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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초상(肖像)

2004.11.07 17:51

박영호 조회 수:628 추천:37

<습작 자전 소설>                   아름다운 초상(肖像)                                     (제3부)                                     혼령들과의  만남 아득하게 먼 옛날 깊고 깊은 섬에서 잠시동안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바다에만 취해서 살았던 세월이 있었다. 그저 하늘과 바다와 구름과 노을에만 잠겨 살던 정말 꿈결같은 세월이었다.   남쪽에서도 맨 남쪽 끝 항구에서 뱃길로 두 시간씩이나 떨어진 섬에서 다시 통통배로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그 외딴 섬은 육지와는 하늘빛도 다르고, 바다빛도 다르고, 노을빛 파도소리 바람소리도 모두가 다르게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립문을 밀치고 나서면 바로 백사장의 흰모래가 발에 밟히고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흰파도가 바로 발밑에 다가선다. 그리고 저만치 흰 백사장이 끝나는 언덕 자락에는 돌아 오지않는 옛님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붉은 해당화가 피빛으로 붉게 피어나서, 여름내내 바다를 향해 목을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가 지쳐서 모두 지고 말지만, 그래도 스러져가는 노을속에 끝까지 홀로 남아 있던 그 애처로운 마지막 꽃잎마저 지고나면, 섬에는 이내 남도의 길고 긴 가을이 시작된다. 그리고 언덕 숲에는 가을볕에 샛노랗게 익어가는 유자들이 노랑 등불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주렁주렁 매달린다. 그리고 다시 그 길고 긴 가을이 서서이 길을 떠나면 섬마을은 다시 붉은 꽃잎들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붉은 선홍빛 동백꽃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마치 형형색색으로 빛깔이 바뀌는 요비경 속이나, 어느 동화 속의 꿈나라처럼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그림 같은 섬마을이 눈앞에 떠오르고, 적막한 밤에도 그렇게도 쉬임없이 들려오던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그리고 그 파도소리 속에서 그리도 잠못 이루고 별빛처럼 밤하늘을 떠돌던 내 가난한 젊은 날의 내 영혼과 함께 내 주위를 그리도 맴돌던 내 아름다운 초상들이 떠오른다. 열아홉 나이에 섬마을 선생이 되어,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자신이 그때는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모처럼 나를 찾아온 대학엘 다니던 친구가 농담삼아 선생님, 선생님. 하고 놀려댈 때는 그 친구가 그 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고, 선생님이란 소리가 끄 때는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동내 처녀들은 나를 ‘수그리 선생’ 이라고들 불렀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않고 걸을 때 마져도 고개를 숙이고만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선생님이라고 모두가 깍듯이 대하니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도 없고 젊잔을 빼야 하는 처지이니 자연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만 해도 나는 여자에 대해선 쑥맥이었으니 자연 여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매일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나면 책을 보거나 아니면 바닷가에 나가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거의 일과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바다는 일찍부터 나에게 남다른 감회와 꿈을 느끼게 하였고, 그 바다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갖가지 모습들을 그 곳에 펼쳐 보기도 하고, 마음 속에서 막연하게 피어오르던 젊은날의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을 그곳에 띄워 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바다는 나에게 하나의 그리움이라고 하는 막연한 기다림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내 가슴 속에 심어 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노을진 바닷가에 앉아서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노을 속의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막연하게 누군가 정다은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것도 폭풍이라도 치면 보름만에도 오는 그런 편지를 기다리는 것 같은 그런 외로움에서 오는 그리움 같은 것을 말이다. 사실 그러한 막연한 그리움은 그 섬에서 시작된 것만은 아니고 훨씬 이전부터 지니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리움을 하나의 기디림으로 바꿔 지니고 그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지혜를 지닐 수 있게된 것은 바로그 섬에서였던 것 같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편지를 받아들고서도 곧바로 뜯어 보지 않고, 그대로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깊고 깊은 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먼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비로소 편지를 꺼내서 읽던, 그런 미를 인내하는 마음에 여유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눈에 보이지않는 그 어떤 