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숙 호박 / 김동찬

2008.09.20 07:59

김영강 조회 수:738 추천:3

뒤뜰에 만들어 놓은 몇 개의 조그마한 텃밭에서 토마토나 상추 같은 야채들을 가꾸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즘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애호박이다. 씨를 심은 주위에 생선 찌꺼기나 먹다 남은 음식 같은 것을 묻어주면 예외 없이 싹이 돋고 얼굴만 한 이파리가 무성해져 주변을 장악한다. 그리고 노랗다 못해 붉은 색이 도는 호박꽃이 핀다. 꽃이 진 자리에 새?손가락만 한 호박이 달리고 마침내 팔뚝만큼 크게 자라나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애호박이 자라는 모습을 보다가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내의 친구가 다섯 살 때쯤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녀는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혼자서 자신의 이름, ‘권영숙’을 쓸 줄 알게 되었다. 조기교육이라는 것이 흔치 않았던 시절에, 또래의 친구들은 글자 쓰는 것을 꿈도 못 꾸고 있을 때 이름을 쓸 줄 아는 자신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놀 거리도 많지 않을 때라 자신의 이름을 여기저기에 써보는 일은 자기가 큰 언니나 되는 양 뽐내는 마음이 드는, 재미난 놀이가 돼주었다.
   어느 심심한 날, 어린 영숙의 눈앞에 호박이 눈에 띠었다. 손톱이나 못 쪼가리 등으로, 친구는 어린 호박에 흠집을 냈고 영숙은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자기네 밭에 열린 모든 호박에 쓰고 나서 옆집 호박밭에까지 이름을 써댔다. 그리고 한동안 그 이름이 호박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영숙의 집에서는 집에서 먹을 호박이니까 낙서나 흉터가 있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옆집 사정은 달랐다. 어느 날, 옆집 아저씨가 호박을 한 리어카 가득 싣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 딸이 이렇게 호박농사를 망쳐놓았으니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영숙은 그제야 자기가 한 짓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옆집 아저씨도 무섭고 아버지에게도 혼날 것만 같아 조마조마 했다. 범인의 이름까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으니 변명할 여지도 없어 호박 값을 다 물어준 그녀의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고 아무 야단도 치지 않으셨다.
   철없는 어린 딸이 한 짓을 나무래 보았자 이미 지난 일이니 딸의 기나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남의 딸보다 총명해서 혼자서 이름을 쓸 줄 알게 된 것을 대견스레 여겼을 수도 있겠다.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이 사랑하는 딸이 훌륭한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아버지의 마음에 은연중에 있었을 거라고 그녀는 아버지를 추억했다.
    나 또한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같이 쓰고 있는 안 방의 문설주에 판자 쪼가리를 큰 못으로 꽝꽝 쳐서 붙여 놓았던 적이 있다. 말하자면 문패, 아니 방패인 셈인데 거기에 ‘의학박사 김동찬’이라고 써놓았었다. 그 때 우리 부모님도 그 방패를 떼지 않고 한동안 두고 보시면서 웃으시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버지도 권영숙 씨의 부친이 딸의 이름이 새겨진 호박을 보던 마음으로 방패를 바라보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검정시험으로 의사가 된 분이라서 막둥이 아들이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학박사로 대를 이어주기를 바라셨을 지도 모르겠다.
   호박이 자라듯이 호박에 새겨진 이름과 함께 우리들도 성장했다. 아무리 큰 꽃을 피우고 큰 열매를 맺어도 기뻐해주실 부모님도 안 계신 지금, 이름을 얻어서 무엇 하랴 하는 허무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자식들의 허물을 늘 덮어주고 믿어주고 자신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바라셨던 부모님들의 그 마음만은 잊지 않고 싶다. 그래서 적어도 그 기대에 먹칠하는 이름을 가진 자식은 안 돼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호박에 얽힌 이야기를 담으며, 이 수필에서는 보통 때와는 달리, 훌륭한 교육자로 성장한 권영숙 씨의 실명을 제목에서부터 밝혀 썼다. 권영숙 씨의 아버지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이 글을 보며, 호박에 새겨진 딸의 이름을 보았을 때처럼 또 껄껄 웃으실 것만 같기 때문이다.  

   -- <에세이21> 2008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