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보다 푸른 돌 / 정완영

2009.08.08 01:48

김영수 조회 수:1006 추천:4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
난(蘭)을 내가 심었더니

이제는 깨워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 본다.

천지간
어여쁜 물 소리
새 소리를 만져 본다.
                                    (난(蘭)보다 푸른 돌 / 정완영)


*무인이 손에 든 것은 칼이요, 문인이 손에 쥔 것은 붓이다. 둘이 사람을 살리는 활인(活人)으로는 같다. 그러나 칼은 적을 베어 만인을 살리되 붓은 자신을 베어 만인을 살린다. 붓이 칼보다 더 푸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청사(靑史)의 칼날 위에 당신을 세울 수 없었으리. '옛날엔 칼보다 더 푸른/난을 내가 심었더니' 한국땅에 목숨을 점지 받아 일생 시조의 길을 걸으신 노시인의 일성(一聲)이 서늘하다.
선생을 일러 "시조의 화신"이라 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일찍 "조국"을 노래하는 마지막 종장에 이런 애절한 심정을 놓은 일을 보았다." 청산아 왜 말이 없이/학처럼만 여위느냐" 그 이후로 선생의 모습은 나에겐 늘 학(鶴)으로 계신다. 그렇게 조국을 염려하고 민족혼을 고양시키던 선생께서는 '이제는 깨워도 잠 깊은 너 돌이나 만져 본다.' 만감을 어루만지듯 돌 하나를 만져 본다. 청산의 어느 골짝인들 선생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돌이 있겠는가. 평생 사랑하신 청산인 듯 수석을 만지며 종장을 뽑았는데...
'천지간/어여쁜 물 소리/새 소리를 만져 본다.' 이것을 단순히 공감각적 이미지로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선생의 시조에서는 서양쪽 시론의 용어에 담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것이 자유시를 넘어 시조가 닿을 자리인데... 나는 이 명석(名石)을 두 손으로 받잡아 들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계신 스승님께 절을 올렸다.(김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