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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소설 연구 (2)

2005.06.28 17:14

박영호 조회 수:550 추천:42

「미주 한인소설 연구」(2)
                                                                                                                      
삼일운동 이후부터 광복이전까지
국문 소설   1                                
 
출항하면서  
삼일 운동은 일본 압제에 대한 민족의 망국적 비애와 울분이 분연히 폭발된 독립에 대한 거국적인 민족 저항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지만, 그러한 역사적인 가치를 떠나서 시대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다시없이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하나의 시대적 변화의 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삼일운동은 불행하게도 현실적이지 못한 비조직적이고 저돌적인 투쟁이어서 이는 당연하게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고, 우리 국민은 참담한 패배와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혼이 결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민족의 결집력을 만방에 알렸고, 아울러 우리 민족이 언젠가는 반드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강인한 국민이라는 민족적 의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운동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자각으로 지금까지의 저돌적인 투쟁에서 일단 물러서서 우선 현실적인 힘을 기르는 등,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 가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그러한 변화가 정치적으로는 이제까지 분산되어 있던 정치세력을 하나의 조직적인 집단 세력으로 결집시키려는 노력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의식의 세계가 새로운 물결처럼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삼일 독립운동은 우리민족에게 새로운 정신적 변화를 가져다 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하나의 시대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까지 외부로만 향해있던 애국애족이나 구국투쟁 같은 집단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차츰 눈앞의 현실세계나 인간 내부의 세계로 옮아가 문제인 옮아가, 삶의 질이나 가치를 밝히는 극히 개인적인 의식의 세계로 옮겨가게 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금까지의 애국이나 애족, 그리고 구국투쟁 같은 그러한 집단의식이 차츰 자아 성찰을 통한 자각을 통해서 자유나 평등 사상에 바탕을 둔 극히 개인적인 현실의 세계로 옮아 가게 된 점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바탕을 둔 개인적인 애정이나, 교육, 계몽 및 종교 사상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삶의 질에 대한 가난과 빈부 격차 해소 등의 극히 사회적인 의식의 세계로 관심이 서서히 옮아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에 쓰인 미주 한인 소설 속에서 고국에서처럼 그 구체적 모습을 잘 살필 수 가 있고, 이러한 점을 통해서 우리는 그 시대의 미주 한인들의 일반적인 의식의 세계를 살펴 볼 수가 있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점은 고국에서는 볼 수 없는, 미주 한인들만이 지닌 그들의 또 하나의 독특한 의식의 세계를 살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 바로 현지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적응해 가려는 노력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는 일찍이 임시 체류자나 정식 이민자들 까지도 조국광복에 대한 귀향의 염원과 경제적 여유만 되면 언제고 귀향을 해야겠다는 굳은 귀향의 의지가 삼일 운동의 실패라는 조국 현실 앞에 힘없이 물러서게 되고, 보다 먼 장래를 위해서, 우선 현지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려는 새로운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점은 시대적인 발전과 변화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변화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삼일운동 실패 이후 나타난 현실적 자각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현실에 보다 충실하려는 삶의 희망적 의지에서 나타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점은 무엇보다도 미주한인 문학이 하나의 이민문학으로서, 그리고 미국의 한 소수민족 문학으로서의 그 문학적 형태가 차츰 정립되어 가고 있는 점으로, 이러한 점이 이 시기의 한인 소설들이 지닌 또 하나의 특색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이 시기의 시대적 특색
삼일운동은 일찍이 제 일차 세계대전의 종식(1918.11월)에 대한 사후처리로 파리에서 열리고 있었던 강화 조약 회의에서 발표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직접 영향을 받아 일어났었고, 1921년 실시된 워싱톤 회의에서도 다시 천명이 되어, 이는 삼일운동 실패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지닐 수 있는 자주 독립정신, 자유정신, 평등정신 등으로 승계 되어, 바로 우리민족의 자주정신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민족자결 정신은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약소 민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 그리고 인도 등지의 피지배 국가에서도 민족 자결론이 크게 대두되면서 지배국에 대한 독립 저항운동이 일고 있었으나, 열강들은 서로의 밀약 등으로 이를 억압하고 그들의 국익을 위해 이전투구만을 일삼고 있었고, 이처럼 팽창일로에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약소국가 국민들은 여전히 소비시장으로 계속 수탈 만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일본 역시 1920년대에 들어서서 시작된 그들의 경제적 불황의 해결책으로 전쟁과 소비시장의 확충을 꾀할 수밖에 없어서, 만주와 동남아시아로 그들의 침략의 야욕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던 것이고, 국내 정책에서는 역시 대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던 민족 자결론에 대한 영향과, 삼일운동을 통해서 고조되어 있었던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완화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제까지의 탄압만을 일삼던 일반적인 강압정책에서 한발 물러서서, 조선 교육령(1922년)을 선포하여 조선역사와 조선어 교육을 허용하고,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 등의 신문 속간과 헌병경찰 제도 폐지 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유화 정책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은밀하게 고등교육을 억제하고, 고등계 형사계의 실시(1923년)와 새로운 치안 유지법(1925년)운용 등 더욱 탄압의 고삐를 조이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국가적 음모인 만주 침략과 중국 및 동남아에 대한 침략을 실행에 옮겨 전쟁으로 광분하고 있었고, 내선 일체라는 미명으로 우리 민족 혼을 말살하여 그들의 전쟁에 우리 국민을 이용하기 위해서 신교육령을 포고(1939년)하여, 조선 역사 지도 및 조선어 폐지(1938년), 언론 탄압 (조선, 동아 폐간)을 시작으로 창씨 개명(1939년) 징용령(1939년) 징병제(1943년)등 말기적 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정치인들은 우선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구국 단체들이 함께 모여 상해에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1919년 4월) 독립군을 적극 운용하는 등 이제까지의 국내의 저항운동을 보다 현실적인 국외의 적극 투쟁으로 대응하고 있었고, 이러한 투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나 미주로 옮아가서 구국에 대한 저항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문학자들을 중심으로 삼일운동 이후 민족 문학 형태로 서서히 시조 부흥운동(1920년대 중반) 등의 은밀하고도 비 저항적인 방법으로 민족혼을 부흥하고 지속해 가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던 점을 들 수 있고, 또한 이와 함께 동남 아시아의 약소 국가들이 겪어야 했던 소득 분배나 계급사회 개혁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거창한 사회주의 사상 등이 하나의 사회의식으로 대두되었던 현상이 고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현실적으로 극심한 사회적 의식의 대결 양상 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고, 이러한 사회주의 의식의 표현이나 충돌이 소수의 문학자들에 의해서 1920 년대 중반부터 치열하게 대두되었던 점이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은 고국과의 교역과 왕래의 증대로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구체적 모습은 이미 그 시대에 고국 서적에 대한 광고문이 신한 민보에 게재되고 있었다는 등의 극히 단편적인 사실에서도 엿 볼 수가 있다. 이처럼 그들이 떠나온 고국의 의식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던 점은, 그들이 그래도 떠나온 고국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그들의 주체성 수호에 대한 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과는 달리 미주 한인들이 차츰 현지에 적극적으로 정착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삼일 독립 이후 보다 현실적으로 현실의 삶에 적응해 가려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고,