힘을 내 스스로 가슴속에 붙들어 지닐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마음에 힘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까지 그 어떤 어려움에도 지치지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그 섬 생활이 더욱 아름다웠고 차라리 행복하 기까지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그곳은 내가 자청해서 들어간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생애중 그 때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섬을 떠나와서는 나도 남처럼 도시에 살면서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크고 작은 기다림이나 그리움 속에서도 살았지만 그런 현실적인 기다림이나 그리움은 의외로 많은 실망을 가져다 주었고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않는 상처도 안겨 주었다.   남행열차와 북행열차가 함께 교차되는 자정의 대합실에서의 만남이나 이별, 그리고 눈내리는 밤에 돌담길을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런 이별 뒤에 느끼던 밤하늘의 공허함이나 아쉬움에 가슴 아파하던 세월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그리움이나 이별은 영원한 것은 못되었다. 내게도 가족이 생기고 내가 사랑하고 보살피는 애들도 생겨 곁에서 자라고 있었고 그들이 나에게 힘이 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현실적인 사랑이고 보람일뿐 그것은 또 별개의 것이었다. 결국 인생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고 역시 외로운 길이란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나는 옛날 그 삼에서 지니고 살았던 그 꿈결같이 아름답던 막연한 그리움이나 기다림 같은 것을 다시 찾아 가슴 속에 지니고 살게 되었다. 그러노라니 마음이 다시 평온해지고 예전에 느끼던 그 마음에 힘같은 것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아온데서 오는 하나의 회한이나 자책에서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를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기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도 주위에서 현실적으로 크게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크게 부러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외형적으로 처지가 어떻든 내 마음이나 내 영혼 속에는 나홀로 지니고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나 그리움같은 그런 꿈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일찍이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참으로 순수하게 교우하며 살았고, 특히 그 때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혼령들과도 만나서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좀 기이한 것도 같지만 사실이 그랬고, 나는 그들을 통해서 참으로 순수하게 아름다운 인간의 영혼들을 볼 수가 있었고, 인간과 자연과 그리고 신이 빚어내는 참으로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깊은 밤, 램프불빛 아래서 먼 바다의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앉아서 멀거니 방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내가 알고있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그곳에 나타나고, 또한 내가 알고있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혼령들도 나타나서 그 방벽에 어른거려서, 나는 밤마다 그들과 만나 함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들과 함께 살았다. 그 혼령들 중에는 일찍이 군대에 자원해서 들어가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젊은 나이에 권총으로 자살을 해 버린 친구도 있었고, 그녀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새삼스럽게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된 사라호 태풍때 파도에 휩 쓸려가 죽은 그곳 섬처녀의 혼령도 있었고, 또 죽게된 사유와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특별한 처녀의 혼령도 있었는데,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죽은채 바다에 떠내려 와서 그 섬에 묻혔는데, 그 처녀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이 많았고 이상한 소문마저 떠돌고 있었다. 섬 앞바다에서 멸치어장을 하는 허구장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에 홀로 배를 타고나가 어장 그물을 살피던 중, 그 어장 그물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시신이 떠 올랐다는 것이다.