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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힌인 소설연구 6

2006.06.19 21:22

박영호 조회 수:828 추천:50

<미주 힌인 소설연구>  6

     삼일 운동 이후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영문 소설  (3)
강용흘(Younghill Kang) (하 )

2) 《행복한 숲 》(The Happy Grove)
<행복한 숲>은 강욜흘이 소설 《초당》을 어린 아이들에게도 읽기 쉽도록 일부만을 고쳐 쓴 것이다. 이를 초당을 펴낸 출판사인 찰스 스크리브너스(Charles Scribner’s Sons. New York)사에서 1933년에 발행했다. 제목으로 쓰인 행복한 숲은 그가 자란 자신의 고향인 송전지의 소나무 숲을 나타낸 표현이고, 이를 책 속 페이지에 한자로 ‘天樂的 芳園 ‘(천락적 방원)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 말은 천국의 낙원과 같은 꽃밭이란 뜻이고, 뤈래 이백(李白)의 글 ‘春夜 宴桃李園序’(춘야연도 이원서)에서 나오는 ‘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 (회도이지방원 서천윤지락사)라는구절에서 따온 말로, 자신이 평소 생각하고 있던 지상의 낙원이나 다름없이 평화스럽고 행복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의 특색은 십화 전문가인 르로이 볼드리지(Reroy baldridge)가 그린 이십 장의 삽화가 요소 요소에 삽입되어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작자의 이야기와 함께 동양의 풍물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돕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앞서 밝힌 것처럼 초당을 그대로 쉽게 전반부를 고쳐 쓴 것이지만,  <초당>의 내용이 삭제되거나 확대된 내용이 많다. 우선 초당의 전편 11장과   2편의 처음 3장을 합해서 14장까지를 총 8장으로 재구성하여,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가출하여 공부를 하기위해 서울로 떠나서 다시 일본으로 가기위해 부산 까까운 곳으로 떠나기까지의 주로 어린 시절에 대한 부분만을 압축 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점은 필자가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어린이들의 이해를 위한 배려에서다. 따라서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유해할 수도 있는 내용인 일본에 대한 지나친 비판이나 당숙을 따라 기방에 따라 다녔던 이야기와 함께 9장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삭제가 되어있다. 이에 반해서 4장은 ‘마법의 달’이란 ‘ 제목으로 완전히 새로 꾸며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서의 내용은 어린이에게 특별한 흥미와 교훈이 될 수 있는 동양의 전래 동화나 우화 들인데, 할머니가 들려주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숙부시인보다 더 얼빠진 시인이어서 모든 재산을 잃고, 마누라까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얼빠진 선비로 표현하고 있고, 호랑이 이야기나 초월의 이야기 등은 극히 동양적인 우화적인 전래의 이야기이고, 특히 개미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장황하게 표현되는데, 이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극히 교훈적이고 풍자적인 이야기다.
이처럼 작품이 흥미만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다분히 교훈적이어서 성인 독자들에게도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고, 동양의 사상이나 우리나라의 풍물과 문화를 소개하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러한 지나친 교훈적인 점이 허구나 암시적인 내용이 아닌 사실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김욱동 교수의 지적처럼 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이 초당과 내용이 다른 별개의 작품이 아닌 바에야 별도의 소설적 가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현지의 독자들에게 우리 민족의 풍속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우선 그 가치를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떠나서 일반적으로 독서 하기에 부담이 없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는 그 당시 뉴욕 타임지에 실린 비평가들의 글(Jhon Chamberlain, “Books of the Times” New York Times, Sep, 11 1933)( Anne T.Earton “The New Books Rewiew” New York Times)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이 작품이 나이 어린 사람들만이 아닌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본국의 이광수 씨가 이에 대한 서평(《조선일보》1933, 12, 22,’일사 일언’ 난)으로 “강용흘씨는 양(洋)문단 뿐만 아니라 세계적 문단인이 되었다. 우리는 강씨를 우리민족의 자랑 하나로 사랑할 것이다.”라고 표현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동양 인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
이 작품 역시 <초당>을 출간했던 뉴욕의 찰스 스크리브너스(Charles Scribner’s Sons. New York)사에서 1937년 9월에 출간했다. 이 소설은 그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일찍이 유병천(劉秉千)이 ‘<초당>이 한 편의 서사시라면 서양행<西遊行, 동양인 서양에 가다)은 서사시에 가깝다’(<신동아>1966년 11월)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초당>의 후속편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보고 듣고 실제 겪은 현지에서의 생활과, 그 의식의 세계를 최초로 적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와 흡사한 글로 만주에서 출생하여 중국에서 교육을 받은 박노영(No yong Park)씨의 ‘동양인이 본 미국문화’ (1934년)라는 글이 이미 있었으나. 이는 지나치게 사실적인 개인 기록이라 할 수 있어서 관심 밖이었고, 이 작품이 동양인이 본 서양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관심을 끌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초당>과 같은 우리 국가나 동양의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사건이 없는 현지의 이야기만 이라는 점이 초당만큼 큰 관심과 흥미를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초당>을 발표해서 비교적 크게 인정을 받고 자신을 갖게된 그가 구겐하임 문화 재단으로부터 창작 기금을 두 번씩이나 받아가면서, 가족과 함께 유럽의 여러나라를 여행 하고(1933년 9월-1935년 6월)독일과 이태리 등에서 머물면서 집필한 작품이다. 따라서 그로써는 <초당>보다 훨씬 더 공을 들여 사오 년에 걸쳐 쓴 작품이고, 작품 내용 역시 <초당>보다 훨씬 더 소설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 또한 이작품이 지닌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강용흘이 초당 발행 직후 ‘한 유배자의 죽음’(1931년 구겐하임 문학 창작기금 신청서에 기록)이란 제목으로 쓰기 시작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책이 출판되기는 ‘동양인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로 발표 되었고 ‘동양인 양키 만들기’ (Making of Oriental Yankee)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는 출판사가 판매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강용흘의 미국화’ ‘미국에서의 재생’ 등을 주장했던 출판사의 편집인인 맥스웰 퍼킨스씨의 주장과 ‘한국에서 온 양키’ 와 ‘동양의 양키’를 주장했던 그의 미국인 소설가 친구 토머스 울프의 주장에서 바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처음 시도했던 작품 내용과 책이 만들어져 나온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그가 쓰기 시작한 ‘한 유배자의 죽음’ 에서는 주인공이 작자인 청파가 아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도원’ 이란 인물일 수 있는데, 그는 한 동양의 대표적인 지성인 화가로서 중국을 경유해서 유럽으로 찾아가 영국과 독일에서 학업을 마치고,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미국으로 건너와서 새로운 정신적 안식처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는 그 어디에서도 정신적 안식과 가치를 찾지 못하고 한낱 유배자로 떠돌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결국 꿈과 참된 가치를 찾아 방황하는 한 인간의 비극적 종말과 함께 서양과 동양이 결코 조화 될 수 없다는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밝히고 있지만, 뒤에 가서 제목이 바뀜에 따라 내용 역시 수정이 되고, 주인공도 김도원이 아닌 청파 자신으로 바뀐다, 따라서 김도원의 비극적 결말과 함께 청파의 서양에 대한 이상적 꿈의 추구가 이중적으로 표현되고 있고, 청파의 꿈은 진행형인 미완으로 남는다. 