현지 뉴욕, 상항, L.A 등지에 소규모 한인그룹 거주지의 등장과 한인 교회 설립 들이 그들이 현지에 정착해가는 그 구체적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이들을 통해서 그들의 종전의 독립투쟁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독립자금 지원 등의 간접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 또한 그 한 사례가 되고 있고, 이러한 점에 대한 그 의의나 그 가치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2) 새로운 물결의 대두
  앞서 기술한 것처럼 삼일 운동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자유 평등 사상은 삼일 운동의 실패 이후에도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에게 많은 변화의 물결을 가져다 주었다.
우선 사회적인 측면에서 사회의 근본적인 바탕이 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사상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 점이다. 이러한 점은 마주 한인들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제까지의 비현실적인 집단의식에서 보다 현실적인 눈앞의 사회의식으로 차츰 대상이 바꾸게 되었고, 이제까지 외부만을 향해있던 시선을 내면 세계로도 돌려 개인적인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탐구로 서서히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선 미주 한인 소설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우선 이제까지의 주로 전통적인 사회관념이나 관습에 의해 행동하던 비현실적인 표현에서 보다 현실에 입각한 개인적인 개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현실적인 세계와 사실적 세계 등이 표현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색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종전의 애국이나 구국에 대한 집단의식의 세계가 눈앞의 사회나 개인의 삶의 질 등, 현실적인 대상으로 바뀌어 표현되고, 낭만적인 애국심 같은 비현실적인 관심이 이제는 보다 현실적인 사회의식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단일했던 국가적 집단의식이 사회적인 의식을 거쳐 차츰 개인 의식의 세계로 접근해 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 할 수 있고, 그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이 시대에 나타난 사회주의 의식 등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미 고국에서 일기 시작한 민족혼 부흥을 위한 민족문학 운동과 때를 같이 하여 등장한 푸로 문학(KAPF. 1925)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국가적인 대상에서 사회적인 의식으로 대상이 바뀌어가는 현상이지만, 그 추진과정에서 개인들의 자유와 권익을 침해하는 등 상대적인 개인의식과의 과격한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점들로 해서 결국 이러한 사회의식은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은 제1차 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또는 우리 국내적으로 새로 나타난 의식의 물결 중에서 크게 비중이 있었던 사상이지만, 이러한 사상이 또 하나의 큰 이념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사상을 능가 할 수는 없었다는 점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의식의 출현하여 애정이라고 하는 개인의식에 의해 참담하게 패배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의식 세계의 충돌로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사회적인 그 무엇에 앞서 소중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사회의식이 정치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의해 아직 현존하고 있는 점은 하나의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시대의 가장 큰 의식의 물결은 앞서 수없이 기술된 개인적 의식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자유와 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나타나는 의식 세계 중의 하나가 바로 외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의식은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가치나 관습에만 종속되어 살아오던 이들이 자신들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개인적인 삶의 본질이나 가치 등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외부의 현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특히 소설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의 진행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데, 우선 종전과는 달리 새롭게 발견된 개인의 가치나 권리를 바탕으로 외부의 모든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점이 특색으로, 고국의 전통적인 사회관습과 함께 대조되는 현지의 그릇된 애정 관이나 결혼관, 그리고 지나친 상업정신이나 인종차별 등 당대의 모든 사회적인 모순에 대한 회의와 강한 비판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나 앞서 기술한 사회주의 사상 같은 사회 의식에 대한 상호 비판은 미주 현지 비평가들의 비평 문을 통해서, 고국에서나 다름없이 상당히 구체적이고도 치열하게 표현되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시기에 새롭게 나타난 물결중의 하나가 바로 신교육 사상이다. 이는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찾던 구국 방법을, 이제는 눈앞의 현실에 입각한 교육과 계몽을 통한 실력배양 등의 간접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대처하려는 보다 실질적인 노력으로 의식과 행동이 옮겨가 있는 현상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극히 일반적인 교육목적이 현실적으로 국가적 애국에 부응할 수 있는, 일찍이 미국의 근대화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었던 실용주의 교육(Johon Dewy.  Pragmatism)과 같은 내용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상업과 과학 중심의 실업교육과 같은 내용으로 현실적으로 사회나 국가에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의 교육사상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현지 유학생들의 의식 세계를 통해서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의 하나로 현지 세계의 현지인들에 대한 한인의 의식의 표현이다. 이 것은 이 시기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영문 소설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문 소설의 등장은 이민 역사에 비추어볼 때 때늦은 감이 있으나, 아무튼 이러한 영문 소설의 등장은 우리의 의식을 현지인들에게도 알리려는 현지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면서, 현지 문화에도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려는 노력이 표현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은 우리 문학의 영역 확대와 함께 미주 한인 소설이 이민 소설로서 그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가고 있는 하나의 필수적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3)새로운 의식의 세계
우선 의식의 표현 대상에 대한 방향의 변화다. 다시 말하면 삼일운동 이전 초기의 작품에는 거의 모든 표현 대상이 애국이나 애족 등 한결같이 인간 외부의 집단적 의식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삼일운동 이후는 그러한 외부로 향한 집단의식에서 보다 세분된 부분적인 사회 의식의 세계나 개인적인 세계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은 바로 초기 시가 (詩歌)쪽에서 더욱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초기의 운문이 한결같이 창(唱歌)와 단체가 같은 형태의 집단적인 내용을 적어 집단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많이 표현되고 있었으나, 삼일운동 이후에는 이러한 현상에서 차츰 개인적인 내용을 적은 일반적인 운문의 형대로 옮겨가는 보습에서도 잘 알 수가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에 있어서도 그 내용이 국가와 같은 집단적 의식세계의 일변도에서 차츰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의식 세계로 변화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경우가 애정 소설의 경우로 초기 소설에서는 애국과 애정이 함께 대두되지만 그 어떠한 경우도 애정의 승리로 끝나는 점이 없다. 그러나 이 시기의 소설에서는 애국이나 사회 위주로 표현된 소설은 극히 드물고, 애국 및 사회화 애정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합일점으로 표현되거나, 아니면 단연 애정 승리로 끝나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애정이란 그 어느 시대나 어느 공간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원적인 가치이고 우리 인간 내면의 의식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라는 점에서 보면, 이는 내면적인 인간성의 승리라는 점이 밝혀진 셈이다.
