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다의 설경

by 권태성 posted Mar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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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3박 4일정으로 카나다 뱅쿠버 인근의 산을 등반하고 다음 날 동부로 3시간 거리에 있는 Manning Park로 이동해서 생전 처음으로 흰눈 위에서 야영을 하고 왔습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라서 눈이 엄청 나게 와 있었고 호수가 얼어서 얼음위로 눈이 소복히 쌓여 호수 위를 눈을 헤치며 걷는 기분이 짱이였습니다. 저녁엔 눈을 다져 눈 위에 텐트를 치고 shelter 에 있는 난로에 불을 지피고 밥과 김치찌게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답니다.
저녁 늦게까지 모닥불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좁은 텐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동료들은 익숙해서인지 다들 잘도 자는데 나는 영 어설프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잠이 들지 않을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을 했으나
연 이틀의 강행군 탓인지 잠이 깜박들은 후 새벽 3시 반경 잠이 깼지요.
텐트를 나오니 사방은 너무 고요해서 약간은 무섭기도 하고 간밤에도 눈이 더 많이내려 흐린 구름 사이로 희미한 달빛을 받아 천지가 온통 눈, 눈이었답니다.
주위의 소나무는 눈의 무게로 가지를 축 느리우고 장승처럼 서있고 텐트 두개도
눈으로 덮여 둥그런 무덤 같이 누어 있었지요.
소피를 본 후 다시 잠이 오지도 않을 것 같고 너무 멋있는 이 순간을 잠으로
낭비하기가 싫어서 사그라들은 모닥불의 재를 헤쳐보니 몇개의 불씨가 남아
있어 왕년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해 다시 불을 지피우고 활활타는 모닥불 앞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을 맞았답니다. 하지만 간혹 무게에 못이겨 소나무 가지의 눈이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가끔씩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들어 낸 달 빛이 눈 위에 부서 질 때는 정말 환상적이 었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눈 쌓인 깊은 산속의 새벽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답니다.
내가 이 아름다운 순간, 순간에 무얼 생각 했는지 아세요?
영화 닥터 지바고 중에 유리가 유레카의 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장면을 생각 했지요!!
불행이도 그날 밤엔 늑대의 울음 소리가 없었고 사랑하는 라라가 내 옆에 없어서 아쉬웠지만 동료들이 잠을 깰때까지 긴 시간을 모닥불에 추위를 녹이며 홀로 사색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주위의 아름다운 모습들 하나, 하나를 놓지지 않고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 두고 싶었답니다. 아침에 얼큰한 김치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다시 4시간여 눈산을 등반한 후 무사히 귀가 했답니다.
경험과 장비가 부족해서 조금은 힘들기도 한 일정이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