이러한 점은 편집자의 주문에 의해서 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수정 된 셈인데,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편집자인 막스웰 퍼킨스는 청파가 트립이란 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으로 되어야 진정한 서양인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히 이 점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던 것 같다. (Maxwell perkins to younghill Kang, 8 february 1937년)그러나 김도원에 대한 부분을 150여 페이지나 삭제 하고 수정을 하면서도 청파의 결혼 부분은 결코 삽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편집인 막스웰 퍼킨스는 강용흘이 동양인으로서의 과묵함 때문인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불평을 했으나, 정작 이에 응하지 않은 강용흘의 뜻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아서 알 길이 없다. 사실 그 때 강용흘 자신은 이미 소설 속의 미국 여인인 자신의 부인인 킬리 여사와 이미 십여년 전에 결혼을 해서 두 자녀를 두고 있는 처지이고, 미국인로서도 이미 상류사회 지식인에 속해 있는데도, 소설 속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리라는 암시조차 표현되지 않고, 끝이 나는 것을 고집한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시대적 여건도 그렇고, 강용흘 자신이 고국을 떠나온 도망자 의식이나 유배자 위식과 함께 자신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부담과 함께, 동포들의 관심이나 시선에 대한 의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도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리일 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 책의 중심 내용이 부제인 ‘동양 양키 만들기’ 보다는 유배자의 죽음이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대로 증명이 되는 셈이다. 결국 작품 속의 김도원은 서양 양키가 되기에 실패하고 완전히 파멸해 버린 경우이고, 청파 자신도 역시 실패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의 시대적 배경으로는 그러한 결과가 당연한 노릇이고, 이러한 점은 그 시대를 전후해서 발표된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작품들(모드 매든의 ‘동양 사람이 서양에 있을 때’. 1923년). (펄 벅의 ‘동쪽 바람, 서쪽 바람’ 1938년.) (F.S 노스럽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 1946년)에서도 한결같이 부정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작자 강용흘이 그의 작품 속에서만 아니라, 실제 전 생애를 통해서도 결코 서양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고, 언제나 비판적인 의식 속에 붙들려 있었던 점에서도 설명이 되고 있다. 그는 어느정도 미국화가 된 후에도 여전히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았고. 전쟁 이후에는 반전이나 평등 사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하고 있어서, 이로 인해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받고 있었던 점에서도 설명이 되고 있다. 또한 그는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말년에는 부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듯싶고, 이러한 점 역시 그가 서양 양키가 될 수 었었던 점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작품 속의 청파 자신은 김도원의 경우와는 달리 보다 원대한 하나의 피닉스적 정신으로 이 소설을 끝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동서문화의 화합이나 이중문화 등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작자의 그러한 불멸의 정신이 지극히 합당한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초당처럼 인기를 끌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많은 비평가들이 이 작품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을 내 놓았다. 그러나. 우선 책을 펴낸 편집인의 의도가 그렇듯이, 모두가 이 작품 역시 <초당>처럼 자서전으로 여긴 표현들을 하고들 있는데,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서 가치가 있다.”  Elsie Weil, ‘Of Orientals Shipwrecked.’ New York Hearald Times, 2 Oct, 1937) (“저자는 유머와 매력으로 미국생활에 적응해가며 겪는 어려움과  ‘동양 양키’ 가 되는 공식을 성공적으로 찿아가는 과정을 기술한다.” ‘Briefly Noted: Genaral’ New Yorker. 18 September, 1937)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관신을 끈다. (……) 그러나 물론 소설은 아니다. 부제에서도 나타나듯이 ‘동양의 양키’가 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책이다.  Katherline Woods, “Making of an Oriental Yankee’ New york times book Review, 17 Oct 1937)
이처럼 자서전이라는 표현이 전제되고 보면, 그 비평의 폭이나 깊이에 우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문학적 가치는 관심밖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은 결국 그들이 이 작품에 나타난 청파의 양키가 되기 위한 그 과정이나 또는 김도원의 죽음 등 그 사건 진행에만 흥미가 있을 뿐, 청파나 김도원이 느끼는 갈등이나 좌절의 심층에 깔린 그들의 구세계에 대한 사랑 등, 보다 근원적인 정신 세계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김욱동 교수가 이 작품이 자서전이 아닌 자전적 소설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결코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이에 대한 많은 설명 중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김도원이 가상 인물이라는 점이고 그가 바로 청파의 분신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김욱동 교수의 모험소설이란 표현 역시 청파가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하나의 개척자 정신으로도 생각해 볼 수가 있어서, 이는 바로 이 소설이 하나의 이민소설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인이 미주에서 현지의 이야기를 쓴 최초의 영어 이민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동양인으로서도 처음 시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도원이나 청파가 추구했던 꿈은 개인적인 꿈이긴 하지만, 그 꿈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보다 보편적이고 합당한 가치에 대한 추구이고 보면, 이를 그 시대 이민자 모두의 꿈인 하나의 사회적인 꿈으로도 확대해 볼 수가 있고, 이는 결국 동양의 전통으로부터 스스로 반역해온 유배자들이 일찍부터 자연으로부터 반역을 행하여 온 서양에서 방황하다 좌절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하지만, 불굴의 정신으로 살아오고 있다는 이민자들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East Goes West》작품 택스트 본으로는 우선 영문판은 뉴욕 가야(Kaya. New York. 1997)사에서 출판한 것을 쓰고있고, 번역본은 유의영교수의 번역본(2000년, 범우사)을 사용하고 있으나, 제목은 각기 다르게들 쓰이고 있어 필자는 가장 손쉽게 ‘동양인 서양에 가다’ 로 정해 쓰고 있음을 밝힌다.