이처럼 집단적 의식 위주로 전개되던 종전의 소설 내용이 차츰 개인적인 의식 세계로 변해가는 것은 앞서 밝힌 세계적으로 나타난 하나의 새로운 물결에 편승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삼일운동의 실패에서 오는 일종의 좌절이나 도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자각에서 비롯된 인간의 개성적 자유와 평등 사상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종전과는 달리 새로 발견된 개인의 가치나 권리를 바탕으로 외부의 모든 현실을 비판하게 되어, 전통적인 고국의 사회관습과 함께 대조되는 현지의 그릇된 상업정신, 그리고 그릇된 애정관 등 당대의 사회적인 모순에 대한 회의와 강한 비판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나 앞서 기술한 사회주의 사상 같은 경우는 비평인들을 통한 상호 비판을 통해서 고국에서처럼 상당히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의식들과는 달리 보다 새롭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의식 세계를 들 수 있는데, 떠나온 구세계와 현지의 새로운 세게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충돌의 세계로, 여기에서 나타난 주체성과 정체성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주체성이란 이민 1세들이 현지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정체성이란 이와는 다르게 새로 등장하는 이민 1 세들이 자신들의 근원을 찾아 가는 의식의 세계를 표현 것으로, 주체성이 현재를 지키고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정체성은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의 나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찾아가는 대상은 ‘한국인인 나’라는 점에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는 이민 문학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의식의 세계이고, 이러한 의식의 대두는 미주 한인 소설이 보다 더 가치 있는 이민 문학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신교육 사상과 종교에 대한 의식의 세계로 종전까지 관심에만 머물러 있던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관심이 이제는 미주한인들의 생활 종교로 차츰 정착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더러는 영혼의 구원과 함께, 조국의 장래까지도 종교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종교 절대주의 사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4)소설의 형태적인 특색과 변화
  이 시기의 언어 표현 역시 종전 초기의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고대소설의 문장을 거의 탈피한 현대어에 접근한 어휘나 문장으로 많이 바뀌어 표현되고 있는 점이 눈에 뜨인다.  
또한 소설 구성상의 기교적 표현 방법은 고국에 비해 별로 손색이 없는 작품도 있고, 더러는 단편 소설의 구성에 대한 특별한 기교적 효과를 나타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점으로 보아, 유럽 문예에 대한 지식이 일본을 통해서만 유입되던 고국에 앞서 현지의 서구 소설 형태나 구성 기교에 이미 부분적으로 익숙해져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배제 할 수가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선 초기소설과 구별될 수 있는 구성상의 특색을 보면, 이야기의 대상이 종전에 나타나는 비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고대소설 형태의 몽유적 표현이나, 위인전이나 전기문 같은 신소설의 형태에서 거의 와전하게 탈피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1921년에 발표된 <고향의 꾼>이란 작품에서도 꿈이라고 하는 몽유적인 표현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는 초기 소설의 극히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와는 다른 극히 사실적인 실제 현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사실적일 수 있는 현상의 내용을 막연하고 단순한 이야기 그대로만이 아닌, 하나의 허구라는 소설적 형태로 재구성하여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 시기 소설의 가장 큰 발전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더러는 소설의 형태라고 할 수 없는 서간문 형식이 소설로 표현되고 있고, 소설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는 희곡의 형태와 혼합되어 있는 장르가 아직 확실치 못한 과도기적인 미숙한 형태의 작품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초기소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소설적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형태상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소설에 쓰이는 제재(題材)의 선택과 작자의 기교적 구성이 복합되어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시기의 소설 거의 모두가 극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제재가 표현되고 있는 점에서 더욱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소설 미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본국의 소설들에 비해 아직도 뒷떠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특이 1930 년대 이후 김 동인 염 상섭씨 등에 의해 근대소설로서 그 위치를 차츰 정립해 가고 있던 고국의 그대 소설에 비하면 미학적인 소설적 가치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의 구성이나 문체  등의 문학적인 가치만을 기준으로 하는 데는 무리가 있고, 무엇보다는 국가나 사회에 대한 하나의 집단 의식의 줄기찬 표현과, 또 특별한 공간에서 쓰여진 이민 문학이란 특성이 우선 참작되어야  하고, 이러한 점이 바로 미주 한인 소설이 지고 있는 특별한 가치가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5) 이 시기의 작가적 특색
