적 불길에 휩싸이기도 한다. 음주, 마약, 도박, 갱단 가입 등…… 그래서 이런 자녀들의 문제로 많은 부모들이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아픔은 이국 땅, 이국 문화 이기에 일어나는 것들일 수 있어서 그 아픔이 더욱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독립 기념일 때면 으래껀 이곳에서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가족이 자녀문제로 이곳을 떠나 동부 타주로 이주해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화자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인생은 불꽃……. 밝고 찬란하게 피어난다. 고통과 슬픔과 희망과 좌절과 기쁨과 온갖 잡다한 것들을 잉태한 채, 그리고 흘러간다. 영원한 시간 속으로……"(불꽃 놀이 94 p)
화자는 그 가족을 생각하고 그 가족의 애들과 함께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아무런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원한다는 이야기다.

4) 그래도 아픔을 이기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많은 이민자들은 삶의 아픔을 스스로 돌볼 겨를도 없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만을 하고 살아간다. 작품 '창 밖은 황혼 '의 주인공인 장 선배 역시 일에만 열심히 묻혀 살다가 결국 하루 아침에 중병을 얻어 병석에 눕게 된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그 때야 비로소 자신이 자신의 아픔을 속이고 잘못 살아온 점을 뉘우치고 자신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
" 고국에라도 한 번 다녀와야 할 텐데…..." 그리고 조금 더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미국 생활을 다시 시작 해야겠어......."
이거야말로 내가 알고 있었던 장 선배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 뜨거운 것이 내 가슴 속으로 지나갔다."<창 밖은 황혼 35 p>
병실을 방문한 화자에게 장 선배가 하는 이야기는 이제 자신은 현실에만 매이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마음이 부르는 소리대로 고국도 찾아가 보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작품  '우리들의 날' 에서는 우리라고 하는 화자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는 세 사람의 친구가 새로 이민을 오게 되는 영철이란 친구를 기다리면서 함께 주고 받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한 친구는 유학을 왔다가 주저 않아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으로 성공한 친구이고, 또 한 친구는 대학을 나오자 바로 장사에 나서 월남을 경유 미국으로 건너와서 가게를 벌리고 사업을 해서 돈을 모았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된 친구다.
" 결국 사람에겐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네, 그러기까지 몇 개의 대양과 유기를 오가며 몇 십 년이 걸린 셈이지." (우리들의 날135 p)하고 한숨 쉬듯 내뱉는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경제적 목적 보다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목적에서 이민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점은 작품 속 화자라고 할 수 있는 송상옥의 개인적인 경우에서도 그렇다. 그는 그가 다녔던 직장의 경우에서도 설명이 되겠지만 그는 결코 경제적으로 흡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어디에도 경제적인 측면의 고통이 표현된 곳은 없다. 결국 이민자들의 아픔은 현실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다분히 정신 세계의 깊숙한 곳이나 영혼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이 뭐가 좋다고 꾸역꾸역 모여 드는지, 원?" (우리들의 날 139 p)
화자는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던 공항에 홀로 내렸었던 자신의 옛 처지를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이민생활에 대한 회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나는 미국이 안고 있는 모든 것들에 어떤 환상을 가졌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환상이 자꾸만 달아나기만 해서, 아직 거기에 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날 ' 137 p)
그리고 그 때 만나는 사람마다, 정말 딱해 죽겠다는 듯이 왜 왔느냐고 묻는 그들도 한결같이 언젠가는 고국에 돌아
가야 한다고들 말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고, 지금 곁에 있는 세 친구도 여전히 똑 같은 심정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러한 걱정들을 떨치고, 곧 이곳에 도착할 친구의 이민생활의 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점들을 생각하면서, 친구 앞날의 밝은 미래만을 생각을 하면서 친구의 도착을 기다린다.