반역의 땅에 선 유랑인
그는 처음 캐나다 서부 벤쿠버에서 헬리팩스를 거쳐 뉴욕으로 왔지만, 이야기는 뉴욕에 도착한 첫날 ‘배터리’ 라고 하는 부둣가 공원 앞에서 느낀 생각을 적는 것으로부터 작품이 사작된다.

AN  UNDYING  BIRD…forever lives, forever breathes, forever, with its two wings fluttrering, flies, That is the universe. It was there was the empty space of our non-existence. It is her moving still. Where it is, silence is never there…. (deletion) Tlme is always ther… as long as there is life to use it. Only if no life existed, there would be no time. Time was because life was…as it is the mortal life to travel over the immortal time. The bird flies with the tow wings, on and on. (p, 1)
“죽지않는 새…… 영원히 살고, 영원히 숨쉬고, 두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영원히 난다. 그것이 우주다. 우주는 우리가 비존재의 허공에 있을 때부터 있었다. 우주는 여기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우주가 있는 곳에 절대 침묵은 없다. (중략) 세월을 이용할 생명이 있는 동안이나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월도 없으리라. 생명이 존재했기 때문에 세월이 존재하였다……. 불멸의 세월을 넘어 나그네 길을 가는 것이 필멸의 인생이니까. 이 새는 두 날개로 난다. 계속, 계속하여. “

이렇게 그는 우주와 세월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적는다. 영원히 흐르는 시간과 공간 속에 두 날개를 퍼덕거리며 전진해 가는 것이 우주이고, 따라서 그것은 피닉스 (phoenix)라고 하는 불멸의 새와 같은 영원의 세계라고 생각하고, 그는 시간과 공간에 관께없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두고 온 구세계와 눈앞의 신세계, 그리고 동양과 서양에 대한 생각에 깊이 잠긴다.. 우선 그는 떠나온 구세계인 고국에 대한 회상에 잠기고 조국의 몰락과 황폐함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한 세계가 해체되는 것을 보는 것이 내 운명이었다. 잃어버린 내 세월의 유성 위에서 인생의 정성기는 지나가 버렸다. 처음에는 평탄하였다. 그 끌어가는 매력과, 생명체를 사로잡는 일이 뜨거운 자비심으로 이어졌고 그 조화있는 움직임이 사그라졌다. 그러자 대기는 엷어지고 차차 식어갔다."
(영문은 지면 관계로 인용을 생략한다.)

유년의 지상 낙원이었던 ‘도원의 계곡’을 회상하고, 상징적인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서 자신의 위성이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몰락과 함께 황폐해 가는 들에서 위압적인 비바람에 나라가 망해가게 된 이미 그에겐 구세계라 할 수 있는 고국을 회상하면서 결국 ‘죽음이 싫어서 나는 부딪치고 소리치며 허공으로 나가고 이질적인 세계로 떠나오고……’ 라고 표현하면서 그가 신세계를 찾아오게된 내력을 밝히고 있다.

"젊은 문화가 자연적인 힘으로 나를 끌어당긴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듯이 새로운 삶으로 들어갔다. 나는 화성처럼 낯선 땅을 헤매며, 뿌리를 찾아, 망명객의 넋이 뿌리 내릴 곳을 찿고 있었다. 앞서서 바삐 가는 인력으로 나를 빨아들인 이 세계 또한 옛날 끈기로 사람을 살리고 닻을 내리게 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내게는 삶과 세월이 이어지는 속에 이(도덕경)의 신념이 항시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여기다…… 여기 아메리 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그곳은 정말 어디 인지……” "이책은 내 초기의 탐색에 관한 기록이고, 그 목표를 향한 첫 표적이다. "

이처럼 그는 그가 미국까지 흘러오게 된 경위를 노자의 도덕경과도 같은 흐름에 의한 순리로 밝히고 있다.
자신이 살았던 암담한 구세계와 새로운 세계를 함께 밝히고 그가 추구하는 정신은 바로 불사신과 같은 정신 이고. 그것이 도덕경과 같은 심오한 자연의 순리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점에 유의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그의 의식의 세계는 동양적인 깊고 광활한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고, 결국 자연이라고 하는 근원적인 순리의 세계를 근원으로 삼고 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이러한 점은 그가 미국이나 서양 문명을 다음과 같이 선망의 세계로 생각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문명도 근원적으로는 자연에 대한 하나의 반역아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을 보면 그의 근원적인 혼은 자연과 동양과 송전치가 있는 조국이라는 점을 간접으로 밝히고 있다.

"초가 지붕 오막살이가 언덕을 뒤덮은 우리 마을은 뉴욕이라는 이 거대한 반역아로부터 얼마나 머리 떨어져 있을까 그런데 반역아 뉴욕은 나를 불럿다, 콘크리트 불록을 무수히 쌓아올린 거대한 야만은 뾰족탑을 이룬 얼음덩이처럼 기묘한 왕관을 쓰고 솟아 올랐다. "

그는 이처럼 서양이 만들어 놓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반역과 야만 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러한 반역의 의미는 바로 자신에게로 향하여 자신은 푸른 언덕에 쌓인 고향으로부터 서양으로 찾아온 반역아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학교를 다니고, 자연 친화적인 동양을 배반한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반역은 다시 도망자라는 낙인으로도 이해 할 수가 있다. 결국 이 의미는 싫든 좋든 이민자들이 그들의 의식 속에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멍애와도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날밤을 그는 호텔에서 묵으면서 처음으로 문명의 이기들으 체험한다. 그리고 그는 목욕탕에 더운 물로 목욕을 하면서, 버리고 온 구세계에 대한 머릿 속의 묵은 때까지도 모두 씻어내고 싶다고 표현 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래도 독특한 신비스런 민족이라는 긍지를 느끼기도 하지만, 이국 땅에 홀로 서있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두고, 그는 스스로 이방인이라는 의식에 붙들리게 된다. 이어서 그의 눈에는 고국의 박사 당숙. 그리고 시인 삼촌 등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여기서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인생이예요” 하고 그가 대답하지만, “인생은 볼 수 없는데’ 하고 그들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리에 눕자 환상적인 미치광이 시인의 시라고 여겨지는 한편의 시를 떠오른다.
이 시의 내용은 가을 나뭇잎 한 잎이 쉴 곳을 찾아 멀리 죽음의 나라을 떠 다니다 이역에서 다시 뿌리를 내린다는 내용의 시로, 극히 동양적인 운명과 비극을 이방인의 슬픔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신의 이방인의 처지와 심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청파는 다음 날부터 곧바로 준비해 온 소개장을 들고 사람들을 찿아 나선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지 못한채. 이제 그의 주머니에는 단 돈10센트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결국 그는 5센트를 내고 그 날 밤은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곳에서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은 무료 급식소를 찾아 중국 타운으로 가지만 거절 당하고, 그는 한 중국 음식점을 찾아가 주인을 붇들고 한시를 써서 중국인과 의사 소통을 하게되고, 결국 그의 도움을 받아 음식은 그의 집에서 후불로 먹을 수 있게 되고, 잠은 그가 소개해 준 이달리아 여인의 집에서 역시 후불로 해결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구원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는 뉴욕에서 이루 말할 수 럾는 가난과 굶주림에 혹사 당한다.