  이 시기에도 실명을 사용한 사람은 <자유혼인>의 ‘오 정수’와 <현미경>의 ‘최 희송’ 두 사람뿐이고, 여전히 대다수가 필명이나 아호 등을 쓰고 있고 작자 미상도 세 사람이나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소설 작가도 초기의 소설과 같이 전문적인 작가보다는 언론(신문 종사인) 종사자와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유학생들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점은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등장을 하는 점으로 보아 이러한 추리가 가능하다.  그러한 작품으로는 <자유혼인>의 오 정수, <사랑하는 누님께>의 씨 씨 한, 그리고 <현미경>의 최 희송 씨 등이 았고, 나머지 작품의 작자들 중에도 유학생의 작자가 더 있으리라고 본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현지에서 노동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그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면, 장문의 연재 소설을 쓴다는 것은 여간한 열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점을 참작한다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만한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시기에 나타난 작가적 특색 중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문학 평론가들에 의해 쓰인 많은 문학 평론의 출현이다. 우선 소설과 직접 연관된 비평을 쓴 분은 소설 <사랑의 빛>에 대하여 ‘종교소설 <사랑의 빛>을 읽고서’를 쓴 홍 성삼 이다. 이분은 그 글의 말미에 비평의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소설을 좋아해서라고만 간략히 밝히고 있어서 자세한 신분은 알 수가 없으나, 그 내용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소설 전반에 걸쳐 아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고, 사건의 구체적 모순점들과 불합리한 그 진행 등 전체적인 소설의 구성상의 문제점까지도 지적을 하고 있고, 다음과 같은 문체에 대한 지적을 보면,
‘조선물산과 내외국 일용백화점을 경영한다는데 불 일간 신문지에 발표되는 대로 착착 진행되리라 한다.’
라는 표현을 보더라도 이분이 소설 비평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지녔던 분이라고 여겨 진다.
또한 여기에서 특기할 점은 미주문단에 상당한 수준의 문학 평론이 등장해 있었고, 고국의 문단과 별다름 없이 그 시대 고국에서 일고 있었던 문학적 논쟁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던 점이다. 그것이 바로 리 정두 리 정대 형제와 임 영빈과 월성 이라는 두 부류의 비평가들이다. 네 분은 미주문학자 중에서 가장 너리 알려진 창작인 이며 뛰어난 예술 비평가인 동해수부와 함께 문학 평론에 참여했던 분들인데, 리 정두와 리 정대 이 두 분의 형제는 본국에서 있었던 부르주아 문학으로 지칭되던 계급투쟁 문학인 프로 문학(원래 경향문학傾向文學. Tendency Literature)자들이었고, 이들에 의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임영빈과 월성은 순수 문학적 미의 가치에만 충실 하려는 순수 예술론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문학의 사회 참여의 가치와 이에 맞서는 순수 미학적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들의 치열했던 논쟁에 대한 결말은, ‘결국 문학 본질론과 문학 목적론의 대결이어서 결코 결판이 날 수 없었다’는 조 규익 교수의 말처럼( 해방전 재미 한인문학 1권 p 293 )승패가 없었으나, 이러한 논쟁이 1930년대에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 때가  본국에서는 한참 카프문학인의 검거 등 정치적으로 프로문학이 탄압을 받기 시작 했었고 1935년을 마지막으로 자체적으로 해체가 되었던 점을 보면 미주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결과가 나타났으리라고 본다.  
이러한 점은 결국 미주에도 고국의 사회 계급투쟁 문학인 프로 문학과 같은 상당한 문화 정치적 세력이 건너와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미주의 한인 문학이 거의 고국 문학의 영향을 받는 한국문학 권에 속해 있었음을 현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작가적 특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영문으로 소설을 쓴 영문 소설가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1927년에  ‘내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When I was boy in my country )을 쓴  유 일한 (柳一韓 IL han New. 1895-1971)과 1932년에 초당(The grass of roof)을 쓴 강용흘 (姜 龍訖 1898-1971 younghill Kang)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분으로 인해서 비로소 미국의 이민 문학이며 미국 소수민족 (Ethnic Minority in America)계 문학인 한인 영문 소설(Korean American Fiction)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영문을 통해서 현지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고, 이분들의 공으로 명실공히 미주 한인 문학이 미국의 이민 문학으로서도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6)한인소설에 나타난 주제의식
이 시기의 소설은 13 편이다. 이 열세 편의 소설의 주제의식을 먼저 정리를 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개인의 자유나 애정 등의 내면적인 세계에 대한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우선 초기소설에 나타나는 종전의 국가에 대한 애국투쟁 등의 집단 의식과 병행하여 조화를 이루면서 이러한 점은 앞서의 집당 의식과 병행 또는 조화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완전히 독립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고향의 꿈>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나, 그러나 <동지> 같은 작품에서는 아직도 종전의 집단적 사회의식이 우선하고 있다. 그러나  <원정대>나 <무덤에 정을 붙여> 등에서는 에서는 애정의 절대성 같은 개인의식의 주제가 국가적 집단의식에 비해 크게 비중을 자치하고 있고, 특히 <해당화>란 작품에서는 보다 더 적극적임 표현으로 애정의 절대적 가치나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사랑만을 주제로 하는 순수애정 소설로 등장한다.
이는 일찍이 종전의 미주 한인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고  <원정대> 역시 애정중심 소설로 어찌할 수 없는 고국의 현실을 우선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다시 이민을 떠난다는 이민과 개척정신 이라는 사회의식이 애정과 조화되어 표현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내면적 세계인 남녀의 애정 문제는 시대적인 요구와 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사회주의와 같은 새로운 의식과의 대결을 일으키고 갈등을 겪게 되는데, 결국은 인간의 기본적인 내면의 욕구나 가치라 할 수 있는 개인 의식이 승리하게 된다는 주제의식이 <돌 먹는 사람들>이나  <새벽 길>에서 표현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선 조국광복이나 사회를 위한 직접적 투쟁에서 조금은 물러나서 보다 현실적인 눈앞의 신교육이나 민중 계몽으로 이를 타계하려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적인 새로운 애정모럴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새로운 애정모럴이나 가치 있는 애정관을 확립해 가려는 노력이 작가적 의도로 나타나는 에서 쓰인 작품들을 들 수 있는데, <사랑하는 누님께>와 <자유혼인> 과 그리고 <현미경> 등이다.