그런데 그녀는 처녀였고 그녀의 몸이 죽은 사람같지않게 그녀의 몸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온 몸에 생기가 있고, 얼굴과 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허구장은 그 처녀의 알몸이 어찌나 황홀하게 아름다운지 끝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그만 배위에서 그 알몸의 시신과 관계를 맺고 말았다는 믿지 못할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허구장은 시신을 섬마을에 가져와서 곧바로 큰섬 지서에 신고를 하고 수소문을 했지만 연고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구장이 돈을 들여 그녀의 장례를 잘 치러 주고 무덤까지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그런 일이 있은 뒤로 이상하게도 허구장의 어장에는 말할 수 없이 많은 멸치떼가 몰려들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가가득 차서 일시에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술자리에서 그만 실수로 친구에겐가 누구에겐가 그 은밀한 이야기를 흘렸는지 어쨌는지 소문이 나돌게 되었고, 그는 그일로 해서 그의 부인으로부터 아주 말할 수 없는 고역을 치루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가끔 밤이면 그 소문속의 그 처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알몸을 바라보고 있었을 그 신구장 이라는 사람의 눈에 비친 그 알몸의 아름다움을 골돌히 머릿속에 상상해 보면서, 나는 끝내 내 상상의 세계에서 그녀를 비너스 여신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의 알몸으로 만들어, 그녀의 모습을 마치 내가 실제로 보기나 한 것처럼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시켜 놓았고, 나는  밤마다 내 눈앞에 떠올라 어른거리는 그녀와 조우하곤 했던 섯이다, 또한 이와는 크게 다른 혼령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훨씬 옛날부터 그곳 섬마에 살고 있었고, 그들은 그 때로부터 이미 육십 여년 전에 있었던 청일 전쟁 때 섬 앞 바다에서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청국 군인들의 혼령들이었는데, 그들은 바로 섬 앞 바다에서 청국 군함이 일본 해군이 쏜 대포에 맞아 침몰했을 때 바다에 빠져 죽은 청국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섬까지 헤엄쳐 살아나온 사람들은 뒤에 자기 나라로 돌아들 갔지만, 죽어서  떠밀려온 사람들과 부상이 심해서 뒤에 섬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대로 섬에 묻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덤이 섬 바닷가 언덕위에 있었는데 무덤이 아주 흉한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서 아이들은 대낮에도 그곳 주위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나 밤이면 그 무덤에서 혼령들이 나와서 섬을 돌아다닌다고도 하고, 그 혼령들은 거의가 총각들이라서 처녀 집들만 골라 찾아다닌다고 하고, 더러는 주막집에서 밤 사이 술을 훔쳐 마셔서 술독의 술이 줄어 있다고도 하는 등 끊임없는 소문들이 나돌고 있어서 부녀자들 조차도 밤이 되면 그 묘지를 무서워들 했다.   아무튼 그 혼령들은 나처럼 밤늦게까지 잠못 이루는 사람들 곁에 머물기를 좋아해서, 적막한 한 밤중이나 폭풍이 몰아치는 등 일기가 불순한 날 밤에는 어김없이 내방에 찾아와서 내 방 벽에 어른거리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과 만나 그들의 긴 한숨과 외로움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혼령들은 내가 섬을 떠난 뒤에도 내 의식 속에 살아 남아서, 더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그리고 전혀 엉뚱한 사람들의 얼굴 위에서 그들이 나타나곤 했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내가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새벽 어장 그물에 떠오른 그 처녀의 아름다운 알몸이 내 눈앞에 떠오르고, 이와 함께 사라호 태풍 때 파도에 쓸려가 죽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내 아름다운 섬처녀의 혼령이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녀와 비슷한 얼굴을 보거나 아니면 그녀와 비슷한 음성만 들어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온 몸과 가슴에 번져오는 물길같은 그리움에 한없이 뻐져들곤 했던 것이다. 더욱더 특별한 것은 정말 가끔, 뜻하지 않게도 꿈속에서 그들이 나타나서 내가 그들과 함께 다시없이 아름답고 감미로운 사랑의 희열에 잠기기도 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마 내 자신의 영혼이 너무 가난해서 그럴거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지나치개 감각적인 셰게에만 치우쳐 사는 것도 같아서 조금은 자신이 못마땅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선량한 혼령들도 하느님 아래 기식하는 존재들이고, 나의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름다운 환상도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것이리라고 생각하고 나면 죄의식이 좀 덜어지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구원 받으리라는 구원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있었고 하느님에게 감사했었다.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죽는날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꿈을 꾸고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 었고, 그 모두가 하느님이 마련해 주시는 은혜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남성에게 있어서는 여인이나 여체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탐미적이거나 감각의 세계에만 집착되어 있는 것도 같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자도 그가 가장 외롭고 무료하거나 불안할 땐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며 젖을 빨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것이고 마음이 안정되어 온다고 했던 말을 떠 올리면, 나의 여인에 대한 그런 심미적인 느낌이 지나치다거나 별다르게 생각되지 않았다. 