“나는 일찍이 5센트로 잠도 자고 딱딱한 두 조각의 빵을 살 수 있는 장소를 발경했던 것이다. 이것을 밑천으로 삼아 처음에는 칼로 찔러 조각들을 물에 불려벅고, 식당에는 하루 걸러 찿아가 계산서가 높아자자 않도록 했다. 내 빵은 거의 동이 났다.  나는 한국에서 쌀 흉년으로 기근을 맞본 바 있다. 이제 완잔 고립 상태에서 얼어붙은 가슴을 안고, 주위는 모두 풍요하자만 나 자신은 마침내 뜯어먹을 풀도 없는 아스팔트의 굶주림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청파는 한국인 조지 점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러한 혹독한 가난과 허기의 고통으로부터 일시에 헤어나게 된다. 드디어 한청파는 조지의 집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미국의 편리한 문명 생활에 몸을 담게 된다.
조지 짐은 직업은 가정집의 전문 요리사이지만, 그는 이미 미국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고, 그의 수입은 워싱톤 D.C주재 한국 대사보다 많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지닌채 홀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낙천적인 인생관의 소유자로 여인들에게 특별히 관심이 많은 전형적인 사랑 절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사랑의 편지를 쓰고, “인생은 여성과 더불어 의미가 있을 뿐, 고전이나 조상에 있는 것은 아니거든.”하고 시의 세계에 빠져있는 청파의 생각을 못마땅해 하는 것처럼 그는 청파와는 극히 대조적인 서양의 자유와 문명에 취한 현실주의자라라 할 수 있고, 청파에게 현지의 서양 생활과 현지의 한국인들과의 가교역활을 하게된다.
그는 청파의 긴 한국식 옷을 가위로 짧게 자르고, 낵타이를 매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 그에게 미국 생활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이 되어 주었다.
청파와 그는 중국 타운에 가서 그가 청파 몫으로 카드 내기를 걸어서 운좋게 10달러를 벌었다. 청파는 결국 그 돈으로 중국집의 음식값과 방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청파는 그를 따라 뉴욕에 있는 한국 교민 기관에 가서 그곳에서 일을 보고있는 고박사와 옥목사등 많은 한국 식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교우하게 되면서 한국인 변씨와 선이란 분도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된다. 결국 직업 소개소 일을 맡아보는 변씨의 도움으로 그는 일자리를 얻어 박씨란 분을 따라 가정부 보조원으로 일하기 위하여 조지 집을 나선다.
박씨는 다시없이 착하고 일을 잘해서 일을 할줄 모를는 그의 몫까지도 해내곤 하지만, 까다로운 주인에게 일주일만에 해고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선의 도움으로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 그의 사무일을 돌보아 주는 것으로 생활을 꾸려 나간다.
결국 청파는 이처럼 이곳이 미국 땅이긴 하지만 처음에는 이곳에 온 모든 한국인들처럼 미국이 아닌 미국 속의 한국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그 당시 미국에서 살고 있던 한국인들의 생활모습이나 그들의 의식 세계를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로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는 일본 외교관인 진완이란 사람이 선의 사무실을 찾아오게 되어 등장하게 되는데, 그를 막연히 일본 염탐꾼이라고 여기고 그를 미워하게 된 린씨가 비분 강개하여 한국 민족주의자 대표 모임에 참석한 진완에게 칼부림을 하여 중태에 빠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건의 묘사는 그 시대 해외에 거주했던 동포들의 모습을 대변한 것으로 많은 교포들이 한결 같은 애국심과 독립정신에 불타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대조적인 성질의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모이면 어디에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시기, 모함, 분열 등이 그대로 묘사되고 있는 점과 함게 우리 민족의 망국의 슬픈 운명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파는 큰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작은세계 속에 살고 있는 린을 볼 뿐이어서, 고국이 자신에게서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게 할 뿐이고 불쾌한 망명객의 의식만을 높여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는 우리는 두 세계에 끼어있는 뿌리 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관습에 따라 불안하게 떠돌았고. 한국인들은 언제나 비극과 불안 속에 떠돌고 있어서 중국인보다 더 가냘픈 조국애뿐이어서, 아딜 가나 일본인들에게 목을 졸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한국인들은 이민자인 그들과 다른 망명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지와 선씨의 도움으로 가정부 사무원, 점원 웨이터 등의 일을 했으나 모두가 실패한 꼴이 되었고,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에 있는 메리타임 대학에서 장락금을 받게 되어 드디어 캐나다로 떠나게 된다.
그는 떠나기 전날 중국인 식당에 들렸을 때, 여기에서 우연히 동양인 듯한 삼십대 초반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게된다. 청파는 세심하게 그에 대한 인상을 적고 있다. 다음에 등장하게 될 중요한 작중 인물인 김도원에 대한 복선인 것이다.

"이른바 동양적인 평화가 없어 보였다. 초록빛 섞인 검은 빛깔로사색에 잠긴 그의 눈. 그것은 유달리 넓고 번쩍이는 곱슬곱슬한 눈꺼풀을 보면 시인, 예언자, 아니면 미친 사람 같이 보였다. 그러나 입술은 젊은이답게 선이 멋지고, 신사다운 신중한 입이 모든 것을 지켜 주었다. "(중략)
"오랫 동안 외국에 있었던 아시아인이 분명했다. 나는 그의 몸에서 내가 스스로 오랫 동안 얻고자 동경한 미지의 이념과 오묘한 지식을 느낄 수가 있었다. "

드디어 그는 캐나다로 떠나가는 증기선에 몸을 싣고 멀어져 가는 뉴욕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나는 아무것도 승리한 것이 없었다. 소수의 한국인 친구들이 유배자의 굶주림에서 나를 구해준 것 밖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리고 뉴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느 것 같고, 저 요새와 같은 보고의 지극히 단순한 변두리만 보았고, 마음껏 발전해가는 기계시대의 생명을 잘 보지 못했다. "

(제 2편)
그가 도착한 캐나다의 이 작은 항구 도시 헬리팻스 시는 마국 독립전쟁 당시 독립군을 진압하던 영국군의 주요 작전 도시였던 곳으로 묵은 잉글랜드의 영혼 깃들어 있는 보수적인 도시이다.  그는 그곳에 도착해서 그의 스승이며 은인인 루터 선교사를 만나서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그의 집에 머물며, 그의 자녀와 그가 데리고 있는 다른 네 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지낸다.     그는 그 때에 선교사 루터씨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조용한 아시아의 평화가 루터씨 이마에서 그리스도교 선교의 끈질긴 신념이 보였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또 언제나 그저 똑 같다 캐나다 선교사의 세계-중국인 마을의 중국인들의 경우처럼- 동양에 대해서도 서양에 대해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