이 중에서 <사랑하는 누님께>와  <자유혼인> 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애절모럴과 새로운 현지의 자유로운 애정 모럴을 통해서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인간 내면의 감정적 요구와 전통적이고 이성적인 현실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인간성의 본질이나 진정성이 표현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애정모럴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현미경은 이에 반해서 좀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의 애정 세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현실세계의 혼탁한 애정 모럴과 함께 미주 한인 사회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실적 모순에 대한 고발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중적인 현상, 즉 선과 악, 그리고 빈부와 배금주의 그리고 지나친 상업주의 등 모든 사회적 모순이 폭로되고 있고, 애정 세계 역시 죽음을 통해서 오히려 영원성이나 절대성으로 살아나는 참된 애정의 가치를 표현하여 애정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종교소설로서  <사랑의 빛>과 <탈선의 최후> 가 발표되고 있다.  이 두 소설은 종교적인 감화와 도덕적인 감화를 목적으로 하는 민중 교화의 목적에서 쓰인 소설들이고, 개인적인 삶의 가치나 사회적인 참된 가치를  <사랑의 빛> 에서는 종교적으로 그리고 탈선의 최후’에서는 도덕적으로 해결 하려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는 교훈적 의지가 엿보이는 계몽소설들이다. 특히 <탈선의 최후> 에서는 이민 1,5세나 2세 젊은이들의 이중적 삶의 구성 속에서 혼란을 겪고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서 정체성 확립에 대한 작자의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이러한 점들은 지금까지의 관심에 머물러 있던 도덕률이나 기독교 사상이 차츰 한인들의 의식 속에 정착되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특이>란 소설로 인종에 대한 편견과 함께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고국으로 옮겨와 이를 사회적 모순과 연계로 이를 대두시켜 이를 극적으로 함께 해결하려는 작자의 사회참여 의식이 그대로 나타난 일종의 사회계몽 내지 사회개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국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표현한 점은 인종편견에 대한 현지의 사회적 모순을 고국에로 확대시켜 다른 사회적 모순과 함께 고발하고 이를 해결하려 했던 작자의 사회 참여의식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꽤 다양한 많은 형태의 주제가 표현되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가 초기 소설들과는 다르게 사회나 개인에 대한 표현이고, 이 시기의 사회가 지니고 있었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그들의 의식 세계가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7)각 소설에 나타난 구체적 주제의식
(1) 구국과 애정의 절묘한 조화
「고향의 꿈」(흰들. 1921, 2, 10-1921, 6, 9 10회 연재)
이 소설은 삼일 독립 투쟁의 패배와 좌절에서 나타났던 얼마간의 침묵에 대한 시대적 표현처럼, 삼일운동이 실패로 끝난 지 약 이년 후에 처음으로 발표된 소설로 이다.
이 소설의 내용 역시 꿈을 꾸는 꿈속의 세계로부터 꿈속에서 깨어나 현실의 세계로 옮겨오는, 꿈과 현실 이렇게 이분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종전 꿈속과도 같은 과거의 세계에서 새롭게 다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한 새로운 자각으로 구국에 대한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애정이라고 하는 개인적인 욕구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 방법과 함께, 애국이라고 하는 집단적 의식을 현실적인 새로운 방법으로 실행하려는 의지가 나타나 있는 셈이고, 고국에 대한 애국과 개인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하나의 귀향의 의지가 새롭게 나타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재제가 전반부에서 꿈속의 세계를 표현하고는 있지만, 몽유적 표현이 아닌 극히 사실적인 현실 세계에서 취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소설구성의 미학적 가치로 표현되고 있는 셈이고, 애국하는 방법도 구국투쟁의 일변도에서 자립과 자결 정신 등을 바탕으로 하는 실질적인 애국 활동을 표현하고 있는 점과, 고국여인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등 크게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애정과 구국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나타나는 점 등이 초기소설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우선 구성상의 특색은 크게 이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전반부에서는 꿈속의 세계가 이야기의 전제나 발단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고, 후반부는 현실의 세계로 전반부의 꿈의 세계가 실현되고 있는 과정이 표현되고 있다 다. 또한 여기에서 전반부의 꿈의 세계와 후반부의 현실의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는 애정이다.
이처럼 애정이라고 하는 정서적 연결 고리를 통해서 비교적 단순한 사건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여 소설의 미학적 가치를 높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삼일운동 실패 뒤의 좌절처럼 현실에 대한 실의에 빠져있는 등장인물들이 민족 자립이라는 현실적인 애국정신에 대한 자각으로 애국과 고국의 여인을 찾아간다는 귀향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고, 고국에 돌아가 이 정숙과 같은 고국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구국 투쟁을 하겠다는 하는 것이 바로 주인공 장인호가 꿈꾸는 ‘고향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정 인호는 웅변가로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애국 연설을 하는데 청중들의 많은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이 출동을 하는 등 혼란이 일게 되고, 그러한 와중에서 그는 결국 경찰에 체포가 되고 만다.