결국 노자나 내가 느끼는 여자에대한 느낌은 근원적으로 같은 것일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그림 같은 그 섬마을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때 꿈꾸던 그 꿈결 속의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그리움이 구름처럼 피어 오른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움이나 기다림에 한동안 잠겨있노 라면 그 어떤 불안함이나 외로움도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울적해지면 지금도 가끔 그 섬과 그 옛 혼령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만나는 꿈을 꾼다, 그러노라면 어느덧 마음에 울적함이나 근심 같은 것도 멀어지곤 한다. 이제 나는 그들과의 아름다운 해후를 위해서 머지않아 그곳 섬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그녀의 혼령도 다시 만날 것이고, 그리고 내가 일찍이 만났던 그 많은 혼령들과도 모두 다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사과하고, 그리고 또 내 인생의 여정에서 꽤나 적조했던 내 영혼의 회포를 풀 것이다.   우선 내가 그곳에 찾아가면 누구보다도 맨 먼저 만나 보아야할 한 젊은 혼령이 있다. 그 혼령은 이십여년 전에 죽은 혼령으로 그는 내가 일찍이 그 섬에서 가르쳤던 아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내가 이미 죽은 그 아이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아이가 어렸을 때 유별나게 머리가 좋았고 마음이 착했 으며, 그리고 일찍부터 자기 또래의 한 소녀를 무척 사랑 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그가 애통하게도 세상을 너무 일찍 떠났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까마득하게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그곳에서 지내던 어느 늦가을 달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저녁을 치룬뒤 모두 함께 섬언덕 위로 달맞이를 나갔다. 휘엉청 높게 뜬 가을 달이 온 바다를 대낮처럼 밝게 비추고 있었고, 우리는 바다로 향한 바위 끝에 앉아 밝은 달과 바다를 보면서 노래도 부르고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가 잠시동안 모두가 아무 말없이 달과 바다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눈빛이 유별나게 고운 여자 아이가 가을밤 하늘에 높이 떠있던 그 냉기 어린 달을 쳐다보고 “저 달도 춥겠다.” 하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그 소녀를 좋아해서 늘 그 소녀곁만 맴돌던 한 소년이 곁에서 “ 달이 추우면 이 언덕도 추울거야. “ 하고 바윗돌이 많아 나무가 별로 없는 주위의 언덕도 가여워 했다. 바로 이 소년이 내가 기억하고 그 소년이다. 섬마응 아이들은 그렇게 마음이 순박할 수가 없었다. 정말 군살이 없이 투명하게 맑고 가는 몸으로 물살을 가르며 사는 어린 물고기들만 같았다. 해가 바뀐 봄날, 우리는 식목일에 함께 섬언덕에 올라가 그곳에 잔솔들을 심었다. 그리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 면 서 산을 내려왔었다. “ 초록색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ㅡ      초록색 바닷물이 마음에 젖어요ㅡ “   그 잔솔들이 언덕 위에서 다닥 다닥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섬을 떠났고, 섬언덕 위에서 멀어지는 배가 연 기를 길게 늘어뜨리며 한점의 모습으로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않고 손을 흔들고 서있던 아이들도, 그리고 섬도 달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십여년 만에 도시에서 바람결에 무심히 들려오는 섬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슬픈 소식 하나가 내 가슴을 무척 아프게 하였고 며칠 동안을 슬픔에만 젖어 지내야만 했다. 헐벗은 섬언덕도 가여워 하던 그 착한 소년과 눈빛이 유별나게도 곱던 그 소녀가 자라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소년이 영장을 받아 군에 입대하게 되고 월남전에 나갔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사했단다. 아마 월남 숲이 좋았덛 모양이다. 소년을 잃은 소년의 어머니는 일찍이 소년의 아버지가 풍랑으로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때처럼 땅을 치고 통곡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바닷가에 나가 앉아 불을 지피고 앉아서 몇 날을 두고 북을 치면서 아들의 명복을 빌고 아들을 찾아 울부짖다가 끝내 바다에 걸어들어가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던 소년을 잃은 그 눈빛 고운 처녀도 매일 같이 섬언덕에 올라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슬피 울면서 지내다가, 몇해 뒤 부모들에 이끌려 뭍으로 시집을 갔단다. 그리고 지금은 큰 도시에서 잘 산다고 한다. 아마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으리라. 그리고 지금도 가을 달밤이면 아마 창밖의 달을 바라 보면서 그 섬과 소년을 생각할 것이다. 섬에는 이제 소나무가 자라서 산을 휘덮고 있고, 그 소년의 영혼도 월남에서 돌아와 그 숲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소년은 가끔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홀로 숲속을 거닐기도 하고, 더러는 달 밝은 밤이면 홀로 섬 언덕에 올라가 앉아서 뭍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마 소년은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라고들 했다. 그러다가 폭풍이라도 치는 밤이면, 소년의 혼령도 소녀를 찾아 무섭게 성낸 파도처럼 울부짖고 통곡을 하는데, 그 통곡하는 슬픈 울음 소리가 어찌나 처량한지 그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섬사람들의 귀에까지 둘린단다. 그렇게 몇날을 두고 울부짖다가 폭풍이 멎고 나면 소년도 지쳐 울음을 그치지만, 그래도 소년의 지친 울음 소리가 한동안은 파도 끝에 희끗희끗 뭍어 둘린다는 것이다. 