  또한 작품 '길'에서는 이국에서의 삶에 대한 화자의 깊은 사색을 통해서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한결 같은 자세로 살아가겠다는 생에 대한 굳은 의지가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차를 몰고 가는 길 위에서 자주 사색에 잠기곤 한다. 특히 밤에 귀가하는 프리웨이에서의 사색은 좀 별난 것이다. 그는 매일 달리고 있는 그 길을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많고 많은 날 그 길을 오가며 그는 언제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 다시 몇 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데, 자신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태어나서 한 세상, 이 황금 같은 때를, 이 길을 오가는 것만으로 보내야 한단 말인가. "
"그래 그게 전부일 수가 없어. 그런 거 말고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헌데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무지개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태어나서 자란 곳, 친구들이 많은 곳에서 살고 있어도 될 것을 여기 까지 온 것도 그 무엇을 쫓아서가 아니었던가 "
"밤은 모든 것을 감춘다. 모든 것을 먼 곳으로 밀쳐 놓는다. 그래서 밤에는 세상 모든 일이 더욱 아득하게 여겨지고, 프리웨이에선 가야 할 길이 무한히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그 길을 변함없이 오고 간다. 어느 땐가는 반드시 도달 한다는 믿음으로, 다만 기다리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다.  그것이 이 길 위에서의 질서였다. 위대한 질서였다. 그 질서가 깨진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길 288 p>
이처럼 생에 대한 깊은 사색을 통한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하나의 길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나타낸 작품이다.

5)자신과 고향이 부르는 소리
소설집 《소리》 속의 단 편 '소리' 는 화자의 친구가 말하는 자기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서 들리는 귀향의 의지의 소리 이고, 이 소리는 아울러 화자와 함께 모든 이민자들이 고국을 향해 지르는 그리움과 귀향의 소리이고, 이 소리는 고국을 메아리 쳐 다시 이민자들 귀에 들려온다는 그들 스스로의 아픔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뉴욕에서 온 친구는 옛날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잠시 함께 같은 하숙 집에서 살았던 친구다. 그는 그 때 친구들과 함께 곧잘 어울리고 등산을 하곤 했는데, 그는 산정에 오르면 두 손을 입에 모으고 곧잘 큰 소리를 내 지르곤 했다. 그 소리는 먼 산 먼 하늘을 메아리 쳐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곤 했다.  그 때 그는 그것을 자기가 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 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던 그가 일찍이 미국으로 떠났고, 바람결에 들린 소식으로는 그가 미국에서 성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화자가 여행길에 뉴욕을 들렸을 때 요행히 연락이 되어 그가 호텔로 그를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다.  그 때 그에게서 그는 이미 부모님을 포함 온 가족이 미국에 들어와서 이제는 한국과는 관계가 끝난 것처럼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했었다.
그러던 그가 엘애이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그에게 들려주는 말들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이미 고국에 두 번을 다녀왔고, 두 번째는 온 가족과 함께였다면서 참으로 많은 느낌을 받았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산에 가는 꿈도 자주 꾸었다. 서울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산이었다. 그리고 그 때처럼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큰 소리를 내질렀다.먼 산, 먼 하늘을 향한 그의 소리는 곧 메아리 쳐 그에게로 돌아왔다." (소리 154 p)
그는 그 소리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 고국을 울려 그 고국이 그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믿고 있었다. 이어서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야, 한국을 생각하면 옛날에 시와 소설을 열심히 읽던 때가 떠오르고, 또 자네가 생각나곤 했어."(소리 154 p)
결국 고국이 부르는 소리가 그의 영혼의 귀에 들린 것이며, 그 소리에 대한 답으로 그는 이제 고국을 찾아가 고향 학교에 장학 기금을 전달하고, 앞으로 형편 되는대로 기금을 확장해 가겠다는 것이 그의 고국의 부르는 소리에 답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따라서 '소리'는 이민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숙명적으로 들리는 고국이 부르는 소리이고, 그 소리는 향수와 귀향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민자들이 숙명적으로 느끼게 되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그에 따른 고국에 대한 향수에서 시작된 귀향의식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은 작품 '도서관에 가는 아이 ' '첫 번째 고국 방문' '두 번째 고국 방문'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고, 특히 1988년에 발표된 '기묘한 삶'(현대문학)에서는 이러한 주체성의 자각이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결국 강한 귀향 의지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작품 '기묘한 삶'(현대문학)의 화자는 이민의 삶 자체를 도대체가 기묘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는 이국의
삶에 적극적으로 적응할 수 없는 보다 원천적인 한인으로서의 나의 존재와, 어디 가나‘한국사람’일 수 밖에 없는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에 대한 확인으로, 일찍이 고국에서 어린 시절에 미군이 기묘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처럼, 이제 자
신이 이곳에서 기묘한 사람으로 기묘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면서 또한 자
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아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먼 바다와 먼 이국 세계에 대
한 꿈과 그리움이 이제는 이곳에서 다시 고국의 모천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화자는 이민자들은 향수나