감옥에 갇힌 그는 갖은 고초를 당하고 있었으나 이 주일 만에 감옥이 폭파되고 그가 구출 되지만 그는 정신을 잃고 만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그는 절간에서 이화학당에 다니는 아름다운 처녀인 이 정숙의 간호를 받고 있었고, 그녀로부터 그 동안의 경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그녀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애정이 싹트게 되고 이내 사랑의 열정에 붙들린 나머지 애일 같이 그녀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하루는 그녀를 기다리다 그녀가 늦어지자 마중을 나갔다가, 어느 괴한에게 봉변을 당하기 직전의 그녀를 구하고 그만 꿈에서 깨어난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는 꿈속의 이정숙을 잊지 못하고, 또한 꿈속에서 자신이 연설했던 애국에 대한 관심이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서 현실 세계에 이어진다. 그는 그의 이러한 열병처럼 가슴에서 치솟는 조국애 대한 깊은 관심을, 함께 일하고 있는 김 성필에게 밝히고 그를 집요하게 설득하기 시작 한다.
또한 현실에 실망하여 도박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근로자인 최 근실이 찾아오자, 인호는 두 사람을 향해 집요하게 다시 설득을 시작한다. 그리고 끝내는 두 사람의 감동을 끌어내고 결국 세 사람이 모두 함께 뜻을 같이 하게 되고, 이의 실행을 위해 귀국에 대한 귀향의 의지를 다진다.
일년 뒤의 귀국을 위해 두 사람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고 김 성필이는 다시 학업에 매진한다.

우선 전반부에 꿈 속에 나타나는 핵심 세계는 고국의 민족 자립과 자결을 위한 애국 정신과 함께 이정숙이라고 하는 가상의 고국 여인에 대한 애정 감정이다. 이러한 꿈의 세계는 정인호가 평소에도 갈망하는 세계이기도 하다는 점에 유의 할 필요가 있고, 이는 결국 그의 애국과 애정에 대한 관심의 세계가 현실적인 자각이나 행동으로 옮겨 가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속의 이 정숙은 가상적인 인물이지만, 이 여인에 대한 연정을 꿈과 현실을 연결하는 하나의 연결 고리로 사용하여, 애정과 애국정신을 절묘하게 조화 시키고 있는 점이 바로 이 소설의 미학적 가치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애국의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꿈속의 강연 속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우선 우리 민족이 자주 정신을 확립 하여 민족 스스로가 자립함으로써 독립에 접근해 갈 수 있다는 자주 정신에 대한 표현이다. 이처럼 종전의 애국 방법과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시대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애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 정 인호가 고국에 돌아가서 고국 여인과 결혼 하는 것이 바로 개인적으로 우선 자립하는 길이고, 그러한 점이 바로 나라의 자립을 위한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그 현실적인 자주 정신이 종전의 애정 표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바로 삼일 운동 이후에 나타난 사회적인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에 실의에 빠져있는 주인공 정 인호와 김 성필, 그리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최 근실을 등장시켜, 그 암울한 시대적 좌절을 표현하고, 이들의 변화는 바로 민족적 자각에서 비롯된 자주 자립 정신과도 같은 새로운 자각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색의 하나로 현실적인 사실의 세계에 대한 표현을 들 수 있는데, 후반부에서 나타나는 소설의 배경이나 소설의 진행을 통해서 표현되는 세계가 극히 사실적인 현지의 현실세계가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현지의 구체적 실제 지명이나 실제 농장 생활 모습 등이 그 대표적이지만, 경제 상징물인 화폐 단위의 표현이나, 심지어는 인디언이나 멕시코 인에 대한 인종차별 등, 현지의 사회적 모순 까지도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어쩌면 전반부의 몽유적인 꿈의 세계까지도 사실적인 세계로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소설은 다분히 계몽적이고 교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점은 이 소설 연재도중에 신한 민보 기자가 쓴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통해서 엿볼 수가 있다.

“신한 민보 기자- 이 소설에 대하여 특별히 재미 있는 것은 아름다운 문체와 의사 조직뿐만 아니라 이는 우리 한인의 저술인 중 더욱 우리 재미 한인의 손으로 학생 명색으로 있는 이와 노동 명색으로 있는 한인의 심리와 장래를 그렸으니 재미 한인들 특별히 청년들은 마땅히 한번 읽을 것이라 하노라. “(4회 서두 1921.3. 10 )

이 글의 내용은 재미 한인 저술인(작자)이 썼다는 점과 내용이 한인의 심리와 장래라고 소개하고, 문체, 의사조직 까지도 모두가 재미있다고 표현하고 있어서, 소설 전체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 셈이고 특히 청년들에게 읽기를 권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계몽적인 의도에서 쓰인 글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소설은 구국에 대한 의지가 종전의 소설과는 달리 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민족의 자립과 자결 정신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색이고, 이러한 구국이라는 현실적이고 이념적인 무거운 주제를 꿈과 애정이라는 서정적 연결고리를 통해서 미학적으로 재구성한 점이 이 소설의 형태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고, 아울러 몽유적이고 환상적이라 할 수 있는 꿈의 세계가 크게 무리하지 않게 사실감 있게 표현되고 있는 점 또한 이전과는 달리 크게 발전된 표현상의 새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동지(同志)」(와룡산인 -1929.3. 2  5회 연재)
이 소설은 나라고 하는 일인칭으로 표현된 소설이고, 이 작품 역시 구국 정신을 주제로 하여 남녀 애정을 중심소재로 하고 있는 애국 애정 작품이다. 다만 이 소설은 이 시기의 다른 모든 소설과는 조금 달리 종전의 애국의 절대성 이라고 하는 주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구성과 사건의 진행이 비교적 단순하고 대체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인 애정을 위주로 표현되고 있으나, 표제로 쓰이는 동지라는 표현이 암시 하듯이 대단원에서 애국이라는 집단의식이 애정이라고 하는 개인 의식을 압도해서 나타나는 초기소설 엣스생의 <남강의 가을 >과 같은 형태의 소설이다.
따라서 종전의 국가적 집단 의식이 눈앞의 현실 사회로 시야가 조금 축소되어 나타난 단체라고 하는 하나의 사회의식이 개인적인 애정을 이겨내고, 이러한 사회 의식이 가정과 생명과 재물 및 애정까지도 초월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로 표현되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조국광복을 위해 결성된 청년당원인 주인공인 원식은 같은 당원인 ‘도라’ 라고 하는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과 연인 사이이고 그녀와 사랑의 열정에 빠져 있다.
