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루벤스와 개

by 박영호 posted May 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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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지움 안트베르펜의 성모대성당과,
화가 루벤스와 플란다스의 동상"



** 벨지움 안트베르펜의 성모대성당과 화가 루벤스와 플란다스의 동상 **

[ 플라츠 광장에서 바라본 성모마리아대성당. ] 플란다스의 개는 벨지움 제2의 도시 안트베르펜이 그 배경이다.‘플란다스’는 바로 플랑드르이며, 만화에서 주인공 네로가 파트라슈와 함께 성당에 걸린 그림을 보며 싸 늘히 식어갔던 곳이 바로 안트베르펜 중심의 성모마리아대성당이다. [ 화가 루벤스 동상(위)과 그랜드마켓 광장(아래).] 성모마리아대성당은 14세기 중반에 짓기 시작해 200여 년 동안이나 지은 것으로, 1533 년에는 대형 화재로 내부에 소장하고 있던 많은 예술품이 훼손되었으며, 1794년에는 프 랑스 혁명가들에게 또한번 예술품을 몰수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폭군의 손목을 잘라 던지는 브라보상(위). 건물 위의 황금조각상. 시청사건물(아래). 성모마리아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우선 웅장한 천장 높이와 석주와 벽의 장식에 놀라게 되지만, 무엇보다 화려하게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게 된다. 성찬 대 입구 왼쪽에 이르면 루벤스의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오른쪽 에 이르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 광장에서의 결혼파티(위). 마차관광의 시발은 그랜드마켓 광장이다(아래).] 화가 루벤스 동상은 그랜드마켓의 브라보 동상과 더불어 안트베르펜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 동상이다. 화가 루벤스가 활동하던 17세기만 해도 안트베르펜은 예술의 중심지로 불 렸고,오늘날까지도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의 자랑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모마리아대성당의 출입문(위). 성당에 들어오면 우선 입구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한다(아래). 본래 독일 태생인 루벤스는 1609년 안트베르펜의 궁정화가로 임명되면서 안트베르펜에 집을 마련해 살기 시작했다. 그의 유명한 성상화, 인물화의 상당수는 그가 안트베르펜 에 살던 약 30여 년 동안에 그려진 것이다. 성모마리아성당의 예배당 내부(위). 예배당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아래). 안트베르펜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은 수많은 갑문과 운하로 연결된 항만시설 이다. 세계 3대 다이아몬드 가공도시로도 알려져 있는 안트베르펜은 상업과 무역의 중 심지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독일의 함부르크와 더불어 유럽의 가장 큰 항구도시임 성당 천장 돔에 그려진 '성모승천'그림(위).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아래)그림. 안트베르펜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랜 옛날 스헬데 강을 오가는 화물선의 통행을 방해하는 거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한 로마 병사가 그 거인의 팔을 잘라 강가에 던져버렸는데, 안트베르펜이라는 지명이 바로 거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선거운동 자원봉사자와 화가 루벤스의 집(위). 루벤스 거리의 연인들(아래). 안트베르펜의 번영은 16세기로 거슬러올라간다. 15세기부터 모직물 거래와 무역으로 성장한 안트베르펜은 16세기 들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무역항 노릇을 대신하며 유럽 제일의 무역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6세기 말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전쟁으로 안트베르펜은 한동안 쇠락의 길로 접어들지만, 1863년 네덜란드로부터 스헬데 강의 통행권을 사들임으로써 다 시금 옛 지위를 되찾았다. 벨지움의 물류 관문인 안트베르펜의 운하와 항구. [ 출처 : 다음블로그 ] 2007. 02 . 18 / SUN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