목사직을 공부하는 이안과 랠프 두 분의 지도와 안내로 대학 등록을 마친 그는 학기가 시작되어 대학 기숙사인 그린 그로 브의 기숙사로 들어간다.  잉글랜드 풍의 정원과 소나무에 둘러 싸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는 그곳에서 전통적인 영국 풍의 분위기 속에서 영문학 공부에 전염하게 된다. 이 때 그를 지도했던 도널드 박사로부터 ‘잉글랜드 문학사 개관’ 을 공부하고 잉글랜드 문학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이 신학을 공부하는 학교이지만 그래도 그가 기숙사 안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도둑의 누명을 쓰고 백인 청년들에게 양 팔을 붙들린 채 “다른 쪽을 대. 너는 착한 그리스도 교인이니까!”(Turn the other. You’re a good Christian!” p105)하고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그는 뒤로 그 학생에게 영국 풍의 결투를 청하지만 주위의 만류로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모두가 너무나 친절했고 모두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는 스스로 진실되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점에 스스로 슬픔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처럼 외롭고 슬프고 옹졸하게 천하게 그 그리움을 몰랐던가? 왜, 요컨데, 또 다시 –진실한 로디 가드너처럼 다시 한번 다시 한번 탎출을 꿈꾸었던가? 아메리카로의 멋진 여행, 서양 학문에 대한 탐욕스런 소망, 그것이 원인일 까?"

결국 그는 그곳에 정착할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작정 학문과 미국에 대한 열망에만 가득 차 있었던 것같다.
그는 연말 휴가를 통해 잠시 랠프와 먼 여행을 계획하고 먼저 떠난 랠프를 찾아 꼬박 하루를 걸려 기차를 타고 찾아가지만, 그와 만나지 못하고, 그는 불어만을 사용하는 낯선 도시에서 벙어리 동양인 신세가 되어, 다만 랠프가 도착될 때까지 허기와 추위로 몇날을 지낸다. 다행히 랠프가 찾아와서 그는 위기를 면하게 된다.
겨울이 지나고 다음 해개 되자 그는 그곳에 있는 상자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무사히 공부를 마친다.
그리고 그는 그곳을 떠나면서 그를 가장 극진하게 보살펴 주었던 러브 조이 박사 부부에게 찾아가 작별인사를 하고, 두 부부가 손을 잡고 덩굴 덮인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남을 위한 그들의 진실한 사랑의 정신과 그 여유로움에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온 청파는 다시 조지와 선을 만나게 되고, 선과 함께 만년필 장사를 시작 하지만 곧바로 실패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 서적 세일즈맨인 라이블리 씨를 만나 그의 집에 머물면서 간단한 가사를 도우면서, 세일에 대한 연수를 시작한다. 그러나 뉴욕 조지가 그의 애인인 서양 준 여인을 데리고 그에게 찾아와서 뉴욕으로 갈것을 청하자 그는 곧바로 뉴욕행을 결심한다.
그가 라이블리 부인에게 이를 말하자 그녀는 흥분하고, 조지를 두고 그리스도 교인이 아니라면서 그를 못 마땅히 여기고 조지가 백인 여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잘못 됐다고 흥분해서 말한다.

“동양 청년이 아메리카 여성과 함께 다니는 일은 현명하지 못해요. 동양인은 동양인과 결혼을 해야 하고, 서양 여성은 서양 남성과 해야 해요. “

아어서 그녀의 딸도 큰소리로 낄낄대며
“오!” “어머니, 만일 중국인이 미국인과 결혼하면,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요?” “어머니 그건 재미있지 않아요? 그것을 보고 싶은데.” (150 p)

말할 수 없는 인종 차별에 대한 표현이다. 그렇게 친절하고 종교에 의해 도덕적으로 훈련이 잘 되어있는 라이블리 부인이  
지만,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 의식만큼은 엄청난 것이라할 수 있다.
그는 다시 뉴욕에 돌아오게 되고, 그곳에서 그는 뉴욕의 번잡함에 심취하여 그들과 함께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끼여들려고 하는데는 돈은 들지 않는다. 최소한의 저항은 똑바로 걸어가는 것이다. 미국의 노선에 서도록 노력해 보자.”

유배자들의  꿈
저녁을 먹으러 단골 중국 식당에 찾아갔다가 청파는 그곳에서 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 동양 청년을 다시 만나다. 그는 바로 한국 청년 김도원 이다. 청파는 그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를 따라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밤늦도록 다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청파는 십육 년 동안이나 외국에서 살았다는 그에게서 다시없이 많은 정신적 감동을 받는다. .
다음날 김은 다시 청파를 마국의 예술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술울 마시고 춤을 추는 파티에 초대한다, 청파는 그곳에서 비로소 미국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하게 노는 모습을 보게 되고, 둘이서는 함께 미국의 문화나 문학과 사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사람이 뿌리를 내릴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사람이 닻을 내릴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어.. 나는 게으르지 않았소. 16년간 도이치, 프랑스, 잉글랜드, 아메리카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나 자신을 칸트의 미로와 헤겔의 퍼즐과 학문의 지옥으로, 아인슈타인의 기하학적 추상으로 설렵해 왔소 ,. …그런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
“당신과 나는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 인생, 새 종교를 찾아 서양에 왔소. 그러나 어디에 그런 것이 있소? 슬프도다! 우리는 좋지않은 때에 왔소.”

이러한 김씨의 말을 듣고 그는 이내 힘이 빠지고 슬픔이 밀려왔다.  그는 그보다 앞서 온 그를 보고 처음에는 용기를 얻었지만, 그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을 말하자 청파는 적잖이 실망에 잠긴다.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청파가 아직은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서양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에 대한 김도원의 실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보스턴에서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라이블리씨의 사무실을 찾아가게 되고, 그로부터 다시 서적 판매에 대한 교육을 받고 대학 공부를 하며면서 서적 판매일에 매달린다.
그러던 중 김으로부터 그가 보스톤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고,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 그를 만나다. 그리고 그와 보스턴의 도시에 대한 특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표현은 미국사회의 도덕과 권위에 대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정신을 보스톤 도시의 특색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김은 그곳 대학의 유명교수인 알렉산더 캠블 교수에게 그를 데려가서 소개해 주고, 다음날은 그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까운 도시로 가서 대학 장학금 사정위원인 웰링턴 박사를 찾아간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를 시작하고 캠벨 교수의 특별한 강의에 매혹되고, 앞으로 좋은 지적 친구가 되는 찰스 에반스를 만나서 교우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호텔 주방에서 물품을 관리하는 알에 취직이 되어 기본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가 거처하는 조그만 다락방은 그에겐 너무도 추웠다. 그래서 그는 도서실과 역 대합실을 찾이다니며 책을 읽곤 했다.
그는 그가 일하는 호텔식당에서 매일같이 쓰레기 통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엄청난 음식 쓰레시를 보고, 미국의 물질적 풍요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를 다시 방문한 김은 늘 오만하고 예민했지만, 그래도 그의 말은 청파에게 깊게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으면 우주가 측량할 수 없이 팽창한다. 그리고 그는 어쩐지 똑 같은 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싶었다. 그러나 서로의 반응은 본질적으로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해 여름은 서적 판매에 매달려 있었지만, 힌긴스 부인을 만나게 됨으로 해서 그일을 그만 두고 그의 집에 취직을 해서 농사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학기를 마친 그는 그곳을 떠나 대학에 등록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부활절 휴가를 이용해서 그는 뉴욕을 찾아가 방문 김도원을 만난다.
그는 김도원이 머무는 그의 집을 방문하고 김도원이 이미 서양 문화에 깊이 젖어 있음을 보지만, 그의 정신 세계는 이미 서구 문화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서양과 동양이 서로에게 망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서양에 지혜를 얻으러 왔어. …… 그러나 내가 여기 왔을 때-하하! 서양의 지헤는 도이치의 옛날 화폐처럼 내게는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래도 나는 왔지. (자네는 그러지 않기를!) 이것이 서양 지혜라는 거야.” “자네는 대학에서 그것을 얻지 못할 거야. 바로 그거야.”