교회에서 청년당에 입당을 하고 돌아온 원식은 사랑하는 도라로 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몸치장을 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일하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는 마음이 들떠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랑이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고 사랑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허무할 것이라고 느끼지만, 그러나 자신은 이미 가정과 재산과 생명까지도 모두 청년 단체를 위해 바치기로 자신을 생각하고, 애정과 단체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느낀다.
원식을 만나게 된 도라는 원식 보다는 훨씬 더 감정 표현에 익숙하여.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녀는 원식 보다는 더 관능적이고 적극적으로 밀착해오면서 그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그 순간 원식은 자신의 단체에 대한 서약이 떠올라서 잠시 머뭇거리게 되고, 이에 놀란 그녀는 몸을 빼내고 그에게 원인을 묻는다. 결국 원식은 머뭇거리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게 되고, 이에 놀란 그녀는 냉정하게 돌아서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원식은 몇 시간을 그녀의 방문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기다렸으나 끝내 반응이 없자,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초조하게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지만, 며칠 후 그녀로부터 의외의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의 내용은 애국과 청년당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가 동지의 정분으로만 손을 잡고 일생을 희생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소설의 발단은 서로의 사랑으로 시작되지만, 문제는 원식의 갈등으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그의 개인 감정에서 비롯된 그녀에 대한 애정과 그가 속한 단체에 대한 책임감을 두고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서 발생한다.  단체에 대한 책임은 개인적인 가정이나 재산 애정 등 모든 것을 전부 희생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이 단체에 대한 책임감이 애정으로 다가가는 그를 압박해 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내면의 욕구이고 감정의 세계인 개인적인 의식의 세계와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의식의 대결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의 세계인 애정이 연관되어 있어서, 개인 스스로 는 이를 해결하기란 쉽지가 않다. 다만 위의 소설에서는 이러한 문제 해결이 우선 주인공 정 인호에 의해 표면화 되고, 타인인 도라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이처럼 타의와 자의가 하나의 합일 점으로 나타남으로 해서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하겠다.
문제는 먼저 두 남녀의 보다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사랑이 절정의 세계로 치달아 오르소 있어서 그대로 애정의 승리로 결판이 나는 듯싶었지만, 이는 예상 밖으로 그녀의 돌변한 태도로 위기를 맞게 되고, 그녀의 심경의 반전이고 결단인 단체에 대한 선택으로 원식의 단체에 대한 책임감이 함께 합일점을 이루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결국 두 남녀의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애정이라는 개인적인 의식을 초월한 극점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이 소설은 애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체의식과 개인의식이라 할 수 있는 애정이 두 축을 이루고, 팽팽하게 갈등과 위기를 조성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단체에 대한 책임감 쪽으로 축이 옮겨가고, 애정이란 다만 애국을 미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미학적 요소로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종전의 초기 소설 ‘남강의 가을’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었던 점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주제 표현의 면에서는 초기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점이 바로 사실적인 현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점으로, 현지 도시의 공간에 대한 실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현지의 단편적인 생활 모습과 함께 영어의 지문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점이고, 또 하나는 두 남녀의 애정 표현 방법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지극히 관능적이고 감각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점이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겠다.    

(2) 사랑의 절대성으로 극복된 애정 승리
「원정대』(작자미상. 1928.7.19-1928.9.6 8회 연재)
이 소설은 단편소설이란 장르명과 함께  ‘산샘에게 드림이란’ 표현이 부기되어 있고, 여섯 부분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색으로 8회에 걸쳐 게재되고 있으나 각 회가 비교적 길게 쓰여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순수 애정 소설이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소설 중에서 개척자적인 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소설이고, 이러한 개척자 정신이 이민 소설이 지니고 있는 하나의 특색이고 가치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이러한 이민소설로서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개척자 정신으로 해서 전통적인 고정 관념이나 인간의 감정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통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애정 윤리를 이룩한다는 애정 승리를 아름답게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러한 점은 구세계인 고국의 전통적인 관념이나 관습에서 탈피하여, 서구의 새로운 정신 문화에 익숙해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실제로 소설 속의 내용이 애정비극 소설인 섹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엣>과 비슷하지만, 다만 죽음을 초월한 애정의 절대성에 의해서만 애정 승리가 이루어는 것이 아니고, 주인공의 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개척자적인 개방 정신으로 갈등을 극복한 애정 승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이 이 소설이 단순한 애정소설을 떠나서 사회에 대한 인간의 아름다운 인간성의 승리로 표현되고, 이민이라는 개척자적인 정신까지도 표현된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지닌 또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소설은 <로미오와 쥴리엣과>는 달리 해파앤딩으로 끝나는 데서 극적인 적극성이나 절대성이 결여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척의 세계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표현이었을 것이고, 애정이라고 하는 정서적 세계와 개척정신이라고 하는 거친 정신 세계를 조화시켜, 이상적인 미래의 꿈을 표현하려는 데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지닌 미학적 가치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폔실바니아 대학에서 삼 년 동안의 영문학 공부를 마친 이 소세는 공부를 더하기 위하여 전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뉴욕 가까이에 있는 공대에 입학허가를 받아놓고, 그 방학 동안에 구경도 좀 하고 학비도 좀 벌려는 생각에서 뉴욕에 도착한다.    
시가지 구경도중에 민 정자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소세는 민 정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차츰 연정으로 바뀌게 되고,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매주마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찾아간다.
결국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되나 이 소세는 민정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아버지의 원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이 소세는 말할 수 없는 갈등과 번민 속에서 고통을 느끼게 되나, 그녀 부친의 잘못이 그의 잘못만이 아니고,혼탁했던 그 시대의 탓이라는 그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민정자의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작정한다.
민 정자는 이 소세에 대해 차츰 관심과 애정이 더해지던 차에 그가 나타나지 않자 소식이 없는 이 소세에게 관심의 표시와 함께 만나자는 편지를 띄운다.