귀향의 꿈을 숙명적으로 지니고 살수밖에 없다고 화자는 이민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결국  '기묘한 삶'은 이민 살이라는 특수한 배경 속에서 원천적으로 한국인을 떠날 수 없는, 그래서 향수와 귀향의 꿈을 언제까지나 숙명
적으로 붙들고 가야 할 한 전통적인 한국인 내지 한국인으로서의 숙명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민 초기의 여러 형태의 인물 중에서, 향
수와 귀향의 보퉁이를 붙들고 나타나는 토속적인 한국인의 한 표본을 제시하여, 향수의 미학을 형상화한 이민 소설 작품이라는 점에 특별
한 가치가 있는 보기 힘든 순수 소설이라 할 수 있다."(박영호 '이민 백 주년 기념 소설집을 읽고'' 에서)
이처럼 이 작품은 화자의 귀향의 의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 작품으로 이는 그가 귀국 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귀향 길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그의 이민 초기 작품 속에 나타나는 아픔의 세계가 결국 고국에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하나의 귀향의 의지로 바뀌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조국과 모천에 대한 회귀 정신에서 오는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자아에 대한 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의 특색은 그가 이민 오기 이전 고국에서 주로 표현했던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 이제는 바로 현실 표현이라는 극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후기의 모든 작품에 확실하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뒤에 거론 하겠지만, 그가 귀국해서 고국에 머물다가 재 도미하게 되는 제 3기의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이민 초기의 현실적 내용과 이민 오기 전의 환상적 꿈의 세계가 서로 화합 조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 2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내용이 객관적이고 국가 사회적으로 확대 표현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지 13년 만인 1994년에 다시 고국 서울로 귀향했다. 그리고 거의 4년 동안 실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은 미주이민 초기(1기)에 쓰인 작품들과는 또 다른 차이점이 표현되고 있는데, 초기의 작품들이 이민의 삶에 국한된 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고, 주로 주관적으로 다룬 점에 비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은 그 내용이 비록 개인이나 가족의 이야기들로 시작되고 있으나, 보다 객관적이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으로 확장 표현되고 있는 점이 특색으로 나타나고,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과거와 현재를 총 망라한 보다 포괄적으로 크게 확대되어 나타나는 점이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에 발표한 《세 도시 이야기》와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등에서 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의 이민 이전 고국에서 주로 표현했던 인간의 근원적 존재가치와 상징적 탐미세계에 대한 추구가 이민 초기(1기)에는 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개인의 아픔문제로 바뀌고, 그것이 제 2기인 이 시기에는 현실 문제를 통한 새로운 자아 발견과 함께 이를 보다 객관적이고 사회적으로 확대 표현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세 도시 이야 기》를 통해서 나타난 공간적 배경 확대
  그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해서 서울에서 쓴 첫 번째 작품인 장편 《세 도시 이야기》는 화자 자신인 주인공 이영구의 이야기로 그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과거를 회상해서 쓴 일종의 자전적 소설로 상하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이다. 따라서 세 도시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화자 이영구가 현재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로스엔젤레스와, 그리고 전쟁으로 가정이 파탄이 나고 고향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던 그가 성장한 남쪽 끝 마산과 그리고 그가 방황을 하며 대학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으로 이제 그가 다시 돌아가려는 고국 서울이다.
이야기의 서두는  '환송회에 나온 사람들' 이라고 하는 그와 친분이 있는 그리고 이곳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다섯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유형이 다를 뿐, 그들이 살아온 이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 속의 의식세계는 이제 귀향 길에 오르려는 화자의 의식 세계와 근원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전쟁을 통한 한 개인과 가정의 비극적 이야기
  이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가 자라났던 남쪽 끝 마산에서의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데, 그의 가족은 불운하게도 전쟁으로 인해 그의 형과 누나와 조카가 죽고, 여덟 사람이나 되던 대 가족이 수년 사이에 두 부모마저 잃고 세 식구로 줄어들어 그는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이로 인해 주인공 화자는 부서진 고향을 버리고 서울에 가서 대학을 다니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가족의 비극적 슬픔이 가슴에 하나의 상처로 남아 깊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전쟁은 그와 그의 집안으로부터 거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몰락이나 다름없는 한 집안의 와해를 가져왔다. 세월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생각날 때마다 늘 아픔이 새로웠던 것은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소리 상권 100 p)
슬픔과 허무로부터의 탈출과 탐미적 세계를 향한 방황
그는 쓰라린 고통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다만 새로운 고향이라도 찾아가듯 현실의 세계가 아닌 환상의 세계 같은 탐미의 세계를 찾아 첫사랑에 열정을 쏟지만, 그는 마음에 평화를 느끼지 못하고 끝내 꿈속의 어린 새를 날려 보내고 만다.