이어서 그는 청파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동양 예술품 수집가인 브라운 이라는 서양 한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면서 그리스 문화를 전공했으면서도 이에 실망하고, 동양에서가 아니고는 착함이 없다고 심취해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공자에게 존경을 바쳤지만, 플라톤에게는 그러질 않았어……그는 현대 동양이 서양화되어 망가지고 있음을 안타 까워했지.”그러자 청파는 “그게 멋있잖아!” 우리가 서양화 하고 있을 때, 서양은 동양화 되어가고 있지” 하고 외친다.

그가 다시 그를 방문했을 때는 중국 신문학의 선구자인 후진(Hu Shih 문학자. 시인)의 수제자인 그의 친구 수치모를 만난다. 수치모는 사랑이라는 것을 인생 절대 이상이고 진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김도원과 대조적으로 어찌해서든지 동양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설득하고, 동서양 모두에게 실망하고 방황하고 모두에게 절망하는 김도원에게 동양으로 돌아가 동양을 부흥시키자고 설득한다.

“이 친구 동양은 우리가 속한 곳이야! 그리고 동양은 자네의 생각처럼 죽지 않았어. 사막은 곧 꽃이 필거야. 구악의 습성이 모두 근절되고 없어지면-뿌리 밑에 아직도 푸른 싹이 있어-새 생명이 대신 할 것이야. 동양의 썩지않은 뿌리에 서양의 좋은 것을. “

그러나 도원은 동양은 이미 황무지에 쌓인 낙엽이상 그에게는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에 잠겨있는 김도원의 장래가 염려된다고 수치모는 걱정을 한다.

“김은 어찌 될까!””그는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어. 그는 사랑하는 미국 여인을 얻거나-아니면 공산주의자가 될것이 분명해……왜냐하면 그는 막다른 골목 끝에 서 있으니까.”

다음날 청파는 도원을 따라 그가 전날 말한 미국인 친구 아서 브라운 집을 방문한다.
아서 브라운은 일찍부터 동양의 서화 그림을 총망라한 예술과 전통사상에 대해 특별하게 심취한 사람이다. 그의 집에는 중국 방과 일본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는 중국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각종 문화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도원은 그런 소장품들은 동양에도 존재하지 않는 값진 것들이어서 동양미술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제 서양으로 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아서 부라운은 이러한 동서양의 예술품에 대한 권위 있는 책과 논문의 대부분을 그는 읽었다고 청파에게 들려 준다.        
브라운이 자신의 각 방에 진열되어 있는 동양 에술품을 청파에게 소개하면서 말했다

“놀럽구만. 안그래? 어떤 민족도 이 중구예술가들이나 한국 형제들처럼 장식 계열애서 색채와 구도의 효과를 완성헝 적은 없지.” (그러면서 뛰어난 한국 그림 하나를 가리켰다)

이어서 도원이 다시 말한다.
“브라운 씨와 나는 비슷하지만 또 다르오. 나는 한 세계를 버리고 다른 한 세계를 택할 수 없지만, 브라운은 이러한 갈등을 겪지 않았지. 그는 대용품으로 동양 예술품에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이러한 브라운의 등장은 작자가 서양인을 통해서 보게되는 동양문화의 가치를 보다더 객관적으로 표현해보려는 의도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동양인은 서양에 심취할 수 없지만 서양인은 동양에 깊이 심취해 있는 점은 극히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미소와 영원한 이별
이때 브라운에 뒤이어서 소개되는 부라운의 부인과 브라운 사촌인 헬렌 한콕 여인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전통적인 아일랜드 풍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서양의 전통적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다. 더욱이나 그는 개신교도 아닌 유럽에서 성장한 전통적인 유럽풍의 여인이다. 김 도원은 이 여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녀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눈다.
헬렌이 도원에게 뉴욕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도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여기서 사나이가 갈 길은 돈과 권력이오. 그러나 돈과 권력은 내 민족 내 동포를 위하는 길이 아니오. 비록 우리가 성공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칭찬을 받지 못하고 단지 미움과 두려움만 당할 뿐이오..”

그리고 다시 헬렌이 “왜 미워하고 두려워하지요?” 하고 묻자,

“ 이교도들이 건너와서 좋은 예절과 고상한 도덕을 망쳤지요. 힘이 없을 때는 이교도들은 더욱 참을 수가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교도는 별로 두려워할 것도 없지요. “하고 도원이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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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이미 가까워진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청파는 도원과 함께 헬렌과 동양의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도원의 관심에 따라 헬레과 김도원은 가까워 진다. 여기에서도 도원이 청파의 분신이라는 것이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헬렌은 청파가 일찍이 일본에서 귀국길에 만났던 신비의 여인을 간접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고, 도원을 통해서 자신의 여인에 대한 탐미주의적인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도원과 헬렌은 차츰 서로가 서로의 정신세계에 취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이들의 사랑이 헬렌의 가족들에게 크나큰 문제로 등장함에 따라 이들은 고통을 느낀다. 결국 도원의 헬렌에 대한 사랑은 그의 서양에 대한 마지막 도전인 셈이다. 도원의 정서는 헬렌 한콕과 깊숙히 엉켜가고 있었다.
도원은 청파의 한국인 친구 조지 짐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조지는 모든 이교도의 동물성과 세속의 정욕, 이십세기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원의 사랑은 그렇질 못했다.

