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시인의 '물이 진하다'

2004.11.21 00:41

문인귀 조회 수:1294 추천:41

물이 진하다

           임창현/시인 * 워싱턴거주

물은 서로 섞이고
또 섞이고

피는 갈라지더라

물보다 진하다던 피,
A도, B도. O도,
AB도
물에는 없다

물안개,
안개비 되어 내리고,
얼었다가도 다시 녹는 물,
물은 합해지더라

갈라도,
갈라도,
갈라지지 않는
물,
피보다 진한
물.


  한 형제, 한 혈통, 한 민족임을 강조할 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을 쓴다. 요즘에는 끼리끼리 한통속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남용하기도 해서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되고 있다.
  임창현시인은 “물이 피보다 진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피가 합치는 것은 까다롭다는 것이다. 몸 밖으로 나온 피는 쉽게 응고가 되어 합칠 수가 없고 몸 안에 있을 때는 다른 혈액형을 받아들이질 못해 합치질 못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옅다는 물은 갈라지는 것 보다 합치는 것을 좋아한다. 맑은 물과 흙탕물이 만나면 한 쪽은 거만을 떨지 않고 한 쪽은 부끄러움을 털어내며 서로서로 하나가 된다. 산위에서 내리는 물이나 얼었다가 녹는 물 역시 그렇게 만나 하나가 되어 흐른다. 흐르는 동안 앙금은 가라앉고 맑은 물끼리 함께 흐른다. 때로는 산을 만나 갈라진다 해도 다시 만나 흐르며, 때로는 하늘로 증발하기도 하지만 다시 비구름이 되고 안개비가 되어 내린다. 그래서 다시 만나 하나가 되니 이 물의 화합하는 모습에 자칫 상대를 거부하기 일쑤인 피의 만남정도로는 견줄 수가 없는 일일 것이다. 만나기만하면 합쳐지는 물의 이러한 만남처럼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한 맘 한 뜻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인귀/시인

-일요신문 게재