" 안녕! 영순, 내 사랑이여, 안녕! 괴로우면 노래를 불러요.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나는 거리를 헤매고 다닐 테니……
정말 그랬다. 그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고 싶었다. 아니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었다. 멀리 떠나고 싶었다. 멀리, 아주 멀리, 가능하면 하늘 끝까지라도……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세 도시 이야기, 하권 93 p)
이처럼 그의 집 없는 유랑객과도 같은 끝없는 방황 속에서 어딘가 멀리, 새로운 고향 같은 곳을 찾아 헤매는 그의 영혼 속에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제피로스 바람 같은 신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영순은 내겐 단순한 여자가 아니었어.. 그 이상이었어. 영순은 내 여자였던 동시에 구원이었고, 여신이었고……"(세 도시 이야기 하권101 p)
이는 그의 절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취한 채 그의 집에 끌려가면서 그가 친구에게 중얼거린 말이다. 그의 집에 도착해서 그의 방에 쓰러지자 방바닥의 따끈한 열기 때문인지 그는 모처럼 솟아나오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었다.
"됐어, 됐어 그만 울어 따끈 따끈한 물 한잔 마시고 정신 차려.
  술이 취한 채 울음을 그친 뒤에도 그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다가 겨우 임을 열었다. "
" 죽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 큰 누나……우리 가족들이 불쌍해서 울었어. 복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다간 사람들…… 엄동설한 모진 추위 속에서 굶주리며 북한땅에서 피난 온 사람들도 모두 아무 탈없이 잘들 사는데, 남쪽 끄트머리 빨갱이들 포탄 한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우리 가족은 왜 풍비박산이 되어버렸는지……그게 슬퍼서 울었어.' "(세 도시 이야기 하권 102 P)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상
  이러한 그의 가족과 고향이 파괴되어버린 슬픈 아픔이 결국 그가 이민을 오게 된 한 근원적인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한 개인의 슬픈 운명이 한 가족의 역사와 그리고 전쟁이라는 국가적 사회적 사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그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가 이제 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 가정의 꿈의 좌절의 공간이 서울에서의 개인적 방황으로 옮겨가고, 그 방황이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까지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가 이민을 떠나오게 된 근원적인 원인이 바로 이러한 비극적 가족의 슬픈 사연으로부터 시작된 방황과 허무로부터 탈출과 자신의 의식의 바다 속에 고여있는 원천적인 탐미적 세계에 대한 추구가 함께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론지 가고 싶었다. 어디론지 걸어가고 싶었다.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그 어디론지가 하늘 끝이 아니라면 다른 나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갈만한 나라, 특별히 잘못 된 사람이 아닌 한 아무나 받아주는 나라, 내가 아는 사람들이 가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세 도시 이야기 하 204 p)
"그의 몸은 하늘로 치솟았다. 새로운 세계에로의 바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과 무지개와 환상을 쫓으며 공중을 떠돌기만 하는 어리석은 몸부림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날 날개에 갑자기 힘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 치기 위한 비상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세 도시 이야기 235 P)
이처럼 그는 끝없는 방황의 연장으로 꿈과 무지개와 환상을 쫓아 고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왔다.