‘…도원의 사랑은 깊숙한 산 속의의 애타게 보이지않는 새소리, 이 세상에서 도무지 소용없는 딴 세계 사람의 목소리였다. 일순간 나는 저들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가엾은 알안가를 생각했다.’

청파는 한국인의 의학도의 도움으로 여름내내 집을 비운 닥터 지마시 집에서 지내다 그가 돌아올 무렵에는 길거너에 있는 슈미트씨의 집으로 거쳐를 옮긴다. 그곳에서 그는 가정 요리사인 흑인 로렌조와 함께 지낸다
한참 동안 소식을 모르던 도원의 소식을 광고문 일감 관계로 브라운씨를 만남으로써 한참 동안 소식을 모르던 도원의 소식을 듣게 된다. 헬렌의 집안은 도원에게 친절했고 정중했지만 냉담했다. 헬렌은 김도원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보류한체 길고 먼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헬렌은 김에게 자신은 결코 달라지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양을 그리도 사랑한다는 그의 사촌인 브라운도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거다 도와준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결국 동양과 서양이 화합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도원은 핼렌의 부친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만일 자네가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내 딸을 사랑한다면,”’자네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감하게 멀리 떠나는 길이요. 이제 울타리는 부서졌네,”

그리고 편지는 자신의 딸에게 편지를 보내지 말것과 어떤 방법, 이든지’남매의 정이나 기독교 사랑’ 등도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헬렌은 늘 거울을 드려다 보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 거울에는 흔적도 없어. 나느 본다네.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 다만 눈동자가 풀린 사나이가 헬렌의 영상이로다.”

도원은 날로 그의 눈빛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 3편>
청파는 드디어 대학을 졸업했고. 다시 다른 대학에 등록을 했다. 이국의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한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나라에 머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곳에서 공부릏 하고 있거나, 그와 비슷한 신분으로 머물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잘들 적응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와는 달랐다. 그도 처음에는 의학을 전공하려했다. 그 이유는 서양의 풍요나 힘이 그러한 신과학의 힘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꾼다. 이는 서양 물질문명에 대한 실망과 그의 불안한 영혼을 과학의 힘으로는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서양에 대한 실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한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나는 의학도가 안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영혼을 마셔버릴듯한 현실 앞에서 사막처럼 목이 타자 나는 재빨리 달려가 셸리의  <하늬 바람 찬가>를 읽어야 했다.”  “여기서 나는 특히 거창한 기계로부터 벗어나 어떤 영양제를맞은 것 같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학자나 기능인보다는 예술가적인 시인이었음을 확인 할 수가 있다. 그는 교육학과 비교문학, 그리고 문학 분석학을 공부하면서 조금은 마음에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어서 그는 도원을 통해 손문을 찬미하고 철학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중국인인 우군을 만난다. 그는 수지모와 같이 동양의 미래에 대한 희망에 차있고, 청파에게 함께 중국에 돌아가서 중국 국립 대학에서 강의를 하자고 제안하지만, 청파는 아직은 그래도 서양에서 세계적인 조망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이를 거절한다.
그가 귀국할 즈음에 청파는 그로부터 백화점 운영자를 소개받아 백화점 일에 종사하게 된다..
그는 백화점의 운영에 대한 유통과 종업원 교육, 선전 등 제반 운영 일을 꽤뚫어 보고 난 다음, 그 비상한 경영 방법이나 교묘한 선전술 등 공익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돈만을 아는 그 경영자들을 비판하게 된다.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서양의 상업주의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영혼 파괴에 너무 엄청나게 값이 들어.. 백화점은 공장보다도 나빠. 목적은 언제나 돈, 물건 판매지……인생도 아니고, 무엇의 창조도 아니야. 인생에서 벗어났지. 인간을 물건 다루는 기계로 만들었어.”

윈터스 부부를 통해서 처음으로 처칠양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전통적인 서양에 상당히 반항적이어서 많은 동양인들과 가깝게 지낸다. 그녀는 로라 제임스라는 여인과 함께 살면서 자선단체의 일을 보고, 많은 동양 사람들과 교제하고 가끔 그의 집에 서 그들을 초대해서 만찬을 벌이곤 한다.
청파는 그곳에서 미술학도이며 옥스포드를 예찬하면서도 잉글랜드인들을 혐오하는 흰두교도인 애국자 센자르와 서양문명을 신비하게까지 여기는 낙천적이고 무비판적인 일본인 미야모리 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담도 키가 크고 날씬하며 명상에 잠긴듯한 동갑내기 로라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하루는 배우들을 위한 만찬에 많은 사람들이 초대된 자리에서 인도인 센자르는 영국인들의 이중적인 민족성을 비판하고 영국인들의 인도에서의 파렴치한 행동을 폭로한다. 이에당황한 사람들이 대화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그는 “우리는 맨 가슴으로 총탄을 대하오. 인도에서 우리는 꺼지지않는 불이오. “하고 흥분해서 쉬임없이 떠들어 대자 분위기가 사뭇 험악해진다.
집주인인 처칠양은 난처해서 어찌할바를 몰라한다. 바로 이때 청파는 자리에서 일어나 샌자르 앞을 가로 막으며,

“당신 흰두족은 우리가 일제 치하에 있는 것보다 잉글랜드 치하에서 더 낫게 지내고 있소.’”

하고 일본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에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폭로하면서 그를 밀쳐내서, 난처해진 처칠 양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서양인들은 결코 아시아인들처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것이 차라리 맹렬한 선전포고다. 그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폭풍의 중심에 있었고 혈전의 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청파가 나서서 그를 막아냈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이로 인해 청파는 서양인들에게 거의 공로훈장을 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게되고 모두가 그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이로 인해서 그는 매주 모이는 이 만찬의 주인공이 되었다.
청파는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처칠양의 집에 찾아가 로라양과의 만남을 즐긴다. 그들은 최근 서적 희곡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청파는 그녀와의 대화를 즐긴다.

불붙는 탐미의 여신들
그러던 중 어느 수요일에 나타난 또 한 커풀인 반과 트립이라는 두 여인을 만난다.
청파는 뉴욕에서 온 두 여인 중 트립이라는 여인과 함께 로라로 인해서 자신도 모를 사랑의 정서에 붙들리게 된다. 결국 비현실적이고 시적인 동경과 함께 트림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 이끌리게 된다. 로라 또한 종잡을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오락가락하며 청파의 정열에 불을 붙였다. 드디어 로라는 청파가 트립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 채린다.
얼마후 청파는 책에서 찾지 못한 이상향처럼 자신을 부르고 있는 뉴욕을 방문할 것을 작정하고, 로라에게 말해서 망설이는 그녀에게서 결국 반과 트립에게 방문할거라는 편지를 쓰겠다는 대답을 받아낸다.  
청파는 뉴욕을 방문하고 드디어 트립을 만난다.