나는 수년 전부터 이 섬에 다시 돌아갈 것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가까이 그곳에 돌아가게 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 내가 이제 그 섬을 찾아가게 되면 나는 맨 먼저 그 섬언덕을 찾아갈 것이다. 아마 지금 그 섬 언덕은 우리가 옛날에 심어놓았던 그 잔솔들이 자라서 하늘을 가리고 있고, 그곳에 있던 옛길은 이제 오솔길이 돼 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가는 날부터 매일같이 그 오솔길을 거닐 것이다.그리고 그 소년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노라면 어느날인가는 그 소년을 만나게 될 것이고, 나는 그 소년을 만나게 되면 먼저 소년의 슬픈 영혼을 위로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곳에서 소년과 함께 살면서 매일 같이 그 오솔길을 거닐 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 여인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노라면 어느날인가는 분명 그곳에서 내가 평생을 두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내 여인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 길은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내가 그녀와 가끔 마주치던 곳이다. 그녀는 내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던 그곳 섬청년의 동생이었고, 눈빛이 깊게 곱운 아름다운 처녀였지만, 내가 그곳에서 그녀와 마주치곤 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가 내가 그곳에서 그녀와 마주치게 되면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채 고개를 깊이 숙이고 피해가듯이 바삐 지나가던 그녀를 두고, 나는 그저 그녀가 처녀이고 또 수집음이 남달리 많아서 일거라고만 생각했을 뿐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치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죽고난 다음에야 새삼스럽게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었고,거의 평생을 두고 마음속에 지닌 채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뿐 이라고들 말하지만 난 그렇지가 않다. 나는 많은 사람을 함께 사랑하고 있다. 살이 닳도록 함께 살아온 집 사람도 있지만, 내 의식 속에는 평생을 두고 함께 살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내가 연모까지는 하지 않더래도 늘상 마음 속으로 좋아하는 현실 속의 아름다운 여인들도 있다. 이런 분들 중에는 상대까지도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도 분명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한사람 뿐이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관념이나 관습에서 만들어진 이성적 세계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의지의 세게일 뿐이고, 실제 인간의 본성이나 감성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게 있어서만큼은 더욱더 그렇다. 내가 혹 여자라면 아마 이렇게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것도 또한 이성적인 관념에서 오는 생각일뿐 여자도 남자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런 환상 같은 그리움이나 기다림은 신 앞에서 보면 일종의 지나친 욕심이나 사치 같은 것이고, 또 어찌보면 비도덕적인 것으로도 생각되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제까지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떼문이다. 다만 그것이 영생과 구원을 찾아가는 하느님을 향한 길이라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질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도 후회스럽지가 않다. 사실 사람들이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근원적으로는 나와 똑 같은 의식이나 감정의 세계에서 살아가고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나와는 달리 의식의 세계에서조차도 도덕적이나 신앙적으로 잘 절제를 하고 있는 점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죽는날까지 나의 꿈과도 같은 이런 영혼 속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면서 살 것이다. 그리고 죽어서도 영혼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 가서 만나 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혼의 세계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지금도 그곳에 돌아가게 될 날만을 기다리면서 그들과의 해후를 꿈꾸고 있다. 이렇게 그곳에 가서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마구 설래고 부풀어 오른다.     내가 그곳에 가서 그녀를 만나게 되면 나는 먼저 그녀가 이끄는대로 그녀를 따라갈 것이다. 아마 그녀는 나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섬언덕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섬언덕 동백꽃 그늘에 함께 앉아서 한없는 사랑의 기쁨을 나눌 것이다.  나는 동백 꽃봉 같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출 것이고 그리고 일찍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신이 주실 최대의 희열을 맞볼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동백꽃잎이 흩날리는 그 섬 언덕이 눈에 보이고, 내 가슴은 붉은 선홍빛으로 붉게 물들어 온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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