이민은 바로 현실이고 아픔과 허무의 실체
그러나 이민의 꿈은 한낱 의식 속의 환상일 뿐, 이민은 꿈이 아닌 바로 현실로 그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 그가 바라는 바의 새로운 세계의 실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이내 회의에 잠긴다.,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새 삶이라는 건 있지가 않았다. 한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미국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건 뻔하다. 용화가 말한대로,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이 그저 미국 땅에 와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워 할는지는 몰라도 그로선 그럴 수는 없었다."(세 도시 이야기 하권 298 p)
"그 크놀프도 젊은 나이로 눈 위에 쓰러져 피를 토하며 죽지 않았던가. 그가 이곳에서 사는 것도 여행길의 나그네 같은 삶에 지니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이제 끝내야 한다."(세 도시 이야기 하 299 p)
"그렇다면 갈 길은 뻔했다. 이런 식으로 여기서 살 수가 없다면 다시 어디로 가야 한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한다. 갈 데는 한국밖에 없다. 그것은 해를 보는 것 저럼 확실하다."(세 도시 이야기 하 299 p)
새로운 자아에 대한 빛나는 발견
"가서도 내 일을, 내가 할 일을,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의 일을 찾지 못하면 다시 거기서도 떠나야 한다. 그렇다 나의 방황은 내가 나 자신의 일을 찾지 못해, 진짜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어 비롯된 것이므로 반드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세 도시 이야기 하 299 p)
그래서 그는 허무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귀향의 꿈을 꾸게 되고 끝내는 귀국을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는 방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방황을 끝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둠 속에서 다시 열리는 고향
"무엇이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풍비박산이 된 우리집안도 이어져가고 있다……
누나는 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북쪽 차가운 땅, 내리는 눈발 속에서 산화한 형의 딸 유미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남의 집 귀한 처녀 얻어 아들 딸 하나씩을 두고 있지 않은가(중략)
그들은 모두 어둠을 뚫고 나온 밝은 빛과도 같은 존재들이다."(세 도시 이야기 하 316 p)
이처럼 그의 가족은 전쟁의 참화라고 하는 암흑과도 같은 고통을 이기고, 이제 다시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밝은 빛으로 빛나며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처럼 화자의 세 도시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그가 그의 귀향을  '방황의 끝 혹은 시작' 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의 세 도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귀향 전(1기)에 주로 표현했던 이민의 현실과 아픔에 대한 문제점 제시가 서울에서 머문 이민 제 2기에서는 보다 사회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 되고, 내용면에서는 1기에는 현실의 아픔이 그리고 2기에서는 새로운 자아에 대한 발견이 중점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후기에 해당하는 이민소설들은 한결같이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어서 그가 이민오기 이전에 발표했던 전기의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작품 세계들과는 그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젊은 날의 바다나 첫사랑 같은 환상적 탐미세계를 향한 그의 방황이, 미국 이민 이후에는 현실 속의 방황으로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자아발견으로 바뀌고 있음이 하나의 특색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이다. 그가 귀국을 하게 된 경위도 그렇고, 광화문 주변의 무더위 속에서의 방황도 결국은 모두가 참된 자신의 자아와 가치를 찾아가는 방황이고, 이는 젊은 날 그가 잃어버린 고향과 환상적인 사랑의 꿈을 찾아 헤매던 방황과는 전혀 다른 방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두고 이태동 교수(서강대 교수)는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해설집에서 "이상을 닮은 듯이 어둡고 닫혀진 세계 속에서 자신을 수인으로 만들었던 그의 과거 스타일은 지금에 와서 쉽고 잔잔하며 넘침이 없는 서정적인 리얼리즘으로 바뀌었다. "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해설 '작가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도 설명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결국 이민 오기 전의 그의 작품 세계는 일종의 환상적인 꿈의 세계이고, 이민 이후의 작품 세계는 바로 현실의 세계라고 그 특색을 구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가 보다 더 적극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은 그의  '흔들리는 땅'(1995 동서문학)이나 '불타는 도시(1997 21세기 문학)'등으로 지진과 폭동 이라는 자연적인 그리고 인종적인 문제를 하나의 이민의 삶의 현실로 수용하고, 지혜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긍정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2)이민의 허상과 새로운 자아에 발견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창작과 비평사 1996)은 그가 귀국해서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집이다. 그는 이 작품집을 통해서 사막의 파피 꽃밭이나 다름 없는 이민생활의 허무와 그리고 광화문이라고 하는 고국의 모습과, 햄버거라고 하는 이곳에서의 이중 문화인으로써 겪게 되는 또 다른 고통과 방황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그가 귀국해서 광화문에서 소리 내는 그의 또 다른 제 2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노오란 땅의 끝은 하늘이었다. 주변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곳에 그 아내와 단 둘뿐이었다. 모든 것이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듯 했다. 다만 적막과 침묵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일 따름이다. 계속 들리는 것 같은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이 사막이 형성되기 잔부터 이어져온 침묵과 정적의 소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중략) 이제 다시 그 삭막한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313 p)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것이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그가 찾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그런 것들만 보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314 p)
이는 그가 미국 이민 생활에서 느끼고 있던 허상을 표현한 것이고, 여기에서의 말하는 파피꽃의 빛깔은 바로 이민의 꿈이라는 허무의 상장이고, 거기에 깃든 침묵과 적막은 바로 작자가 느끼는 공허와 허망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망한 아픔의 기억을 지니고 돌아온 그에게 광화문 주변에서 느껴지는 의식 세계는  또 다른 것으로 역시 방황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서울의 혹독한 여름날의 더위와 햄버거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그는 또 다른 이방인이 되어 이중 문화인이 겪어야 하는 또 다른 혼란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가족과 떨어져 이러고 있는가. 무슨 청승이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그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위안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삶이란 늘 무엇인가를 찾고 또 쉬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 나의 이 방황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에 싫증을 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면서, 이만큼이라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315 p)
"이제 무엇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가든 그가 의지할 건 그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이다."(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 316 p)
그러나 그는 고국에 있는 사이 장장 오천 장이라는 글을 썼다.  이것이 바로 그 자신의 끝없는 방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찾아낸 스스로에 대한 자아 발견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동안의 방황에 대한 하나의 빛나는 승리라고 할 수 있다.