‘우리는 그니 집 문 앞에서 얼굴을 마주 대했다. 동요없이 극히 유연하게 미끄러지듯이 내 꿈은 현실의 옷을 입었다. 나는 그니를 사랑했다. 트립을 사랑했다. 단호한 각오로 그니집에 들어섰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어께너머로 인사겸 즐거워하며 돌아보는 그니의 모습은 내가 언제나 찾고 있었던 모든 새 삶으로 가는 신비한 열쇠로 보였다.”

청파는 그녀의 방에 들어가서 사랑의 고백을 하려 하지만 망설인다. 그리고 묘안을 생각해낸다. 방안 타자기 곁에 수북이 쌓인 그녀의 원고를 보고,

“나를 도와 주었으면 해요.” “나는 책을 쓰고 싶어요. 책을 쓸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줄 수 있지요?”

청파는 이렇게 해서 우선 그녀의 관심을 끌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필라델피아로 돌아와서 백화잠 일을 마치자 마자 다시 뉴욕으로 그녀를 찾아간다. 그러나 트립은 그곳에 없었고, 그녀는 이미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만 것을 알게되고 실망한다. 그는 당황하여 그녀의 고향을 물어 그녀에게 수차 례 편지를 썼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결국 도원의 연인인 헬렌처럼 트립도 청파의 소망과는 멀고 먼 외딴 곳에 가 있었다.
기독교 개신교 장로인 흑인 본휴어를 타운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아 그가 단체로 집단 생활을 하는 그의 교회에 가서 함께 지내게 된다. 그는 청퍼에게 강연을 부탁하고 자신을 도와주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기독교 사회가 종교적 탈을 쓰고 위선적으로 돈 벌이에 급급하는 개신교자들이 그들은 육체적 욕망을 죄악시 하고 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참으로 신성한 하는님의 자녀로 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고 있는 점에 크게 실망을 느낀다.
그는 참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일찍이 본국에서 미션계의 학교를 다녔고 세례도 받았지만, 그는 참된 신지는 아니다. 그래도 거짓으로 위장된 미국 기독교의 모순을 발견하고 크게 회의에 잠긴 것이다.
청파는 스스로 문학적 방랑자라고 자처하고 그는 되도록 많은 여행을 한다. 여행을 하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 차를 쉽개 얻어타는 이력이 생겨 그느 거의가 공짜 기차를 타거나 남의 차를 얻어타기를 즐겼다. 그는 이러한 여행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특히 그의 일생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은인도 많이 만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는 서부와 남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방을 여행했다. 그의 조부가 일찍이 방랑자였고 그도 타고 날때부터 객지로만 떠돌며 살아야 할 방랑인의 기질을 타고 났음을 그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는 차를 얻어타는 과정에서<정의>(justice)잡지사의 편집인인 글렌 배이츠씨를 만나게 되어 아시아 계통의 편집인 자리를 마련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되고. 다음에는 또 여행길에서 커버 상원의원을 만나 후일 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된다.
드디어 청파는 자유 기고가에서 고액의 일정한 월급을 받는 고정 집필자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브리테니카 백과사전 (Encyclopaedia Britanica)14판 동양 자료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게 되고 편집장의 총애를 받는 한 제자가 된 것이다.

유배자의 죽음
그러던 중 그는 그가 맨 처음 단돈 오센트로 들어가 앉았던 중국인 식당을 찾아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못 보았던 김 도원을 만난다. 그러나 도원은 예전과는 달리 모든 것에 지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분명히 김이었다. 나는 전율을 느낄만큼 충격을 받았다. 나는 처음 몹시 달라진 자연인, 초라함, 때묻은 속옷, 해진 의복, 찢어진 신발 등을 주목했다. -언제나 김은 우아하고 멋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어떤 빈 겁데기를 보는 것 같이 그가 정신적으로 황폐가 더욱 심하게 보였다.        

도원의 말에 의하면 한국의 대지주인 그의 아버지가 죽자, 그의 이복형제가 가산을 전부 탕진한 갓 같았다.
그는 그 값진 고서화 책들을 마지막으로 팔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염려가 없다고 하고 아직 남아 있는 지패뭉치를 보여주었다.
청파는 자신이 맞고있는 백과사전 일에 동양 항목을 위해 일할 사람을 찾는 중이니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청파는 헬렌의 소식을 물었으나 도원은 남의 이야기처럼 관심이 없어 보였다.
“헬렌?”그는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하다가 차츰 생각이 난듯, 처음에는 그가 아메리카를 떠나서 유럽에 있을 때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소식을 기다렸지만, 한마디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하고 서글프게 미소를 띄우고, 다시 “나는 헬렌의 꼬리를 쫓는 고양이 같았지.”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사연이 있는 것도 같았다. 어찌 어찌 브라운 집의 하녀에게서 흘러나온 말에 의하면 그것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헬렌은 정신 요양소를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이 일로 브라운이 크게 화를 냈으며, 결국 헬렌은 치료를 끝냈다지만, 끝내는 그녀가 요양소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청파는 그가 현실의 무기력에서 일어서도록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설득했지만, 김은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본능아 없어.”하고 냉담하게 말했다.
청파는 보스톤으로 가서 로라를 방문하고 그녀에게 트립의 소재를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꺼려하는 그녀에게서 가까스로 그녀의 마리에타라는 도다른 이름을 들을 수가 있었다. 뉴욕에 돌아온 청파는 드디어 그녀의 전화번호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그러자 트립이 놀라서

“<브리테니카 사전>이라? 그것 멋지게 들립니다! 당신은 이름있는 인물이 되었겠군요, ‘명성을 얻은’ 것이 확실해.”
“오, 당신을 만나러 가도 좋을까요?”

드디어 약속을 받아 만날 수 있게 된다. 순간 그는 머리를 책상에 함성을 질렀다. 그 자신은 김처럼 신문도 안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도 안돼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는 트립이 자신을 피하지 못하게 해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청파의 꿈은 무르익어가고 있다. 유명 출판사의 동양부분 편집인에다가 월간 잡지의 고정 집필인, 그리고 그는 차츰 동양학에 대한 전문 강사로 그의 이름이 차츰 알려지고 있어서 그의 아메리카에 대한 꿈이 차츰 이루어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 한 일본인이 자살을 했다는 불길한 소식을 듣고 일주일이나 지난 신문 모퉁에서 김의 자살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김의 아파드로 찾아가서 여주인을 만났지만, 그녀는 백불 조금 넘게 김이 남겨놓은 지전으로 매장을 했다는 것과 경찰에 보고되었다는 사실만을 들려줄뿐 그의 무덤조차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청파는 김이 아직도 꽃피는 울창하게 잎이 무성한 시기인데 그가 가야만 했던 것이 아쉬웠다. 좋은 재목의 나무가 자연사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