이 소세는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용서하겠다는 자신의 결단을 밝힌다. 이에 감동한 민 정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품에 안긴다.  
이 소세는 남미 이주에 대한 자신의 개척 계획을 민 정자에게 밝힌다. 민 정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 소세의 개척자 정신과 그의 사내다운 바른 기상에 감동되고, 또한 애정의 절대성에 따라 모든 것을 그의 뜻에 따르기로 작정한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결혼을 하고 곧바로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하기 위하여 남미 파라과이로 떠난다.

사건의 발단은 그녀에 대한 애정이고, 문제의 발단은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어서 그녀는 그의 원수의 딸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이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에 하나의 장애물로 등장하게 되어 그는 말할 수 없는 갈등과 고통에 휩싸이게 되는 위기를 맞게 되지만, 그의 논리적이고 지혜로운 판단으로 애정의 절대성 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갈등의 세계를 극복하게 되는데,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관념으로는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원수를 용서하게 된 점은 하나의 개척자적인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은 그가 소설의 대단원에서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남미로 이민을 떠난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가 있다.
이처럼 주인공은 개척자적인 혁신적인 판단을 통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극복하고 애정 승리를 이루는데, 이는 애정이라는 본능적 감정의 필요만으로 극복된 사실이라기 보다는, 민 정자 아버지의 잘못은 그 자신의 잘못만이 아닌 그 시대의 어쩔 수 없는 고국의 혼탁한 사회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합리적이고 논리작인 판단이 바로 파격적인 용서를 도출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종전의 소설들과 달리 보다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을 통해서 보다 새로운 개척정신에 의한 새로운 의식 세계를 표현한 점으로 이 시기 소설의 일반적인 특색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 소세가 우선 개척자 정신이 투철한 지극히 지적이고 사리 판단에 능숙한 남자로서 묘사되고 있어서, 그러한 큰 결단과 함께 소설의 전개가 큰 무리가 없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개척의 세계가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향한 것이 아니어서 일종의 도피로 비칠 수도 있으나, 그 시대의 고국 현실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라는 그의 판단을 보면, 개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신세계를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러한 점이 소설 속에 극히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 볼 점은, 고국에 기다리고 있는 민 정자 부모의 재산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의 사내다운 기개에서 우리는 그가 적어도 도망자의 누명은 벗을 수 있으라 믿게 되고, 이민의 꿈이란 역시 신세계에 대한 도전과 개척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구세계인 고국보다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것은 가장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아무튼 이 소설은 애정의 절대성이나 순수성과 함께 개척자 정신이 미학적으로 잘 조화된 순수 애정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무덤에 정을 붙여」(운국. 1932.9.22-1932.11.10 9회 연재)
이 소설은 남녀 애정과 애국 투쟁에 헌신 하려는 사회적 의식인 애국정신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어서 그 중심 주제를 읽어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우선 소설의 절정에서 나타나는 구국정신으로 인한 의로운 죽음이 애정과 애정 윤리까지도 초월한 으뜸 축의 경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소설의 축이 단연 애국사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구성상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반부에서 구국투쟁이나 죽음에 대한 암시나 복선이 전혀 없고, 다만 소설의 위기에서 부분적인 암시가 제시되고 있을 뿐이고, 곧바로 돌출적으로 구국항쟁이란 위기가 설정되어 결국 남자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이 죽음으로 인해서 숭고하게 승화되어 나타나는 순애보적인 사랑과 애정 윤리가 대단원의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으로 보면, 이처럼 대단원의 계기가 되고 있는 죽음이나 애국보다는 그 죽음으로 나타나게 되는 애정의 절대성에 중심을 두고 쓴 소설이라고 보는 점이 타당하리란 생각이다.
부연하면, ‘그들은 사랑했고 어려움을 극복했고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나, 남자 주인공이 독립운동으로 죽게 되고, 여주인공은 그의 무덤 곁에서 무덤과 함께 십 년을 살았다. ‘라고 표현을 하고 보면 이 표현의 중심 내용은 단연 남녀 사랑이고, 그리고 핵심적인 주제는 무덤과 함께 살았다는 애정윤리가 될 것이다.
아무튼 초기의 소설들이 한결같이 구국이나 애국 등의 집단의식이 애정에 앞서 중심 축을 이루고 애정은 이에 대한 보조적 그리고 미학적인 구실에 머물렀으나, 이 소설에서는 이와 다르게 그러한 집단의식으로부터 차츰 애정이나 또는 애정 윤리와 같은 인간 내면의 개성적인 세계로 중심이 옮아가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 소설이라면 마땅히 주인공의 의로운 죽음으로 끝이 나고, 그 죽음이 애정에 앞서 하나의 애국정신을 상징하는 숭고한 죽음으로 남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한걸음 더 발전된 세계의 표현으로 주인공의 죽음의 가치가 애국과 함께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정신 및 전통적의 우리 여인의 부덕에 대한 애정 윤리 까지로 확대 되어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소설보다는 이른 시기에 발표되었으나 다음에 거론하게 될  <사랑하는 누님께>와  <자유혼인>에서는, 이러한 남녀 사랑에 대한 애정 윤리를 그릇된 그 시대의 애정 모럴의 비판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인 애정 윤리나 결혼 관습을 고수하는 표현을 택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러한 상대적인 그릇된 현상에 대한 표현이 전혀 없이 오직 일방적인 애정 일변도의 거침없는 표현으로, 손쉽게 단순하고도 단일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소설의 줄거리를 요악한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아주 빈궁하게 사는 원식은 집안이 좋은 집 손녀인 처녀 기옥이와 사귀는 것을 두고, 어머니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는다,
삼 년 전에 풍치 좋은 이곳으로 이주해 온 몇 천석 군에 이르는 오 좌수라는 분은 자기 집에 글방을 만들어 선생을 모시고, 자기 손주들과 함께 동내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