(3) '종이 비행기"'에 나타난 현실로부터의 부단한 탈출의 꿈
"날아라, 훨훨 하늘 끝까지 멀리멀리 날아라
저 새들처럼 훨훨 날고 싶었다. 멀리멀리 하늘 끝까지 날아가고 싶었다. "(종이 비행기 208 p)
그는 푸른 하늘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어서 방황한다. 그래서 새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는 늘 탈출을 꿈꾸고 그래서 그는 이민을 갔고, 다시 귀국을 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매양 눈에 보이지 않는 두껍고 두꺼운 빌딩의 유리 벽이 푸른 하늘을 막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날고 싶어한다. 그가 접는 '종이 비행기'(현대문학 1995)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해방 직전 불안하게 고국 하늘을 날아 다니던 미국 B29, 육이오 전쟁터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 그리고 이제는 전쟁이 아닌데도 탱크 앞에서 군인들에게 매를 맞고 피를 흘리는 젊은이들. 이 모두가 자유를 억압 당하는 새들이고, 벽에 부딪쳐 떨어지는 종이 비행기들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래서 하늘을 날고 그의 꿈은 새와 그리고 종이 비행기로 상징한다. 새는 꿈이고 종이 비행기는 현실이다. 그를 새로 날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그를 얽매고 있는 현실이라는 벽이다. 따라서 현실의 벽을 뚫고 나가려는 종이 비행기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꿈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날아간 것이다. 그것이 이민이고, 이민의 꿈은 종이 비행기일 뿐이다. 그래도 그는 또 다시 하늘을 날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그의 하늘을 날고 싶은 비상의 꿈은 그가 미국에 건너와서 이민생활을 시작했던 초기의 의식세계를 자세히 밝힌 작품  '버려진 방' 에서도 역시 하늘을 나는 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된다.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자주 꾸는 꿈이 있었다. 공중을 훨훨 나는 꿈이었다. 들쭉날쭉한 도시의 건물 위, 넓고 황량한 들판 위로, 높고 험한 산 위로 한 없이 날았다. "(버려진 방 208 p)
"아주 어렸을 적에 바다 건너 이웃 나라에서 태어나 살다가 부모 따라 유난히 요동치던 바다를 건너 자기 나라라고 와선, 사람 사는 세상이 또 있구나 신기했을 때 벌써 그게 싹틀 자리가 마련되었던 건지." (버려진 방 219 p)
여려서부터 날고 싶었던 꿈, 그리고 바다 건너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 이것이 바로 그가 평생을 두고 방황하며 떠돌게 된 근원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날고 싶은 꿈……바다를 건너가고……또 건너오고…… 그리고 또…….

(4)'비밀을 가진 사나이' 에서 나타난 현실도피와 도망자 의식 세계
  사실 고국을 떠나와 사는 재외 동포 속에는 정치적 망명이나 아니면 애정도피, 그리고 경제 사범들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소수의 사람들로 해서 재외 동포들이 흔히 도망자니, 비애국자들이라고 하는 지칭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이런 도망자와 도망자 의식 세계를 밝힌 작품이 바로 '비밀을 가진 사나이' (중편 현대문학 1996)다.
"오랜 세월 자신이 쌓은 성에 스스로 가두고, 그 안에서 혼자 호기 있게 살아온 그도, 마침내 그 고립감을 견딜 수 없게 된지도 모른다. (중략) 그는 늘 누구에겐가 추적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멀리 훨훨 날아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비밀을 가진 사나이 109 p)
  이십 년 가까이 본국 정보부 조사관으로 일했던 한 도망자의 비극적 삶의 모습이 표현된 작품이다.
그는 그의 업무상 피고인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하고 괴롭혔던 그가 일을 그만 둔 뒤, 스스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미국으로 흘러 들어와서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고, 그리고 홀로 성을 쌓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한 인간의 정신적 고뇌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래 장성국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오고 가도 못할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들을 멍에처럼 지고, 가파르지도 험하지도 않은 산길을, 칠 년을 하루같이 매일 어둠에 휩싸인 산길을,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오르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그러다가 결국 그 멍에를 스스로 던져 버리지 못한 채, 거기서 이승을 하직하고 만 것이다. (비밀을 가진 사나이 196 p)
결국 그는 산 언덕 아래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 자살로 추정되는 비극적 죽음으로 생을 끝내고 만다.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며 자란 어린 시절, 가족을 사랑할 줄도 몰랐고, 가족으로부터도 사랑을 받지도 못했다. 이제 그의 몸을 수습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이곳 낯선 고장의 차가운 공동묘지에서 한줌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비밀을 가진 사나이 119 p)
이러한 현실도피에 의한 애정 도피나 범죄자의 도피는 흔히 그 결말이 비극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까닭은 그들의 의식 세계나 삶의 방식이 정상적인 삶의 경로가 아닌 이미 궤도에서 이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유럽에서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인들을 본국 정부에서는 도망자시 했고 그들의 기록을 도망자 문학이라고 까지 했던 점을 참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송상옥이 서울에서 머문 이민 제 2기에서는 이민 초기 (1기)에 주로 표현했던 이민의 현실과 아픔에 대한 문제점 제시가 보다 적극적이고 객관성 있는 표현으로 새로운 자아에 대한 발견이 표현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젊은 날의 바다나 첫사랑 같은 환상적 탐미세계를 향한 그의 방황이 미국 이민 이후에는 현실에서 느끼는 아픔으로 변했고, 이것이 다시 이시기(2기)에는 그 현실적 아픔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자아발견으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집 《광화문과 햄버거와 파피꽃》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가 귀국을 하게 된 경위도 그렇고, 광화문 주변의 무더위 속의 방황도 모두가 참된 자아 발견을 통해서 가치 있는 글쓰기를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이 시기에 장장 오천 장에 이르는 글을 써냈다는 점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결국 이민 오기 전의 그의 작품 세계는 일종의 상징적 환상적 슬픔과 고통 어린 꿈속에서의 자신의 존재 찾기이고, 이민 이후의 작품 세계는 바로 현실 속에서 사실적이고 실질적인 자신의 가치 찾기(자아발견)라고 할 수가 있다.
  또한 그의  '흔들리는 땅'(1995 동서문학)이나 '불타는 도시(1997 21세기 문학)' 두 중편은 현장 소설처럼 보다 사실적의적으로 묘사된 작품으로 지진과 폭동 이라는 자연적인 그리고 인종적인 문제까지도 하나의 이민의 현실로 수용하고, 이를 극히 현실적으로 타개해 가는 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 3기> 자연을 통한 참된 생의 가치와 탐미적 세계의 발견
  그가 재 도미해서 발표한 '사막 구경'(중편 '이머지 새천년' 중앙일보 2001)이나  '눈 구경, 또는 알래스카'(문학나무 2005)등은 종전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이는 바로 그가 젊은 날 주로 표현해 오던 극히 환상적이고 탐미적인 세계에 대한 표현을 다시 보는 듯 해서이다. 이러한 점은 그가 이민을 와서 이전까지 (1기, 2기)표현했던 이민 현실에 대한 사실적 이고 현상적인 표현이 이제 와서는 젊은 날의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탐미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고 표현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삶이라고 하는 현실과 자연의 신비나 이간의 관능미가 함께 조화되어 새로운 가치 있는 생명력이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그가 평생을 두고 추구해온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